소천악 73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73화
"알아봐야 도움이 전혀 안 될 텐데요."
"이런 괘씸한 놈!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이 정녕 죽고 싶으냐?"
"거참, 말귀 못 알아듣네. 지금 꼴을 생각도 안 하고 떠들면 됩니까? 왜 더 크게 소리쳐 보시지요. 아주 소문을 요란스럽게도 내십니다."
차갑게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금사란이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실감했다.
"이런 망할 녀석!"
이를 부드득 가는 그녀의 눈에서는 독기가 철철 배어나왔다. 바라보던 소천악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정신이 있으시오? 지금 어떤 상황인데 큰 소리를 치시는 겁니까? 이 꼴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하는 거지요? 거참, 심히 걱정됩니다."
"닥쳐라!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리 무례한 짓을 하는 것이냐? 당장 풀어주고 백배 사죄하면 특별히 목숨만은 살려주마!"
서슬 시퍼런 그녀의 말에 기가 막힌 소천악이 두 눈에 섬광을 번뜩였다. 성격을 보아하니 좋게 해결한다는 건 아예 물 건너갔다는 판단이 들자 얼음장 같은 말투로 돌변했다.
"아주 인물 나셨습니다. 이건 도무지 협상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군요. 정히 벌주를 마시겠다면 아주 간결하게 해결해 드리지요."
소천악은 침대로 성큼 다가가 불륜의 남녀를 이불로 칭칭 감아 번쩍 들어올렸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하던 그녀가 깜짝 놀랐다,
"네 이놈!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보면 모르시우? 이 꼴 그대로 대장군가 정문 앞에 고이 모셔다 드리려고 하는 거지요."
소천악의 말에 금사란은 펄펄 뛰었다.
"무엇이라! 네 이놈!"
"거참! 입 좀 닥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소이다. 이놈 저놈 소리 들으며 기분 좋을 사람은 대명천지에 한 명도 없소이다."
다짜고짜 두 사람을 감싸 안은 이불을 둘러 메고 방문을 나선 소천악은 슬쩍 몸을 날려 전각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정문 쪽으로 바람처럼 움직였다. 정문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녀는 똥줄이 타는 긴박감을 느끼고 다급하게 말했다.
"네 이놈! 감히!"
그녀의 입에서는 여전히 위압적인 언사가 튀어나왔다. 평생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살아왔던 그녀였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평소의 언행이 여실히 드러났다.
"난 놈이 아니오이다. 신체 건강한 대장부외다. 그리고 '네 이놈' 자꾸 이런 말 하시면 '네 이년' 소리 나갑니다. 험한 꼴 보시기 전에 자중하시지요."
살살 비아냥거리는 소천악의 말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사로운 놈이 아니라는 게 말투에 줄줄이 배어나오는 걸 가슴으로 직감했다. 그녀의 느낌대로 소천악은 정문 근처에 내려서 이불째로 패대기쳤다. 땅에 부딪친 고통보다 소천악의 무표정한 얼굴이 더욱 그녀의 가슴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네 이놈!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느냐?"
"거참, 말 많으신 부인이시네. 잠시 후에도 태연하게 입을 여는지 내 두 눈 똑바로 부릅뜨고 지켜보겠소이다."
귀찮은 얼굴이 확연한 소천악은 서서히 몸을 뒤로 돌렸다.
"잠깐 멈추어라! 우리 이러지 말고 말로 하자."
비로소 상황을 직시한 금사란의 목소리에 절로 다급함이 새어나왔다.
"됐소이다. 말로 하잘 때는 욕이나 퍼부으시고 이제 와 협상하려 한다면 내가 순순히 따를 것이라 생각하셨소? 턱도 없는 소리일랑 하지를 마시오."
그녀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저자는 한다면 하는 성품인 걸 비록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이리로 오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다 들어주겠네."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반존대가 나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독심을 품은 소천악이 그 말에 냉큼 달려올 위인은 결코 아니었다.
"마차 떠났소이다. 이제 보니 부인께서는 앞에서 웃고 뒤로 몽둥이로 후려치실 분이시오. 내가 미쳤소이까? 뒤통수 얻어맞게."
뉘 집 개가 짖냐며 비아냥거리던 소천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나 그녀를 얼핏 보아하니 여기서 물러선다면 분명히 복수한답시고 광분하며 귀찮게 굴 것은 안 봐도 뻔했다. 대가 세도 보통 센 여인이 아니다.
일단 결정을 내린 소천악의 마음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눈빛 하나하나에 드러난 심중에 그녀의 가슴은 만장절벽에서 떨어지듯 한없이 떨어졌다.
아무리 대장군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처지라 해도 이런 몰골로 그의 눈에 띈다면 그 노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쫓겨나는 건 기정사실이고 재수 없으면 악관필의 그 바른 성정에 단칼에 저승길로 갈지도 모르는 신세였다.
"이러지 마라. 내 달라는 건 다 주겠다. 은자든 권력이든 말만 하게. 이래 봬도 그런 힘은 있다네."
막상 급해지자 그녀의 입에서는 절로 달래는 말투가 튀어나왔다.
"됐소이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앞에선 웃으며 뒤로 칼질하시는 분이시오. 가만히 보아하니 부인께서도 그럴 소지가 다분하시오. 내가 미쳤다고 후환을 달고 살겠소이까?"
"절대 그런 일 없네. 믿어주게."
"못 믿겠소이다. 정말 시끄럽게 하시는군요. 그냥 물 흐르듯이 갑시다."
성가신 소천악은 이부인의 아혈을 다시 찍었다. 졸지에 말문이 막힌 그녀는 긴장감이 지나쳐 실례라도 할 지경이다.
"음음."
안 나오려는 말을 애써 하려는 그녀의 심정은 다른 이는 전혀 모르는 다급함이 술술 배어나왔다.
"아혈이 막히면 원래 말문이 막히는 법입니다. 자, 이제 잔치판을 벌일 시간입니다. 모쪼록 즐겁게 잔치를 즐기시길, 후후."
싸늘한 비웃음을 입에 문 채 소천악은 뚜벅뚜벅 정문으로 다가섰다. 한밤중이라 정문 앞을 지키던 위사들은 이미 문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날렵한 그의 경신법은 땅을 스치듯 다가서며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정문 앞에 서자마자 이불을 내려놓은 그가 벼락같이 정문에 장법을 전개했다. 분혼마권은 음유한 기운을 가득 싣고 정문으로 짓쳐들어갔다.
꽝! 파지직! 쿵!
미풍처럼 사뿐거리며 날아간 분혼마권은 막상 정문에 닿자 거센 폭음과 함께 일거에 산산조각난 나무토막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폭음은 느긋하게 모여앉아 새참을 즐기던 정문 위사들을 기겁으로 몰아넣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게, 정문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어느 괘씸한 놈이 정문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 가자!"
노기가 치민 길가독(吉可讀) 정문위사장은 벼락같이 소리치며 검을 부여잡고 신형을 날렸다. 군부 출신답게 결정을 내리자마자 신속하게 움직이는 기민성을 보였다. 뒤를 따라가는 위사들의 무위도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제일 먼저 정문에 도착한 길가독은 박살난 정문을 보고 분노를 금치 못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어떤 죽일놈이! 감히 이런 짓을?"
고래고래 소리치는 길가독의 길게 자란 턱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옆에서 사방을 둘러보던 한 위사가 소리쳤다.
"위사장님! 저기 보이는 이불 안에 웬 사람이 있는 거 같습니다."
"무엇이라? 사람이라… 어서 가보자."
길가독을 비롯한 위사들이 막 움직이려는 순간에 본채에서 쉬던 대장군가의 정예고수들이 나는 듯이 옆에 내려앉았다. 그들 모두 박살난 정문의 흔적을 보고 노화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무슨 일인가?"
길가독 위사장이 고개를 돌려보니 대장군가의 고태보(高太保) 호위무사단 부단주였다. 대장군가의 고위인사를 보자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태를 보고했다.
"네, 저도 아직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정문이 저 꼴이 나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정문경비가 그걸 모르면 누가 아는가? 지나가던 새가 웃겠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기 수상한 자가 이불보에 감싸여 있어 가는 중입니다."
가만히 길가독을 쳐다보던 고태보 부단주가 재촉했다.
"그럼 어서 가보자. 감히 어떤 시러베 잡놈이 대장군가를 능멸했는지 몰라도 잡히기만 하면 뼈도 추리기 힘들 것이야. 뿌드득!"
이를 갈며 다가서던 고태보는 바로 앞에 그림자처럼 나타난 인물을 보고 대경실색하며 급히 읍했다.
"대장군을 뵙습니다."
"무슨 소란이냐?"
잠에 빠졌다가 소란스러움에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온 악관필의 눈에 노기가 흘렀다. 이미 정문이 산산조각난 것이 그의 시야에 확연히 들어왔다. 자존심을 다친 성난 호랑이로 변한 그의 서릿발 같은 기세에 다들 주눅이 들었다.
"어떤 미친놈이 정문을 이 꼴로 만들고 사라진 모양입니다."
이미 멀리서 신법으로 달려오며 이야기를 들었던 그는 얼굴 가득 노기를 흩뿌리며 입을 열었다.
"사방을 샅샅이 수색해서라도 찾아라. 내 이놈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런데 저기 이불 같은 것에 사람이 있는 거 같사옵니다. 아무래도 이 짓을 저지른 자와 무관하지 않을 성싶습니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보고하는 고태보의 말에 악관필의 눈이 번뜩였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서 가보자."
앞장서서 걸어가던 악관필은 이불보를 보자 지체 없이 확 들추었다.
"헉! 이럴 수가!"
기겁한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넋이 반쯤 나가고야 말았다. 이불 안에는 사랑하는 부인과 웬 외간남자가 통정하는 자세 그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미처 제지할 틈도 없이 달려온 고태보 부단주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해괴한 모습에 바로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는 그는 당황감에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허둥거렸다. 그의 귀에 격노한 대장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이년!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목숨이 성할 줄 싶더냐?"
이미 제압당한 금사란의 혈도를 해혈하고 소리치는 대장군의 하얀 턱수염이 부르르 떨려왔다.
"아니, 대장군. 그게 아니고!"
금사란은 당혹감에 얼른 변명을 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상황이 그걸 허락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밑에 수하들 수십 명이 본 이 장면은 대장군에게는 지독한 모멸감을 던져주었다.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한 상황을 맞이하자 그의 분노는 하늘이라도 갈라 칠 기세였다.
"여러 소리 하지 말아라. 내 너를 그리 어여삐 여겼건만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노라."
낮은 목소리로 소리친 대장군은 서슴없이 검으로 두 연놈을 갈라쳤다.
"살려주… 아악!"
"크어억!"
짧은 남녀의 비명을 끝으로 두 불륜남녀의 목은 몸에서 분리돼 때굴때굴 땅에 굴렀다. 목에서 솟구친 피를 뒤집어쓴 악관필이다. 아직도 노기를 감당하기 어려운 악관필은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이 부르르 떤 후 한마디를 던지고 몸을 돌렸다.
"고 부단주! 지금 이 파렴치한 연놈의 시신을 산에다 버리거라."
"존명!"
얼음이 풀풀 날리는 말투에 기가 질린 고태보는 고개를 깊이 숙인 후 서둘러 피투성이 시신을 이불보에 돌돌 말아 들고 수하 두 명과 함께 신형을 산으로 날렸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소천악이다.
"으흐흐, 이게 바로 인과응보라는 것이외다. 금사란 부인! 그저 팔자려니 하고 부디 저승길 순탄하게 가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