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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09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09화

 

  "저는 여러분들이 산적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했던 일은 관심 없습니다. 사실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꼭 정의로운 일만 할 수 없는 게 인생이지요."

 

  "헉, 그럼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냐?"

 

  "꼭 보면 말을 하면 못 알아듣는 인간이 있어요. 반말하지 말랬지요?"

 

  소천악의 신형이 번뜩거리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귀혼마 바로 옆에 서 몽둥이로 개 패듯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시작해 골고루 강타하는 몽둥이는 귀혼마의 혼백마저 고통스럽게 정신없이 날아왔다.

 

  "악! 잘못했소이다."

 

  "시끄럽습니다. 말로 안 통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고로 짐승이니 사랑의 구타(?)가 필요한 법입니다. 몸을 뒤틀다 허리 잘못 맞으면 남자 인생 종칩니다. 똑바로 맞으십시오."

 

  말끝마다 존대는 하지만 북해의 빙굴에서나 들음 직한 스산한 협박에 귀혼마는 겁이 덜컥 났다.

 

  저자는 말과 행동이 같다는 생각이 들자 허리를 다칠세라 차마 견디기 힘든 구타의 고통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겪었다.

 

  "제발 그만하십시오. 크헉!"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소천악은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고 무표정하게 몽둥이를 내리쳤다. 추호의 인정도 베풀지 않는 냉정함에 맞는 귀혼마보다 보는 녹림도의 심장이 거세게 박동치며 두려움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거의 초죽음이 된 걸 확인한 후 비로소 몽둥이를 거두며 말하는 소천악이다.

 

  "이제 잘할 수 있나요? 대답이 없으면 거부로 알고 다시 구타에 들어가겠습니다."

 

  무서운 협박에 고통에 몸부림치던 귀혼마가 죽을힘을 다해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으, 물론입니다."

 

  "좋아요. 진작 이리 나왔으면 얻어터지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크흑, 맞습니다."

 

  분통이 하늘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다시 저 몽둥이에 맞고픈 마음은 절대 없었다. 귀혼마는 이 원한을 기필코 갚겠다는 독기를 가슴 깊이 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상대는 명문정파의 겉멋에 빠진 공자가 아니라는 걸 미처 몰랐다. 소천악은 귀혼마의 내심을 훤히 짐작하며 말했다.

 

  "억울하면 다시 덤벼도 되고 나중에 복수를 해도 됩니다. 단 그때는 손으로 떨어진 목을 잡을 결심을 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뭐 그럴 기회가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천부당만부당입니다. 제가 어찌!"

 

  마음과 다른 말을 늘어놓는 귀혼마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소천악이 고개를 돌려 녹림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잠시 번거로운 일이 있어 말이 끊어졌네요. 말했듯이 전 여러분의 생업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었습니다. 단 내가 연관된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집에 은자 없고 권력 없는 평민이 쉽게 버는 산적질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렵지요. 게다가 남보다 힘이 세다면 더욱 유혹이 강해지니 뭐 팔자려니 생각할 수도 있지요."

 

  엉뚱한 말이 흘러나오자 녹림도들은 당혹감에 휩싸여 갔다. 저런 생각을 가진 자가 왜 산채를 풍비박산 냈는지 아리송했다.

 

  그런 의문을 단칼에 풀어주는 소천악의 다음 말이 나왔다.

 

  "채주, 대답하시오. 지금으로부터 십이 년 전쯤에 소가표국의 표물을 송두리째 턴 적이 있지요?"

 

  "헉, 그걸 어떻게!"

 

  "그게 채주와 녹림도가 개 패듯 얻어맞으셔야 하는 이유요."

 

  "아니, 그럼 대협은 소가표국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귀혼마에게 퉁명스레 대꾸하는 소천악이다.

 

  "그거 알아서 뭐 하시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까부시지 마시고 입 다무시는 게 만수무강에 이롭소이다. 좌우간 그때 턴 소가표국의 일이 내 비위를 건드렸소."

 

  "바로 돌려드리지요."

 

  "유감스럽게도 지금 나는 은자는 별 관심이 없소. 다만 복수심에 불타는 독기만 있을 뿐이오."

 

  "헉!"

 

  가슴이 철렁하는 말에 귀혼마를 위시한 녹림도들이 경악하자 소천악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자, 모든 분들! 더 맞으셔야겠소이다. 미리 경고하지만 엄살피우면 더 맞으시고 피하다가 잘못 맞으면 바로 황천길입니다. 잘못 맞아 돌아가시는 건 책임 못 집니다."

 

  "대협! 전 그때 이 산채에 없었습니다."

 

  한 녹림도가 억울한 듯 외치는 소리를 들은 소천악이 새하얀 미소로 물었다.

 

  "오, 그래요?"

 

  "네! 정말입니다."

 

  "혹시 이런 말 아시나요? 본인은 억울해도 상대방은 전혀 신경 안 쓴다는 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잔소리 마시고 맞으시란 이야깁니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할까요?"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천악이 모든 녹림인에게는 죽음의 발걸음 같은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소천악은 마치 즐기는 듯 아주 천천히 걸어와 애간장을 태웠다.

 

  불과 십여 장의 거리를 산천 구경 나온 사람처럼 다가온 소천악이 널브러진 녹림도 하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제가 말한 경고를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잘못 맞아 뒈지면 당신 손해입니다."

 

  "대협!"

 

  애처로이 울부짖는 녹림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가며 통사정을 막 하려는 순간 그의 눈에는 하얀 섬광이 번뜩였다. 들은 척도 안 하는 소천악의 몽둥이가 옆구리에 작렬한 여파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야말로 인간이 아니라 개 패듯 두들기는 소천악의 눈에는 귀기마저 서릴 정도였다. 얻어맞는 녹림도는 격심한 통증에 고통을 호소했다.

 

  "대협! 살려주시오."

 

  "고의로는 절대 안 죽이니 염려 마시고 맞으시지요."

 

  연신 비명을 지르던 녹림도는 시간이 지나자 소리지를 힘도 없는 듯 몽둥이에 몸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기만 했다. 이윽고 매에 겨운 녹림도가 기절하자 두어 번 더 두들겨 팬 소천악이 하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맷집도 없는 분이군요. 자, 그럼 다음 분!"

 

  추호의 인정미도 없는 소천악의 말에는 얼음조각이 우수수 떨어질 듯 한기를 뿜어냈다. 그렇게 시작된 구타는 중천에 떴던 태양이 서산마루에 서서히 기울 무렵 막을 내렸다.

 

  땅바닥을 뒹굴며 신음하는 귀혼마는 온몸이 퉁퉁 부어 차마 사람의 모습이라 부르기도 어색한 상태였다. 물론 다른 녹림도들도 더하면 더했지 처지는 모습은 아니었다.

 

  자신이 저지른 참상을 보면서도 소천악의 분노는 식을 줄을 몰랐다. 저들 때문에 식구들이 생고생한 생각을 하면 단매에 쳐 죽이고픈 심정이었다. 살기를 억지로 누르려 애를 썼지만 조금씩 그 기운이 새어나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으윽."

 

  눈치 빠른 귀혼마 등 산채 간부들이 그 낌새를 모를 리 없어 더욱 신음소리를 높이며 동정심 유발에 들어갔다. 곰곰이 생각하던 소천악의 뇌리에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모두 들으시오. 죄을 생각하면 당장 때려죽여야 하나 내 인정을 베풀어 정말 힘들게 참았소."

 

  "감사합니다. 대협!"

 

  모든 녹림도들은 고통에 절어 비실거리면서도 목소리를 모아 소리쳤다.

 

  "하나 죄의 값은 항상 내야 하는 법!"

 

  "헉, 대협! 자비를 베푸십시오."

 

  귀혼마와 녹림도들은 땅에 머리를 대고 애절하게 빌었다. 이미 자존심 따위는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저자는 버틴다고 될 위인이 아니란 게 뼈아프게 다가선 까닭이다.

 

  자칫하면 바로 목이 떨어질 판에 체면 지키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퉁명스레 길지경을 불렀다.

 

  "길 형! 저분들에게 준비한 약을 돌리시오."

 

  "네, 대협!"

 

  길지경도 공포에 질려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여 애써 만든 단약(?)을 하나씩 녹림도들에게 나눠 주었다.

 

  어떻게 제작된 약인지 너무도 잘 아는 길지경은 손가락에 단약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영문을 모르는 녹림도들은 단약 하나를 들고 우두커니 소천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소천악은 그들의 기대를 바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천천히 걸어 따로 떨어져 있던 귀혼마에게 단약을 쑥하니 내밀었다.

 

  "자, 어서 드시오. 미리 말하지만 바로 죽는 독단은 아니니 걱정 말고 드시오."

 

  "정말 독단이 아닙니까?"

 

  부들거리며 말하는 귀혼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소천악이다.

 

  "당연하지요. 아, 머리통에 한 대만 때리면 죽는데 뭐 귀찮게 일일이 독약을 먹이겠소이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얼른 단약을 꿀꺽 삼키는 귀혼마였다.

 

  "자, 다른 분들도 어서 목에 넘기시오. 잔머리 피우는 자는 바로 황천길이라는 걸 명심하시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소천악의 경고가 나온 지 불과 일각이 지나자 귀혼마는 뱃속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 밀려오며 뒷간에 가고픈 격렬한 욕구가 치밀었다.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아는 소천악이 넌지시 귀띔했다.

 

  "어서 가시구려. 그거 참는다고 될 일이 아니오."

 

  "으윽."

 

  귀혼마는 항문에 잔뜩 힘을 주며 엉덩이를 바짝 붙이고 어기적거리며 뒷간으로 갔다. 평소 그렇게도 가깝던 곳이 오늘은 천리만리인 심정이다. 마침내 뒷간에 간 그가 서둘러 하의를 내리고 바로 쏟아냈다.

 

  푸드드득.

 

  산채를 울리는 고약한 소리에 녹림도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비위 약한 자들은 헛구역질을 할 만큼 광오한 소리였다. 항문 피리 소리는 한참 지속되며 묘한 신음이 섞여 나왔다.

 

  "크윽, 이거 미치겠네."

 

  귀혼마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배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리 뽑아내도 어디에 있었는지 한없이 밀려나왔다. 게다가 나올 때마다 똥줄이 빠지는 듯한 아픔에 쩔쩔맸다. 그 신음소리를 들으며 소천악은 딱 두 마디만 했다.

 

  "저 정도로 바로 죽지는 않소이다. 다만 일주일만 지나면 피골이 상접해서 말라 죽는 불상사가 있지만 말입니다. 여러분이 드신 약은 약발이 하루 만에 나오는 거고 채주님이 드신 건 직통으로 나오는 차이점밖에 없소이다. 결과는 똑같지만 말입니다."

 

  "허헉, 일주일이나!"

 

  바라보던 녹림도들의 얼굴이 졸지에 사색으로 변해가며 암울해지는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무려 반 시진의 시간이 지나서야 얼굴이 반쪽으로 변한 귀혼마가 엉금엉금 기다시피 소천악에게 다가와 애원했다.

 

  "대협!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저리로 가시지요. 이거 냄새가 지독해서."

 

  코를 찡그리며 피하는 소천악의 말에 더욱 사정하는 귀혼마였다.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 죄를 통감하며 반성합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통사정하는 귀혼마는 미칠 지경이었다. 저놈은 독해도 보통 독한 놈이 아니란 걸 이제야 절실히 깨달았다. 냉소를 지으며 내려다보던 소천악이 슬쩍 해독약이 놓인 손을 내밀었다.

 

  "오호! 반성의 기미가 역력하군요. 사람이 죄를 비는데 안 도와드리면 예가 아니지요. 자, 여기 해독약을 드시오."

 

  "고맙습니다, 대협!"

 

  마치 부처님이 하사하시는 약을 받듯 공손하게 받은 귀혼마는 냉큼 해독약을 집어삼켰다. 약효는 바로 나와 부글거리던 속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았다. 이제야 살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는 귀혼마를 보며 소천악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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