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0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07화
성질이 잔뜩 난 소천악은 아예 발로 사정없이 밟았다. 얼굴이고 치부고 가림 없이 두들겨 패는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때려죽이고픈 기색이 역력했다.
무려 일각이 넘게 두들겨 맞은 젊은이는 거의 혼절상태에 이르러 때리는 대로 몸을 들썩일 뿐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살벌한 매타작에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하자 잠시 멈춘 소천악이 음산하게 말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주둥아리 관리에 이리 소홀한지 본인은 정말 통한스럽소. 이런 흉악한 입을 가만히 둔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니 아예 뭉개주겠소."
퍼퍼퍽.
발로 연거푸 입을 걷어차는 소천악이다. 맞은 하인은 하늘이 노래지는 고통에 점차 정신을 잃어갔다. 아득한 기억에 저 괴물 같은 인물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뇌리에 깊숙이 박혀갔다.
"조심하시오. 또 비위를 건드리는 일로 오면 이번엔 아예 황천길로 보내주겠소."
소천악은 미련 없이 몸을 날려 나무 위의 은신처로 돌아갔다. 복수한 기분치고는 너무도 씁쓸함이 감돌았다.
하루해가 또 저물고 소대영은 변함없이 장원을 나섰다. 희한한 건 그의 걸음이 집이 아니라 반대편으로 가는 데에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몰래 따라갔다.
소대영은 생선가게에 들러 싸구려 생선을 동전 두 닢에 사들고 신바람을 내며 집으로 향했다.
"여보! 나 왔소."
"아빠~."
역시 동생이 방문을 열고 날듯이 뛰어와 품에 안겼다.
"어이고, 이 강아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아주던 소대영의 입가에 작은 행복이 걸렸다. 한 손에 딸을 안아 들고 따라나온 아내 묘인아에게 생선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거 장주님이 가져다 먹으라고 준 거야."
"매일 이러시니 고맙기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생선을 받아 드는 묘인아의 얼굴은 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생선이 어떻게 온 건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시간이 가면서 들은 풍문에 바보가 아닌 이상 길완청에게 시달리는 남편의 고통을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남편의 체면을 생각해서 모른 척할 뿐이다.
그녀는 소대영이 자신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존심을 팽개치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걸 다 알고 있었다. 얼른 부엌으로 가는 그녀의 눈가에 가는 이슬이 맺히는 걸 본 이는 딱 한 명이다.
소천악은 냉정한 마음으로 지켜보다 묘인아의 눈물에 갑자기 가슴이 물결치는 걸 느꼈다.
두 눈 부릅뜨고 소대영 일가의 행동을 주시하던 그의 시선이 한군데로 집중됐다. 비록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엔 분명히 여동생이 분명한 꼬마 여자애였다.
묘인아를 쏙 빼닮은 동생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철들고 처음 느끼는 묘한 감정에 잠시 혼란마저 일었다.
고정된 시선은 팔랑거리며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끊임없이 주시했다. 무려 두 시진이 가깝도록 바라보던 소천악은 문득 하늘이 온통 까맣게 변한 걸 알고 서서히 몸을 뽑아올렸다.
발길을 돌려 하오문을 향하는 소천악의 마음은 수없는 갈등에 이마에 나이답지 않은 주름살이 조금씩 패어갔다. 심란한 마음으로 고민하던 그의 고개가 하늘로 꼿꼿이 치솟았다. 섬광처럼 안광이 하늘로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다른 거 생각하지 말자. 나를 무도관에 보낼 은자라면 최소한 여동생이 저런 옷을 입고 저런 집에 살지는 않아. 그거만 보상해 주자."
마치 옆에 사람이 서 있는 듯이 말하는 소천악이다. 결심이 서자 바로 행동에 들어가는 특유의 성격대로 지금까지의 어기적거리는 걸음을 탈피해 쏜살같이 하오문으로 들어섰다.
이미 대연강 지부장은 바짝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소천악의 의뢰를 받을 때부터 정신없이 소대영과의 관계를 조사하던 중에 발견한 놀라운 사실에 경악했다.
처음엔 이름이 같아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점점 알면 알수록 소천악이 아들이라는 사실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소천악이 소대영의 아들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긴장해야 했다. 괴팍한 그의 성격에 가족의 비참함을 지켜봤으니 어떤 심정일지는 안 봐도 훤했다. 이런 판에 자칫 비위에 뒤틀리면 황제와도 맞장을 뜬 그가 이깟 하오문 지부 하나 멸문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비록 가문의 몰락에 하오문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지만 막말로 왜 안 돌봤냐고 억지를 쓴다면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죽을 판이다.
소천악은 대연강 지부장과 대면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나머지 정보를 말해 주시오."
잔뜩 긴장한 대연강 지부장은 미리 연습한 대로 술술 말했다. 말은 편해도 가슴은 콩닥거리며 소천악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네, 대협! 소대영의 몰락은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노양산에 웅크린 녹림도에게 털린 표물의 보상으로 준 많은 은자였고 두 번째는 표국의 표두나 표사들이 수없이 공금을 횡령해 무너지게 된 겁니다."
숨도 안 쉬고 듣는 소천악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며 살기등등하게 말했다.
"녹림도는 그대로 있습니까? 그때 있던 싸가지 없는 표두나 표사는 어디 있습니까?"
"산채는 그대로입니다. 물론 채주도 동일인이지요. 표두나 표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나 수배하면 찾을 수야 있을 겁니다."
"모조리 찾아주시오. 일단 산채가 있는 곳의 지도를 주시고 표두 분들과 표사님들 소재지를 찾아주시지요."
"물론입니다. 이번 일은 특별히 의뢰비를 받지 않겠습니다."
"그건 마음대로 하십시오. 빨리 산채 지도나 주세요."
"네, 일단 그려야 하니 반 시진만 기다려주시지요."
대연강은 정신없이 방을 나서서 그림깨나 그린다는 문도를 거의 초죽음으로 몰아가며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도가 그려지자마자 얼른 들고 와 소천악에게 전해주었다.
지도를 받아 든 소천악은 벌떡 일어서다 말고 다시 주저앉아 말했다.
"지리를 모르니 안내할 분을 골라주셔야 하겠소이다. 그리고 서찰을 적어드릴 테니 전해주시기 바라외다."
"그러시지요."
한시라도 빨리 소천악을 보내고 싶은 대연강이 얼른 지필묵을 준비해 주자 비뚤비뚤한 글씨로 서찰 내용을 적어갔다.
<심자앙 수석책사님 귀전.
급한 일이 있으니 가급적 빨리 와주시길 바랍니다.
소천악 배상.>
"이걸 온 대인 상단에 있는 심자앙이라는 분에게 가급적 빨리 전달해 주시오."
"알겠소이다. 전서구를 이용해 보내드리지요. 그런데 소 대협도 전서구가 있지 않나요?"
"그건 더 급한 일이 있을지 모르니 아껴야지요."
"저, 그런데 친부모를 찾는 건 어찌하실 겁니까? 우리 하오문이 움직인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싶습니다만."
조심스레 묻는 대연강의 말에 잠시 고심에 빠진 소천악이다. 어찌 사람으로 자기의 뿌리를 알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재로서는 왠지 피하고 싶었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난 후에 찾는 게 맞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었지만 직감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마운 말씀인데요, 나중에 부탁할 일이 있으면 그때 하지요."
간단하게 답하는 소천악의 말에 할 말을 잊은 대연강 지부장이 아무 소리 못 하고 서찰을 받아 들었다. 더 이상 시비를 걸었다가는 바로 침대 신세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한 명이 쭈빗거리며 지부장실로 들어섰다. 하오문도 중 길눈이 밝기로 소문난 길지경이란 자였다. 눈이 뱁새눈처럼 쭉 옆으로 찢어진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부장님! 지시받고 왔습니다."
"그래, 잘 왔다. 어서 소 대협을 모시고 노양산 산채로 가거라."
"헉! 노양산 산채요? 거기는 흉악한 놈들이 득실대는 곳 아닙니까? 녹림총채에서도 버린 자식 취급하는 흉악범이 모인 곳에 가라니요?"
기겁을 하는 길지경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가자 대연강 지부장이 태연하게 다독였다.
"소 대협이랑 가는 길이니 별일 없을 거야."
놀란 길지경을 달래는 대연강 지부장도 자신의 말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달랑 둘이서 갈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 안전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절대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앞장서시오."
"네, 대협!"
어쩔 수 없이 대답한 길지경은 차마 안 떨어지는 발길을 돌려 소천악과 함께 떠났다. 대연강 지부장은 그제야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이런 제길! 어서 저 인간이 떠나야 마음 놓고 잠을 잘 텐데. 하루 보내기가 조마조마해서 어디 살겠나."
그의 손에는 어느새 죽엽청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술로나마 긴장을 풀려는 애처로운 몸짓이었다.
한편 길지경은 미칠 지경이었다. 혹시나 조력자를 데려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걸음이 많아질수록 꿈이었다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누가 합류할 것 같은 조짐은 싹수부터 노랬다.
걱정이 태산처럼 늘어난 길지경이 옆에서 한가하게 따라오는 소천악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협! 지금 가는 산채는 사실상 녹림산채라 부르기도 애매한 곳입니다."
"그럼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강호에서 무뢰배라고 소문난 놈들이 자신들을 쫓는 자가 늘어나자 저절로 모여 만든 복마전이지요."
"음, 잘됐네요. 이번 참에 아예 뿌리째 뽑아버려야겠군요."
태평스런 대꾸에 더욱 애가 탄 길지경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세하게 설명했다.
"제 말은 그게 아니고 그놈들이 십오 년이 넘도록 살아 있는 건 그만큼 무공실력이 뛰어난 데다가 인원수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제야 길지경의 속셈을 눈치챈 소천악이 몰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음산하게 말했다.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오. 두들겨 패다 보면 다 해결되니 어서 갑시다."
"네, 대협! 휴~ 가시죠. 뭐 한 번 죽지 두 번이야 죽겠습니까!"
마지못해 앙탈을 부리며 길지경이 터덜터덜 앞장을 서자 뒤에서 걷던 소천악은 피식 웃을 뿐이다.
길지경의 소망과는 달리 길은 점점 가까워지며 저 멀리 정말 가고 싶지 않은 산채가 있는 노양산이 시야에 조금씩 채워 들어왔다.
갑자기 걸음이 멈춰지며 뒤로 돌아 마구 달려가고픈 거센 충동이 밀려왔다. 감정에 못 이겨 뒤로 고개를 돌리자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소천악이 보였다.
"무슨 일이죠?"
"아닙니다. 잘 따라오시나 보려고요."
"걱정 마시고 길 안내나 제대로 하시면 됩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지껄이는 저 입이 원수 같았지만 강호는 힘이 우선인 세상이었다. 괜히 시비 붙어봐야 부러지는 건 자신의 뼈란 사실에 체념한 길지경이다. 천천히 산을 올라서자 뒤에서 소천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 기다리시구려. 뭐 준비할 게 필요하니."
"그러시지요."
반가운 대답을 던져준 채 길지경이 나무 그늘에 몸을 눕히는 순간 놀라운 광경을 봐야 했다. 소천악이 길옆 나무 하나를 슬슬 쓰다듬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길지경이 막 물으려는 때, 갑자기 검을 뽑아 든 소천악이 섬전같이 종횡으로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