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01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01화
날카로운 요문탁의 말에 사존맹 고수들의 눈빛에 살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존명! 모두 검을 뽑아라!"
복명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검을 뽑아 선 그들의 기세는 숲속의 모든 생명체를 겁박했다. 그 기세에 눌린 흑마전 고수들이 슬금슬금 이선으로 물러설 정도였다.
후미에서 따라오던 이천 명의 병사들은 손에 섬전탈명침을 들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앞에서 보이는 처절한 전투에 이미 기가 질려갔다.
두려움에 질려 있던 그들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자신들이 전투일선에서 물러나 소탕병으로 전락한 걸 알아차렸다. 몸은 고달프지만 최소한 싸우다 칼 맞아 죽을 염려가 사라진 그들은 사방을 경계하며 이마에 식은땀을 주르르 흘렸다.
팔괘진을 만들며 전진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최선을 다하는 탓에 기민하고도 치밀하게 전진했다. 게으름은 곧 전투현장 투입이다. 처음에 설마 하던 그들은 얼음장같이 손속을 휘두르는 소천악의 비정함에 피가 얼어갔다.
자칫하면 눈 밖에 나 선봉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죽을힘을 다해 맡은바 소임에 파묻혔다.
이는 다 심자앙 수석책사의 전략이다. 그는 훈련도 안 된 병사를 전투에 투입해 봐야 혼란스럽기만 하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일찌감치 간파한 후 이런 책략을 썼다.
그의 생각은 고스란히 맞아떨어져 갈수록 병사들의 움직임은 필생의 힘을 쏟아냈다. 한 이백여 장을 조심스럽게 전진하던 소천악의 발길이 우뚝 섰다.입가가 쭉 올라간 채 차가운 말이 나왔다.
"후후! 나오시구려. 이리 환영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면 좌우에서 수많은 무인들이 분분히 신형을 드러냈다.
"흐흐! 여기가 네놈들 무덤이니라."
한 복면인이 쑥 하니 앞으로 나서며 음산하게 소리쳤다. 그는 혈교 전위대라고 할 수 있는 혈귀전대의 대주인 궁지유(宮至柔)였다. 척 봐도 최절정고수임이 드러날 정도의 기세를 보였다. 유심히 그를 관찰하던 소천악은 절대 진여해 장로보다 아래가 아님을 깨달았다. 약간의 경각심을 남긴 후 비웃듯 말했다.
"쯧쯧! 여전하시구려. 어째 여러분들은 매번 만나봬도 항상 복면을 쓰고 계신지 참으로 궁금하외다."
"시끄럽다, 이놈! 어디서 격장지계를 써 흔들리게 하는 것이냐?"
하는 말마다 비위를 건드리는 소천악의 말에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 궁지유였다.
"일단 싸우기 전에 하나 물어봅시다. 도대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요?"
"흐흐! 네놈이 목숨이 아까운 모양이구나. 좋다. 내 특별히 너희들이 가진 은자를 놓고 간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후후! 결국 강도 분들이시군요. 여러분 같으면 이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천축 땅을 누비면서 온갖 고생 끝에 벌어 온 은자를 순순히 내놓으시겠소?"
"결국 벌주를 마시겠다는 말이군."
"벌주라! 그거 누가 마시는지 어디 두고 봅시다. 말로는 이미 해결이 물 건너갔으니 이젠 무공으로 판가름내야지요. 일단 싸울 건데 더 이상 말해 봐야 입만 아프오."
"건방진 놈!"
이를 가는 궁지유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한 소천악이 심자앙 수석책사에게 소리쳤다.
"심 수석책사님, 실행하십시오."
"네, 대주님! 병사들은 모두 앞으로 나서라."
병사들은 그동안 보아온 무림고수의 놀라운 실력을 믿고 서슴없이 명에 따라 팔괘진을 만들며 다가섰다.
"모두 섬전탈명침을 쏴라!"
"존명!"
크게 소리친 병사들의 손에 들린 섬전탈명침에서 비 오듯 암기가 날아갔다. 이천 명의 병사들이 쏟아내는 암기 수는 결코 만만할 리가 없었다. 바로 허공을 까맣게 뒤덮으며 새털 같은 암기의 폭우가 몰아쳤다.
"헉, 암기다. 모두 피해라!"
다급한 경호성이 궁지유 입에서 흘러나오며 혈교 고수들이 놀라 급히 검을 맹렬히 움직였다.
차라라랑.
"어흑! 암기가 너무 많아!"
검에 막힌 암기가 무수히 땅에 떨어졌으나 섬전탈명침마다 열 발이 발사된 탓에 무려 이만여 발의 암기를 전부 무사히 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여기저기서 억눌린 비명이 터져나오며 삽시간에 수십여 명이 전신에 고슴도치처럼 무수히 많은 암기에 맞아 죽어갔다.
일순간에 혈교 무인들의 대형이 무너지며 다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의 눈빛이 살기를 쭉 뿜어내며 소리쳤다.
"이때입니다. 모두 공격하시오. 병사들은 모두 뒤로 물러나라."
이미 제일 먼저 검을 뽑아 들고 신형을 슬쩍 날린 소천악이다.
"가자! 감히 사존맹을 능멸하는 놈들을 모조리 주살하라."
역시 요문탁 당주의 목소리가 뒤를 이으며 그와 사존맹 휘하 무인들이 쏜살같이 혈교 무인들을 덮쳐갔다. 혈귀전대를 이끄는 궁지유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기세가 중요시되는 일류고수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당했다는 걸 절감했다. 하나 그도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적이 밀려온다. 모두 대형을 유지하고 맞서라."
버럭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소천악의 말이 들렸다.
"적이 흐트러졌다. 깡그리 쓸어버리세요."
다급한 상황에도 존대를 잊지 않는 그의 말투에 요문탁 당주와 사존맹 무인들의 얼굴이 환히 빛났다. 초지일관 자신들을 존중하는 심성에 내심 감복한 그들이다.
기습이 실패하고 오히려 역습을 당한 궁지유가 울화통을 터뜨리며 막 사존맹 무인을 양단하려고 밀려오는 순간 이미 그의 앞에는 소천악이 살며시 자리했다.
"거, 비겁하시게 최절정 고수님께서 하수님들을 겁박하시면 되나요? 자, 잠시 저랑 어울려보십니다."
살살 약을 올리는 소천악의 말에 열이 받을 대로 받은 궁지유가 소리소리 질렀다.
"네 이놈! 잘 걸렸다. 오늘 네놈의 그 현란한 주둥이질을 다시는 못 하게 만들겠노라."
"그거야 일단 검을 마주친 다음에 할 소리요. 말로는 염라대왕을 못 죽이겠소이까?"
실실 약을 올리는 소천악의 말투에 혈압이 급상승하는 궁지유였다. 새파란 애송이가 설치는 것을 조용히 두고 볼 그가 결코 아니었다.
"네 이놈! 오늘 세상 넓은 줄 알려주리라."
"말이 많소이다. 요새는 주둥이로 싸우는 분들이 하도 늘어서 문제이오이다."
"이, 쳐 죽일 놈!"
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뻗친 궁지유의 검이 마치 비수인 듯 쏘아져왔다. 가공할 회전력을 바탕으로 소름 끼치는 소음을 동반한 일종의 탄검이었다. 소천악의 안색이 잠시 굳어지는가 싶더니만 이내 검을 들어 정신없이 회전하는 그의 검을 빛살같이 후려쳤다.
챙! 챙!
일검에 수십 군데를 노려오는 검을 단 한 번도 어긋남 없이 모조리 막아내는 소천악의 검은 쾌검에 중검의 묘를 실은 상승검도를 보여줬다.
"이런!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바로 궁지유의 검이 변초하며 분산되었던 검력을 한곳에 집중하여 소천악의 가슴을 노려왔다. 최절정고수의 내력을 담은 검은 검끝이 살짝 흔들리며 방향을 알기 어려웠다.
소천악은 검을 가슴에 대고 작은 반원을 그리며 다가서는 검날의 측면을 세차게 내리쳤다. 심장을 노리던 검이 순간 방향을 잃자 궁지유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내공이 깃든 검끼리의 격돌은 무거운 굉음을 내며 살기를 드러냈다. 짧은 빈틈이 보였지만 소천악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왠지 함정일 듯한 기분이 들어 슬쩍 보법을 전개해 좌측으로 일 장여 미끄러져 갔다. 혈사부와의 실전대련에서 얻은 경험이 경고음을 발한 탓이다.
과연 속임수가 맞았다. 일부러 비틀거리며 허점을 노리던 궁지유가 허탈한 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제법이구나."
"귀하에게 공치사를 들으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외다. 어서 오시지요. 황천길이 바로 코앞이오."
살짝 비꼬는 소천악은 이미 주위 정세를 모두 한눈에 간파하고 있었다. 팽팽한 접전인 듯했으나 선공을 당한 혈교 무인들이 미세하게나마 밀리는 기색이다. 회심의 미소가 아니 나올 수 없었다.
이미 승세를 잡은 소천악은 급할 게 없었다. 이 기회에 최절정고수의 허와 실을 모조리 간파할 속셈이다. 사실 최절정고수와 싸울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은 그로서는 좋은 실전경험을 느낄 기회였다.
삽시간에 십여 초를 나눈 두 사람의 무복은 내력을 받아 칼처럼 솟아올랐다. 잔뜩 긴장한 채 혼신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궁지유와는 달리 소천악은 아직 여유를 부리는 입장이다.
이 사실을 궁지유가 알면 노기가 하늘을 찌를 일이었다.
궁지유는 일반 수법으로는 소천악을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걸 느끼고 번뜩 비조처럼 날아올랐다. 이미 검을 버린 그의 두 손이 섬전같이 교차하더니 광풍노도 같은 권장 십여 장이 연달아 폭사되었다.
"오호! 이런 절기를 가지고 계셨구려."
잠깐 눈을 번뜩이던 소천악이 검을 넣고 발을 슬쩍 옮겼다.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이미 중원 최절정고수의 실력을 몸으로 채득한 터라 마무리에 들어갔다. 마치 강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연어의 몸놀림처럼 움직이자 궁지유의 장은 허공을 공허하게 후려치는 꼴이 되었다.
소천악은 빈틈을 찾은 듯 흔들리는 궁지유의 신형을 덮쳐갔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시퍼런 권기를 담고 궁지유의 안면으로 날아갔다.
놀란 궁지유가 급히 권을 거두며 좌측으로 이 장여 미끄러져 피하려 했으나 신형이 채 안정되기도 전에 이미 소천악의 권이 얼굴 가득 커져왔다. 미처 피할 틈을 못 찾은 궁지유가 양손을 들어 막아갔다.
파파파팍.
연달아 굉음이 들리며 궁지유의 몸은 태풍을 만난 나무처럼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으나 바로 따라붙은 소천악의 권에 속수무책으로 전신을 난타당했다.
"커헉!"
전신대혈을 골고루 두들겨 맞은 궁지유는 입으로 피분수를 뿜으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검사권생!"
차갑게 외치는 소천악의 목소리는 싸움터를 진동했다. 이미 전세는 확연히 기울고 있었다. 심자앙의 계책대로 우회한 집마부 고수들이 지공타 대주의 지휘 아래 혈교 무인의 후미를 강타하자 퇴로를 잃은 혈교 고수들이다. 양쪽에서 강하게 밀려오는 공세에 점차 사상자가 늘어나며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소천악의 입이 또다시 열렸다.
"모두 멈추시오!"
내공을 실어 소리치는 음성은 숲속의 나무를 진동시키며 모든 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싸움을 일시에 멈춘 채 소천악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도무지 신분을 알 수 없는 복면인들은 들으시오. 여기 여러분들의 지휘자인 사람이 이미 쓰러졌소이다. 보시다시피 이미 전세는 기울었소. 사실 기습하려던 여러분들의 소행으로 볼 때 모조리 척결해야 하지만 특별히 호생지덕을 베풀겠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대주, 이놈들은 우리를 죽이려던 놈들이란 말이오.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살려주다니요?"
역시 거친 성격답게 지공타가 제일 먼저 반발했다. 불끈 쥔 그의 검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빙긋 웃으며 그에게 말하는 소천악이다.
"지공타 대주님! 궁지에 몰린 쥐새끼도 더욱 핍박하면 공격하는 고양이가 다칠 수도 있습니다. 다 견물생심이라 생각하시고 이쯤에서 마무리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