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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0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00화

 

  회의가 끝나자 심자앙과 나머지 네 명의 책사들은 마차에 들어가 서로 의견교환을 통해 방책을 하나둘씩 만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천악은 태연자약했다. 혈교와는 이미 여러 번 접전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진 터였다. 한편으로는 자주 만나다 보니 약간은 친근감도 들 지경이다.

 

 

 

  이튿날.

 

  심자앙의 책략대로 행렬은 혈교의 기습을 모르는 척 무심하게 행진했다. 비록 내부적으로는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언제 튕겨나갈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적어도 외부적으로는 평온했다. 이미 흑마전 고수와 혈살막 살수들은 야음을 틈타 숲속에 은신한 채 대기 중이었다.

 

  드디어 혈교의 매복지가 이백여 장 앞으로 다가선 순간 심자앙의 말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모두 계획대로 움직여주세요."

 

  "알겠소이다."

 

  말과 함께 수많은 고수들이 스르르 움직였다. 그들은 사존맹과 집마부 소속 고수들 중 반수 정도였다. 눈가에 형형한 안광을 숨기지도 않은 채 거친 기세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삽시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그들이 움직인 곳을 아는 이는 아직 별로 없었다.

 

  가만히 정면의 숲을 관찰하던 소천악의 입이 열렸다.

 

  "심 책사님! 흑마전과 혈살막 고수들이 잘 할까요?"

 

  "먼저 알고 움직인 세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후! 다른 이의 말이라면 안 믿어도 심 수석책사님이 하시는 말씀이니 신뢰가 갑니다."

 

  "이리 믿어주시니 머리를 쓰는 자로 더 이상 어떤 기쁨을 바라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심자앙의 눈가가 슬며시 젖어왔다. 재야에서 허송세월하면서 시절을 한탄한 적이 강가의 모래알처럼 많았던 그였다.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서야 잡은 이 기회가 너무도 소중해진 기분이다.

 

  "자! 이제 저도 가봐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아주 어떤 분들이신지 모르나 씨를 말려버려야지요. 감히 황상이 보낸 사신단을 위협하는 분들의 말로를 보여주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이런 강대한 세력을 상대로 덤빌 놈들이라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겁니다."

 

  "후후! 신의괴협이란 명호가 종이호랑이가 아니란 걸 오늘 분명히 보여드리지요."

 

  차갑게 대꾸한 소천악은 옆에 서 있던 요문탁 당주에게 말했다.

 

  "요 당주님! 중원으로 가는 우리를 맞이하는 환영 대열에 시원하게 답례를 보내줘야지요."

 

  "흐흐! 물론이오. 감히 사존맹을 적대하려는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지요."

 

  "이제 갑시다. 더 지체해 적들이 눈치를 채면 골머리가 아파질 겁니다."

 

  "그럽시다, 대주!"

 

  요문탁이 슬쩍 손을 들자 뒤에 시립했던 사존맹의 고수들이 일제히 앞으로 움직였다. 신법을 전개해 점점 속도를 높이는 요문탁과 사존맹 고수 옆으로 휙하니 한 인영이 스쳐 지나갔다. 소천악이었다. 절정신법을 전개해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눈으로 쫓기도 힘겨울 엄청난 속도였다.

 

  전광석화같이 움직이는 그를 보고 놀란 요문탁과 사존맹 고수들이었다.

 

  "허! 이건 보면 볼수록 신비한 인물이구먼."

 

  탄성을 내지르던 요문탁은 내심 어떠한 일이 있다 해도 저 인물과 적이 된다는 건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아무리 사존맹이 사파를 대표하는 강파라해도 저 인물은 절대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될 인물이란 직감이 왔다. 맹에 돌아가면 맹주와 장로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리란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이또한 심자앙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이제 중원으로 돌아가면 헤어질 사존맹과 집마부였다. 마지막으로 무공에 대한 경외감을 심어주어 두 파에서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려는 깊은 속이 숨어 있었다.

 

  소천악은 요문탁 등 사존맹 고수보다 오십여 장 앞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그의 전신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팔에 쥔 검을 더욱 굳게 움켜잡았다.

 

  처음에 느껴진 기척은 흑마전의 고수들이다. 그 다음으로 낭인무사들이 따라가는 게 감각에 걸렸다. 느긋한 마음으로 기감을 확대시키던 그에게 마침내 옆에서 은잠하며 전진하고 있던 혈살막 살수의 기척도 잡혔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아직 절정에 갈 리가 만무한 그들의 무공경지 때문에 귀식대법으로 숨을 멈추지 못해 가는 호흡소리가 들렸다. 입가에 가는 미소가 잡히려는 순간 드디어 적의 기척이 감지됐다.

 

  사방으로 기감을 펼치자 적의 수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걸 한눈에 챙길 수 있었다. 이미 흑마전의 선두를 가던 고수들은 혈살막 살수의 은잠지를 떠나 적지로 막 들어서기 직전이다.

 

  절로 다급해진 소천악은 빠르게 백무연에게 전음을 보냈다.

 

  [백 부당주님! 지금 오십여 장 앞에 적의 매복이 있습니다. 일단 멈추시고 제가 갈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귓가에 들려오는 전음에 거의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미미한 움찔함을 보인 백무연은 태연하게 말했다.

 

  "모두 일단 멈춰서 잠시 쉬었다 가자."

 

  "네, 부당주님!"

 

  흑마전 고수들은 바로 지시에 따라 주위로 분사하며 나무그늘 아래 등으로 흩어졌다. 상명하복의 철저한 훈련이 된 집단이라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불과 차 두어 모금 마실까 말까 하는 순간 이미 소천악은 백무연의 옆에 내려앉았다.

 

  "수고했습니다, 부당주님. 이제 적의 예봉을 제가 앞에 나서서 꺾어야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고금을 봐도 최고지휘자가 선봉에 서는 경우는 없습니다."

 

  놀란 백무연이 극구 만류했지만 소천악은 요지부동이었다.

 

  "흐흐! 역사는 깨지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명피해가 적어진다면 당연히 제가 나서야지요. 한 명의 손실도 대단히 큰 상처로 다가옵니다. 일단 저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단호한 결심을 보이는 소천악을 보며 더 이상 만류하지 못하는 백무연이다. 사실 명령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물론이죠. 제가 부탁한 상자를 이리 주시지요."

 

  소천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백무연이 손짓하자 한 흑마전 고수가 얼른 상자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상자를 받아 열어본 소천악은 내용물에 이상이 없자 바로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게가 이백 근에 달하는 상자를 들고도 그의 신법은 물 찬 제비가 울고 갈 지경이었다.

 

  아무리 시력이 좋은 자라도 그 현란한 보법에 따른 빠르기를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무릎도 굽히지 않고 직선으로 쭉 뻗어가는 신형은 보였다 하는 순간에 벌써 오십여 장 앞으로 치달렸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죽이려는 자를 살려둘 만큼 내 가슴이 넓지 못하다. 받아랏!"

 

  신법을 전개해 나무 사이를 비호처럼 스쳐 지나가는 소천악의 손은 연신 불을 뿜었다. 상자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잡아간 비도를 기척이 느껴지는 곳마다 사정없이 날렸다.

 

  "크아악! 들켰다. 모두 공격하라!"

 

  심장을 후벼 파는 고통과 고함이 삽시간에 밀림 속을 진동했다. 땅속이나 나무를 파고 숨어 있던 혈교 무인들은 손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차라리 정면대결이었다면 피할 여지가 있었는데 숨 죽이고 숨어 있던 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미처 피하지 못해 피해는 더욱 커져만 갔다. 비도는 갈수록 세차게 밀림을 휘저었고 비명도 덩달아 늘어갔다.

 

  살수를 전개하는 소천악의 얼굴은 비정함 그 자체였다. 무기를 들고 숨어 있는 자는 죽여야 할 대상일 뿐 어떠한 동정도 베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감히 내 앞길에 무기를 들고 버티다니! 모조리 황천 구경을 시켜주마!"

 

  차갑고도 비정한 목소리가 목에서 울려나오는 동안 그의 손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손이 안 보이게 쉴새없이 수백 개의 비도가 날아간 결과는 참혹지경이다.

 

  땅을 파고 숨었던 자가 피를 흘리며 기어 올라와 발버둥 치다 죽어갔다. 나무 속에 숨어 있던 무사는 괴로움에 나무 밖으로 손을 내밀어 경련을 일으키다 힘없이 숨이 끊어졌다.

 

  뒤에서 바라보던 백무연 등 흑마전 고수들의 등골에 싸늘한 오한이 일었다. 잔인하고 한 치의 인정도 찾기 힘든 그의 손속에 심장마저 얼어붙는 기분이다. 검사권생의 신화가 다시 한 번 재현되는 순간이다.

 

  불과 일각여가 지나자 오십여 장 앞에 숨어 기습을 노리던 수십 명의 무사들은 몰살을 당했다. 그제야 신법을 거두고 천천히 땅에 내려서는 소천악이다.

 

  그 옆에는 어느새 다가온 백무연 부당주가 경악에 찬 소리를 질렀다.

 

  "놀랍습니다. 이런 절기가 있는 줄은! 오늘 다시 한 번 강호는 넓고 절기는 많다는 격언이 뼈에 사무치게 느껴집니다."

 

  "과찬의 말이시오. 난 결코 무기를 들고 기다리는 적을 살려둘 아량이 있는 사람이 아니오."

 

  "과연 영웅은 독심이시라더니."

 

  건성으로 대답하던 소천악은 다시 앞을 향해 음산하게 말했다.

 

  "아직도 숨어 있는 자는 들으시오! 이미 여러분의 흔적은 내 모두 알고 있소. 이제라도 무기를 버리고 나오면 목숨은 살려드리겠소. 혹시나 거짓말로 아시는 분들을 위해 간만에 친절봉사도 할 겸 한 분을 지적하겠소."

 

  잠시 사방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말을 이었다.

 

  "좌측 십여 장 밖에 나무 속에 숨어 있는 분 나오시오. 안 나오면 바로 척살할 것이오. 기회는 한 번이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다.

 

  "오호, 거짓말로 아시는구려. 좋소이다. 그리 저승길이 소원이라시는데 안 보내드리면 서운하실까 봐."

 

  말하면서도 그의 손은 번개같이 상자 속 비도를 잡아 슬쩍 던졌다. 내기를 담은 비도는 십여 장을 촌각 만에 가르고 지적한 나무 깊숙이 박혔다.

 

  "커억! 어찌 나를 눈치……."

 

  미처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나무 속에서 쑥 하니 팔 하나가 나오는가 싶더니만 이내 땅으로 힘없이 손이 늘어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기회를 줘도 반항하자 소천악의 손길은 한 줌의 인정도 보이지 않았다.

 

  거침없이 비도를 날리는 그의 모습에 바라보던 백무연 부단주와 흑마전의 고수들이 치를 떨 정도였다. 일각의 시간이 흐르자 그나마 생존한 채 매복했던 혈교 무인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말았다.

 

  그제야 비도를 거둔 소천악의 안광은 살광을 물씬 풍겨 주위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할 지경이다.

 

  "백 부단주님! 이제 전면 매복조를 소탕했으니 다시 전진합시다. 저분들이 이렇게 쉽게 당할 리가 없지요. 심자앙 수석책사님의 말씀대로 아마 방심을 유도하려는 속셈일 겁니다."

 

  "알겠습니다."

 

  굳은 목소리로 답하는 백무연은 등골이 서늘했다. 저 비도가 자신을 향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피할 자신이 없었다. 엄청난 비도술을 눈앞에서 본 흑마전 고수들과 낭인무사들은 사기가 충천했다.

 

  자기 편이 강한 무공을 지녔다는 건 죽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는 예감과 동일했다. 기운이 난 그들은 앞장선 소천악을 따라 숲속으로 거침없이 진격했다. 매복이 전멸하자 가로막는 적이 없어 한가한 산책에 나선 기분이다.

 

  어느새 사존맹의 요문탁 당주와 고수들이 옆에 서서 선두를 지켰다.

 

  "감히 사파의 하늘인 사존맹을 공격하려는 놈들을 모조리 척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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