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93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93화
연환구구탈백검법이 펼쳐졌다. 강호에 나온 이래 처음으로 전력으로 펼치는 검법이다. 과연 탈백검마의 독문검법은 풍혼검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무공이었다.
삽시간에 연무장에 귀곡성이 시끄럽게 울려나오며 검날은 어느새 수십 개의 환영을 일으키며 달라이라마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을 듯 사납게 밀려왔다.
"오호! 이런 사악한 검법이."
달라이라마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지며 신중하게 양손을 접었다 쫙 앞으로 밀었다. 포달랍궁의 절기인 밀종대수인이 바로 전개되어 나왔다.
수십 개의 환검이 밀종대수인과 격돌하며 폭음이 연이어 일었다. 소천악은 이를 악물고 가공할 내공으로 밀려오는 밀종대수인을 꿋꿋하게 맞서갔다.
검날이 목을 노리면 손이 득달같이 달려와 검을 쳐냈다. 검이 단전을 노리고 팽이처럼 회전하며 찔러오자 손도 덩달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같이 회전하며 검의 진로를 둔탁하게 막아갔다.
일진일퇴(一進一退)의 공방전이 이어지며 순간적으로 수십여 초식을 교환했다. 섬전같이 공수를 번갈아 하는 두 사람의 이마에는 가는 땀방울이 솟아올랐다.
검과 밀종대수인이 마주치는 곳마다 돌조각이 튀어오르고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흘러나왔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두 사람이지만 기감을 올린 상태에서는 시력은 아무 필요 없었다. 이미 달라이라마의 두 손은 금성철벽인 양 주저 없이 쇠를 단칼에 갈라 칠 위력의 검과 불꽃을 튀기며 수없이 격돌했다.
거센 폭음이 다시 한 번 울리며 두 사람은 반탄력에 뒤로 물러섰다. 달라이라마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말투로 말했다.
"허허! 시주의 무공이 놀랍구려. 그 나이에 이런 성취라니. 이미 시주의 무공은 충분히 나와 협상할 단계임을 인정하오."
"감사합니다, 달라이라마."
가볍게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말했다.
"하나 우리 둘은 무인! 게다가 본인을 이리 흔쾌하게 하는 것도 오랜만이오. 어떻소? 한번 생사를 걸고 한판 함이?"
무시무시한 유혹을 뿜어내는 말에 소천악은 잠시 망설였다. 하등 생각할 여지가 없는 제안이다. 단연코 거절해야 마땅한 일인데도 영 대답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혹여 자신이 심한 부상을 당하면 이번 일에 막대한 지장이 올 건 당연했고 마찬가지로 달라이라마가 죽거나 부상을 입으면 좋았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될 건 삼척동자라도 알 사실이다. 하나 가슴 한가운데서 웅심이 불타올랐다.
무공을 배운 이로 가히 천축제일고수로 지칭되는 달라이라마와 진신공력으로 한판 승부를 펼치고픈 욕망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도 젊은 피가 철철 끓어넘치는 소천악이었다.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고민을 한 소천악의 입이 열렸다.
"머리는 거부하는데 가슴에서 하자고 합니다."
기대 어린 표정으로 듣던 달라이라마의 안색이 환히 펴졌다.
"역시 시주는 나이를 초월해서 무인이시구려. 경의를 표하오."
가볍게 합장을 하자 읍으로 답례하는 소천악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다시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의 눈빛에선 세찬 투지가 흘렀다.
아무 말 없이 좌측으로 스르르 움직이는 달라이라마의 신형을 따라 소천악의 신형도 물 흐르듯 같은 방향으로 회전했다. 놀랍게도 움직이는 그들 주위의 공기가 귀청 가르는 째지는 소리를 냈다. 피차 전력으로 끌어올린 내력으로 인해 공기가 갈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어느 순간 소천악의 신형이 먼저 날카롭게 반전하며 검끝이 흔들리며 앞으로 쏘아져갔다. 처음엔 불과 한 자 주위로 막을 형성하며 달라이라마를 덮쳐오던 검은 찰나에 일 장여로 커지며 거대한 검압을 풍기며 세차게 밀려왔다.
달라이라마의 눈이 신중해지며 두 손이 보이지도 않을 섬전 같은 속도로 사방을 휘감으며 번뜩번뜩거렸다.
수강!
최절정고수조차 펼칠 엄두가 안 나는 수강이었다. 검으로 따지면 검강인 셈이다.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는 달라이라마였다.
수강은 검막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주쳐갔다. 이를 악문 소천악이 숨겨놓았던 내력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꽈르르릉!
차마 검과 손이 부딪친 소리라 믿기 힘들 굉음이 수도 없이 연달아 작렬했다. 선공한 소천악은 검끝을 통해 밀려오는 막대한 기운에 순간 기혈이 진동하며 하마터면 선혈을 토할 위기를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손을 움직이기 힘든 거대한 수강의 압력에도 꿋꿋하게 검을 펼쳐냈다. 지난 십여 년 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수련을 통해 발전한 신체의 능력이 이를 이뤄냈고 바로 잠재력이 본능적으로 발휘되는 혈천신공의 위력이 서서히 빛을 발했다.
일 초식을 펼쳐내는 데도 막대한 내공을 소모하는 접전이다. 처음엔 소천악이 한 걸음씩 내공에 밀리며 물러났지만 잠재력을 끌어올리자 팽팽하게 맞서갔다.
검은 막대한 수강의 압박을 뚫고 시시각각 변초하며 달라이라마의 경혈을 시도 때도 없이 노렸다. 수강과 검의 충돌로 폭음은 여전히 연무장을 뒤덮었다.
달라이라마의 거대한 내공에 대항해 잠재력을 바탕으로 한 혈천신공이 비등하게 맞서자 자신감이 서서히 들기 시작한 소천악이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결 편해진 그의 검이 사선을 그리며 달라이라마의 전신대혈을 노리고 섬전같이 뻗어나갔다. 전에 장작꾼을 보고 심득을 얻은 그의 검은 총 팔십일 초로 이뤄진 연환구구탈백검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연속적으로 펼쳐나갔다. 매초식마다 흔들림 없는 일정한 호흡 아래 점점 더 위력을 더해가는 강맹한 검초가 영활하게 달라이라마의 전신을 노렸다.
순간순간 변초되어 날아오는 검의 홍수에 달라이라마의 안색이 급변하며 수강을 잔뜩 끌어올려 전신을 막아섰다.
수강의 방어막을 검이 쉴새없이 강타했다. 처음과 끝이 똑같은 위력으로 후려치는 검의 공세에 수강이 조금씩 조금씩 흔들렸다.
점차 당혹감이 얼굴에 비치는 달라이라마는 결심한 듯이 수강을 변화시켰다.
"조심하시구려!"
짤막하게 말하며 시전하는 그의 손이 붉은색을 띠었다.
밀종대수인!
드디어 포달랍궁의 비전절기인 밀종대수인의 최후절초가 그의 손에서 재현됐다. 그의 손이 순간 일 장여로 커지며 검을 집어삼킬 듯이 후려쳐 왔다. 이미 손의 색은 시퍼런 광망을 뿜어냈다.
"헙! 역시!"
짧은 경호성을 토하며 소천악의 검도 급히 연환구구탈백검의 최후절초를 시전했다. 검풍이 휘몰아치며 섬전 같은 검력이 밀종대수인과 당당하게 맞서갔다.
비전절기의 격돌답게 바로 연무장이 통째로 무너질 듯한 폭음과 더불어 자욱한 돌먼지가 가득 피어났다.
이윽고 먼지가 가라앉자 새삼 드러난 두 사람의 모습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두 사람은 경력에 휘말려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비틀거렸다. 달라이라마는 뒤로 십여 걸음 물러난 상태로 입가에 가는 선혈이 배어나와 내상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소천악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비슷하게 물러선 상태로 팔과 다리에 수강에 스친 듯 살이 찢겨 피가 송송 흘러내렸다.
기혈을 가까스로 안정시킨 달라이라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놀랍구려! 시주같이 젊은 나이에 이런 성취라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구려."
"별말씀을. 달라이라마께서 내공을 조절해서 이렇게 인정을 베푼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겸양을 떠는 소천악이지만 내심은 전혀 아니었다. 혈검구식을 쓰지 않고도 달라이라마를 핍박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공에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쳤다. 혈사부의 무공은 과연 장담대로 천하를 오시할 만한 것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이런 내막을 전혀 모르는 채 칭찬에 기분 나쁠 리가 없는 달라이라마였다.
"허허, 시주가 이 노물에게 금칠을 하시는구려."
"달라이라마님!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게 좋을 듯합니다. 더 하면 제가 견디기 힘듭니다."
"허허! 겸손까지 보여주시는구려. 시주는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무인의 자격이 충분함을 입증했소이다."
"감사합니다, 달라이라마님! 그리고 이건 중원제일신의라 일컬음을 받는 백의신의께서 직접 만든 단약입니다. 내상에 효과가 탁월하니 드시지요."
품속에서 꺼내 건네는 단환을 받아 아무 의심 없이 삼킨 달라이라마를 보며 같이 삼킨 소천악이다.
두 사람은 한 시진 정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운기조식을 통해 진탕된 기혈과 전신대혈을 다스린 후 비슷한 시간에 눈을 떴다.
마주 보며 웃는 둘 사이엔 나이와 지역을 떠난 사나이끼리의 신뢰가 흘러나왔다. 감탄한 달라이라마가 탄성을 질렀다.
"오, 역시 백의신의의 단환은 그 효과가 놀랍구려. 이리 쉽게 내상이 다스려지다니!"
"후후! 그 양반이 괴팍하긴 해도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지요."
언제 생사를 걸고 싸웠냐는 듯 두 사람은 십 년 이상 알았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무인은 무공으로 말한 후라야 급격히 친해진다는 걸 느낀 소천악은 새로운 경험을 뇌리에 추가했다.
다시 달라이라마의 방에 들어온 후 소천악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럼 일단 사신단을 따라갈 고수를 정하셨습니까?"
"원로들의 의견은 어차피 상부상조할 바엔 화끈하게 밀어주기로 의견 통일을 보았소이다. 이제 그에 따라 본 궁의 절정고수인 마라십존자와 일류고수 이백 명을 호위단에 파견하겠소이다."
"오, 그렇게까지나! 너무 고맙긴 하지만 전력이 그리 빠져도 됩니까?"
좋으면서도 겸양을 떠는 소천악을 마냥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달라이라마가 말했다.
"포달랍궁을 가볍게 보지 마시구려. 험하고 어려운 길이 될 건 뻔하오. 그 정도는 지원해야 무사히 상행을 마치고 우리에게 약속한 걸 받게 될 거란 장로들의 의견이 지배적이었소."
"후후!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풀기 힘든 난제를 의외로 쉽게 푼 소천악이다. 여기에는 포달랍궁의 사정에 밝았던 혈사부의 경험이 크나큰 힘이 되었다. 새삼스레 혈사부의 그림자가 크다는 걸 느낀 소천악이다. 혈사부는 마냥 악질사부만이 아니었다.
바로 모인 마라십존자와 일류고수들과 상견례를 마친 소천악이다. 이미 달라이라마가 무공비무를 통해 자신의 아래가 아니란 말을 선포한 후라 그들의 눈빛에는 경악과 경외심이 풍겨나와 한결 이야기가 편하게 진행되었다. 달라이라마의 말을 의심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윽고 달라이라마의 전송을 받으며 출발한 소천악은 이내 행렬에 도착했다. 먼저 정파 무림인들과의 불화를 끝내기 위해 마라십존자와 앞으로 나갔다.
정파 무림인들은 갑자기 홍의가사를 입은 심상치 않은 기세의 마라십존자를 보자 놀라 소리쳤다.
"적이다! 포달랍궁 고수다!"
"무엇이! 모두 전투 준비하라!"
놀란 진 장로가 급히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의 안색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정파인들이 죽고 다쳐 더 이상 싸우기에는 사실상 어려운 처지라는 걸 실감한 터였다.
우려가 가득한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홍의가사를 입은 열명의 고수가 보였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기운을 바라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눈에도 절정 이상의 고수들임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