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3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30화
슬쩍 미끼를 던지자 얼른 걸리는 소천악이다.
"아, 있어요?"
작전대로 되어가는 모양새에 절로 흐뭇해진 녹류강이 애간장을 태웠다.
"당연히 알아봤지. 우리 개방은 하오문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네. 고급정보야 당연히 우리가 두어 수 위지."
자부심 섞인 녹류강의 말에 비위가 살짝 틀어졌지만 내색 않고 소천악이 달려들었다.
"당연히 개방이 위라는 건 천하가 알지요. 좌우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문제 하나가 어려움이 있다네."
난색을 표하는 녹류강의 말에 눈치 빠른 소천악이 상황을 짐작했다. 녹류강은 대놓고 혈검신마를 거론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고 그 사정을 모를 소천악도 아니다. 슬쩍 미소를 지으며 소천악이 말했다.
"누명 말입니까?"
"그래, 그걸세. 그 문제를 놓고 장로회의를 거친 결과 우리 개방의 이름을 걸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결정이 나왔네. 물론 남아일언 중천금이니 굳이 하라면 내 이름을 걸고라도 하겠네만 개방의 이름으로 하기는 어려울 성싶네."
"음! 사실 어렵기도 하겠지요. 이해야 합니다만 저로서는 풀어야 할 숙제이기에 기필코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런 방법은 어떤가?"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모른 척하고 묻는 소천악에게 얼른 대안을 제시하는 녹류강이다.
"물론이지. 내가 며칠 밤을 고민한 끝에 묘안을 하나 생각했네."
"그게 무언지요?"
"상부상조하는 일인데 일단 우리 개방에서 정보를 적어놓은 책 하나를 잃어버린 거로 하는 걸세. 그 책에 혈검신마의 정보를 담았다고 하고 그가 왜 누명을 쓰고 무림공적이 되었나를 기술했다고 하면 만사가 순탄하게 진행될 듯하이."
"오호, 그래서요?"
슬슬 소천악이 걸려드는 듯하자 기분이 좋아진 녹류강이 신바람을 내며 말했다.
"그걸 자네가 가지고 가서 적당한 시기에 소문을 낸다면 우리 개방은 그 소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을 걸세. 그 의미는 긍정하기 힘드니 침묵한다고 강호무림에서는 받아들일 공산이 크네."
"묘안이군요. 그럼 그 책자를 지금 주실 건가요?"
"여기 미리 준비해 놨네."
소천악의 마음이 변할세라 얼른 전해주는 책자였다. 소천악은 받아 들자마자 펼쳐 읽어 내렸다. 과연 사부의 말대로 누명을 쓰고 무림공적이 된 과정이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세세한 사항까지 기록된 것이 어지간한 증거보다 정확해 개방의 정보력을 가히 실감케 했다.
"이거군요. 혈검신마가 무림공적이 된 내막이."
"그러네. 같은 정파로선 수치스럽지만 동료의 허물을 들춰내기가 어려워 숨겨놓은 걸세."
"음, 일단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결정이신데 이리 쉽게 주시다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자네와 나밖에 모르는 일일세. 절대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하네."
"후후! 저도 당당한 사내대장부입니다."
"믿겠네. 그리고 또 부탁한 절세미녀에 대해서는 알아볼 대로 알아봤네."
"있습니까?"
기대에 찬 소천악의 얼굴이 환히 펴졌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저 멀리 십만대산에 있는 천년마교의 마존각주인 천일평 딸이 그 족자와 흡사한 미모란 정보일세."
"있긴 있군요. 과연 개방입니다."
감탄한 소천악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녹류강이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한 개방 제자 외에는 그 소저의 얼굴을 본 자가 없다네. 그도 참으로 우연찮게 봤다고 하더만. 우연히 개울가에서 면사를 벗고 세안할 때 몰래 훔쳐봤다더군."
"음, 믿어야지요. 알겠습니다. 여러모로 협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말을 다 하네. 아무쪼록 일이 잘 되길 바라네."
서로 만족스런 웃음을 나누며 헤어진 후 소천악은 가슴 한구석이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미우나 고우나 하나뿐인 사부의 누명을 벗겨줄 기회를 잡은 기쁨은 남달랐다. 구박밖에 모르던 사부의 약점을 풀어줄 이가 자신이란 사실에 자부심마저 일었다.
소천악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야기를 다 들었던 뇌가도 집법장로가 녹류강에게 물었다.
"대장로님, 이거 잘못하면 우리 개방이 정파에게 크나큰 미움을 살 수 있습니다."
"허허, 내가 왜 그것을 모르겠나. 다 생각이 있음이야."
"무슨 복안을 가지고 계십니까?"
"소천악 저놈이 천년마교에 가서 살아 올 확률이 별로 없어. 천년마교가 어떤 곳인가. 천하의 고수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야. 거기에 가서 살아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하나도 없을 것이야. 그런 지옥에 제 발로 간 저놈이 살아 나올 수 있다고 보는가?"
"아니 그럼!"
눈빛을 번쩍이며 뇌가도가 말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녹류강이다.
"그래, 저놈이 가서 죽으면 거짓 정보라고 우리 개방에서 밝히면 그만이야."
"그렇군요. 그럼 어차피 죽을 건데 지금부터 거짓 소문을 내면 어떻습니까?"
"그건 위험한 생각이야. 가는 도중에 저놈이 그 소문을 들으면 우리 개방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저놈의 무공으로 볼 때 미쳐 날뛰면 우리 개방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봐야 해. 매사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순리인 게야."
"그렇군요."
"집법장로는 앞으로 소천악의 행적에 대해 끝없이 주시하도록 전 개방도에게 지시하도록 해. 그가 죽었다는 말이 들리기 전에는 우리 개방에서는 혈검신마의 정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뇌가도 집법장로는 이제야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장로를 쳐다보았다. 역시 늙은 생강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녹류강은 감탄하는 뇌가도를 보지도 않은 채 묘한 미소를 입꼬리에 달았다.
"만약 그놈이 천년마교에서 무사히 살아 나온다면 그건 곧 천년마교에 막대한 타격을 준 것이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요, 일석삼조의 기발한 묘안이 되는 거야. 으하하하!"
강호의 노회한 능구렁이답게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녹류강 개방 대장로였다.
연신 히쭉거리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탁천웅이 퉁명스레 말했다.
"형님! 지나가던 새 똥구멍을 봤소요? 왜 이리 히쭉거리나요?"
어이없이 탁천웅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골치 아프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여러 소리 말고 어서 길을 재촉하자. 이제 갈 길이 먼 목적지가 생겼다."
"재미있는 일이냐요?"
"신바람날 거 같은 일이지. 다만 더럽게 먼 게 마음에 안 들지."
"으하하하! 어서 가자요. 멀면 어때요. 재미난 일이 있는데요."
"내가 말이야. 그놈의 요 소리에 경기 일어난다."
"그럼 가자."
"요 자 붙여! 일단 하오문에 들러 하나 청부하고 가자."
둘은 티격태격하며 서둘러 하오문 장안 지부로 들어섰다. 이미 몇 번 들랑날랑거려 하오문도 모두 소천악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대협!"
"곡소량 지부장님을 뵈러 왔네."
인사를 주고받은 후 곡소량 지부장실을 찾은 소천악이다. 물론 말썽꾸러기 탁천웅은 객잔에서 요리를 마음껏 시켜 먹으란 달콤한 말로 떨어뜨려 놓은 상태였다.
"곡 지부장님, 이거 혈검신마에 관한 정보서입니다."
내미는 책을 받아 읽어보던 곡소량 지부장의 얼굴이 시간이 갈수록 흙빛으로 변해갔다. 잠시 후 책자를 덮은 그가 탄식을 내뱉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내막이 있는 줄은……."
"자, 이제 청부합니다. 이 내용을 중원천지에 가득 소문내 주시오. 인원이 많이 필요하니 청부금으로 오만 냥을 주겠소."
"알겠습니다. 은밀하게 내란 이야기죠?"
"그렇소. 자세한 방법은……."
소천악은 녹류강 개방 대장로와 상의한 대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만히 듣던 곡 지부장은 점점 얼굴에 희색이 가득 실렸다. 듣고 보니 이건 손 안 대고 코 푸는 쉬운 일이었다.
"아! 이런 방법이."
감탄하는 곡 지부장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상쾌한 목소리를 냈다.
"가급적 빨리 소문이 퍼지게 해주시오."
"염려 마십시오. 원본을 깊숙이 숨기고 사본을 많이 떠 곳곳에 뿌리겠습니다."
"하하! 고맙소이다. 나머지 청부금은 일을 무사히 마치고 온 대인 상단에게 청구하면 바로 줄 것이오."
일이 손쉽게 풀리자 두 사람 모두 만족한 얼굴로 헤어졌다. 객잔에 가 돼지같이 퍼먹은 탁천웅의 식대를 계산하고 서둘러 중원횡단 길에 나섰다.
제4-7장 미녀 찾으러 천년마교로-호굴에 들어가다
마차를 탄 두 사람은 마부의 인도 아래 편하게 여행길에 올랐다. 비록 먼 길이었지만 마차 안에서 드러누워 가는 길이라 여독도 별로 없었다. 지겨워진 소천악이 한마디 툭 던졌다.
"제길, 정말 멀기는 우라지게 머네."
"형님!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잖아요."
"그래.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리."
골치 아픈 듯 돌아누운 소천악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탁천웅이다. 그렇게 사소하게 토닥거리며 꼬박 한 달을 달려서야 겨우 십만대산이 보이는 중원 구석에 도착했다. 마부가 오랜 여정에 지친 표정으로 마차 안에 말했다.
"손님! 이제 다 왔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험해 마차가 가질 못합니다."
도착이라는 반가운 소리에 얼른 나온 소천악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수고했어요. 여기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시오. 단 한 달이 넘으면 다시 하오문 장안성 지부로 돌아가시오. 여기 일단 수고비 오백 냥이오. 먼 길이어서 많이 쳐서 드리겠소."
"아이고, 고맙습니다. 한 달 아니라 두 달이라도 기다리겠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린다는 말이 여실히 드러날 정도로 마부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아부를 떨었다.
다시 행장을 챙긴 소천악과 탁천웅이다. 물론 먹성이 엄청난 탁천웅을 위해 식량이 많이 늘어났다. 당연히 짐 보따리 대부분이 탁천웅의 어깨에 실렸다.
"형님! 왜 나만 짐 보따리를 주냐요?"
"시끄러! 거기 짐 대부분이 네놈이 먹을 것투성이야. 싫으면 다 버리고 가면서 굶든지."
"아니다요. 천웅이가 들고 간다요."
얼른 손사래를 치며 힘차게 앞으로 걸어가는 탁천웅을 보던 소천악이 어이없이 웃었다. 십만대산으로 가는 길은 역시 험하디험했다. 평지라고는 찾기가 힘들었고 거친 산길을 매일같이 헤쳐 가야 했다.
게다가 산을 올라갈수록 온도는 급하게 떨어져 내력으로 몸을 보호해야 할 정도로 강추위가 몰아쳤다.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하얀빛을 발하며 고고한 자태를 드러냈다. 지겨운 여정에 신경질이 난 소천악이 투덜거렸다.
"제길, 더럽게 머네. 춥기는 왜 이리 추운 거야?"
"형님! 아직 멀었어요?"
"저기 보이는 산까지 가야 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산은 하얀 눈으로 덮인 까마득히 높은 산이었다. 아직은 멀리 보여 갈 길이 아득함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한숨을 푹 내쉰 탁천웅이 힘없이 말했다.
"무지 머네요. 일단 밥이나 먹고 다시 가자요."
"휴! 어째 네놈은 하루에 다섯 끼를 꼬박 먹어야 하냐?"
"원래 그러니 구박 마라요."
"내가 아주 네놈 먹성하고 끝에 붙이는 요 소리에 자다가도 벌떡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