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29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29화
"절대 어기지 않소이다."
"자, 그럼 우리 볼일이 끝났군요. 어서 부상자를 수습해서 가시지요. 천웅아! 이리 와라."
"응, 형님요. 다시 낚시나 하자요."
"그러자. 이번엔 짱돌 던져서 고기 잡으면 안 된다. 낚시란 고도의 정신수련인 거야."
"알았어요. 자, 갑시다."
탁천웅은 뒤도 안 돌아보고 어슬렁거리며 소천악에게 다가왔다. 이후 낙무극 일행은 후다닥 유가상단을 도망치듯 떠나고 다시 평온이 감돌았다.
따라나온 낭인무사들은 어이없는 눈길로 소천악과 탁천웅을 털레털레 따라갔다. 목숨을 걸고 치열한 혈전을 벌이며 싸울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다시 장원 안에 들어선 소천악과 탁천웅은 낚시에 열중했다. 유천기 장주는 놀라운 결과에 넋이 반쯤은 나간 상태로 허겁지겁 낚싯대를 든 소천악에게 다가왔다.
"소 대협! 정말 감사하외다."
"감사할 거 없소이다. 이제 어서 짐을 꾸리고 강남으로 가실 준비를 서두르시죠. 저놈들은 호락호락 물러날 리가 없어요. 보나마나 다시 재정비해서 더 센 놈이 조만간에 올 겁니다."
"알겠소이다. 그럼 저희가 움직일 때까지 보호해 주시는 거죠?"
"물론이외다. 거기까지가 약속이니까요."
단호한 말이 떨어지자 유천기 상단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사의를 표했다. 순간 소천악의 말이 떨어졌다.
"그건 그렇고 아무래도 유 대인께서 은자를 조금 준비해 줘야겠소이다. 저기 고생한 낭인무사들에게 지급할 은자 말입니다."
"얼마나 준비할까요?"
"뭐 아쉬운 대로 오만 냥이면 될 거외다. 백 냥짜리 전표로 준비해 주시면 더욱 고맙지요."
유천기는 소천악이 부르는 금액이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아차 하면 모든 재산과 목숨마저 위태로운 입장에서 그깟 오만 냥이야 푼돈에 불과했다.
"알겠소이다. 당장 준비해 가져오지요."
흔쾌히 승낙한 유천기는 바로 오만 냥의 전표 더미를 가져다주었다. 소천악은 즉시 낭인무사들을 불러 모아 일단 약속한 삼백 냥의 전표를 각각 나눠 주었다.
"역시 소 대협!"
"맞아.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런데 이거 하는 일도 없이 받자니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낭인무사들은 기쁨에 차 전표를 챙기면서도 한편으로 드는 미안한 감정에 어색한 얼굴이었다.
"자, 세상은 다 일하는 대로 받으면 인생이 재미없는 겁니다. 더욱이 여러분들은 목숨을 걸고 싸울 결심으로 오신 분들이니 마땅히 자격이 있어요. 부담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싱긋 웃으며 말하는 소천악이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러운 낭인무사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과한 듯합니다."
"자! 그 이야기는 접고 이제 유가상단이 움직일 때까지 철저히 호위해야 할 겁니다. 모두 경계를 늦추지 마세요."
"염려 마시지요. 저희가 조를 짜 경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말씀드렸듯이 일이 다 끝나면 나머지 이백 냥도 바로 드리지요."
"와아!"
낭인무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자기들끼리 조를 짜 유가상단을 엄중하게 경비했다. 이 와중에서도 반 이상을 착복한 소천악의 주머니였다. 물론 소천악과 탁천웅은 언제 위엄을 보였냐는 듯 낚시에 빠져들었다.
바라보던 유천기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도대체가 어떤 게 진면목인지 헷갈리는구먼."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까는 정말 가공할 기세를 품어내는 고수의 풍모를 보이다 또다시 저런 모습이라니."
권산 총관도 기가 막힌 듯 말을 잇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강호에 이인이 많다 하니 그 중 하나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세. 이미 비단잉어는 포기한 지 오래야. 성격이 괴팍하니 자칫 잘못 건드리면 그냥 가버릴 수도 있어."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작이나 가져다줄까요? 고기 굽기 편하게."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나? 내가 비단잉어를 얼마나 아낀 줄 아는 사람이?"
"죄송합니다, 유대인."
"험!"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는 유천기와 눈치 보기 바쁜 권산 총관이었다.
한편 혈교에서는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갔다. 두수종 영주에게 조심스레 보고하는 막광 각주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갔다.
"영주님, 유가상단 점령에 실패했답니다."
"그래? 다 죽었나?"
"그게……."
"어서 말해 봐라."
궁금함에 갈증을 느낀 두수종의 말에 주춤거리며 막광이 대답했다.
"소천악 그놈이 나선 게 아니라 탁천웅이란 놈이 대신 싸웠답니다. 그런데 이놈이 한 명도 죽이지는 않고 두들겨 패기만 했답니다."
"안 죽였어? 이런 제길! 그럼 어부지리를 노린 우리 계책이 실패한 거 아냐?"
허탈한 듯 묻는 두수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얼굴에 마치 자신이 실수한 듯한 표정으로 막광이 말했다.
"네, 실패입니다. 아무래도 여우 같은 그놈이 미리 눈치챈 거 같습니다."
"그놈이 아냐. 분명히 개방의 늙은 여우 새끼가 말해 줬을 거야. 어떻게 소천악 그 자식이 개입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
울화가 치미는 듯 고래고래 소리치는 두수종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치는 막광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게 유가상단이 남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무래도 소천악 그놈이 더 이상은 개입하지 않을 낌새입니다."
"빌어먹을! 그건 희소식이지만 유가상단의 재산을 뺏어 세외에 주려던 계획이 무너졌으니 우리 은자로 지급해야 하잖아!"
화가 잔뜩 난 두수종이 탁자를 주먹으로 거세게 내려쳤다.
와지직.
탁자는 바로 쪼개지며 이미 가구로서 효용가치를 잃고 바로 장작더미에 포함될 정도로 심하게 파손되었다. 바라보던 막광이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어쩔까요? 다시 공격할까요?"
"관둬라. 소천악 그놈의 무공실력은 본 교 내에서도 최고수가 아니면 어렵다는 걸 모르나? 괜히 쓸데없이 공격했다가 인명피해만 늘어나."
"네, 영주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신경질적으로 변한 두주송의 얼굴이 살기를 가득 뿜어냈다.
"이놈의 자식을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거늘 도대체가 나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리 괴롭히는 거야. 두고 보자.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 한 번 방해한다면 이번엔 아예 토막내 죽이고야 말리라. 뿌드득!"
이를 가는 두수종 영주와 옆에서 눈치 보기 바쁜 막광의 모습은 왠지 유천기와 총관의 모습을 닮아가는 인상이다.
"제길, 왜 이리 귀가 가려워."
투덜거리며 귀를 후벼대는 소천악을 보며 탁천웅이 말했다.
"형님! 귀 간지러워요?"
"시끄러, 인마! 이상한 놈이 내 욕하는 거 같네."
"말만 해요. 가서 바로 이 주먹으로 패줄게요."
단순무식한 탁천웅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면박을 주는 소천악이다.
"됐다. 어서 마저 낚시나 하자. 이놈의 고기들이 다 죽었나. 오늘은 영 성과가 없네."
"다시 짱돌 던질까요?"
"됐어, 이놈아. 어서 낚싯줄이나 던져.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쳇! 만날 나만 가지고 그래요."
핀잔을 주며 낚시를 바라보는 소천악과 입이 한 자는 나와 신경질적으로 낚싯줄을 흔드는 탁천웅이다.
소천악은 머리가 복잡해져 갔다. 하필이면 자신이 움직이는 시기에 혈교가 설치는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다니다가는 언제 뒤에서 날아올 칼이 생길지 모를 시절이란 판단에 조금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혈교와 싸우기에는 귀찮은 점이 많았다. 아직 피해를 입은 적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혈교에게 피해만 끼친 입장이다.
조만간 결단을 내려야 했다. 세상은 결코 박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혈사부의 말대로 입장을 정리해야 했다. 마누라 하나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골머리를 썩이는 소천악에게 조심스럽게 유천기가 찾아왔다.
"소 대협! 이동 준비가 끝났습니다만."
"정리가 끝났습니까?"
"네, 급한 대로 거래관계를 대충 정리했습니다."
"그럼 가셔야지요. 어서 가십시다."
"네? 아, 그러죠."
단박에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소천악을 보며 얼떨떨하던 유천기가 바로 답하자 유가상단의 남하는 시작되었다. 나름대로 큰 상단을 이동한다는 건 그야말로 대역사였다.
수백 명의 상단 식구와 마차를 호위하며 움직이는 낭인무사와 호위무사들은 모두 소천악의 말에 절대복종해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 일단 목적지는 장안이었다.
아무래도 황궁이 있는 곳이라면 혈교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게 유천기와 녹류강 대장로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이동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중간에 정보에 어두운 산적 이백여 명이 덤볐다가 탁천웅의 가벼운 징계에 태반이 뼈가 부러지는 일만 제외하면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
마침내 여정이 끝나고 유가상단은 무사히 장안 분장에 도착했다. 유천기의 거듭되는 사례 인사에 신물이 난 소천악은 서둘러 헤어져 녹류강 대장로를 찾아갔다.
녹류강 대장로는 일단 성공한 일에 안도하면서도 약속을 생각하니 골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개방도의 정보를 분석하니 소천악은 고사하고 탁천웅이란 자마저 감당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여기서 약속을 어겼다간 개방 전체와 분란을 일으킬 게 뻔한 소천악이다. 황제 앞에서도 자기 할 말 다 한 작자가 개방이라고 무서워할 리는 하늘이 무너져도 없었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녹류강은 깊은 고심에 잠겼다.
늙은 생강답게 슬쩍 빠져나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그가 마침내 묘안을 떠올리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거야!"
"대장로님! 좋은 방법이 떠오르셨습니까?"
반색하며 다가서는 뇌가도 집법장로에게 미소를 보내는 녹류강이다.
"그래. 꿩 먹고 알 먹기인 계책이 떠올랐지."
"다행입니다. 저도 사실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 우리 개방이 덕 볼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닙니까?"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뇌가도 집법장로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녹류강 대장로였다.
"맞아, 이제 한시름 놓았어."
편하게 자리한 두 장로의 망중한은 아주 짧았다. 이내 급히 들어오는 한 개방도에 의해 순간의 평온은 무너졌다.
"대장로님! 지금 소천악 대협이 오고 있답니다."
"그래. 오면 바로 이리 데려와라."
"네, 대장로님."
하늘같이 높은 문파의 어른을 대하는 개방도의 신색은 정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평생을 가도 얼굴 보기 힘든 녹류강 대장로였다. 그런 그를 대하는 개방도의 입장은 모두 공경에 가득 차는 게 당연했다.
얼마 후 탁천웅과 함께 소천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 대장로님! 오랜만입니다."
"허허! 어서 오시오, 소 대협! 수고가 참 많으셨소."
"일단 고맙습니다만 이젠 대장로님이 약속을 지킬 순서가 된 거 같습니다."
"물론 지켜야지. 그런데 약간 변동사항이 있네."
말을 돌리는 듯한 녹류강의 말에 이마에 가는 선이 그어진 소천악의 날카로운 음성이 터졌나왔다.
"변동사항이라뇨?"
"먼저 의뢰한 미녀에 대해선 하나 알아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