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22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22화
"좋습니다. 그럼 과정은 저에게 맡기시고 형님은 그저 바라만 보십시오. 단 이 계책은 수란이의 짝이 소천악이라는 대전제가 깔려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음, 허허! 또 머리 좋은 자네가 무슨 일을 꾸미려 하는가! 좋네. 내 조용히 지켜만 봄세."
"하하, 이제 곧 우리 남궁세가는 천하에 위명이 자자한 신의괴협을 사위로 삼을 날이 올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눈빛이 번쩍이며 기대에 찬 시선을 빈 하늘에 쏘아올리는 남궁한이었다. 그 옆에는 이미 묘안을 서서히 완성시켜 가는 남궁영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4-6장 개방과의 인연
남궁세가를 나선 소천악은 깊은 고심에 빠진 채 객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갈수록 미녀를 본다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실감났다.
도무지 한 명의 미녀를 만나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나머지 미녀를 만날 생각을 하니 절로 한숨이 푹푹 새어나왔다. 기발한 착상이 없는 한 고생문이 훤히 보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순간 뇌리 한구석에서 번쩍하고 떠오른 생각의 파편을 찾아 정신없이 사색하던 중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그래, 그거야. 역시 난 천재야. 크하하하!"
갑자기 그의 발걸음이 경쾌하게 빨라졌다. 얼마 후 그가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하오문 안휘성 지부였다. 나리강(羅理强) 지부장과 단독면담을 신청한 후 소천악의 입이 은근한 유혹을 품고 열렸다.
"나 지부장님! 청부 하나 합시다."
"말씀만 하시지요. 소 대협!"
찾아온 불청객의 신분에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 채 나리강 지부장이 힘겹게 대답하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소천악이 청부했다.
"중원십대미녀 중 아직 만나지 못한 여인이 무려 여섯 명인데 일일이 찾아다니려니 성가시기도 해 하오문에 청부할까 합니다."
"무슨 청부를요? 혹시 모셔다가 대령하라는 거라면 절대 불가합니다. 우리 하오문의 멸문지화를 초래할 일이지요."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나리강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감히 하오문이 천하강세를 상대로 모험할 리는 없었다. 소천악은 펄펄 뛰는 그를 보며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설마 그렇게야 청부하겠소이까. 하오문에게 전혀 피해가 없는 방향으로 할 생각입니다."
"어떻게요?"
"자, 이걸 보시오."
애지중지하던 족자를 꺼낸 소천악이 자르르 펼치자 인세에 없는 선녀도가 나리강 지부장 눈앞에 펼쳐졌다. 단지 그림뿐인데도 황홀경에 빠진 그가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침을 흘렸다.
"이런 제길!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버럭 소리치는 소천악의 성난 외침에 깜짝 놀란 나 지부장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사색으로 변한 채 급히 변명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제가 잠시 실수를!"
놀라 사과하는 나 지부장을 바라보는 소천악의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뻗어나와 소름이 쫙 끼쳐왔다. 소천악은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살벌한 경고를 날렸다.
"조심하시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행동이 두 번 다시 일어난다면 나 지부장님의 생사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헉! 가슴에 새기고 다시는 결례를 하지 않지요."
급히 사과하는 나리강을 보고 만족한 미소를 짓던 소천악이 슬며시 제안했다.
"좋아요. 자, 이제 하오문에서 눈썰미가 빠른 자들을 뽑아 중원십대미녀를 찾아가는 겁니다."
"찾아가서요?"
"이 그림을 미리 보고 그 여인들을 만나 과연 이만큼 아름다운지를 저에게 말해 주시면 됩니다. 어때요? 간단하죠?"
"헉! 그 일을 청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이다. 뭐 그다지 힘들 거 같지는 않소이다만! 왜 어려운 청부요?"
"아니 꼭 그런 뜻이 아니고 아무래도 십대미녀들의 얼굴을 쉽게 보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제가 청부금을 듬뿍 준비해서 드린다는 거 아닙니까?"
잠시 고민하던 나리강 지부장이 어쩔 수 없는 거미줄임을 느끼고 말했다.
"알겠소이다. 청부를 받지요. 단 기간은 최소 일 년은 주셔야 합니다."
"좋소이다. 시간이야 어차피 제가 움직여도 더 걸릴 듯하니 그 정도야 감수하지요. 자, 여기 선금으로 은자 이만 냥을 받으시지요."
거액을 제의하는 소천악의 말에 별로 흔쾌하지 않은 나리강이다. 청부가 어렵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탓이다. 그는 조용히 물었다.
"네, 대협! 그런데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편하게 물으세요. 이제 하오문과 남도 아닌데 어려워 마시고."
"왜 직접 보시지 않고 이런 청부를."
"아, 다니다 보니 이놈의 미녀들의 집구석이 하나도 만만한 집이 없어요. 매번 인사하기도 성가시고 시간도 아깝고."
지부장은 열불이 치밀었다. 결론은 자기가 성가시니까 하오문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이었다. 세상에 마누라 삼겠다는 미녀들을 남보고 보고 오라는 황당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소천악의 머리를 열어보고픈 마음이다.
애써 노화를 참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 족자를 주시지요. 눈 좋은 자들로 골라 임무수행에 나서도록 총단에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자, 여기 있소. 명심하실 건 이거 훼손되면 지부장 죽고 나 죽고입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나리강이 대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돌아가신 조상님 모시듯 애지중지 간직하다 돌려드리지요."
"좋소이다. 이제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결과만 기다리겠습니다. 일정이 바빠 이만 물러가니 부디 좋은 결실을 들고 오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소천악을 바라보며 나리강 지부장은 얼른 마주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휙하는 바람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소천악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진 후였다. 인상이 그제야 확 구겨진 지부장이 중얼거렸다.
"좌우간 저놈이 한번 다녀가면 하오문 한구석이 시끄러워지니 지겨운 놈이야."
고개를 흔들며 골치 아프다는 듯 짜증을 부리던 지부장이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청부한 일을 준비할 채비를 서둘렀다.
하오문을 나선 소천악은 바로 다음 계획을 실천할 준비를 서둘렀다. 감히 자신에게 아수라협이란 명호를 준 개방에 대한 복수극을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정사를 떠나 자신을 건드린 개방을 가만히 둔다는 건 자존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팰 수도 없는 노릇이라 신중한 발걸음이 필요했다. 다행스러운 건 심자앙 책사로부터 지략을 들어 차곡차곡 움직이면 되는 일이다.
서둘러 객잔으로 돌아온 소천악은 눈이 동그래졌다. 탁천웅이 있는 탁자엔 빈 그릇이 즐비한 가운데 요리 접시가 그득한 채 탁천웅이 마치 음식하고 원수라도 되는 듯 무서운 속도로 그릇을 비우는 게 보였다.
기가 질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은 조용히 점소이를 불렀다.
"저기 계산이 얼마인가요?"
"네, 손님! 저분이 워낙 많이 드셔서 식대가……."
주춤대는 점소이를 바라보며 짜증스럽다는 듯 소천악이 말했다.
"그러니까 얼마 나왔소?"
"지금까지 모두 은자 팔십 냥입니다."
"팔십 냥!"
놀란 소천악이 가만히 탁천웅을 노려보다 계산을 마치고 뚜벅뚜벅 걸어가 뒤통수를 탁 쳤다.
"아야! 어떤 놈이야?"
"형님이란 놈이다. 어서 일어나라. 이건 동생이 아니고 아예 거머리구나. 한 끼 식사비가… 에휴."
"헤헤! 형님아, 내가 좀 많이 먹었지요?"
"됐다. 다행히 형님이 부자니 그런 건 신경 쓰지 마라. 다만 언젠가 밥값은 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알았어요. 염려 마요. 힘 쓰는 건 자신 있어요."
배가 남산만 해진 탁천웅이 배를 두드리며 소천악의 뒤를 따랐다.
이삼 일 움직이다 보니 점점 강호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보였다. 다니는 무사들 모두가 긴장된 신색으로 경직된 걸음을 옮기는 게 확연했다. 단 며칠 만에 바뀐 변화치고는 놀라울 정도의 긴박감이 흘렀다.
묘한 느낌에 아무래도 정보의 보고인 객잔을 찾아 귀동냥을 하기로 했다. 객잔에서 요리와 술을 시켜놓고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맞은편 탁자에 앉은 세 사람의 무인이 목표로 정해지자 일부러 딴청을 피우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모조리 엿들었다. 세 명 모두 검을 차고 구릿빛 얼굴과 옷에 가렸지만 오랜 수련을 거친 일류에 가까운 나름대로 무인이란 자부심이 얼굴 가득 보였다. 비록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하는 대화였지만 한 단어도 소천악의 귀를 피할 수 없었다.
"이보게! 이백 년 만에 혈교가 다시 강호에 등장했다며?"
"그래 아무래도 소문이 사실인 듯하이. 이미 강북에선 수많은 문파들이 멸문이나 봉문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해."
"허! 혈교라니. 이백 년 전에 멸문된 줄 알았는데."
놀란 한 무인이 말하자 다른 무인은 얼굴이 굳어진 채 설명했다.
"무서운 일이야. 듣자하니 이미 저들은 오십 년 전부터 강호 그늘에 숨어 재기의 칼을 갈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다시 무림이 피로 물들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이상한 건 이번에 등장한 혈교의 행보가 이백 년 전하곤 판이하게 다르다는 거야."
"뭐가 다른데?"
궁금하단 질문에 씩 웃던 무인이 계속 이야기했다.
"이백 년 전에는 무림일통을 부르짖고 강호무림을 온통 피로 물들였다잖아. 그런데 이번엔 강북무림의 일부만 장악한다는 선포를 했다더군."
"아니 웬일이야? 피를 부르는 사교집단이."
의아하다는 말에 대답은 바로 나왔다.
"좌우간 그게 현실인가 봐. 덕분에 구파일방을 비롯한 정파에서도 주시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는다고 해. 물론 집마부나 사존맹 등 사파의 거파들도 예의주시만 한다더군."
"아무래도 그렇겠지. 혈교가 어떤 집단인가! 서로 부딪치면 정사를 막론하고 치명적인 피해를 볼 건 뻔하니 눈치를 볼 수밖에."
"맞아. 정파에서도 앞에 나서자니 전력이 약해져 뒤로 사마외도의 공격을 두려워한다는 풍문이야."
"그러겠지. 물론 사마외도도 마찬가지로 앞에 나서긴 위험부담이 크지. 허! 이거 강호무림이 어디로 가는 건지."
"혈교는 강북무림에서 구파일방 중에 일원인 문파와 집마부와 사존맹의 지부는 손도 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보호해주는 입장이라네."
무인들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무서운 일이야. 정사의 갈등을 노린 혈교의 암계에 전 강호무림이 농락당하는 일이라니."
"쯧쯧 우리 같은 일류고수 정도야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가 않지. 그저 지켜볼 수밖에."
"휴우! 좌우지간에 당분간 강북무림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자칫하면 검하의 고혼이 되겠어."
"맞네. 그저 강남무림에서 눈치나 보면서 편히 지내는 게 상책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 사람의 대화는 막을 내렸다. 단지 무거운 표정으로 술잔을 연신 비우기에 바빴다.
소천악은 짧은 엿들음으로 대강이나마 강호무림의 정세를 나름 판단할 수 있었다. 물론 직접 개입할 생각도 이유도 전혀 없는 그로서는 단지 운신에 지장을 줄 것만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