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21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21화
"이런 건방진! 개진하라."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궁철이 소리치자 순식간에 연무장에 자욱한 그림자가 번뜩이며 열 명의 검수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소천악의 전신요혈을 노리고 검끝을 빛냈다.
무방비로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의 오른손이 섬전같이 발도하며 검을 현란하게 사방으로 전개했다.
차라라라랑.
열 개의 검과 일제히 마주친 소천악의 검은 단 하나의 검이 열 개의 검처럼 모두 막아냈다. 섬전 같은 속도의 쾌검이 현신했다.
"헉, 이런 쾌검이!"
깜짝 놀라 경악성을 터뜨렸다. 소천악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놀라고 그러십니까."
"이런! 감히 우리 창룡검대를 뭐로 알고!"
"남궁세가의 주력검대인 줄은 알죠.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가 무엇인지 내 보여드리지요."
말과 동시에 소천악의 검은 눈부신 검광을 발하며 열 개의 방향을 쭉 뻗어나갔다. 남궁철을 비롯한 창룡검대원 모두가 깜짝 놀라 즉시 검을 가슴 앞에 세워 내력을 주입했다.
콰르르릉!
검끼리 부딪힌 폭음이 들리며 일제히 한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이런 가공할 내력이!"
"가공은요.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나직한 비웃음을 흘리며 소천악은 연속적으로 앞으로 다리를 노리는가 싶으면 가슴을 노리는 쾌검을 연속적으로 펼쳤다. 모두의 혼을 빼놓은 소천악의 쾌검이 삼 초가 흐르자 창룡검대는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예측불허의 소천악의 검을 막기에 급급했다
"허, 저럴 수가! 창룡검대가 저렇게 무력하게……."
남궁한 가주가 놀라 말하자 옆에 있던 남궁회준 총관이 감탄하며 말을 받았다.
"헛소문이 아니네요. 저 정도면 이미 초절정 고수를 훌쩍 뛰어넘은 수준입니다."
"그러게. 우리가 괜히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듯싶네. 저러다가 창룡검대원들이 혹여 죽거나 부상이라도 당하면 우리 세가 전력이 상당히 약화될 텐데."
근심 어린 남궁한 가주의 말에 남궁회준 총관도 우려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소천악은 싸우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를 한 자도 남김없이 엿듣고 있었다.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던 소천악이 날카롭게 외쳤다.
"자, 이제 끝장을 봅시다. 오 초를 약속했으니 마지막이오."
"오너라. 남궁가주의 저력을 보여주마."
"수백 년 된 건물도 무너지면 바로 폐허로 변하는 걸 보여주지요. 그리고 예의를 좀 배우셔야겠소이다. 이리 반말을 찍찍 하시다가 죽음을 당하면 하소연도 못 합니다."
소천악의 검은 폭풍처럼 거세게 휘몰아치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사방의 공기를 삽시간에 빨아들이며 거세게 밀려가는 소천악의 검에 담긴 차가운 기세가 창룡검대원을 노리고 번개같이 짓쳐들어왔다.
"이럴 수가! 이건 도저히! 모두 전력으로 막아라!"
안색이 잿빛으로 변한 남궁철의 다급한 말에 검수들은 이를 꽉 물고 전 내력을 모두 끌어올려 사력을 다해 막아섰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깨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음 순간 막아서던 검들이 힘없이 마치 수수깡처럼 무너지며 소천악의 검은 창룡검대원의 사혈을 노리며 쾌속하게 밀려왔다.
너무도 빠른 쾌검에 열 명의 검수들은 아무도 막아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삶을 포기하고 눈을 감는 순간 머리에 거센 충격을 받고 의식을 잃은 채 땅으로 쓰러져 갔다.
마지막 순간 소천악은 검날을 돌려 검등으로 열 명의 머리를 강타하는 인정을 베풀었다. 이 정도 사소한 일로 남궁세가와 원한을 살 만큼 어리석은 그가 아니었다. 접전이 끝나고 나자 연무장에는 남궁세가가 자랑하던 창룡검대원 모두가 힘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연무장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남궁한 가주와 세가의 주요 인물들은 경악에 빠져 어떠한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
말로만 들었던 소천악의 무공을 직접 보니 이건 절대 소문이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된 경향마저 보였다. 강호무림에서 누가 감히 창룡검대를 저리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느냐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전율이 올라왔다.
구파일방의 전대 장로라 할지라도 저리 쉽게 박살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모두의 무거운 입을 대신해 소천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은 비무였소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궁한 가주가 치욕에 몸을 떨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놀라운 무공이오. 오늘 세가의 고수들이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알았을 것이오. 손속에 인정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말에 바로 뼈 실린 응수가 나오는 소천악이다.
"원 별말씀을! 불구대천의 원수지간도 아닌데 설마 해할 리가 있겠소이까? 안 그렇습니까, 가주님?"
방금 전 남궁철 등 창룡검대의 살수를 힐난하는 어투가 여실했다. 사실 소천악은 평범한 비무에서 독수를 뿜어낸 창룡검대가 영 못마땅했다. 단지 명예 그 때문에 서슴없이 상대를 죽일지도 모르는 검을 쓰는 그들의 웃기지도 않는 자존심에 기분이 몹시 상했다.
남궁한 가주가 그런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대남궁세가의 가주였다. 어떻게든 세가의 명예를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자리가 세가의 가주란 자리였다.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미안하오이다. 저들이 대협의 무공에 감탄한 나머지 무리한 출수를 한 거에 대해 양해 바라오."
"후후! 남궁 가주님! 그 양해란 제가 살아 있으니 받는 게 가능하지 죽거나 중상을 입었으면 듣지도 못할 말 같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 남궁세가는 여태껏 떳떳한 정파로서 그 책임을 다한 가문이오."
노기에 찬 남궁한 가주의 말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소천악이 쏘아붙였다.
"난 전의 남궁세가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다만 내가 직접 보고 느낀 대로 알 뿐입니다."
서슬 퍼런 말이 소천악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남궁한은 속으로 뜨끔했다. 아차 하면 커다란 위협이 되는 적을 만들 판이다.
그도 이미 정파에서 암암리에 움직인 천축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천축에서 보여준 소천악의 신위를 짐작한 상태에서 세가의 명예를 드높일까 하여 만들어낸 비무였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감과 더불어 이 위기를 벗어날 묘책을 강구하려 애를 썼다. 그런 그의 마음을 제일 먼저 짐작한 이는 남궁가의 책사를 맡고 있는 남궁영이었다.
남궁한 가주의 친동생이기도 한 그가 얼른 머리를 굴려 소천악에게 말했다.
"허허, 이거 생각과는 달리 분위기가 묘하구려. 원래 무림인들은 사소한 시비에도 생사가 갈린다고 하였습니다. 소 대협은 노여움을 푸시고 차나 한 잔 하심이 어떨는지요?"
"차요?"
"네, 소 대협! 우리 수란 아가씨가 끓이는 용정차가 일품입니다."
얼른 말하는 남궁영의 말에 잠시 갈등의 눈빛을 빛내는 소천악이다. 망설이는 그를 바라보던 남궁한이 아차 하는 마음과 동시에 쾌재가 흘러나왔다. 창룡검대가 무참하게 깨지는 통에 깜박했던 소천악의 목적이 비로소 떠올랐다.
결정이 나자 얼른 동생인 남궁영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시구려. 허허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수란이가 타주는 용정차는 가히 천하의 일미라고 할 수 있소이다."
"험."
어색한 헛기침을 남발하며 생각에 잠긴 소천악이다. 사실 그가 남궁세가에 온 목적이 바로 이뤄지는 순간인데 왠지 화장실 갔다가 그냥 온 찝찝한 기분이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저들의 이율배반적인 사고방식이 환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자신이 소문과 달리 별볼일없는 무공실력을 가진 자였으면 바로 문전박대가 분명했다. 지금처럼 확실한 무공을 보여주자 태도가 돌변해 환대 분위기로 바뀌는 철면피 같은 내심이 훤히 읽히자 환멸감마저 일었다.
하지만 천하십대미녀를 다 보고 평가하려던 자신의 목표를 생각하니 절로 머리가 아파왔다. 생각은 길었지만 현실의 시간은 짧은 순간의 고심이었다. 이내 마음을 정한 소천악은 편안한 미소와 더불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지금은 아닐 듯합니다. 생각지도 않은 과격한 비무로 인해 대남궁세가의 정예를 부상케 하고 편하게 절세미녀와 차를 마신다는 건 어불성설인 듯합니다."
"아니, 대협!"
"오늘은 호의만 받고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들르면 박대 마시고 용정차 한 잔 부탁드립니다."
"허어! 이거 참."
내심 당황한 남궁한 가주였다. 소천악이 저리 나오자 마땅히 붙잡을 명목이 서지 않았다. 세가의 부상당한 창룡검대 고수들을 지목하며 분위기 이야기를 하는데 굳이 잡는다면 인심이 안 좋아질 건 뻔한 일이다.
머리 좋기로 유명한 남궁영이 깊은 고심에 빠지며 무난히 수습할 길을 모색하려는 순간이었다. 거침없는 소천악의 다음 말이 터져나왔다.
"자, 그럼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뵙기로 하고 이만 물러갑니다. 평안하시길."
딱 잘라 말한 소천악은 적당히 고개를 숙이며 발길을 돌렸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재빠른 움직임에 당황감을 드러낸 남궁한이 마침내 체념 투로 말했다.
"허허, 소 대협이 정히 그러시다면 다음 기회에 뵙는 걸로 하지요."
"네, 가주님! 그럼 전 이만!"
안면을 싹 바꾸며 싸늘하게 말한 소천악은 서둘러 남궁세가를 벗어났다. 그는 천하십대미녀를 보는 걸 처음으로 포기한 채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한 점의 후회도 남지 않는 마음이 이상할 지경이다.
떠나는 소천악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하던 남궁한 가주가 조용히 동생 남궁영에게 의견을 구했다.
"영아! 네가 보기엔 어떠냐?"
"잠룡입니다. 이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면 천하가 시끄러워질 자입니다."
"나도 그렇게 본다. 허! 이거 큰 실수를 했구먼."
"그렇습니다. 실수도 크나큰 실수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자칫하면 세가의 강적을 만들 위기는 벗어난 거 같습니다."
"그러게! 하지만 아까운 인물이야. 저런 인물이 세가 뒤에서 버티고 있다면 우리 남궁세가가 천하에 큰소리를 칠 수도 있는데."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시는 남궁한을 바라보던 남궁영의 입이 열렸다.
"아직은 안 늦었습니다. 저자가 우리 수란이를 보러 왔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그냥 갔지만 아쉬움이 남았을 건 뻔합니다."
"그런가? 아까 보니 영 아닌 거 같던데."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주를 보며 남궁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돌아서는 그자의 눈빛에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다른 방도를 찾아낸다면 형님의 바람은 헛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 그래? 그 묘안이 무엇인가?"
"일단은 저자가 가는 방향으로 수란이를 보내는 겁니다. 줄곧 따라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척 상황을 꾸미면 제 놈이 설마 수란이의 미모를 보고 가만있겠습니까?"
"만만한 일이 아니야. 벌써 저놈은 천하십대미녀를 셋이나 보고도 발길을 돌린 놈이야."
"후후,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드리겠습니다만 형님이 정말 저자를 수란의 짝으로 점찍으셨습니까?"
남궁영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남궁한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나왔다.
"당연하지. 우리는 무림세가일세. 강한 무공을 지닌 자를 혈육으로 만드는 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우리 수란이도 강한 부군을 만나서 나쁠 것이 하나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