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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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17화
쨍그랑! 텅!
빠르게 무기를 버린 녹림도들은 손을 앞으로 내밀며 비무장임을 강조했다. 그 모습에 실소를 머금던 소천악이 차갑게 말했다.
"거참, 눈치 빠르시오. 아까 질문한 거 대답이 아니 나왔소이다만."
"네, 대협! 적벽채에서 사람이 오긴 왔습니다만."
"왔는데요?"
"그게 아주 머리 아픈 놈에게 한 대 맞아 바로 기절해 누워 있습니다."
"누워 있어요?"
뜻밖의 대답에 어리둥절한 소천악이 반문하자 구절생은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네! 지금 저희 산채는 웬 황당한 놈이 점령한 지 벌써 달포가 지났습니다."
"이상한 놈이라니? 이런 원 뜬금없는 말에 정신 차리기 힘들구려. 좀 자세하게 말씀해 보시지요."
의아한 소천악의 질문에 구절생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사연을 털어놨다.
"달포 전에 겁 없이 산을 넘어가려던 한 놈을 잡았지요. 평소대로 약간의 금품만 털고 보낼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두들겨도 끄덕도 하지 않는 겁니다."
"오호! 몸이 강한 모양이네요."
감탄하며 말하는 소천악의 말에 내심 부아가 치밀었지만 발작하지 못하고 구절생이 말을 이었다.
"주먹으로 패도 꿈쩍을 안 하기에 열받은 녹림호걸들이 도를 빼 들자, 아 글쎄 이놈이 발작했습니다.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녹림호걸들에게 덤비는데 이건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소이다. 도로 찔러도 부러지고 검으로 베면 검이 두 동강이 났지요."
"음, 외공을 가공할 정도로 수련한 강호인이군요."
"결국 녹림호걸들이 모두 반죽음이 된 채 산채로 끌려갔지요. 거기서도 채주님을 비롯한 모든 산적들이 공격했지만 별무소용이었지요."
"그래서요?"
"모두 땅에 널브러진 후 그놈이 말했지요. 배고프니 밥 달라고. 채주님은 괴물 같은 놈에게 얼른 밥이나 주고 보낼 생각으로 얼른 진수성찬을 해다 바쳤지요. 그런데……."
자꾸 말이 길어지자 짜증이 난 소천악의 말투가 거칠게 나왔다.
"아, 답답하게 말씀하시네요. 요점만 간단히."
"휴! 그 후 이놈이 아예 산채에 눌어붙은 채 식량을 축내는데 먹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하루에 녹림호걸 이십 명분을 먹어대고 술도 동이째로 콸콸 먹어대는 통에 그 시중을 들다 보니 하루해가 뜨고 집니다."
"대단한 분이시네. 적벽채에서 온 자는 왜 얻어맞은 거요?"
"그건 오자마자 녹림삼십육채에 속한 산채라고 위세 떨다가 그놈에게 한 방 맞아 바로 실신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소이다."
구미가 동한 소천악이 얼른 재촉했다.
"쩝! 거참, 호기심 당기는 분이시네. 일단 가봅시다. 얼굴이라도 봐야 이야기가 될 듯하니."
"헉, 우리를 도와주시려는 겁니까?"
"그거야 하는 거 봐서 돕든지 말든지 하고 일단 갑시다."
"네, 소 대협!"
마치 상전 모시듯 굽실거리며 소천악을 안내하는 구절생은 한 녹림도에게 넌지시 귓말을 전했다.
"야! 넌 지금 바로 산채로 뛰어가서 채주님에게 신의괴협 소천악 대협이 오신다고 접대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시라고 말씀드려라."
"네, 부채주님!"
지시를 받은 녹림도가 빠르게 뛰어 산채 쪽으로 달려갔다. 물론 이 대화를 못 들을 리 없는 소천악이지만 나쁜 말이 아니기에 모른 척하고 넘어갔다. 한참을 걸어가자 산채가 나오며 어느새 많은 산적들이 옹기종기 모여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다가선 구절생이 한 사람에게 말했다. 덩치가 구절생보다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자는 주왕산채주 휘지경이었다. 그는 애병인 검을 버리고 빈손으로 서 있는 이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채주님, 인사하십시오. 강호에 위명이 자자한 소천악 대협이십니다."
"반갑소이다. 전 주왕산채주 휘지경이라 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첫 만남을 가지는 휘지경을 보며 소천악이 가볍게 포권으로 답례했다.
"하하! 이거 녹림호걸을 만나니 반갑소이다. 소천악이라 하외다."
"자자,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지금 산채에는 괴물 하나가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분 보러 온 거니 어서 안내하시오. 어디 외공의 대가 하나 봅시다."
심드렁하게 말하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휘지경 채주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뒤를 따랐다.
산채에 들어서자 가관이 따로 없었다. 중앙에 펼쳐진 주안상에 한 거한이 홀로 앉아 술을 동이째로 들이켜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걷어붙인 팔뚝에 구릿빛 근육이 불끈불끈거리는 게 예사 수련을 거친 자가 아님을 알아본 소천악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본 기분이었다. 아무 말 없이 다가가 툭하니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술 한 잔 줘보시오."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이목구비가 죄다 큰 게 힘깨나 쓰게 보이는 자였다. 전신이 강철처럼 단단하게 보여 참혹한 수련을 거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는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응! 술 여기 있어. 거기 앉아 처먹어!"
"뭐, 처먹으라고요?"
비위가 틀린 소천악이 쏘아붙이자 거한은 본 척도 안 하고 다시 말했다.
"처먹지 그럼 토할래?"
거듭되는 반말에 참을성이 바닥을 드러낸 소천악이 사납게 말했다.
"혀가 반 토막이시군요. 그러다 여러 명 북망산 넘어갔소이다."
"어려운 말 쓰지 마. 몰라."
"거참, 덩치는 멧돼지 같은데 역시 머리도 돌이시구려. 덩치가 든든한 게 두들기기도 딱이겠소."
"이놈이!"
버럭 성질을 내던 사내가 술동이를 버리고 일어서자 칠 척에 약간 모자라는 큰 키가 좌중을 압도했다. 소천악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자였다. 그가 주먹을 내보이자 얼마나 큰지 보통 장정의 두 배가 훨씬 넘어 보였다.
"어이, 덩치만 믿으시다가 골병드십니다."
차갑게 냉소짓는 소천악을 보며 거한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아무 말 없이 몸을 날렸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이 장여를 날아오는데 발이 땅에 닿자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흔들렸다.
"조그만 놈! 오늘 아주 많이 때려주마."
으르렁거리며 권을 힘차게 뻗는 거한이다. 소천악은 아무 말 없이 내력을 실어 넣어 마주 권을 부딪쳐 갔다.
쿵! 쿵! 퍽!
거한은 몸집과 달리 번개같이 권을 수차례 뻗어 소천악의 전신대혈을 노렸으나 어느 틈에 막아오는 권에 모조리 차단됐다. 강맹한 권의 위력에 주위에 폭음이 일며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올라왔다. 소천악은 내심 살짝 놀랐다.
거한의 권에는 단순한 힘뿐만이 아니라 현묘한 권격이 포함되어 있어 마치 강철과 마주치는 기분이었다. 손끝이 얼얼한 게 철벽을 두드린 느낌으로 슬쩍 몸을 빼며 소리쳤다.
"오호! 외공의 극성이군요."
"이 쥐새끼 같은 놈! 안 되니 도망을 가!"
"도망은 무슨. 검사권생의 신조를 가진 저로선 어떻게 하면 안 죽이고 두들겨 팰 수 있을까 궁리 중이외다."
"내 금강철두신공은 무적이야!"
소리소리 지르는 거한을 바라보던 소천악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꼭 어디서 들어본 무공명을 외치는 자를 보며 묘한 느낌에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런 외공을 가진 자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꼭 들어봤던 기억이 아스라이 뇌리를 스쳤다. 잠시 머리를 혹사하던 그가 마침내 기억을 떠올렸다.
"아하! 금강철두신공!"
소천악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기세등등하던 거한이 움찔했다. 심지어 당황감에 휩싸여 주춤거리며 물러서며 소천악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아냐? 나의 무적신공을!"
자신이 말하고도 금방 까먹는 가공할 머리를 스스로 과시하는 그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추측이 맞자 소천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혈사부의 잡담 중에 나온 말을 기억하며 거한을 예의주시했다.
<천악아! 강호에는 별 웃기는 놈들이 다 있단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정의를 수호한다는 놈! 검 하나 달랑 들고 패도를 걷겠다는 놈! 좌우지간 여러 놈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은 놈이 하나 있었다.
금강철두신공이란 기가 막힌 무공을 지닌 놈이었는데 생각하는 게 딱 열 살, 그것도 굼뜬 열 살 정도의 머리를 지닌 놈이었다. 강호에선 철신마라 불렸단다.
몸 하나는 단단해도 엄청 단단해 어지간한 절정고수들도 어쩔 수 없는 놈이었지. 검으로 찔러도 검이 부러지고 암기를 맞아도 튕겨나가는데 어쩔 거냐. 흐흐.
글쎄 그놈이 객점에서 건방지게 내 요리를 허락 없이 먹기에 이 혈사부가 가만히 있었겠냐! 인생 잘 살란 마음으로 당연히 징계했지. 제 놈이 아무리 몸이 단단해도 물론 내 앞에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지. 개 패듯 두들겨 패니 기절하더구나.
깨워서 물어보니 본시 그 무공이 익히면 익힐수록 머리가 나빠진다고 하더라. 거참, 아무리 무공이 좋다지만 바보가 되는 무공이 있다니 어이가 없어 눈물나게 웃었다.
인생이 불쌍해서 한 열 대 더 두들겨 패고 보냈단다.
혹시 강호에 나가 그놈이나 그놈 제자를 만나거든 같은 곳을 열 번 이상 두들겨 패면 고통을 느끼니 참고해라. 그렇다고 마구 패서 죽이진 말아라. 알고 보면 그 문파도 가엽지 않냐?
세상에 원! 돌대가리를 만드는 문파라니. 쯧쯧.>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이 터져나왔다. 가만히 거한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넌지시 약을 올렸다.
"어이, 거한 양반! 내가 듣기론 그 문파는 돌대가리 양산하는 문파라던데, 맞냐?"
"나 돌대가리 아냐! 내 이름은 탁천웅이야!"
버럭 소리치는 탁천웅에게 소천악은 마치 아기 약올리듯 말했다.
"그래요, 그래. 탁천웅 돌대가리 님!"
"자꾸 그러면 세게 때릴 거야!"
약이 바짝 오른 탁천웅이 솥뚜껑만 한 주먹을 추켜올렸다. 바보 같은 말과는 달리 권에서 아지랑이 같은 권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예사 성취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여태껏 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린 게 아니라는 듯 풍겨 나오는 기세도 초절정고수 초입의 기세임이 분명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이미 초절정고수를 몇 번 상대해 본 소천악은 바로 탁천웅의 경지를 짐작했다.
달라이라마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고 혈교에서 나온 고수보다야 강한 무공수준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공수준을 판단하자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감을 잡은 소천악이 탁천웅의 약을 더 올렸다.
"돌대가리 님! 어서 오시구려."
"에잇! 내가 돌대가리라고 부르지 말랬지?"
"응? 그럼 뭐로 불러야 하시나? 아, 천치 님! 이 표현도 있구나."
"으아아아!"
격노한 탁천웅이 발악처럼 소리치며 비호처럼 몸을 날려 거리를 좁혀왔다. 거구의 몸이라 믿기 어려운 경쾌한 몸놀림이었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혀온 그의 주먹이 소천악의 면상으로 커다랗게 확대돼 왔다.
"쯧쯧! 그 굼벵이 같은 권에 맞기를 기대한 건 아니지요?"
슬쩍 좌측으로 발을 놀려 미끄러지듯 피한 후 약을 올리는 소천악이다. 허공에 공허하게 주먹을 휘두른 꼴이 된 탁천웅은 얼굴이 붉게 타오르며 버럭 소리쳤다.
"이 미꾸라지야! 죽어랏!"
쌍장을 교차하며 사방을 제압하며 덤벼오는 탁천웅의 손속은 일견 피하기 어려운 가공할 공세였다. 바라보던 주왕채의 녹림도들이 놀라 경악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