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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14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14화

 

  귀찮다는 듯 말을 사정없이 자르는 소천악을 바라본 그는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정신 빠진 놈을 보았나! 우리 채주님이 지나가던 강아지 새끼가 부르면 냉큼 온다고 믿냐?"

 

  "안 오면 오게 하면 되오이다. 어떻게 하면 오시겠소?"

 

  "이런 죽일 놈이!"

 

  노화가 치민 그가 손에 든 검을 당장에라도 뽑을 듯 살기등등하게 말했다. 가만히 듣던 소천악이 조용히 경고조로 한마디를 던졌다.

 

  "욕을 참는 것도 한계가 있소이다. 제가 세상에 태어난 게 욕 처먹으려고 온 게 아니외다. 그 거치신 주둥이 님 간수 잘 하시구려. 여차하면 다시는 놀리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지는 수가 있소이다."

 

  "이런 황당한 놈을 봤나? 감히 적벽채 부채주인 나를 위협해!"

 

  "경고를 어겼으니 이제 보답을 받아야겠구려."

 

  차갑게 뇌까린 소천악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 바라본 적벽채 부채주 곡무영(曲武英)은 손에 든 검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하룻강아지 같은 놈! 네놈을 단칼에 두 동강이 내고 돌아가 못다 한 단잠이나 이뤄야겠다."

 

  둘의 신경전을 바라보던 종천리가 질겁했다. 소천악의 성격으로 볼 때 앞뒤 가리지 않고 저 곡무영을 요절낼 건 불 보듯 뻔했다. 이후 일을 생각하니 절로 다급해져 버럭 소리쳤다.

 

  "소천악 대협! 손에 인정을 베푸시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종천리를 흘낏 바라본 소천악이 대번에 짜증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종 막주님! 좀 가만히 계십시오. 저분이 북망산 길로 가고 싶다는 데 왜 자꾸 말리시고 그러십니까?"

 

  이미 좌중을 압도할 만한 살기를 줄줄 풍겨내는 소천악의 전신에는 폭발적인 기운이 용솟음쳤다. 사실 욕을 연달아 얻어먹고 참아낼 만한 인내력을 기른 그가 아니었다. 말끝마다 놈 자를 듣다 보니 불쾌감이 하늘까지 뻗쳐올랐다.

 

  "헉, 소천악 대협! 검사권생!"

 

  곡무영 부채주는 심장이 덜컥거리는 충격에 빠져들었다. 중원천지에 떠들썩하게 울려퍼진 신의괴협의 명성을 그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천축의 수많은 고수들을 무릎 아래 꿇리고 당당하게 귀환한 소천악의 위명은 본인의 상상보다 훨씬 컸다.

 

  말로만 듣던 포탈랍궁과 아수라마궁을 휘하에 넣고 천축을 휘저은 그의 명성은 감히 일개 녹림의 부채주가 감당할 처지가 아니었다.

 

  "자, 어서 오시구려. 북망산이 멀다 하나 주둥이 님 한 번 잘못 놀리면 지척임을 보여드리리다."

 

  충격에 빠진 곡무영에게 들려오는 소천악의 싸늘한 음성은 공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아차 하면 자신의 생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전신이 오한 들린 자처럼 벌벌 떨려왔다.

 

  옆을 돌아보니 부하들도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채 얼른 손에 든 검과 도를 감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무리 무식한 산적들도 검을 든 자를 죄다 쳐 죽이는 그 악명을 모른다는 게 이상했다. 매섭게 산적들을 노려보던 소천악이 온 산이 무너질 듯 소리쳤다.

 

  "긴 말씀 안 드리겠소이다. 셋 셀 동안 무기를 들고 계신 분은 이 세상이 싫다고 단정하고 바로 떠나게 해드리지요. 하나, 둘."

 

  소리에 놀라고 그 말뜻에 놀란 산적들이 둘을 헤아리는 소천악을 보며 번개같이 무기를 땅에 버렸다.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빈손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협! 무기 없소이다."

 

  살살 눈치를 살피던 곡무영이 말하자 만족스런 미소가 입가에 감돈 소천악이 부드럽게 말했다.

 

  "보시오! 이 얼마나 좋소이까? 무기를 버리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까짓것 남자끼리 안 되는 말이 어디 있겠소이까?"

 

  "맞소이다, 대협! 역시 남자란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야지요. 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곡무영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산채로 갑시다. 가서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입장을 절충해야지요."

 

  "물론이오이다. 자, 이리로 오시지요."

 

  곡무영은 두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안내에 여념이 없었고 부하들은 이미 흔적 없이 사라져 산채 쪽으로 걸음아 나 살려라 식으로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그는 자기 옆에 한 명도 없는 수하들을 보며 내심 이를 갈았으나 복수도 살아야 하는 것이기에 소천악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반 시진을 걸어 올라가야 비로소 넓은 분지에 자리한 적벽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참, 멀리도 사시는구려. 이리 멀면 일하기도 불편하시겠소이다."

 

  "하하! 나도 귀찮게 구는 놈들이 많아서 아예 방어하기 좋은 곳에 짓다 보니 이 꼴입니다."

 

  "그러게요. 막상 보니 산적도 해먹기 힘든 직업이군요."

 

  "말도 마십시오. 이거 편한 거 아닙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털어먹기만 하는 편한 직업 같아도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소천악이 긍정하자 신이 난 곡무영이 열변을 토했다.

 

  "무슨 신경을 써야 하는 거요?"

 

  "지나간다고 무작정 털기만 하면 안 되지요. 재수 없으면 절정고수를 건드리다 골로 갈 수도 있고 명문세가의 식솔들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하루아침에 산채에 횡액이 들이닥칠 수도 있지요."

 

  "흐음! 그러고 보니 세상에 편하게 벌어먹고 살 일이 별로 없군요."

 

  "그렇지요. 속 모르는 놈들이 산채 일이 편하다고 하는데 빌어먹을 소리입니다. 눈치도 빨라야 하고 형세판단이 정확해야 오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고생이 많으시군요."

 

  진심으로 말하는 소천악의 마음이 느껴지는 짤막한 말에 곡무영는 여태껏 내심 품어왔던 적개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저자는 소문 그대로 자신의 주관대로 판단하여 행동한다는 현실을 깨닫자 위선적인 정파인과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의 마음은 바로 행동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건성으로 예의를 갖춰 안내하던 모습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인도했다.

 

  이미 바라본 산채 앞에는 적벽채의 모든 정예가 무기를 꼬나들고 자못 긴장된 낯빛으로 쏘아보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조급해진 곡무영은 얼른 크게 소리쳤다. 아차 하면 오늘이 적벽채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담긴 음성이다.

 

  "채주님! 여기 단신으로 천축의 포탈랍궁과 소뢰음사를 뭉개신 신의괴협 소천악 대협이십니다. 싸우러 오신 게 아니니 어서 무기를 거두시고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교묘한 언변이다.

 

  포탈랍궁을 뭉갠 최절정고수가 왔는데 감히 무기를 들고 버텨봐야 씨몰살이라는 뜻이 은연중에 배어나왔다.

 

  적벽채 채주인 관취(冠聚)는 얼른 곡무영의 말에 숨어 있는 뜻을 알아냈다. 사실 그도 당금무림을 위진시키는 소천악과 정면 대결하고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마음은 바로 행동으로 나타났다.

 

  "모두 무기를 거두어라. 아직 적인지 우군인지 판단이 안 되니 일단은 이야기를 해본다."

 

  "존명!"

 

  과연 녹림삼십육채에 속하는 대산채답게 규율이 꽉 잡힌 모습으로 산채원들이 일제히 외치며 검과 도를 집어넣었다.

 

  무심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음! 피보라는 안 뿌려도 될 듯하네."

 

  바로 옆에 있던 곡무영이 그 말을 못 들을 리가 없었다. 말을 다 들은 그는 잠시 전신이 떨려오는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저자는 수틀리면 적벽채를 지울 속셈이었다는 걸 깨닫자 더욱 경각심이 일었다.

 

  아무리 강호의 소문이 과장되었다 하지만 저자에 대한 풍문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단신으로 적벽채를 찾아올 때는 다 그만한 자신감이 있어서란 추측이 들자 더욱 행동이 어려워졌다.

 

  "대협!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소이다. 이거 좋게 끝나야 할 텐데."

 

  말마다 가시를 잔뜩 품어내는 소천악의 말에 곡무영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얼른 관취 채주와 함께 채주실에 들어섰다.

 

  적벽채의 채주인 관취는 녹림삼십육채의 고수답게 위풍당당한 기세를 풍겨내는 자였다. 일류를 넘어선 지는 한참이고 절정을 엿보는 단계였다. 그는 처음부터 내공을 실은 눈빛으로 소천악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눈빛 하나로 모든 수하들을 제압했던 전력답게 위맹한 안광이 섬뜩하게 소천악에게 다가섰다. 채주로서 기세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탓이다.

 

  가만히 눈빛을 받아내던 소천악이 마음을 정하고 가볍게 말했다.

 

  "채주님! 거 좋게 말할 때 잡아먹을 듯한 눈빛 치우시죠. 감정 상하면 좋게 가려던 일도 피바다로 변한답니다."

 

  시비조의 말을 뿜어내자 당연히 관취 채주의 안색이 시뻘게지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말조심해라. 네가 아무리 절정고수라 해도 지금은 단신일 터, 감히 녹림을 무시하느냐?"

 

  "마지막 경고요. 말조심하심이 신상에 좋을 겁니다."

 

  "이런 발칙한 놈이!"

 

  사나이 자존심이 흙에 파묻힌 관 채주의 손이 금방이라도 출수할 듯이 들썩이며 살기를 가득 풍겨냈다.

 

  소천악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몸을 날렸다. 이미 강호경험이 노련해진 그의 신법은 섬전같이 움직이나 싶더니만 어느새 관취 채주의 코앞으로 폭사됐다. 질겁한 관취가 급히 보법을 전개하여 우측으로 이 장여 스르르 미끄러지며 피하려 했다. 하나 이미 관 채주의 발을 보고 방향을 판단한 소천악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이내 신형을 따라잡힌 관취 채주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쌍장을 휘둘러 작은 반원을 그리며 다가서는 소천악의 전신혈도를 노렸다.

 

  "네 이놈! 녹림호걸의 위상을 보여주리라."

 

  "아주 웃기는 양반이시네요."

 

  차가운 비웃음과 함께 소천악의 쌍수는 분혼마권을 전개했다. 바람개비가 돌듯 정신없이 회오리치며 관취의 장법을 일순간에 무력화시키며 바로 가슴을 강타했다. 막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그의 가슴에 십여 차례 격중된 소천악의 권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위력적인 고통을 선사했다.

 

  주변에서 보면 마치 동네북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소년의 손길처럼 소천악의 권법은 한 치의 어김없이 관취의 전신을 격타했다.

 

  "커흑! 이런 말도 안 되는 무공이!"

 

  참다못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며 고통을 호소하는 관 채주의 다급한 발걸음이 나왔다. 하나 이미 분기가 솟은 소천악은 일말의 여지도 없이 연속해 그의 몸을 두들겨 팼다.

 

  한 번 맞을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극통이 몰려오며 정신 차리기 힘든 관취는 이미 저항의지를 상실한 채 때리면 때리는 대로 얻어터질 뿐이었다.

 

  마침내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채 흐느적거리며 축 늘어진 관 채주였다. 놀라운 건 소천악의 왼손이 쓰러지려는 관취의 어깨를 부여잡고 오른손으로 얼굴이고 가슴이고 가리지 않고 구타한다는 일이다.

 

  짚단 세우고 두들겨 패듯 마음껏 구타하는 소천악의 손길이 멎은 건 일각이 훨씬 지난 후였다. 왼손을 놓자 관 채주는 낙지처럼 흐물거리며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바로 땅에 쓰러졌다.

 

  쓰러진 관 채주의 옆구리를 발로 사정없이 걷어차자 퍽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떴다 이 장여 날아가 떨어졌다. 이미 그의 몸은 찐빵처럼 부풀어 올라 마누라가 온다 해도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소천악의 입이 스산하게 열렸다.

 

  "꼭 보면 얻어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분들이 많아요. 검이라도 뽑았으면 바로 저승행인데 오늘 운수대통한 줄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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