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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49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49화

 

  소천악의 무공에 대한 경외심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온가상단이라는 거대상단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안도케 했다. 사실 막연히 검을 휘두른다고 밥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든든한 재력이 받쳐주지 않는 한 방파 무사들도 결국 고생문이 훤한 게 세상사의 이치였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있었던 낭인무사와 홀로 천하를 독행하던 많은 무인들도 더불어 찾아왔다.

 

  그들 중 강호정세가 요동을 치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거대한 방파에 몸을 담으려는 속셈이 있었다.

 

  눈치를 보며 찾아온 유랑무사들의 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갔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은 옆에 서 있던 심자앙에게 말했다.

 

  "심 군사님, 이거 상상외로 많이 커질 거 같은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이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예측했었습니까?"

 

  "그럼요, 이 정도 움직임이라면 예상보다는 조금 크지마는 별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아! 뭐 골치 아픈 일은 심 군사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걱정 마시고 믿어주세요."

 

  "그러죠."

 

  소천악은 별 걱정 없이 심자앙에게 모든 걸 맡겼다. 심자앙은 그날부터 잠잘 틈도 없이 방파의 기초를 다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먼저 온가상단의 온유상 대인과 협의에 들어갔다.

 

  "온 대인님."

 

  "말씀하시죠, 심 군사님."

 

  "일단 은자가 많이 필요할 듯싶습니다만……."

 

  "필요한 액수를 말씀만 하십시오. 서역과의 교역으로 저희 상단에는 은자가 차고 넘치니 별문제 없이 조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 생각하시니 제가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겠습니다. 허허!"

 

  "이번 일만 잘 지나간다면 우리 온가상단은 폭풍문의 힘을 빌어 다시 한 번 크나큰 발판을 마련하는데 이 정도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온 대인님은 큰 거상임이 분명하군요. 허허허."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하는 듯 껄껄 웃으며 협상을 아주 손쉽게 마무리 지었다.

 

  다음 날이 되자 심자앙은 문파명으로 정해진 폭풍문을 정립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먼저 사존맹과 집마부의 고수들을 서로 분리시켜 교주 바로 다음 순위인 이 개 각을 만들었다.

 

  명칭도 익숙하게 사존각 그리고 집마각으로 만들어 새로운 문파에서 적응하기 쉽도록 치밀하게 안배했다. 사존맹에서 온 뇌가이 수석장로를 각주로 한 사존각과 집마부에서 온 총순찰 왕처기를 집마각 각주로 임명하여 조직을 정비케 하였다.

 

  강력한 무력을 지닌 그들로 하여금 문파의 대표적인 무림집단을 만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몰려오는 무인들은 많았지만 재력이 받쳐주는 한 별문제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합류하는 사존맹과 집마부의 고수들은 늘어나 어느덧 일류고수만 하더라도 천오백 명을 헤아렸다.

 

  이미 조직에 몸을 담았던 이들이라 폭풍문 적응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소속이 바뀌었을 뿐 조직에 속한 얼굴은 낯익은 얼굴이라 오히려 단합은 더 잘되는 형편이었다.

 

  그 외에 일반무사와 혈살막 그리고 평소에 친분이 좋던 여러 가지 방파들을 묶어서 삼 개 당을 만들었다.

 

  종천리를 배려하는 측면에서 그를 총당주로 임명한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졌다. 비록 무공실력으로는 어려웠지만 소천악과 동고동락한 걸 아는 무인들이 별다른 반발을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문주와 친분이 두터운 이가 총당주로 있다는 건 불리할 게 전혀 없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 외의 인선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심자앙 군사가 관여했고 소천악은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게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사심 없이 움직인 심자앙의 놀라운 조직정비와 용병술로 하루가 다르게 폭풍문은 변화해 갔다. 어느 개인에게 편중되지 않고 공명정대한 인사에 폭풍문의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깊은 밤.

 

  소천악과 심자앙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주님, 이제 문을 다스리는 문규를 정해 발표해야 합니다."

 

  "그래야지요. 다 심자앙 군사님이 알아서 하시고 딱 한 가지만 제 뜻을 따라주시지요."

 

  "그게 뭔가요?"

 

  묻는 심자앙에게 소천악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당연히 심자앙의 격렬한 반대가 뒤따랐지만 전혀 뜻을 굽히지 않는 소천악의 고집에 결국 두 손을 든 심자앙이다. 밤새워 만든 문규는 서찰로 모든 문도들에게 전해졌고 별다른 제약을 많이 담지 않은 탓에 대부분 수긍했다.

 

  문규는 여러 가지를 담았으나 소천악의 의지를 보여준 한 규칙이 압권이었다.

 

 

 

  <우리 폭풍문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

 

 

 

  단 한 구절이지만 소천악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구절이었다. 몰려온 문도들은 패기만만한 문규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간단한 구절이지만 강호제일문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그 문규를 정한 소천악의 마음은 전혀 왜곡된 처지였다.

 

  사실 강호의 은원에 휩쓸리기가 귀찮아서 심자앙 군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넣은 구절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뜻이 강호제일문을 추구한다는 오해를 받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소천악이다.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기가 막혀 말했다.

 

  "이거 잘하면 내가 무림 사마외도의 맹주가 되겠소이다."

 

  "이미 되었지요."

 

  느긋하게 대답하는 심자앙을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소천악이 투덜거렸다.

 

  "제길! 어쩌다 이리되었는지. 이게 다 저 쳐 죽일 혈교 놈들 때문 아니오?"

 

  "맞습니다. 이제 문주님은 혈교의 마수에서 중원을 구할 구성이 되는 거지요."

 

  "무슨 놈의 무림 구성이 사파에서 나온답니까?"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는 거지요. 망치로 집을 지으나 도끼로 지으나 집만 지으면 됩니다. 아, 구성이 꼭 정파에서 나오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가요?"

 

  "그럼요. 후세인들은 당연히 문주님을 무림의 구성으로 평가하며 존경을 보낼 겁니다."

 

  "존경이라. 사실 그런 거 필요 없는데. 천하제일미녀나 하나 주지."

 

  "허허. 도대체 문주님은 언제나 그 타령에서 벗어나실지."

 

  어이없는 소천악의 말에 심자앙은 헛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인간은 설명이 불가해한 골치 아픈 인물이란 마음만 들었다.

 

  "일단 골치 아픈 일은 심 군사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어차피 군사님이 주도하신 거니 끝까지 책임지시길 바랍니다."

 

  완전히 책임회피적인 말을 던져놓고 휭하니 어디론가 사라진 소천악이다.

 

  "아니, 문주님. 결정하실 게 태산입니다."

 

  "알아서 하세요. 지금은 심 군사님이 대리문주 하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천악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을 짓는 심자앙이었다. 저 배포가 맘에 들어 온 길이었다. 심자앙과 종천리는 이미 마음속에서 소천악을 제쳐놓고 문파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폭풍문은 시작부터 기존의 명문대파와는 달리 중원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광동성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영구적인 거처가 아닌 임시거처였다. 가급적 혈교와 멀리 떨어져 충돌을 회피하려는 심자앙의 심산이었다.

 

  괜히 혈교 가까이 움직여 쓸데없는 싸움으로 전력이 약해지면 정파에게 어부지리를 준다는 우려가 생길 염려가 있었다. 멀리서 움직이는 탓에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서 급격히 세력을 키울수 있었다.

 

 

 

  막북의 깊은 산인 봉래산.

 

  자욱한 안개로 덮인 산을 깊숙이 들어서니 어느 순간 안개가 활짝 개며 주변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도무지 사람이라곤 살 것 같지 않던 깊은 산골짜기에 어엿한 전각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당혹감에 물들 지경이었다.

 

  혈교!

 

  그랬다. 여기가 바로 천하를 겁난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혈교의 총단이었다.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며 숨어든 혈교의 치밀함은 이토록 깊은 산골짜기에 은밀하게 꿈틀대고 있다는 걸 아직 강호에서는 몰랐다.

 

  폭풍문의 행보가 혈교의 정보망에 안 걸려들 리가 없었다. 개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소식을 들은 구백천 혈교주가 긴급 수뇌부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목적은 폭풍문에 대한 처리 문제였다. 구백천이 조용히 첫마디를 꺼냈다.

 

  "이제 정파연합은 우리의 적수가 아니다. 우리의 적수는 폭풍문 그자들이다. 이미 우리가 해치워 버린 사존맹과 집마부 그리고 수많은 사도 모임들이 속속 폭풍문으로 모이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그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너무도 광범위한 얘기에 참석한 혈교 수뇌부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사실 무림인이었지 지략가들은 아니었다. 검 들고 싸우라면 우르르 몰려가겠지만 이런 일에는 영 젬병인 자들이었다.

 

  모두 묵묵히 가만히 있자 빙긋 미소를 지은 구백천 혈교주는 조용히 시립해 있던 곡무릉 군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군사가 말씀해 주셔야 하겠소. 말해 보시오."

 

  "예, 교주님. 지금으로서는 폭풍문을 당장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바로 옆에 있다면 우리 혈교의 전력으로 두 군데로 나누어서 그들을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너무도 멀리 있습니다. 그들을 치러 간다는 것은 보급 문제의 어려움 등으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언가?"

 

  "일단은 정파 무림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다시 힘을 모아 폭풍문과 마지막 일전을 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폭풍문이 가만히 있겠나?"

 

  무뚝뚝한 구백천의 반문에 곡무릉 군사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는 정사는 서로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입니다. 정파 무림이 당한다면 차라리 사파 무림인들은 기뻐할 뿐이지 그들은 도우려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도 그것을 노리고 미리 사파를 공격한 것입니다. 제 예상대로 사파 무림을 공격할 때 정파 무림인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그건 훌륭한 판단이었어."

 

  구백천의 칭찬에 잔뜩 고무된 곡무릉 군사가 힘차게 말을 이었다.

 

  "그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파 무림인들이 정파 무림인이 어렵다고 도와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군. 그럼 우선 정파 무림을 습격하는 게 급선무겠네."

 

  "물론입니다. 정파 무림을 최소의 피해로 항복시키고 사파 무림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파 무림인이 보통 끈질겨야 말이지?"

 

  걱정 어린 구백천의 말에 곡무릉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계략들이 스치고 지나가고 하나씩 하나씩 머리에 정립되어 나갔다.

 

  천하를 움직이는 대업에 있어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모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결정했던 사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며 혹시 잘못된 것이 있는지 검토해 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의 계책대로 한다면 별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정파 무림인들의 약점은 아무래도 자신의 본거지에 있습니다. 본거지를 위협당하는 경우 그들은 급속히 사기를 잃고 항복할 공산이 큽니다. 소림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림사를 불태우거나 어린 사미승들이 죽음의 위험에 처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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