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4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48화
"그럼 이제 바로 광동성으로 가시는 겁니까?"
"네, 시간이 얼마 없어 즉시 출발할 예정입니다."
"음, 그럼 우리도 함께 가면 안 되겠소이까? 우리가 다른 건 없어도 은자는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오."
"아니 왜 피땀 흘려 번 은자를 주시려 합니까?"
"허허, 이번 일을 겪어보니 은자만 있다는 건 정말 목숨이 위험한 일이란 걸 느꼈소이다. 아무래도 비빌 언덕이 필요한 듯하오."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는 유염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천악이 승낙했다.
"그러시지요. 앞으로는 난세이니 아무래도 보호가 필요할 겁니다."
"고맙소이다. 이미 대부분의 재산은 전표로 바꿔놓았으니 바로 출발하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오.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총관이 알아서 해결하고 따라오도록 조치하지요."
"편한 대로 하시지요. 자,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지요."
번개치듯 유가장의 이주는 결정되고 신혼의 단꿈에 잠겨 있던 탁천웅은 입이 십 리는 나와 투덜거렸다.
"좌우간 동생 잘되는 꼴을 못 봐요."
"이 자식이 말이라고 함부로 하네. 야, 너 결혼시켜 준 게 누구야?"
"결혼만 시켜주면 뭐 해요. 이건 툭하면 방해만 하니."
"여기까지 하자. 더 하다간 또 주먹이 날아갈 거 같으니까."
"헉! 알았어요."
소천악의 다분히 폭력적인 성향을 알고 있는 탁천웅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고 유옥여를 재촉해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유가장의 모든 식솔들이 일제히 움직이자 수십여 명이 북새통을 이루며 밤새 소란을 피웠다.
서두른 탓에 이튿날 아침이 되자 급한 대로 짐을 꾸린 유염독과 식솔들이 마차를 타고 서둘러 광동성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일반인들과 동행하니 아무래도 더욱더 길이 멀어 보였다. 하지만 감히 행렬을 막아서는 산적이나 도적들은 한 명도 없었다.
나름대로 정보망을 가진 산적떼는 산길에 소천악이 보여도 아예 멀리 피하며 얼굴 마주치기를 회피했다. 이미 산채 여러 개를 쑥밭으로 만든 전력이 중원 내 모든 산채마다 퍼질 대로 퍼졌다.
미친 산적이 아니고서야 감히 앞을 가로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소천악은 가는 길이 심심하자 탁천웅에게 물었다.
"천웅아, 요새 산적들이 멸종된 거야?"
"그러게요. 저도 손이 근질근질한데 한 놈도 안 보이네요."
"거참, 분명히 이 산에는 산채가 있다던데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냐?"
투덜거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유염독은 기가 막혀 아예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함께 이야기하다가는 자신마저 이상해질 지경이다.
사실 산적들은 있었다. 다만 산채 주위에 모두 숨어 정찰하는 이의 보고만 들었다. 그저 소천악이 아무 일 없이 산길을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오죽하면 산길에 놓인 돌덩이들을 밤새 산적들이 진땀을 흘려가며 치웠겠는가!
그렇게 아무런 변고 없이 순탄하게 여정은 지속됐다.
마침내 광동성에 도착하자 소천악은 성문 앞에 일찌감치 마중 나와 있던 낯익은 얼굴들을 보고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으하하. 이거 심 책사님 아니시오. 저기는 종천리 막주님이시네."
"허허, 반갑습니다. 이렇게 불러주니 영광이기도 하고요."
심자앙의 웃음 띤 목소리에 소천악은 포근한 미소로 답했다.
"원, 별말씀을."
"이미 온 대인이 장원 하나를 사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가시죠."
"벌써 준비가 끝난 모양입니다."
놀란 소천악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일행은 서둘러 미리 준비한 장원으로 향했다. 거금을 들여 산 장원답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장원은 각종 전각이 무려 십여 채에 이르고 숙소로 쓸 만한 건물이 무수히 많았다.
정문에 다가서자 어느새 연락을 받은 온유상 대인 등 정든 얼굴들이 보이자 소천악이 슬쩍 농담을 던졌다.
"역시 은자가 좋긴 하군요. 이런 일을 바로바로 처리하는 걸 보니."
"허허. 이게 다 소 대협이 베푼 은혜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결과 아닙니까?"
온화한 미소를 짓는 온유상을 보는 소천악의 눈빛도 오래간만에 선해 보였다. 화기애애한 만남을 뒤로하고 소천악을 중심으로 한 회의석상에 모두 모여 앉았다. 제일 먼저 말문을 튼 건 역시 심자앙이었다.
"소 대협, 며칠 전에 사존맹과 집마부가 혈교와 붙었다가 아주 요절이 났답니다."
"허, 그 거대한 문파가 어쩌다가?"
"혈교의 선봉대의 기세가 엄청났답니다. 무려 천여 명의 일류고수로만 이뤄진 데다가 초절정고수가 휘저으니 제아무리 사마도의 거파라도 견딜 재간이 없었지요."
"사존맹이나 집마부에는 초절정고수가 없나요?"
"있기야 있지만 혈교 초절정고수의 수준이 훨씬 높아 대부분 까마귀밥이 됐다고 합니다. 초절정고수들이 무너진 사존맹이나 집마부의 운명은 너무도 뻔했지요."
"큰일은 큰일이군요."
슬쩍 고민에 빠지는 소천악을 보며 이제 기회가 온 걸 느낀 심자앙이 넌지시 말했다.
"소 대협! 이제 우리도 자구책으로 문파를 만들어야 합니다."
"뭐로 만듭니까? 우리가 세력이 있습니까? 있는 거라곤 달랑 몇 분뿐인데."
자조적인 말에 심자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협의 위명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미 사존맹이 풍비박산 나 고수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집마부도 위태하니 그들에게 대협이 문파를 만들었다는 말 한마디만 들려주면 바로 몰려올 겁니다."
"골치 아프게 하시네. 문파에 대해선 알아서 하세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비로소 회심의 미소를 보이는 종천리 막주와 심자앙 군사였다. 드디어 기나긴 기다림이 끝나고 대문파를 만들 기회가 찾아온 기쁨에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그럼 이제 바로 문파를 창립할 작업을 시행하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시지요."
소천악의 허락이 떨어지자 번개같이 심자앙과 종천리 두 사람이 움직였다. 그들은 거대문파를 개파한다는 데 가슴이 터질 듯한 희열을 느꼈다. 한 사람은 때를 못 만나 초야에 묻혀 지냈고 다른 이는 강호의 변방에서 어슬렁거리다 마침내 기회를 잡은 느낌이었다.
시절이 딱 맞았다.
이미 사존맹이 멸문당해 사파는 구심점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었고 집마부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소속 지부들이 엄청난 기세로 무너지고 있어 휘하 고수들이 의심에 찬 눈초리로 집마부를 바라봤다.
이런 사실을 꿰뚫고 있는 심자앙 군사였다. 그는 신속하게 며칠 전에 이미 광동성으로 총단을 옮긴 하오문의 조난향 문주를 불러 둘만의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
"조 문주, 이제 우리도 기회가 온 거 같소이다."
"무슨 소리죠?"
"소 대협이 마침내 고집을 꺾고 문파를 개파하기로 했소이다. 하오문이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새로 생기는 문파는 혈교와 자웅을 겨루는 막강한 세력을 만들 수 있소이다."
"아, 드디어 소 대협이 허락하신 건가요?"
눈빛을 반짝이며 되묻는 조난향의 내심을 짐작한 듯 심자앙이 은근히 유혹했다.
"맞소이다. 그래서 조 문주에게 부탁 하나 드리겠소이다. 소 대협이 혈교와 싸울 준비를 마치고 문파를 개파하니 많은 협조를 바란다는 소문을 강호에 퍼뜨려주시오."
"그래서 우리 하오문에 무슨 이익이 있다는 거죠?"
역시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 문주답게 조난향은 실리를 챙기려는 속셈을 여실히 드러냈다. 심자앙은 당연하다는 듯 그 마음을 읽었다.
"당연히 있죠. 새로 생기는 문파는 하오문과 동맹관계로 남을 것이오. 그리된다면 여태껏 무력의 약함을 빙자한 여러 세력의 횡포에서 하오문이 벗어나는 건 순식간이오. 우리가 모든 위협으로부터 하오문을 보호해 주겠소."
당당한 심자앙의 말투에 조난향이 흔들렸다. 너무도 달콤한 유혹의 손길이 뻗어오는 걸 느꼈다. 물론 전혀 해가 없는 유혹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당연히 조난향의 대답은 정해지다시피 했다.
"좋아요. 그런 조건이라면 승낙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하오문은 전력으로 소 대협이 문파를 만드는 걸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리지요. 대신 심 군사님이 하신 약속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남아일언 중천금!"
딱 한 마디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심자앙을 보며 조난향 하오문주는 미소를 지었다. 백 마디의 감언이설보다 훨씬 신뢰가 가는 말과 표정이었다.
제5-4장 몰려드는 고수들
이후 하오문의 활약은 눈부셨다.
중원 전체를 아우르는 정보망이 효율적으로 가동되자 삽시간에 소천악의 문파 개파 소식은 천하로 퍼졌다.
그 소식에 환호한 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사존맹에서 겨우 살아 나온 무인들이 제일 먼저 반응하며 속속 광동성으로 발걸음을 잡고 모여들었다.
집마부도 혈교와의 접전에서 연속적인 쓰디쓴 참패로 흔들거리는 틈을 타 각 지부가 요동치며 슬슬 광동성으로 눈을 돌렸다.
심지어 아예 지부 전체가 개파에 참여하겠다는 서신을 은밀히 전해오는 경우도 생겨났다.
집마부도 총단이 위태로운 판이라 지부 하나하나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라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는 실정이었다.
그들이 움직인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소천악이 평소 정사지간을 오가며 행했던 행동들이 정파라기보다는 사파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 것이 주효했다. 거기에 온가상단의 사실상의 주인이 그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자금 면에서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일에 움직이는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개파를 향한 발걸음에 더 이상 아무런 장애도 있지 않았다. 이미 모여든 군웅도 상당했다. 사존맹의 잔당이라 하지만 사실상 일류고수 이상인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혈교와의 접전에서 겨우 살아남았다고 하지만 아직은 강호상에서 무시 못 하는 게 집마부와 사존맹 고수들이다. 치열한 접전에서 몸을 빼는 건 일류고수 이상이 아니면 어려운 게 싸움판의 정석이었다. 게다가 장로 등 고위급 인사들마저 속속 합류했다.
이미 사존맹은 맹주 석주명이 죽는 등 완전히 무너졌지만 불타는 복수심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새로 혈교와 대항하려는 소천악의 의지를 알고 찾아왔다. 하루아침에 맹주를 잃고 거처를 잃은 그들의 분노는 상상외로 컸다.
불과 한 달여가 지나자 이미 소천악이 주도한 문파 개파는 단일문파라고 하기엔 너무 방대한 인원이 모였다.
사존맹과 집마부의 잔여 고수만 하더라도 무려 천여 명을 헤아렸다. 물론 그 숫자는 일류고수만을 말한 것으로 일반고수까지 합치면 사천여 명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였다. 사실상 중원의 사마외도가 총집결한 양상이었다. 거기에는 아무래도 소천악의 위명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천축을 평정하고 마교에 갔다가도 무사히 살아 나온 그 가공할 무위를 믿었다. 물론 천년마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평소 알고 있는 천년마교의 생리로 볼 때 무공이 약했으면 살아 온다는 건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게 중론이었다.
몰려오는 군웅은 심자앙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많았다. 사존맹과 집마부의 고수들이 몰려오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겉으로는 복수였지만 내심은 실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