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4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45화
유염독도 그 모습이 이제는 그리 나빠 보이지가 않았다. 거친 세상에서 강한 사위를 얻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뼈 시리게 느꼈다. 거기다 사람이 조금 머리가 모자란 듯해도 자기 딸을 끔찍이 생각하는 게 눈에 보이자 더욱 미더워 보였다.
"허허. 세상의 연분은 역시 하늘이 정해주나 봅니다."
"그렇죠. 이제 장주님이 아니라 사돈어른이라 불러야겠네요."
"허허."
웃는 유염독의 머릿속은 흐뭇함이 차올랐다. 천하의 신의괴협 소천악의 사돈이 된다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인지 모르지 않았다. 이제 감히 유가장원을 노리고 덤벼드는 방파가 있을 리 만무했다.
소천악의 그 괴팍한 성격을 아는 자가 감히 시비를 걸 리가 없었다. 미친 자가 아닌 이상 죽음을 무릅쓸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든든한 방패막 하나를 얻은 기분은 실로 하늘을 노니는 마음이었다.
제5-3장 무공수련과 폭풍문의 개파
그날 이후 소천악과 탁천웅은 거의 칙사 대접을 받으며 유가장의 둘도 없는 귀빈으로 대우받았다. 아무도 그들의 행동을 뭐라 하는 이가 있을 리 없어 탁천웅은 신 낚시법(?)에 심취하며 시간 날 때마다 유옥여와 정분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소천악도 그런 두 남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전과는 달리 유옥여에게 푹 빠져 있는 탁천웅이 귀찮게 굴 일이 없자 마음이 한가로워지기 시작했다.
슬슬 전에 뿌려둔 소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궁금해진 소천악은 유염독에게 미리 말하고 서둘러 장원을 나섰다.
하오문을 찾아가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는 생각이었다. 곧 하오문 운남성(雲南省) 지부에 모습을 보인 소천악을 하오문도 전원이 정중하게 문가에 나와 맞이했다.
전례 없는 환영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소천악이 이내 태연을 되찾고 상천기 지부장과 함께 가장 깊은 밀실에 들어갔다. 역시 성질대로 간단한 인사 후에 급하게 용건을 꺼내는 소천악과의 대화에 들어간 상천기 지부장이었다.
"그래, 강호무림은 요새 어떤가요?"
"어떤 점이 제일 궁금하신지요?"
"거야 당연히 혈검신마에 관한 소문이고 두 번째는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혈교 분들 이야기죠."
"하나씩 설명해 드리지요."
"그러시구려."
"먼저 혈검신마가 무림공적이 된 이유에 대한 모함설이 이미 강호상에 파다하게 퍼져 있습니다. 그 자세한 내막을 담은 책자가 수천 권이 뿌려지자 숨겨진 내막을 뒤늦게 안 강호인들이 의심에 찬 눈길로 제갈세가와 무당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오. 잘못하면 매를 맞아야지요. 그래서요?"
"제갈세가와 무당파가 질겁해 변명을 늘어놓고는 있습니다만 워낙 정보가 확실하게 적혀 있는지라 의혹의 시선을 피하기는 어려운 처지입니다."
"음, 속이 시원하군요."
고소하다는 말에 쓴웃음을 짓던 상천기가 말을 이었다.
"더구나 그 정보의 출처가 개방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생겼지요. 아시다시피 구파일방의 일방인 개방의 정보력은 모든 강호무인들이 다 아는 처지라 정보의 신뢰성이 인정되지요."
"음! 역시 개방이란 말이군요."
"개방에서도 이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어 더욱 그 배후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 책자를 훔친 도둑이 누군지에 대해 정사를 막론하고 추리하느라 의견이 분분한 실정입니다."
"제갈세가나 무당파에서 개방에게 압력을 가할 텐데요."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미 소문은 퍼질 대로 퍼진 데다가 이제 와 개방이 부인하려니 그 신뢰성이 타격을 받지요. 이런 일에 거짓을 말했다가는 앞으로 개방이 말하는 진실에 대해 세인들이 거부감을 가지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으허허~."
통쾌한 듯 가가대소를 터뜨리는 소천악을 바라보며 상천기는 말을 이었다.
"이미 기정사실로 변해가는 추세입니다. 사실 일단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다시 역류시키기는 어렵지요."
"좋아요. 그럼 혈교 분들은 어떤가요?"
"이미 그들의 기세는 무섭습니다. 강북무림을 거의 반 이상 접수한 채 호시탐탐 강북무림의 나머지 반과 강남무림을 노린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아니 강북만 먹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의아한 소천악의 반문에 얼굴을 굳히며 대답하는 상천기였다.
"그게 묘합니다. 혈교 측은 일단 강북을 먹고 보니 걱정하던 정파의 세력이 상상외로 약한 데다가 단합도 어려운 걸 알고 노골적으로 야심을 드러내는 실정입니다."
"음, 그렇군요. 늘 약점을 보이면 금방 먹어치우는 게 강호생리이기는 하죠."
"맞습니다. 게다가 이미 드러난 혈교의 전력만으로도 이백 년 전에 성세를 보인 모습 이상이라는 정보입니다. 거기다 숨겨진 전력이 실로 무서울 거란 소문이 파다합니다."
"음. 당연히 숨겨놓은 비밀 병기가 있겠지요."
"덕분에 정파나 사파 무림도 함부로 앞으로 나서기를 망설이는 거지요. 한마디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딱입니다."
"아니 그럼 두려움 때문에?"
어이없다는 소천악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상천기였다.
"맞소이다. 일단 먼저 나서는 곳은 거의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합니다. 정파가 단합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일개 문파가 혈교의 강대한 세력에 홀로 버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아주 몸조심 강호군요."
"그게 현실입니다. 문제는 소림사가 언제 움직이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런데 소림사가 의외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현재까지는 제아무리 소림사라 해도 홀로 혈교와 부딪치려는 모험은 피하려는 거 같습니다."
"허어.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웃는 소천악이다. 상천기는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백 년 전에 소림사가 앞장서서 혈교와 치열한 혈전을 벌였지요. 결과적으로 혈교가 패퇴하기는 했으나 소림사도 전력의 칠 할이 소멸되어 한동안 거의 봉문 상태로 보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지요."
"음, 이해가 되네요. 두 번은 실수 안 하겠다는 이야기네요."
"맞습니다. 문제는 소림사가 아니면 혈교를 막을 세력이 없다는 데 있지요."
"그거야 자기들 사정이고 하오문은 어떻습니까?"
"그게 묘합니다. 강북무림에서 서서히 정사파의 세력은 철수하는 형국인데 이상하게 우리 하오문에 대해서는 혈교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습니다."
"별일이네요. 그 뻑하면 칼 들고 설치는 분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소천악을 보며 의미 깊은 미소를 짓던 상천기가 대답했다.
"우리가 알아본 바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게 뭐지요?"
"대협 때문입니다."
"나 때문이라고요?"
어안이 벙벙해진 소천악이 놀라 반문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상천기가 말했다.
"그렇소이다. 혈교에서도 대협과 각별한 사이인 하오문을 건드리기는 뭔가 찝찝했답니다."
"허어! 살다 보니 희한하게 얽히는군요."
자신을 혈교가 주목한다는 데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얼굴을 봐서 하오문을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건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려는 혈교의 의지인가 하는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아무래도 무공이 고강하신 소 대협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는 게 영 불안한 모양입니다."
"그분들이 그리 쉽게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시기가 어려우실 텐데 이상하군요."
"현실은 일단 그렇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상천기 지부장을 외면하고 소천악은 머리를 굴렸다. 혈교라면 자신이 본의 아니게 수많은 일을 어그러지게 만든 곳이었다. 자신이 혈교 수뇌부라 하더라도 쉽게 용서하기는 어려울 듯싶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그는 곧 머리가 아파지자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싸울 데가 많은 곳이라 일단 자신을 제쳐놓은 거라 생각하니 속이 후련해졌다.
"뭐, 싸우지 않겠다면 굳이 사서 시비를 걸 필요는 없죠."
매사 편하게 생각하는 버릇대로 소천악은 심드렁하게 넘어갔다.
사실 소천악의 생각은 틀려도 많이 틀렸다. 혈교에서는 소천악과 싸우기가 꺼림칙스러운 게 아니라 일단 정파연합과의 시비를 해소하기 위해 몸에 난 귀찮은 종기 같은 그를 제외시킨 것뿐이었다.
소천악이 마교에서 무사히 살아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혈교의 영주인 파면수라 두수종이 머리를 짚으며 직속 수하인 혈인귀 막광에게 말했다.
"그 새끼 또 나타났다며?"
"네, 각주님. 유감스럽게도 천년마교에서도 해치우지 못한 거 같습니다."
"이거 운이 좋은 거야? 아니면 정말 실력이 빼어난 거야?"
"다른 데라면 몰라도 천년마교는 전통적으로 강자를 존중하는 곳임은 분명합니다. 그놈이 거기서 살아 나왔다면 무공을 인정받았다는 말입니다."
신중한 막광의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말하는 두수종이다.
"골치 아픈 녀석이야. 일단 지켜보면서 관찰하자."
"네. 현재로선 정파놈들과 싸우기에도 바쁜데 공연히 풀을 건드려 독 오른 독사와 적대할 이유가 없을 거 같습니다."
"음. 내 생각도 같아. 일단 두고 보자고."
"그럼 그렇게 알고 조치하지요."
막광은 말이 끝나자 빠르게 사라졌다. 의자에 앉아 있던 두수종이 넌덜머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아주 골치 아픈 녀석이야. 도무지 죽지도 않고."
한숨을 내쉬는 그의 마음처럼 어느새 소천악은 혈교의 두통거리로 둔갑했다. 중원 내에서 암약하는 첩자들 중 상당수가 이미 소천악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사정은 까마득히 모른 채 소천악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그는 강호가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는 걸 느끼자 자꾸만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세력에 밀려 호된 시련이 올 듯하자 서둘러 대비책을 세울 꿍꿍이셈을 품었다.
강호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무공이었다. 사소한 시비가 붙더라도 힘이 없으면 바로 억울함을 당하는 게 세상사이지만 유독 강호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다. 결국 혈교라는 막강한 적을 두게 된 소천악은 그동안 등한시했던 무공을 수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힘이 있어야 큰소리도 통한다는 사부 혈검신마의 말을 가슴에 새긴 채 유가장에 돌아온 소천악은 바로 유염독과 자리를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부탁 몇 가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말씀하시오. 은자라면 얼마든지 드리지요."
"하하, 은자야 저도 쓸 만큼 있습니다. 제 부탁은 유가장원 내에 연공실 하나 있으면 빌려주시고 저 천둥벌거숭이인 제 동생에게 예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만히 소천악을 바라보던 유염독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림인이 연공 수련하는 거야 일상적인 일이라는 데 머리가 미치자 이내 대답했다.
"연공실은 제 조부님이 만든 지하 연공실이 있으니 마음대로 쓰시고 동생 분은 제 여식이 알아서 가르치도록 노력하지요."
"감사합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제 동생 천웅이가 약간 문제가 있으니."
"걱정일랑 마시구려. 알아서 잘 가르치리다. 그리고 연공실은 오늘 정리를 하고 내일쯤 들어가실 수 있게 조치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