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42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42화
희색이 얼굴에 가득한 채 외치는 탁천웅을 본 소천악은 할 말을 잊었다.
"크. 내가 아주 미친다, 미쳐."
골머리를 싸매며 한숨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소천악에게 유옥여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지요?"
"아, 천웅이 저 녀석이 취미생활이 낚시입니다."
"아, 하세요. 제가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고마운 이야기인데 저 녀석 낚시법이 조금 독특해서요."
"괜찮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려 목숨을 걸고 오신 분이신데 어떻게 낚시를 해도 괜찮아요. 마음 편하게 하시라 말씀해 주세요."
환하게 웃는 유옥여의 모습에 소천악은 할 말을 잃었다. 물론 그 소리를 들은 탁천웅이 금세 희색을 보이며 말했다.
"거봐요, 형님. 자, 우리 간만에 낚시 한판 때립시다. 으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떠드는 탁천웅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유옥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유 낭자! 오늘 큰 실수 하신 겁니다. 저 녀석은 낚시를 희한한 방법으로 한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유옥여에게 한숨을 푹 쉬며 대답하는 소천악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이제 바로 보실 겁니다. 탁천웅의 가공할 낚시 실력을."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소천악이다. 영문을 모르는 유옥여가 막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생전 처음 낚시의 진국을 보여주는 탁천웅을 보며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탁천웅은 주변에 장식용으로 놓아둔 어지간한 정자만 한 돌덩이를 뽑아 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끙차!"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용을 쓰는 그의 가공할 신력 앞에 돌덩이는 힘없이 들려 머리 위로 올라갔다.
야아아아얍!
주위가 떠나갈 듯 고함치며 던진 돌덩이는 물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물보라를 하늘 높이 쏘아올렸다. 이내 평화로이 호수에서 노닐던 물고기들이 갑작스런 횡액에 여기저기 기절한 채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으하하! 형님. 어서 모닥불 피우세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호수에 뛰어든 탁천웅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고기를 땅으로 집어 던졌다.
바라보던 유옥여가 이제야 소천악의 말뜻을 알아듣고 어색한 듯 말했다.
"역시 낚시를 사내대장부답게 하시네요."
"뭐 시원시원하게 하는 면이 있기는 하죠."
차마 욕을 하지는 못하며 먼 산을 바라보는 소천악의 궁색한 대답이 한동안 침묵이 감돌게 만들었다. 요란스런 소리에 바로 주변이 어수선해지며 장원 안에 있던 모든 이가 놀라 탁천웅을 바라보는 촌극이 한참 동안 벌어졌다.
골치 아픈 듯 머리에 손을 대고 있던 소천악에게 유옥여가 아버지인 유염독을 모시고 다가섰다. 유염독은 미리 설명을 들은 탓인지 공손한 말투로 첫마디를 꺼냈다.
"반갑습니다. 제가 유가장원을 이끌고 있는 유염독입니다. 소천악 대협의 명성은 익히 소문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원, 과찬의 말씀을!"
"휴… 본 장이 오늘 이런 어려움에 처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시러 오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 사람이 내일을 안다면 그게 사람입니까? 신선이죠. 다 이렇게 사는 거랍니다. 너무 자책하시다 건강 버리시면 큰일입니다."
"휴! 살면서 그리 인색하게 살지 않았는데 막상 이런 일이 닥치니 평소 아는 이들이 모두 외면하더군요."
"자, 이제 저와 동생이 왔으니 아무 걱정 마시고 편하게 마음먹으십시오."
"그게 너무 염치가 없어서……."
"염려 마세요. 그 싸가지 없는 분들을 잘 달래서 보내도록 하지요."
너무도 편하게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유염독은 수심에 찬 얼굴을 거두지 못했다.
"말로 될 상대라면 진작 협상이 가능했지요. 휴, 어렵습니다."
"말이 안 통하면 그저 몽둥이가 약입니다. 그래도 안 되면 개돼지로 보고 바로 해탈시켜 드려야지요."
"헉, 해탈. 혹시 죽이시려는 겁니까?"
"당연하죠. 강호는 어차피 힘이 제일인 세상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옳아도 힘이 없다면 싸가지 없는 분들에게 시달리지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의심스러운 기색을 거두지 않고 말하는 유염독을 무시한 채 소천악이 얼른 말을 돌렸다.
"자, 그건 그렇고 장주님의 귀한 따님을 우리 동생이 마음에 들어 하더군요. 뭐 따님께서도 그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니 우리 그 문제에 대해 심도 깊게 이야기를 나누지요."
"헉, 결혼이요?"
느닷없는 제안에 기겁을 한 유염독이 반문하자 소천악은 태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았다.
"말만 한 남녀가 사귄다면 당연히 결혼이지요. 사실 내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저놈 같은 사윗감도 흔하지 않습니다. 무공 높죠, 인간성 착하죠. 한마디로 최상입니다."
"아니 그런 분이 어떻게?"
안간힘을 쓰며 이야기를 돌리려는 유염독의 잔머리는 결코 소천악 같은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바로 동문서답으로 응수하는 소천악이다.
"그러니까 다 인연이지요. 저 녀석이 따님에게 첫눈에 느낌이 팍 온 모양입니다. 뭐 사랑이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뒹굴다 보면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요?"
"어허, 인륜지대사가 그리 가볍게 이뤄지기는 어렵지요."
간단하게 생각하는 소천악의 말에 일침을 놓는 유염독이다. 당연한 일이다. 천금같이 귀한 딸을 보자마자 달라고 하는 불한당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소천악은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아, 인생 뭐 별거 있습니까? 살다 보면 정들고 정들다 보면 애도 낳고, 그러다 보면 그럭저럭 웃으며 사는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영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거부하는 유염독을 본 소천악이 인상을 확 우그렸다. 그는 바로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정 싫으시면 이만 가보지요. 아니 장주님도 정말 너무하시네. 따님이 싫지 않으시다는데 왜 이리 뻑뻑하게 나오시는 겁니까?"
"……."
침묵을 지키는 유염독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고개를 돌리며 낚시에 여념이 없던 탁천웅에게 버럭 소리쳤다.
"야, 천웅아. 이리 와봐라."
"네, 형님."
모닥불을 피울 나무를 모으던 탁천웅이 번개같이 어느새 옆에 와 섰다.
"결혼이 거부당했다. 가자."
"형님! 이렇게 간단하게 없던 일로 하면 안 된다요."
울상을 지으며 애절하게 바라보는 탁천웅을 무시하며 얼른 재촉하는 소천악이다.
"잔소리 말고 떠날 준비를 하자."
차갑게 말하는 소천악의 스산한 말투에 버럭 소리치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이내 포기하고 힘없이 걸음을 옮기는 탁천웅이다.
바라보던 유염독의 안색이 급변했다.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돌아가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예상했던 그가 아차 하는 마음으로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머리에는 한 가지 기억만이 떠올랐다.
소천악!
마음 흐르는 대로 움직이는 강호의 초절정고수. 아무도 그의 의지를 꺾지 못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뒤늦게 떠오른 기억에 땅을 치는 유염독이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듯했다. 소천악과 탁천웅은 장원 입구를 십여 장 앞둔 상태로 촌각이 지나면 장원에서 나갈 순간이었다.
"소 대협! 잠시만요."
외침 소리가 들리며 유옥여가 급히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뛰어왔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놀란 그녀가 나서고야 말았다. 그녀의 외침에 소천악은 잠시 우뚝 서 그녀를 기다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녀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옆에 다가서자 비로소 입을 여는 소천악이다.
"무슨 일이오?"
냉기가 철철 넘치는 소천악의 말에 잠시 주춤거리던 유옥여가 결심했다는 듯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저, 탁 대협과 혼인하겠어요."
"이미 배 떠났소이다. 원래 신부 아버지가 허락하시지 않는 혼인이란 장차 좋은 결과를 보기가 힘들지요."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는 유옥여의 마음은 조급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와 그를 보낸다는 건 곧 장원의 멸망이나 다름없었다.
다급해진 유옥여가 막 뭐라 하려는 순간 이미 소천악과 그의 손에 잡힌 탁천웅은 시선에서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유옥여가 급히 유염독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아버님, 이렇게 보내시면 어떡해요?"
"휴우, 너무 급작스런 일이라 뭐라……."
유염독의 목소리에 점점 더 힘이 빠져갔다. 겨우 살아날 길이 보이는가 했더니만 휘리릭 가버린 소천악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줄은 몰랐다. 유옥여도 더 이상 유염독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배 떠난 처지에 말해 봐야 별무소용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한편 엉겁결에 끌려가던 탁천웅이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벗어나자마자 손을 뿌리치며 버럭 소리쳤다.
"형님! 이렇게 가면 어떡해요?"
"자식아, 가긴 어딜 가냐. 이게 다 고단위 술책이니라."
"술책이라뇨."
영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는 탁천웅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소천악이 입을 열었다.
"너한테 그 묘안을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삼박사일이니 입 닥치고 지켜만 봐라. 잘되면 이 형님에게 백배사례하고."
"그러다 유옥여 낭자가 죽으면요?"
"죽긴 누가 죽냐! 걱정도 팔자니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믿어요. 만약 잘못되면 형님 죽고 나 죽고입니다."
"아주 공처가 하나 나왔군. 인물 났네, 인물 났어."
가볍게 탁천웅을 타박하는 소천악이다. 잠시 장원에서 한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은밀히 숨어 물끄러미 바라보는 두 형제였다. 느긋한 소천악과는 달리 탁천웅은 조바심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어지럽다. 좀 얌전히 있어라."
"형님! 마음이 불안해요."
"이 자식이 하늘 같은 형님이 말씀하신 것도 못 믿겠다는 거야?"
"그건 아닌데요. 불안해요."
"다 이 형님이 깊은 뜻이 있어서 하는 거니 잠자코 지켜보기나 해라. 설마 내가 아우가 사랑하는 여인이 죽는 걸 지켜보기야 하겠냐?"
"일단 믿어봅니다요."
영 의심스럽다는 듯 소천악을 바라보는 탁천웅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원망 어린 시선을 일부러 모른 척하고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우는 소천악이다.
저녁놀이 붉게 타오르며 세상을 서서히 떠나려는 무렵!
멀리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유가장원을 향해 거리를 좁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허리춤에 검이나 도를 찬 그들의 눈은 시퍼런 안광을 줄기줄기 뿜어냈다. 첫눈에 봐도 절대 호의를 가지고 오는 자들은 절대 아니었다.
유가장원의 정문을 지키던 무인들이 긴장감 속에 옆에 달린 경보줄을 당겼다.
땡! 땡! 땡!
요란한 종소리가 유가장원 내를 소란스럽게 울리자 여기저기서 검을 든 무인들이 서둘러 정문 쪽으로 향했다. 거액을 들여 구해 온 낭인무사들이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일류고수는커녕 이류고수도 드문드문 보이는 형편없는 전력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긴장감 반 두려움 반의 어수선한 표정이 타인의 눈에 바로 느껴질 정도였다.
상대의 강함을 익히 아는 무인들의 내심은 복잡했다. 솔직히 대충 저항하는 척하다 도망갈 꿍심을 품은 이가 대다수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아무리 은자가 좋다 해도 목숨이 걸린 일이란 걸 모르는 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