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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4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40화

 

  "저 버릇 언제나 고쳐지려나. 제길, 저놈이랑 다니면 쫄쫄 굶기 십상이네."

 

  나지막이 투덜거리는 소천악의 귀에 옆 자리에 앉은 무인들의 대화가 솔솔 들려왔다.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세 명의 무인들은 얼핏 봐도 이류나 될까 말까 한 하수들이었지만 강호사를 이야기하는 자세만큼은 절정고수를 뺨쳤다.

 

  기가 막힌 소천악이 그래도 얻을 게 있나 해서 귀를 기울였다.

 

  "이봐, 왜 십여 년 전에 혈검신마 사건 있잖아."

 

  "나도 들었어. 무림공적으로 몰린 게 다 누명이라며?"

 

  "그래, 그 자세한 내막을 담은 책자가 이미 강호에 좌르르 퍼졌다더라."

 

  "내가 그 책을 봤어. 제갈세가가 중심이 되어서 무당파가 앞장을 섰다더군."

 

  "음… 그래,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라."

 

  한 무인이 처음부터 찬찬히 책자 내용을 줄줄이 설명했다. 몇 번을 읽었는지 거의 외우다시피 말하는 그를 보며 앉아 있던 나머지 두 명의 무인들이 심각하게 들었다.

 

  "듣고 보니 혈검신마가 계략에 빠진 거 같은데."

 

  "에이, 설마. 제갈세가와 무당파가 그런 모함을 할 리가."

 

  "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하긴 그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무당파나 제갈세가나 엿되는 건 순식간이네."

 

  "안 그래도 이미 강호상에서는 무당파와 제갈세가를 몰래 욕하는 이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고 하더라."

 

  "낄낄. 맞는 이야기네. 당장 우리만 봐도 씹잖아."

 

  "하긴, 평소 그 자식들이 명문정파네 하며 얼마나 목에 힘을 주고 다녔냐? 이번 기회에 아주 코가 한 자쯤 쑥 빠졌으면 해."

 

  "내 말이 그 말이야."

 

  이야기를 엿듣던 소천악은 회심의 미소를 감추기 힘들었다. 상상외로 하오문이 발빠르게 움직인 티가 여실히 드러났다.

 

  조 문주가 평소 자신을 소 닭 보듯 하는 것과는 달리 청부는 확실히 들어준 것 같아 그녀를 향한 마음이 약간은 온화하게 변해갔다.

 

 

 

  무당파는 난리가 났다.

 

  조용하던 강호에 혈교가 출몰한 것도 큰일인데 자파의 명예를 시궁창에 넣어버릴 소문이 강호무림에 파다하게 퍼진 걸 뒤늦게 알았다.

 

  화가 난 현유자 무당 장문인이 긴급 장로회의를 소집해 모든 장로들이 장문인실에 모여들었다. 장로들을 바라보던 현유자 장문인이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무당파를 능멸하는 소문이 강호에 파다하게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 아시겠죠."

 

  "……."

 

  모여 있던 모든 장로들이 심각한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더욱 답답해진 현유자가 언성을 높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 책자는 개방의 비밀 정보 책자인데 웬 도둑놈이 훔쳐가 이 난리가 벌어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개방에서는 뭐랍니까?"

 

  그제야 현유자의 사제이자 막강한 실세인 현천자가 반문하자 현유자의 대답도 바로 나왔다.

 

  "긍정도 부정도 없이 침묵한다는 반응이야."

 

  "이런 괘씸한! 감히 개방이 우리 무당파를 능멸할 의도가 없는 한 어찌 그럴 수가."

 

  "안 그래도 제가 개방에 연통을 넣어보니 그들이 이리 말하더군."

 

  "뭐라고요?"

 

  "그 책자를 작성한 이가 지금 변방에 나가 있어 정확한 사실 확인은 그가 돌아와야 알 수 있다고 하더라."

 

  현유자의 말에 분기를 겨우 삼키던 현천자가 이를 갈며 물었다.

 

  "그가 누구랍니까?"

 

  "밝힐 수 없답니다. 비밀임무를 안고 떠난 사람이라 신분이 밝혀지면 곤혹을 치른다는 변명을 하더군요."

 

  "그거 공허한 말장난 아닌가요?"

 

  "아직은 진실이라고 우기니 뭐라 하기가 어렵더이다. 다만 몇 달 내로 돌아온다고 하니 그때 밝힌다고 개방의 입장을 말했습니다."

 

  "허! 몇 달이면 늦습니다. 어서 거짓이라고 말해야지요."

 

  펄펄 뛰는 현천자 장로의 목소리에 현유자 장문인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도 그 사건에 얽힌 내막은 어느 정도 알고 있어 더 이상 말하기가 민망했다.

 

  조용히 묻힌 사건이 어디서부터 튀어나와 이런 불상사가 벌어진 건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현천자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우연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음모로 나온 결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요. 지금 개방이 침묵한다는 이야기죠?"

 

  "그러하오.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침묵하니 도무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현유자의 한탄에 눈빛을 번뜩이던 현천자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뭔가 내막이 있는 듯합니다. 우선 개방이 그 귀한 책자를 잃어버린 거 자체가 의심스럽고 바로 긍정이나 부정을 안 한다는 건 개방답지 않은 처신입니다."

 

  "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그려."

 

  심각한 안색으로 동의하는 현유자 장문인을 바라보며 더욱 확신 어린 말투로 씹어뱉듯이 말하는 현천자이다.

 

  "분명히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내막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케케묵은 과거 이야기를 이제야 들춰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음, 그렇다손 치더라도 알 방법이 없잖은가?"

 

  "일단 우리 힘으로는 어렵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 무당파 못지않게 타격을 받은 제갈세가가 있습니다."

 

  "제갈세가라."

 

  안광을 번뜩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현유자를 바라보며 현천자가 말을 이었다.

 

  "그 머리 좋은 자들이 자신들을 위험에 밀어 넣는 이런 일에 침묵할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헤쳐 나갈 대안을 만들어 낼 겁니다."

 

  "오, 그렇지요. 천하의 제갈세가가 이 정도를 헤쳐 나가지 못한다면 강호제일뇌란 이름을 버리게 되겠지."

 

  "일단 제가 제갈세가로 가 가주와 수뇌진들과 상의해서 이번 사안을 정리해 보지요. 아무래도 이대로 내버려두면 우리 무당파의 명예는 시궁창행입니다."

 

  "그러시게. 일단 장문인의 권한을 준다는 서찰을 써주지."

 

  그제야 만족한 미소를 담은 현유자 장문인이 서둘러 지필묵을 대령한 수제자의 빠른 눈치를 눈빛으로 칭찬하며 서찰을 적었다.

 

  "이 서찰을 서둘러 경신법이 뛰어난 제자를 골라 제갈세가주에게 전해라. 화급을 다투는 일이니 바로 떠나도록."

 

  "네, 장문인."

 

  장차 장문인에 오를 유력한 인재인 무당파 일대제자인 노수철이 서찰을 받아 황급히 사라졌다.

 

  "감히 우리 대무당파를 능멸하는 놈이 누구인지 밝혀지기만 하면 아주 요절을 내버리겠노라."

 

  분기가 치솟은 현유자의 말에 장내에 있던 모든 무당파 인물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바야흐로 또다른 변수가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제5-2장 탁천웅의 결혼 - 짚신도 짝이 있다

 

 

 

 

 

  한편 소천악은 징계차 데려온 피휘소 장로를 돌려보내고 길을 걸으며 자꾸만 들려오는 소문으로 상황을 대충 간파했다.

 

  예상대로 하오문이 적극적으로 나서 소문 확산에 일조한 기색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본을 보고 수천 부의 사본을 만들어낸 후 중원천지에 일거에 뿌린 흔적이 보였다. 물론 하오문의 짓이라는 걸 아는 이는 아직은 없었다.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모함으로 이뤄졌다는 소문은 구파일방이 뜻하는 정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 모양새였다. 평소 아니꼬웠던 정파의 난국을 바라보는 소천악은 기분이 하늘을 나는 기분에 인심을 팍팍 쓰기로 했다.

 

  "천웅아! 이제 근사한 식사나 한번 하자."

 

  "웬일이요? 갑자기 한턱낸다니요?"

 

  "자식이, 내가 언제 짜게 놀았냐? 호탕하게 동생을 위해 팍팍 썼지."

 

  "지나가던 개새끼가 콧방귀 칠 소리 마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 컥!"

 

  말하다 배를 한 대 얻어맞은 탁천웅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이젠 탁천웅의 약점 정도는 눈 감아도 훤히 아는 소천악이다.

 

  "이 자식이 간덩이가 부어서 이제 막 기어오르네. 오냐! 오늘 날 잡아 멧돼지 하나 잡자."

 

  노기를 드러낸 소천악이 마구잡이로 탁천웅의 전신을 두들겨 팼다.

 

  "억! 왜 때려요? 이건 말이 안 되면 패니 형이 뭐 이래요?"

 

  "형이니까 동생 패지. 아주 한 달간 드러눕게 만들어주마."

 

  맷집 좋은 동생을 가진 행복을 만끽하면서 소천악은 연신 탁천웅을 두들겨 팼고 탁천웅은 비명을 지르며 발악을 하는 길가의 한가한 오후였다.

 

  매타작이 끝나고 시무룩한 탁천웅을 본척만척하며 소천악이 길을 걸었다. 다시 성내에 들어선 두 사람은 이내 시장기를 느꼈다.

 

  "형님, 뭐 먹고 갑시다."

 

  언제 얻어맞았냐는 듯 말짱한 표정으로 떠드는 탁천웅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오늘은 너 먹고 싶은 거 죄다 먹어라. 형님이 인심 쓰마."

 

  "제길, 매 값도 아니고… 안 때리고 사주면 얼마나 좋아요?"

 

  살짝 말대꾸를 하던 탁천웅이 인상이 일그러지는 소천악을 보며 놀라 안색이 급변한 채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객잔이 보이자 얼른 들어간 탁천웅이 언제 맞았냐는 듯 호기당당하게 주문을 넣었다.

 

  "여기서 잘하는 요리 다 가져와."

 

  "네? 다 가져오라니요? 농담하시지 말고 얼른 주문해 주세요."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으르렁거리며 말하는 탁천웅을 보며 점소이가 주춤거렸다. 형색으로 보아하니 아차 하면 무전취식하고 배 째라고 나올 난감한 상황이 그려졌다.

 

  소천악은 한숨을 푹 내쉬며 조용히 전낭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이거면 충분하니 얼른 가져오시게. 내 동생 놈이 원래 식탐이 많아."

 

  전낭 사이로 보이는 반짝이는 은화 더미를 본 점소이가 태도가 돌변한 채 바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말했다.

 

  "염려 마십시오, 손님. 지금 바로 대령하도록 노력하지요."

 

  후다닥 사라지는 점소이를 보며 탁천웅이 목소리를 높였다.

 

  "제길, 인간 차별이네."

 

  "자식아, 인간 차별이 아니고 은자 차별이니라. 이게 다 은자의 위력이라는 거야."

 

  "응, 그렇군요. 나야 뭐 부자 형님이 있으니 걱정 안 해요."

 

  히쭉 웃으며 말하는 탁천웅을 보며 소천악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오죽하겠냐."

 

  잠시 후 점소이가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상위에 요리를 가져다 놓았다. 금세 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즐비하게 펼쳐져 탁천웅의 가공할 입을 기다렸다.

 

  희희낙락한 채 접시를 무섭게 비워가던 탁천웅의 시선이 무심코 바라본 창가에 딱 멈추었다.

 

  탁천웅의 시선은 창문 너머 한 곳에 고정된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소천악이다.

 

  "날아가는 참새 똥구멍을 보았나? 먹다 말고 뭐 하는 거야?"

 

  "……."

 

  탁천웅은 아무런 대답 없이 멍한 시선으로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딱!

 

  약간 화가 난 소천악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에 알밤을 놓았다. 넋 놓고 무언가를 바라보다 날벼락을 맞은 탁천웅이 둥그레 솟아오른 혹과 함께 바락바락 대들었다.

 

  "아얏! 왜 때려요?"

 

  "얼씨구! 이제 슬슬 머리 위로 기어오르네. 오늘 날 다시 잡을까?"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말하는 소천악의 기세에 주눅이 든 탁천웅이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했다.

 

  "아니, 무언가를 열심히 바라보는 것도 죄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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