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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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39화
"좋소이다. 그럼 값을 치렀나요?"
연속되는 추궁에 점점 할 말이 궁해진 단수영이 더듬기 시작했다.
"그게… 주려고 했는데요."
"도둑님이군요. 자, 다음에 왜 마부는 두들겨 패서 침대 신세로 만들었나요?"
한마디로 자르는 소천악의 말에 단수영은 점점 더 말문이 궁색해져 갔다.
"제가 그런 게 아니고 호위무사들이 화가 나서 몇 대 친 게 그리된 겁니다."
"호위무사가 미쳤다고 엄한 사람 팹니까? 그거 다 소방주님이 시켜서 생긴 일 아니오?"
"절대 아닙니다."
펄쩍 뛰며 부인하는 단수영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 냉소를 지으며 쏘아붙이는 소천악이다.
"지랄하지 마시지요. 호위무사란 주군의 눈빛만 봐도 움직이는 수족이죠. 당연히 슬쩍 눈짓을 주니 한 거지요. 여기서도 거짓말하면 바로 썰어버릴 겁니다."
"……."
살벌한 협박에 단수영은 더 이상 오리발을 내밀지 못했다. 소천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마차를 가져오시오."
"네, 대협. 뭐 하느냐, 얼른 마차를 가져오너라."
"네, 소방주님!"
호위무사가 얼른 대답하며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어 말과 마차는 도착했다. 그런데 마차를 보던 소천악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솟았다.
"소방주님! 이거 뭐요? 왜 마차에 낙서를 한 거요?"
"그게, 멋지라고 한 겁니다만."
"죽고 싶소이까? 어디 남의 마차 문에다가 떡하니 귀혼방이라고 조각을 해놓는단 말이오."
"지우겠습니… 크아악!"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하는 단수영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땅을 굴렀다. 가타부타 말 없이 소천악이 발로 입을 걷어찬 여파였다. 바로 단수영의 입은 피투성이로 변해 고통에 몸부림쳤다.
"입 안 다물어요? 더 이상 비명 나오면 각오하시오."
"으윽! 헉!"
죽을힘을 다해 고통을 참아내는 단수영의 입에서는 이미 이빨이 서너 개가 부러져 튀어나왔다.
"인상 쓰지 마시지요. 그깟 이빨 몇 개 없다고 절대 안 죽습니다. 밥 먹을 때 불편한 것뿐이지요. 당신이 두들겨 팬 마부는 뼈만 열두 개가 고스란히 부러졌더군요."
"미…안…하…오."
힘겹게 사과하는 단수영 소방주에게 차가운 냉소만 던지는 소천악이다.
"저를 아시면 그런 말씀 못 하지요. 감히 제 물건에 손대고 무사한 분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훼손까지 하셨으니 각오하셔야지요."
"제…발!"
극도의 공포에 질린 단수영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으나 불행히 상대는 소천악이었다.
"천웅아, 저분 뼈를 정확히 스물네 개 분질러드려라."
"네, 형님!"
신나게 달려간 탁천웅은 마치 장작개비 들듯 가볍게 단수영 소방주를 들고 차례차례 뼈를 분질렀다.
빠각! 뿌드득!
"크으악! 제발!"
가슴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단수영 소방주와 무표정하게 열심히(?) 일하는 탁천웅이 선명하게 대비됐다.
팔목 뼈부터 시작해 가슴뼈까지 골고루 꺾어버리는 그 손속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바라보던 귀혼방 무인들은 전신에 찬물이 덮쳐오는 충격에 휩싸여갔다. 말로만 들었던 신의괴협의 진면목은 너무도 두려운 상대였다.
고통을 참다 참다 지친 단수영 소방주가 입에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탁천웅은 기어코 스물네 개의 뼈를 모조리 분지른 후에야 손을 멈추고 말했다. 옆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단요종은 당장에라도 쳐 죽이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기서 일을 벌이면 자신은 물론 단수영의 목숨도 사라진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가슴이 저미는 아픔을 참는 그에게 심장 도려내는 탁천웅의 웃음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다 했다요."
"잘했다. 이제 다시 깨워드려라."
무심한 소천악의 지시에 탁천웅은 발로 부러진 갈비뼈를 툭 찼다.
"으헉!"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린 단수영은 온몸에서 느껴져 오는 통증에 정신 차리기도 힘들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아차 말실수하면 바로 북망산행입니다. 이 이 갈리는 사태를 어떻게 배상할 거요?"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훌륭한 반성의 자세요. 자, 그럼 마차 훼손 보상금과 마부 위로금을 준비해 당장 가져오시오."
"알겠습니다."
이미 공포에 질린 단수영 소방주는 호위무사에게 말했다.
"가서 은자를 모두 가져오너라."
"네, 소방주님!"
얼마 후 무려 네 상자에 그득 담긴 은자가 소천악의 수중에 들어왔다. 하나 이미 소천악은 다른 결정을 내린 후였다.
"이건 기초 보상금이고 추가 보상은 소방주께서 우리 마부가 되어야겠소이다. 물론 거절은 바로 죽음입니다만."
"하겠습니다. 제 죄를 깊이 반성하며 기꺼이 하겠습니다."
"좋소이다. 그럼 마차 위에 오르시지요. 갈 길이 상당히 멉니다."
"네, 대협! 크아악!"
이미 저항할 모든 의지를 상실한 단수영 소방주가 일어서려 하다가 비명과 함께 차라리 기절하고픈 격통이 밀려왔다. 뼈가 부러진 걸 잊은 채 몸을 일으킨 대가는 바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쯧쯧! 자기 몸 상태는 스스로 챙겨야지요."
고양이 쥐 생각하듯 중얼대던 소천악이었다. 그 말을 들은 단수영 소방주는 또 어떤 불벼락이 떨어질까 두려워 얼른 입을 열었다. 물론 전신이 만신창이라 입을 떼기도 힘들었다.
"대협! 아무래도 일어서기가……."
"그러게 평소에 몸 관리를 잘 하셔야지요. 저기 있는 호위무사에게 부탁하시오."
그 후 호위무사가 단수영을 조심스레 부축하는 순간 여전히 부러진 뼈가 전신을 찌르며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소천악은 그런 장면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부축하는 호위무사도 식은땀이 절로 나오고 이미 단수영 소방주의 옷은 진땀으로 범벅이 되어갔다. 가만히 하는 꼴을 지켜보던 소천악이 영 시원치 않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힘들 듯하오. 성의를 보았으니 그만 하시구려."
"으윽! 정말 고맙습니다."
마치 지옥에서 빠져나온 기분으로 힘들게 말하자 소천악은 다른 이를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말을 받았다.
"대신 피위소 당주가 마부를 하면 되겠소이다. 어떻소?"
"당연히 되죠. 피 당주님, 수고해 주시겠습니까?"
"헉, 제가요?"
느닷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피 당주가 놀라 소리쳤다.
"왜, 싫소? 피 당주님도 죄가 만만치 않소이다. 감히 저에게 대뜸 욕한 죄가 그리 가볍지는 않아요. 뭐 싫으면 저승에서 쉬시든가. 시간 없으니 어서 말씀하시오."
거부는 죽음이란 말에 피 당주도 어쩔 수 없이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피 당주는 피눈물을 흘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야지요 "
"그럼 어서 마차에 새겨진 귀혼방 문구를 지우고 마부석에 앉으시구려."
"네, 대협! 뭐 하느냐! 어서 조각된 문구를 지워라."
엉뚱하게 무인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피 당주의 목소리에 찔끔한 무인들이 서둘러 마차의 흔적을 지워갔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소천악은 넌지시 말했다.
"다친 분이 많은데 영약이 있소만 살 의향이 있소이까?"
"당연히 사야지요."
고통에 쩔쩔매던 단수영 소방주가 말하자 소천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백의신의께서 만든 신약이라 조금 비싸오. 특별히 한 알에 은자 천 냥에 드리지요. 뭐 비싸다면 관두셔도 됩니다."
백의신의란 말에 눈이 번쩍 뜨인 단수영 소방주가 얼른 대답했다.
"주시지요. 일단 열 알만 주시면 고맙습니다."
"은자를 주시지요."
"지금은 은자가 없고 전장을 통해 넣어드리면 안 될까요?"
"음, 좋소이다. 뭐 떼어먹으면 바로 죽음이니 얼른 전장에 넣는 게 만수무강에 도움이 될 것이외다."
"물론입니다. 감히 누구 은자라고 허튼짓을 하겠습니까!"
거래는 바로 성사되고 거금 만 냥에 단환 열 개를 팔아먹은 소천악이다. 투자액에 비해 터무니없는 이익을 남긴 채 소천악은 사라져 갔다.
"저런 악종을 보았나. 으드득! 이 원한을 어찌 갚을꼬."
눈가에 독기가 서린 채 중얼거리는 단수영 소방주를 귀혼방도들이 애써 외면했다. 미쳤다고 저 무서운 초절정고수에 인간성 더러운 자와 다시 얼굴을 마주치고픈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지 단수영 소방주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편 피 당주는 피눈물을 흘리며 졸지에 마부로 전락해 온갖 구박을 받으며 열심히 마차를 몰아갔다. 느긋하게 마차 안에서 쉬던 소천악이 슬슬 움직였다.
휘익.
허공을 향해 길게 휘파람을 불자 한 시진이 지나지 않아 전서구가 얼른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마차에 탄 소천악은 바로 서찰을 적어 전서구에 날려보냈다. 전서구란 놈은 참 신기했다.
"형님, 그게 뭐요?"
"어, 요즘 강호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야 다니기가 편할 듯 해 하오문에서 전서구 한 마리 분양받았다."
"재주도 좋다요."
"천웅아! 다른 건 몰라도 어디 잠시 정착해 네놈 말버릇부터 교육받아야겠다. 들을 때마다 영 신경이 거슬리는데 남들은 오죽하겠냐?"
"그거야 그놈들 팔자지요. 내 팔자는 아니다요."
당당하게 말하는 탁천웅을 보며 머리가 지끈거린 소천악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형님, 나 불만 있다요."
"뭔데?"
"나도 여자 하나 구해줘요. 형님도 있으니 나도 있어야지요."
"헉, 여자? 왜? 혼인하려고?"
깜짝 놀라는 소천악을 바라보는 탁천웅의 얼굴은 불만에 절어 있었다.
"사부님이 형님 구하면 옷 잡고 늘어져서라도 여자 하나 구해서 장가가라 했다요. 혼자 구하면 어디서 이상한 여자 구해서 평생 고생한다고 걱정했다요."
"야야! 정신 차려라. 형이 해보니까 여자란 말이야, 일단 남자맛을 알고 나면 이건 뭐 통 잠을 안 재우더라."
"왜 안 자냐요?"
"좋단다. 제길, 며칠을 날밤 까봐라. 걸으면서도 현기증이 인다. 이런 고통을 주는 여자와 왜 살려고 하냐?"
"사부님이 그랬어요. 혼자는 외로우니 둘이 그리운 거라고."
"맞는 말이네. 그래도 동생 사부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맑은 정신이 드신 모양이네."
"해줄 거요 말 거요?"
"당연히 해줘야지. 그런데 네놈 덩치에 맞는 배필을 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조금 기다려야 한다."
"알았다요. 고맙다요."
금방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져 방실거리는 탁천웅은 언제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인물인지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전혀 안 어울리는 동행을 티내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식사 때가 되자 갑자기 시력이 좋아진 탁천웅의 반강제적인 안내로 객잔에 들어서는 소천악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식성 하나만큼은 천하제일을 다툴 만한 인간이 탁천웅이었다.
객잔에 들어선 두 사람을 보자 식사하던 모든 이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물론 소천악을 보는 건 아니었다. 산더미만 한 덩치의 소유자인 탁천웅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같았다.
"더럽게 크네!"
이미 시선에 익숙해진 소천악은 싸그리 무시하고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사가 탁자에 차려지자 이미 탁천웅은 접시에 코를 박고 무서운 속도로 비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