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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3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38화

  히죽 웃으며 귀혼방 무인들에게 돌아선 탁천웅의 신색은 가관이었다. 옷 전체가 피로 물들어 있어 보는 이의 간담을 절로 서늘케 했다. 그가 천천히 걸어서 무인들에게 다가서자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두려운 얼굴을 차마 지우지 못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피위소 당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멈춰라."

 

  "당신이나 멈추세요. 욕하실 때는 언제고 이제 그런 소리를 하시나요?"

 

  생뚱맞은 소천악의 대꾸에 피위소는 진땀을 흘리며 물었다.

 

  "도대체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네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

 

  "끝까지 말 내리면 당신부터 황천길입니다."

 

  차가운 소천악의 경고에 가슴이 뜨끔한 피위소 당주였다. 아무리 봐도 저 덩치 큰 놈과 싸워 승산이 없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이내 마음을 정리한 그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정중하게 물었다.

 

  "왜 이러시는가?"

 

  "이유는 간단하오. 귀혼방의 소방주란 분이 저와 관련 있는 분을 사뿐히 밟았더군요. 강호란 은원이 분명해야 하는 법인 걸 모르지는 않겠지요?"

 

  "음… 우리 소방주님은 함부로 사람을 해하지는 않소이다. 만약 그랬다면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오."

 

  "이유라고 하셨소? 이유야 있지요. 힘이 있다고 남의 물건을 탐한 이유!"

 

  분노를 삼키며 씹어뱉는 소천악의 말에는 살기가 물씬 새어나왔다. 오죽하면 앞에서 듣는 피위소 당주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을 물러날 정도였다.

 

  "좋소이다. 그렇다 치고 강호에도 도의는 있는 법이지요. 귀하의 존성대명은 무엇인지요?"

 

  "존성대명이라 할 건 없고 강호인들이 저를 신의괴협 소천악이라 부릅디다."

 

  "커헉! 신의괴협 소천악 대협! 검사권생!"

 

  놀란 피위소 당주가 외치자 뒤에 있던 무인들이 바로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며 두려운 눈빛으로 소천악을 바라봤다. 피위소 당주는 소천악의 별칭 중 하나인 검사권생을 기억하곤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야, 뭐 하냐? 얼른 검 버려. 검사권생!"

 

  "아, 맞아!"

 

  놀란 무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검을 바닥에 얼른 내려놓았다.

 

  검사권생!

 

  이제는 강호의 불문율로 굳어가는 소천악만의 율법이 되었다. 혈교의 사주를 받은 세외강파의 고수들을 일검에 쓸어버린 그 신화적인 명성 앞에 일개 지역방파의 무인들이 버틸 이유는 전혀 없었다. 피위소 당주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수습하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신의괴협 소천악 대협이십니까?"

 

  "믿기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검을 뽑으시면 바로 증명될 겁니다."

 

  스산한 대꾸는 검에 손만 대면 바로 죽이겠다는 살벌한 협박이었다. 피위소 당주는 감히 검을 뽑을 수가 없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그를 구원해 주는 소리가 들렸다.

 

  "웬 놈이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내공을 실어 주위를 진동하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이는 귀혼방의 방주인 단요종(端遼宗)이었다. 사십대의 인물인 그는 밑바닥 무인에서 자수성가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부리부리한 그의 눈매가 바로 호랑이를 연상케 했다. 소천악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아주 절차가 복잡하오이다. 열을 세겠소. 그때까지 소방주란 분이 앞에 안 나서면 오늘부로 귀혼방은 강호에서 지워질 겁니다."

 

  "아니 이런 무례한 놈이!"

 

  버럭 화를 내며 나서려던 단요종 방주를 죽을힘을 다해 제지하며 속삭이는 피위소 당주였다.

 

  "방주님, 저분은 신의괴협 소천악 대협이십니다."

 

  "소천악 대협이고 나발이고 이런 죽일… 뭐? 방금 뭐라고 했느냐?"

 

  "신의괴협 소천악 대협이라 했습니다. 왜 검사권생 모르십니까?"

 

  "헉! 소천악!"

 

  그제야 소천악의 존재를 파악한 단요종 방주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함부로 하대할 인물이 아니었다. 아니 하대는커녕 두려운 인물이다.

 

  자신들보다 강한 문파들이 설설 기는 엄청난 초절정고수였다. 말이 쉬워 초절정고수였지 무림을 쥐고 흔드는 구파일방에서도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하늘 위의 인물이다. 소천악은 단요종 방주의 당혹감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천천히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마차를 훔쳐간 분 나오세요. 분명히 말하지만 열을 헤아릴 동안 소방주란 분이 앞에 없으면 귀혼방은 사라집니다. 하나, 둘, 셋……."

 

  무감정하게 숫자를 헤아리는 소천악과 옆에서 또다시 살풀이를 기대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탁천웅의 모습은 대조적이면서도 공포스러웠다.

 

  단요종 방주는 짧은 시간에 많은 고민을 했다. 강호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오늘 길보다 흉이 많은 날이란 걸 알았다. 그렇다고 저자에게 하나뿐인 아들을 내준다면 생사를 보장받기가 어려워 보였다.

 

  부정은 모든 이익이나 손해에 우선하는 법! 결단을 내린 단요종 방주가 소리쳤다.

 

  "모두 저놈을 척살하라. 감히 귀혼방을 업신여기는 자는 단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보여줘라."

 

  "존명! 뭣들 하느냐? 방주님의 명이다. 어서 저놈을 죽여라."

 

  따라나선 정예고수들이 검을 꺼내 들고 앞으로 나섰다. 소천악의 입 꼬리가 묘하게 휘어져 올라갔다.

 

  "천웅아, 저분들이 그만 살고 싶으시댄다. 소원대로 해드리자."

 

  "알았다요."

 

  탁천웅은 등 뒤에 멘 커다란 쇠몽둥이를 빼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쇠몽둥이를 손바닥에 툭툭 치며 다가서는 그의 얼굴엔 이미 살기가 그득 떠올랐다. 소천악은 보조를 맞추며 살기 어린 걸음을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다가섰다.

 

  바라보던 단요종 방주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쳐라!"

 

  고함소리가 들리며 귀혼방 정예고수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무섭게 휘몰아쳤다. 뿌리는 검에 담긴 살기가 하늘을 덮으며 바로 소천악과 탁천웅을 산산조각 낼 기세였다. 자신들을 죽일 기세를 보이는 귀혼방도들을 본 소천악의 입이 스산하게 열렸다.

 

  "천웅아, 무기 든 놈들은 모조리 골로 보내라."

 

  "네, 형님. 머리통을 후려갈기지요."

 

  바로 대답한 탁천웅은 이미 귀혼방 고수들과 격돌했다. 검과 도 그리고 도끼 등 살벌한 무기들이 탁천웅의 온몸을 남김없이 가르고 두들겨갔다.

 

  깡~ 텅! 텅!

 

  "어라? 이게 뭐야? 이 새끼 몸이 쇳덩어리야, 뭐야."

 

  공력을 다 실어 전력으로 찌르고 베던 귀혼방 고수들이 살하나 베지 못하고 힘없이 부러져 나가는 검과 도를 보고 경악했다.

 

  "이놈의 새끼들. 이제 네놈들 차례다."

 

  눈에 흉광을 번뜩이며 거구를 움직이는 탁천웅이다. 도무지 거한의 몸놀림이라곤 믿기 어려운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휘두르는 쇠몽둥이는 주위에 몰려 있던 귀혼방도의 머리통을 격타했다.

 

  퍼퍼퍽!

 

  마치 잘 익은 수박 깨지듯 여기저기서 머리통을 얻어맞은 귀혼방도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탁천웅의 움직임은 갈수록 빨라졌고 귀혼방도들은 이를 악물고 탁천웅의 빈틈을 노려 검과 도를 찔렀다.

 

  결과는 전과 다를 게 전혀 없었다. 여전히 검과 도는 강철 같은 근육에 튕겨나가고 분노한 탁천웅의 쇠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죽음에 이르는 귀혼방도의 수가 급증했다.

 

  "이럴 수가! 이건 외공이 아니야. 악마야, 악마."

 

  "시끄럿. 어디서 악마 타령이야. 이놈의 입을 그냥."

 

  휙하니 다가온 쇠몽둥이는 고함을 지른 귀혼방도의 입을 정통으로 두들겨 팼다. 삽시간에 입이 뭉개지며 먼저 간 동료를 따라 사이좋게 저승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제는 귀혼방도들이 탁천웅을 피해 우르르 몰려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아무도 그의 이 장 앞으로는 가지 않았고 걸어오는 탁천웅을 피하느라 두려움에 질린 눈빛으로 애처롭게 도망다녔다. 이미 장내에는 십여 명의 귀혼방도가 조용히 피바다 속에 묻혀 죽어 있었다.

 

  "이럴 수가. 어찌 저런 외공이 강호에 있을 수가."

 

  놀라 넋이 반쯤 나간 단요종 방주와 귀혼방 수뇌진이었다. 싱긋 웃으며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마침내 몸을 움직였다.

 

  "이제 여러분들이 당하실 차례군요."

 

  "잠깐만 멈추어라."

 

  당황한 단요종 방주가 소리쳤으나 소천악은 들은 척도 안하고 신형을 쭉 뽑아올렸다. 이미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검을 들었다는 건 살심이 동했다는 증거였다.

 

  "막아라!"

 

  단요종 방주가 악을 쓰자 수뇌부들은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았다. 일거에 십여 개의 검이 폭사해 오는 소천악의 전신대혈을 노리고 그물망처럼 뻗었다.

 

  소천악의 입에 싸늘한 냉소가 감도는가 싶더니만 질풍처럼 검을 회전시키며 밀려왔다. 검의 방향을 마치 알기나 한다는 듯 요리조리 피하며 섬전같이 상대의 급소를 베어갔다.

 

  사가각.

 

  "크아악! 이런 말도 안 되는 쾌검이."

 

  장로 등 수뇌부는 속수무책으로 검 끝에 제물이 되어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갔다. 좌측에서 보이던 검이 어느새 우측에 있던 장로의 심장을 베었다.

 

  눈부신 검화가 허공 가득히 수놓으면 여지없이 한 사람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마치 폭풍우가 밀려오듯 검은 천지사방 한 군데도 빈틈을 보이지 않고 장로와 수뇌부를 핍박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미 장내에는 땅에 쓰러진 장로와 수뇌부의 시체로 즐비한 살풍경을 보였다.

 

  소천악의 시선이 바로 단요종 방주에게로 향했다.

 

  "이제 당신이 북망산으로 건널 차례군요."

 

  "어찌 이런."

 

  "항상 잘 모르는 분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다 이런 최후를 맞이하는 법이죠."

 

  천천히 말하며 걸어오는 소천악이다.

 

  뚜벅뚜벅.

 

  한 걸음씩 다가올 때 단요종은 마치 죽음의 사신이 찾아오는 느낌에 온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옆에 있던 단수영 소방주가 놀라 급히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게 다 제 잘못이니 우리 아버님은 살려주십시오."

 

  "오호. 자식이 부모를 대신해 죽겠다 이건가요?"

 

  "그래서 아버님이 사신다 하면 얼마든지 제 목숨을 드리지요. 부디 제 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간절하게 비는 단수영의 얼굴에는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순간의 욕심이 이리 큰 화를 불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천악은 다가서던 걸음을 우뚝 멈추며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 도리는 아는구려."

 

  "뜻대로 하시고 제발 아버님을 살려주시길 바랍니다."

 

  단수영은 소천악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거의 정신이 나가서 한마디만을 반복적으로 말했다.

 

  "안 된다. 어찌 아비가 되어 아들의 목숨으로 살기를 바랄까. 이놈! 차라리 날 죽이고 아들을 살려다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단요종이 얼른 아들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가만히 듣던 소천악이 어이가 없어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제길. 자기 식구 목숨은 저리 소중하면서 왜 남의 아픔은 무시하는 거야."

 

  말은 퉁명스러워도 부자지간의 정에 약간은 마음이 흔들린 소천악은 죽이고픈 생각은 이미 사라진 채 스산하게 물었다.

 

  "왜 마차를 뺏은 거죠?"

 

  "그게 너무 마차가 훌륭해서 제값을 치르고라도 가져오려고 했는데 마부가 죽어도 안 된다고 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단수영 소방주를 느긋하게 바라보며 아픈 데를 찌르는 말이 쏘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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