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32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32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둘이서 꿍짝거리며 떠드는 소리를 듣던 추노가 머리가 아픈 듯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기 시작했다.
길은 갈수록 험해져 이제는 천길 낭떠러지 옆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무림고수답게 아무도 천길 낭떠러지 위의 외길을 가는 데 두려워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탁천웅만 투덜거릴 뿐이다.
"이게 길이냐. 제길, 쥐새끼도 건너기 힘들겠다."
"말조심하시오. 그럼 우리가 쥐새끼란 말이오?"
추노가 기회를 잡은 듯 날카롭게 지적하자 태연한 탁천웅의 대꾸에 다들 뒤집어졌다.
"나도 쥐새끼니 다 쥐새끼지요."
토닥거리며 아슬아슬한 길을 지나자 뜻밖에 커다란 공터가 나오며 그 뒤로 수많은 전각이 보였다. 탁천웅의 입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우와, 이 산골짜기에 저런 집을 지으려면 공사비 많이 들 텐데. 안 그래요, 형님?"
"그러게. 솔직히 뭐 한다고 이런 데 저렇게 짓는지 이해는 안 간다."
"아까 마교가 거지 방파란 거 취소야요. 이 정도면 부자 방파네요."
"그러게. 사람이나 문파는 겉으로 봐선 모르는 거야.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조심해라."
"네, 형님!"
갈수록 가관인 형제의 대화에 추노뿐만이 아니고 구자명 소교주마저 할 말을 잃은 채 묵묵히 걸어갔다. 정문이 다가오자 일행을 알아본 경비무사가 오체투지를 하며 외쳤다.
"마교 천세!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역시 소교주라 그런지 위세가 당당하네."
여유 있게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구자명 소교주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마교 내에서는 만만한 직책이 아니지. 소교주란 신분은 말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자."
"왜, 내가 마교 소교주니 뒷배경을 얻으려고?"
"배경은 무슨! 소교주라면 미녀를 만나기가 쉬울 게 아닌가. 높은 데 있을 때 잘 봐줘."
"크하하! 강호의 소문이 거짓인 줄 알았더니 가끔은 맞을 때도 있네. 정말 자네는 여인에 목숨 걸었구먼."
진심으로 유쾌한 듯 크게 웃는 구자명을 보고 담담하게 대꾸하는 소천악이다.
"목숨은 걸지 않아. 뒈지면 만고절색이 무슨 소용인가! 살아서 구해야지."
"관두세. 더 이상 말하면 내 머리가 아플 거 같으이. 자, 가서 교주님께 인사를 드려야지. 그래야 자네가 마교에 온 게 용납이 되지. 아니면 적으로 몰려 바로 추살단이 출동할 거야."
"음, 가세나. 얼른 인사를 드리고 소저를 뵈러 가야 하네."
서두르는 소천악의 신색은 전혀 교주를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구자명 소교주는 그 뱃심에 놀라고 초지일관 밀어붙이는 정열에 다시 놀랐다.
천년마교의 교주!
사실상 강호 최대최강의 문파의 수장이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었다. 비록 강호무림에 별 신경을 안 써 잊혀진 이름이지만 지금이라도 강호로 나가면 천하가 진동하는 무서운 강파가 천년마교였다.
과거에 마교에서 서열 삼십위에 불과했던 탈혼신마 장자추가 강호에 나가 구대문파의 장로들을 연파한 걸로 마교의 위상은 확실히 정립됐다. 그 강파의 수장인 교주를 본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기세에 눌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그 전통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소천악은 마교교주인 구정학(具定鶴)을 보고 가볍게 포권하며 말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무림말학 소천악이 인사드립니다."
"허, 저런 발칙한!"
옆에 있던 한 마교인이 노화를 터뜨렸다. 다른 인물들도 비슷한 심정인 듯 인상이 잔뜩 구겨져 있어 한마디만 던지면 바로 소천악을 때려죽일 기세였다.
의외로 구정학 마교주는 이채롭다는 듯 소천악을 바라봤다. 생전 처음으로 자기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하게 나오는 그 기상이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목소리는 부드럽게 나왔다.
"허허! 소천악이라고? 대단한 성격을 지닌 아이로군. 듣자하니 강호무림에서 적지 않은 명성을 날린다고?"
반말이었지만 상대가 마교의 교주란 점에서 어느 정도 양보한 소천악이 별다른 시비 없이 대꾸했다.
"칭찬에 감사합니다."
"좋아. 그래 우리 마교엔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
"네, 신붓감을 찾아 왔습니다."
"뭐? 신붓감?"
뚱딴지같은 소리에 냉정을 잃어버린 구정학 교주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 이제 제 나이도 어느덧 이십대 초반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좋은 처자를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밀 때입니다."
"허, 그러니까 천년마교를 찾아온 이유가 단지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당연합니다."
기가 막힌 구정학 마교주가 멍하니 소천악을 바라보다 아들인 구자명 소교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알고 있었냐?"
"네, 교주님! 저 친구는 아주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구정학 마교주는 머리를 부여잡고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조금 전까지 적의를 불태우던 마교의 고수들도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누가 감히 마교에 신붓감을 구하러 오리란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건 간이 부어도 보통 부은 인간이 아니란 마음이 들자 적대감보다 골치가 더 아팠다.
"이보게, 우리 마교에 자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단 말이군."
"아직은 모릅니다, 교주님. 다만 여기에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는 정보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럼 사모해서 온 게 아니라 얼굴을 보고 난 후 결정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푸하하! 이거 정말 유쾌하구먼.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네. 안 그런가, 휘준파 호법?"
"흐흐! 그러네요. 이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턱턱 막힙니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 걸린 휘준파 호법은 언제 소천악을 박살내려 했냐는 듯 이미 마음이 풀린 상태였다. 강함을 추구하는 그는 패기와 배짱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마교라 해도 벌이 꿀을 찾아오는데 막을 수야 없지. 안 그런가?"
"허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속하는 모르겠습니다."
잠시 휘준파 호법과 말을 나누던 구정학 마교주의 눈빛이 이채를 발하며 소천악을 바라봤다.
"이보게, 여기는 마교일세. 힘과 패기를 숭앙하는 마교는 약자에게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네. 그 점은 아무리 손님이라 해도 자네에게도 마찬가지일세."
"저야 마교에 왔으니 마교의 율법에 따라야겠지요. 힘이 없다면 감히 이곳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좋아. 일단 그 패기는 우리 마교에 딱 맞네. 이제는 자네가 과연 마교에 여인을 찾아올 자격이 있는지 먼저 알아본 연후에 이야길 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인정합니다. 어떤 시험이라도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패기에 차 말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구정학의 눈빛이 바로 호감으로 물들었다. 힘과 패도를 추구하는 천년마교의 수장인 그였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말하는 그 배포가 구미에 딱 맞았다. 당연히 기분 좋게 말이 나왔다.
"좋아. 그럼 일단 자네가 원하는 여인이 누군가를 말하게. 그 신분에 따라 자네가 넘어야 할 산이 정해진다."
"네, 제가 보고픈 여인은 마존각주님의 따님입니다."
"헉, 마존각주의 딸?"
슬쩍 놀라는 구정학 마교주의 질문에 소천악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말씀드렸으니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일러주시길 바랍니다. 싸워야 한다면 비무 상대를 정해주시지요."
턱에 손을 대고 곰곰이 생각하던 마교주가 시원하게 말했다.
"당연히 딸을 데려가려면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지. 고로 비무 상대는 마존각주가 적당하다고 보네."
"어느 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사내대장부가 목표를 정했는데 꽁무니를 빼지는 않습니다. 얼른 그분을 만나뵙고 비무를 하고 싶습니다."
전혀 두려움 없이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마교주가 물었다.
"자네 마존각주가 어떤 인물인지 알기는 아나?"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봐야 할 여인의 아버님이란 것뿐입니다."
"내, 혹시나 해서 말해 주지. 마존각주는 본 교 서열 10위인 절대고수이네. 그는 비무도 생사결이라는 게 신념이야. 아무도 그의 손에서 살아난 일이 없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마음먹어서 제 손에서 생명을 부지한 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부친이 되시니 목숨을 거두는 일은 삼가도록 하지요."
"허어, 자신감이 아예 지존급이군. 여봐라, 지금 당장 이 사실을 마존각주에게 전하고 속히 교주전으로 오라 이르라."
"존명!"
한 마교인이 부복한 채로 명을 받은 후 빛살같이 사라졌다.
"이보게, 소천악이라 했나?"
"네, 교주님."
"마존각주가 본 교의 장로일세. 게다가 성질이 아주 폭급한 데다가 딸이라면 사족을 못 쓰네. 단단히 각오하게."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건 잘 압니다만 전 소천악입니다."
"껄껄, 오늘 아주 유쾌한 구경거리가 생기는군."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의 추이를 흥미롭게 지켜볼 속셈인 마교주였다. 옆에 서 있던 휘준파 장로 등 마교인의 눈빛에서도 진한 호기심이 배어나왔다.
정작 그 눈빛을 감당해야 할 소천악은 태연자약했다. 물론 옆에 서 있는 탁천웅은 마냥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바빴다.
마존각주 천일평은 느긋하게 집무실에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육척장신인 그의 얼굴은 누가 봐도 무인이라는 게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한가한 오후 시간을 보내는 그의 평화를 깨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인상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안색을 하려는 순간 불청객은 이미 집무실로 들어섰다.
"마존각주님! 교주님이 지금 곧 교주각으로 오시랍니다."
"교주님이? 무슨 일이야?"
"지금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어서 말해 봐라. 영문을 알아야 교주님에게 가서 실수를 안 할 거 아니냐!"
"저 그게……."
우물쭈물하며 설명하는 전령의 말을 듣던 마존각주의 얼굴이 노화로 붉게 충혈되어 갔다. 마침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벼락같은 호통이 내리쳤다.
"그 싸가지 없는 새끼 지금 어디 있어?"
"교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가자. 당장 모가지를 썰어버리리라."
펄펄 뛰며 마존각을 나서는 천일평 마존각주의 두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쭉쭉 뻗어 나왔다. 이십 년을 금이야 옥이야 기른 딸이었다.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하며 어미 없는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 하루하루를 보내며 바라본 사랑스런 딸이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 감히 넘보는지 몰라도 아예 요절을 낼 요량이다. 걸어가는 그의 발길은 노화로 끌어올린 내력으로 한 치 이상 푹푹 파였다. 교주각이 보이자 성큼 들어선 그는 구정학 마교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마존각주 천일평이 교주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천 각주."
"네, 교주님! 그리고 우리 딸을 보겠다는 호래자식은 어디 있습니까?"
열혈의 성품대로 직선적인 말을 뿜어대는 천일평이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소천악이 울컥 올라오는 기분에 바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