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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31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31화

 

  투덕거리며 산길을 올라가는 두 남자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여정에 신물이 슬슬 올라왔다. 고산지대라 주변에 돌덩이만 즐비할 뿐 풍광구경은 애당초 날 샌 일이었다. 봐도 봐도 변함없는 경치에 질려갈 무렵 멀리서 인기척이 들렸다.

 

  "어? 사람이 있네."

 

  "오랜만에 사람 얼굴 구경하겠다요."

 

  "그러게. 멧돼지 같은 네놈보다야 보기가 한결 나을 거란 바람이 있다."

 

  "형님~."

 

  "귀청 나간다. 살살 말해라."

 

  떠드는 사이 사람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섰다. 네 명의 사람은 한 사람의 젊은이와 세 사람의 중년인으로 구성됐다. 온몸에서 풍기는 날카로운 예기가 무림인 중에서도 강한 자란 느낌이 바로 느껴졌다.

 

  "천웅아! 무림인인 거 같네."

 

  "무림인이든지 말든지. 그런데 저 젊은 놈은 왜 저리 곱상하게 생겼나요. 계집애 같아요."

 

  "쉿, 말조심해라. 공연히 시비 붙으면 성가시다."

 

  놀란 소천악이 얼른 주책바가지 탁천웅의 입을 손으로 막아 불필요한 시비를 피하고자 했다. 보아하니 만만한 자들이 아닐 성싶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다가오던 네 사람의 안색이 탁천웅의 말에 일제히 굳어지더니 서서히 거센 살기를 피워 올렸다. 소천악은 모른 척 얼른 지나가려는 순간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멈추어라!"

 

  일이 시끄럽게 된 걸 안 소천악은 차라리 마음이 편해져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우리 말인가요?"

 

  "그렇다. 감히 무례한 언사를 뱉어놓고 그냥 갈 셈이냐?"

 

  "길도 험한데 혈압 올리시지 말고 그냥 갑시다. 우리 동생이 철이 없어 헛 나온 말이니 괘념치 마시지요."

 

  "닥치거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재롱을 피우려는 것이냐?"

 

  거칠게 나오는 중년인의 말에 참으려던 소천악의 심기가 폭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재롱이라고 하셨소이까? 거참, 듣자 듣자 하니 말씀이 심하시구려."

 

  "뭣이라! 감히 네놈이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가!"

 

  "말이 심하시군요. 제 동생이 실수한 거라 사과해도 이리 나오시면 곤란하지요."

 

  "네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죽여보시지요. 이건 참으려고 해도 도무지 말이 안 통하네요."

 

  소천악의 두 눈에서도 시퍼런 섬광이 번뜩였다. 노기가 치밀자 기세가 용솟음치며 금방이라도 달려들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젊은 청년이 조용히 제지하며 말했다.

 

  "추노, 물러서게."

 

  "하오나 소교주님! 저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물러서라 했소."

 

  "존명!"

 

  마지못해 추노라 불리는 중년인이 물러서자 젊은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는 천년마교의 소교주인 구자명(仇子明)이었다. 잠시 마교를 나와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 강호에 첫발을 디디며 너 같은 놈을 만나게 되다니."

 

  "완전히 똑같으시구려. 입에 시궁창을 달고 다니시는 게요?"

 

  "허! 이런 어이없는 놈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떠드는 것이냐?"

 

  "주접떨지 마시고 붙으려면 얼른 덤비시오. 갈 길이 바쁜 몸이오."

 

  거친 소천악의 말에 노화가 치민 구자명이 뒤에 대고 싸늘하게 말했다.

 

  "추노! 지금 당장 저놈을 내 발치에 꿇리시오."

 

  "존명!"

 

  그제야 기회를 잡았다는 듯 추노란 자가 성큼 앞으로 나서며 음산하게 말했다.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야. 감히 귀하신 분을 몰라본 죄가 중하니라."

 

  "당신은 항상 주둥이로 싸우시오? 어서 오시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소천악의 입담에 눈빛이 번쩍이던 추노가 서서히 다가섰다. 말과는 달리 움직이는 발길이 경쾌한 데다가 아무런 소리 없이 돌아서는 게 예사 고수는 분명히 아니었다.

 

  "하룻강아지 같은 놈!"

 

  차갑게 소리치며 허공으로 몸을 훌쩍 띄운 추노가 발이 안 보이는 쾌속함을 선보이며 연환퇴를 구사했다. 삽시간에 허공 가득 다리가 정신없이 휘몰아치며 소천악의 급소를 노려왔다.

 

  "제법이시구려. 하지만 아직은 멀었소."

 

  냉소를 지으며 쌍장을 번개같이 교차하는 소천악의 신형은 거센 경력을 실고 추노와 마주쳐 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추노의 섬전 같은 연환퇴를 거친 숨 한 번 쉬지도 않고 모조리 손으로 툭툭 쳐 밀어냈다.

 

  잠시 공격이 실패해 휘청거리는 추노를 보고 역공에 들어가는 소천악이다. 번쩍하는 순간 이미 소천악의 팔꿈치는 얼굴을 향해 닥쳐왔다.

 

  놀란 추노가 급히 허리를 틀어 피하려 했지만 소천악의 일수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얼굴을 강타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추노의 안면에 명중한 일수는 상당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크헉! 이런 쾌속한 권법이."

 

  얼굴이 피로 물들며 뒤로 물러나려는 추노를 맹렬히 따라붙으며 연타로 가슴과 복부를 강타하는 소천악이다. 거듭되는 타격에 추노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바로 짚단 넘어지듯 힘없이 땅으로 굴렀다.

 

  쓰러져 있는 추노를 바라보던 소천악이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젠 새파랗게 젊으신 분 나오시지요."

 

  "이런, 한가락 하는 놈이었군."

 

  안색이 가볍게 변한 채 말하는 구자명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 대꾸하는 소천악이다.

 

  "당신도 주둥이로 싸우는 종자시오?"

 

  "이런 무엄한 놈!"

 

  "무엄이고 지랄이시고 간에 얼른 해결하고 각자 갈 길 갑시다. 같은 강호인끼리 시비가 붙으면 주먹이 제일 빠른 해결책이오."

 

  "후후! 배짱 하나는 대단하군. 나를 추노와 같이 취급하다니."

 

  비위가 상한 구자명 소교주가 두 손을 슬며시 올리자 돌연 주위의 공기가 돌변하며 거센 기세가 소천악을 압박해 왔다. 소천악은 내력을 올려 밀려오는 기세를 슬쩍 튕겨내자 번쩍이는 폭음이 들릴 정도였다.

 

  "오호, 상당한 실력이군. 강호에선 뭐라 불리나?"

 

  "뭐 남들께서 신의괴협이라 부르더군요."

 

  "음, 신의괴협. 그럼 네가 소천악이란 잔가?"

 

  슬쩍 놀라는 구자명을 보며 소천악이 씩 웃었다.

 

  "나를 아십니까? 십만대산까지 와서 아시는 분을 만날 줄은 몰랐소이다."

 

  구자명은 빙긋 웃었다. 제아무리 강호에서 날고 기어도 감히 천년마교의 소교주를 건드린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고 싶었다. 차가운 말이 입술을 통해 흘러나왔다.

 

  "어쩐지 광오하더라니. 그만한 자격은 있는 자였군. 좋아! 우리 길게 싸울 필요 없이 일 초의 승부로 판가름내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조심하거라. 일 초라지만 만만하게 봐서는 큰코다칠 거다."

 

  "고양이 쥐 생각하시지 마시고 얼른 오시지요."

 

  태연하게 대답하는 소천악이지만 내심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좀 전의 기세를 보아할 때 이미 절정고수를 훌쩍 뛰어넘은 자란 걸 어렵지 않게 알았다.

 

  구자명 소교주는 바로 천마권을 시전할 준비를 했다. 천마권은 천년마교의 수뇌진에게만 전수되는 절기였다. 초대 조사인 천마가 각고의 노력 끝에 창안한 권법인 천마권은 일세의 절기로 강호에서도 이름이 드높았다.

 

  소천악도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혈천신공을 운기해 맞대응할 준비를 마쳤다.

 

  "조심해라!"

 

  벼락같이 소리치며 구자명 소교주의 몸이 번뜩이며 밀려왔다. 웅혼한 내력의 폭풍이 함께 움직이자 나지막한 뇌음이 작렬했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소천악은 빠르게 혈검구식을 응용한 권법을 시전했다. 놀라운 속도로 움직이는 손은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시현하며 구자명 소교주를 노리고 밀려갔다.

 

  쿵! 쿵!

 

  마치 거대한 철벽끼리 마주치는 폭음이 연달아 들리며 거센 경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 얼마 없던 나무가 송두리째 뽑혀 나왔다.

 

  두 사람은 내장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고 약속이나 한 듯이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구자명 소교주는 가슴이 진탕되며 핏덩이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꾹 참고 밀어 넣었다.

 

  소천악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는 않았으나 일부러 비틀거리는 사악함을 드러냈다. 원수도 아닌데 굳이 상대에게 수치심을 줘 원한을 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잠시 후 흔들린 내부를 진정시킨 구자명 소교주가 감탄한 듯이 말했다.

 

  "과연 큰소리칠 만한 실력이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야."

 

  "당신도 만만하지는 않군요. 대단한 무공이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하는 소천악을 보니 구자명 소교주는 왠지 친밀감이 느껴졌다. 약육강식의 처절한 생존논리가 지배하는 마교에서 불철주야 무공에만 전념하다 독특한 인간 하나를 만나자 호기심이 당겼다.

 

  "다시 인사하지. 난 천년마교의 소교주 구자명이라 하네."

 

  "그렇소이까? 어쩐지 예사 무공은 아니더이다. 저야 아까 말했듯이 소천악이라 하외다. 저기 서 있는 놈은 제 동생으로 탁천웅이라 합니다."

 

  영문 모르게 피차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구자명 소교주는 친밀감을 느꼈다. 특히 무공수련에 관해서는 동병상련의 아픔이 공존한다는 걸 알았다.

 

  "이보게, 소천악! 우리 나이도 같고 하니 친구로 지내면 어떨까?"

 

  "나야 좋지. 천하의 마교 소교주가 친구하자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역시 시원시원한 승낙이 나오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맴돈 구자명 소교주가 말했다.

 

  "그래, 감히 겁도 없이 천년마교를 찾아가는 이유가 뭐냐?"

 

  "음, 이건 비밀인데 특별히 말해 주지. 사실 마교에 절세미인 하나가 산단다."

 

  "그래서, 그 미녀가 너랑 무슨 상관인데?"

 

  "자식이 되게 말 많네. 야, 날 때부터 인연이 어디 있어. 다 어쩌다 보면 인연이 되는 수도 있고 한 이불 덮고 자기도 하는 거야."

 

  "너도 대단한 놈이야. 감히 여자 하나를 만나러 천년마교로 가는 미친놈은 네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황당하다는 구자명의 말에 눈도 깜짝 안 하고 대답하는 소천악이다.

 

  "잘 고른 마누라 하나가 열 첩 안 부러운 거야."

 

  "말을 말자. 자네와 이야기를 길게 하다 보면 내 머리가 이상해질 거 같아."

 

  "좋은 생각이야. 어서 길이나 안내해라. 갈 길이 아직 멀었어."

 

  "오냐, 네 녀석이 마교에 가서도 이렇게 패기만만한지 두고 보겠다."

 

  "한참을 두고 봐라."

 

  단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는 소천악을 보며 구자명 소교주는 머리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마교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개중에 제일 심한 건 천길만길 낭떠러지 옆에 난 그야말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길이 제일 위험했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혀를 차며 말했다.

 

  "거참, 어려운 데도 사신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 거처를 마련한 마교의 뜻을 모르겠네."

 

  "소 대협! 이 길은 우리 천년마교의 용맹성과 기상을 상징하는 길이오. 함부로 조사의 뜻을 모르고 말하지 마시오."

 

  추노가 가시 돋친 말로 반박하자 머쓱해진 소천악이 딴청을 피우며 걸어갔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탁천웅이 입이 근질근질한 듯 말했다.

 

  "형님! 천년마교란 곳도 어지간히 가난한 방파인가 봐요."

 

  "왜 그런 생각을 하니?"

 

  "은자가 없으니 이런 데 사는 거겠지요. 부자 방파가 미쳤다고 이 산골짜기에 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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