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66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66화
"알겠소. 저도 기다리지요."
제갈상린은 피할 길이 없음을 알고 순순히 승낙했다. 그렇게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풀려나갔다.
협상을 무사히 마무리한 소천악이 폭풍문에 돌아오자 잔뜩 불만에 휩싸인 수뇌부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심자앙 군사의 불만이 심했다.
"아니, 문주님. 왜 우리 폭풍문이 광동성 하나만을 받아야 합니까? 강남무림의 반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면 다른 문파에서 함부로 우리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명분이 없지요. 이렇게 양보한 폭풍문을 공격한다는 건 거센 비난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으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억울합니다."
"멋진 거 아닙니까?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 폭풍문."
"거참, 말은 번지르합니다그려. 허허."
어이없다는 심자앙의 웃음이 시작이었다. 천하제일고수라 일컬어지던 혈교주마저 물리친 소천악의 무공실력에 감히 대놓고 비난할 간담을 지닌 폭풍문 수뇌는 한 명도 없었다.
그날 저녁 소천악은 심자앙 군사와 독대한 채 혈검신마에 관한 누명을 벗기기 위한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처음에 흠칫 놀랐던 심자앙이 이내 태연한 안색으로 끝까지 자세를 흩뜨리지 않은 채 들었다.
"자, 심 군사님. 여기서 제가 해야 할 계책을 일러주시지요."
"음. 알겠소이다. 책사의 본분대로 제가 아는 계책을 말씀드리지요. 그 계책은……."
기상천외한 비책이 술술 심자앙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감탄하는 소천악의 탄성이 한동안 이어졌다.
제5-9장 누명을 벗고 다시 자연인으로
혈교대란이 조용히 마무리되자 강호는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천악이 말한 무당지회에 대한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었다.
혈검신마의 누명을 밝힌다는 그의 이야기는 수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엄청난 군웅들을 무당으로 불러 모았다. 화중 형초 복지에 위치한 무당산은 사방 8백여 리에 걸친 산이었다. 한수(漢水)가 휘돌아드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다.
소문을 듣고 무당파에 모인 군웅은 상상외로 많았다. 석년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든 혈검신마의 무림공적 사건에 얽힌 비화는 강호를 휩쓸었던 혈교대란이 끝나자 태풍의 눈으로 새삼 관심을 끌었다. 혈교대란과 더불어 현재 강호의 이대 화제에 오를 정도였다.
우글거리며 밀려오는 군웅을 보며 현유자 무당 장문인과 제갈상린 가주는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가주, 이거 일이 상상외로 커지는 거 같소이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이번 기회에 강호에 나돌던 괴문서에 따른 소문을 한꺼번에 잠재울 수 있지요."
"하긴, 그리만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소이까."
"이미 우리 제갈세가의 모든 장로들이 모여 상황에 따른 대처방법을 세워놓았지요."
"허, 강호제일뇌라는 제갈세가의 장로들이 모였다면 그 결과야 뻔하겠군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현유자 무당 장문인이 정면을 바라봤다. 대무당파의 위신을 위해 이번 일은 기필코 막아야 할 추문이었다. 자신만만한 제갈세가의 제갈상린 가주를 보아하니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일이 순조롭게 풀릴 듯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마침내 소천악이 탁천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는 소란스러워졌다.
"신의괴협이다. 저기는 금강신협이다."
군중의 함성에 소천악은 담담히 손을 들어 포권을 하며 답례했다. 척하니 걷는 자세가 여유만만한 모습이다. 뒤로는 탁천웅과 폭풍문의 수뇌부가 일제히 따라오는 게 보였다.
"저들이 강호 실세인 폭풍문 수뇌부군."
"말조심하게. 잘못하면 폭풍문에 미운 털이 박혀 제명에 못 죽어. 혈교와도 승패를 가리지 못한 무서운 문파야."
소곤거리는 군웅의 눈에는 가는 두려움이 배어나왔다. 드디어 군중이 사방에 빼곡히 들어선 채 정 중앙에 의자가 놓인 곳에 구파일방의 장로들이 자리했다. 그들은 이번 일에 참관인이자 공증인 자격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왠지 소천악을 바라보는 눈길에 적의가 담겨 나오는 걸 거의 모든 이가 눈치챌 정도였다.
그 반대편에 소천악이 앉았고 뒤에는 탁천웅이 거구를 과시하며 사방을 부라렸다. 감히 자신의 형인 소천악을 공격하려는 자는 피떡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이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이었다. 현유자 무당 장문인이 소천악을 맞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소 대협, 귀하가 이번 회합을 주선한 걸로 알고 있소."
"맞소이다. 전 혈검신마의 누명을 벗겨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왔소이다."
"한 가지 묻겠소이다. 왜 이리 혈검신마에 대해 집착하시는지요?"
"강호란 항상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곳이지요. 하지만 기본적인 도리는 있다고 봅니다. 설령 원한이 있다손 치더라도 함부로 무림공적을 만드는 건 정파인으로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봅니다."
"허, 이런 황당한 일이. 혈검신마는 이미 무림공적이거늘."
어이없다는 현유자의 말에 바로 쏘아붙이는 소천악의 일갈이었다.
"그거야 밝혀내면 그 진실이 나오겠지요. 혹시나 잘못된 일이라면 이번 기회에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경종을 울리려고 온 것이외다."
혀에 꿀을 바른 듯 소천악의 언변은 담담하면서도 정곡을 예리하게 집어냈다. 답변이 궁색한 현유자 무당 장문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거에 대해서는 제갈세가의 제갈상린 가주님이 설명할 것이니 일단 들으시지요. 자, 제갈상린 가주님, 와서 말씀하시지요."
자신만만한 현유자 무당 장문인의 부름에 이제 곧 자신이 만든 계략을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서려던 제갈상린 가주의 귀에 가느다란 전음성이 들렸다.
[가주님, 저 소천악입니다. 지금 가주님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갈세가를 생각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목소리에 놀란 제갈상린 가주가 타는 듯한 눈초리로 소천악을 쳐다보며 전음성을 보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 제갈세가는 지금 우리 폭풍문에 모두 포로로 잡혀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가주님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제갈세가의 모든 생명체가 깡그리 지워지느냐, 살아가느냐가 결정될 것입니다.]
[네 이놈! 어디서 거짓말을 하느냐?]
[거짓말 같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알아보시고 오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 한순간의 실수로 자식, 손녀, 손자 다 잃어버리는 불쌍한 할아비가 되면 안 되겠지요.]
싸늘하게 비웃는 소천악의 말에 제갈상린의 안색이 진중해졌다. 그는 소천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거짓인지를 찾아보려 애를 썼지만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를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음을 정한 그는 바로 행동에 옮겼다.
"장문인, 제가 지금 잠깐 하나를 빠뜨리고 와서 그것을 들고 와서 다시 얘기를 해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아무런 영문을 모르는 현유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승낙했다. 제갈상린 가주는 부리나케 다시 전각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알아보려 노력했다. 시간은 얼마 없고 전속으로 갔다 왔다 하기에도 시간이 빡빡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을 덜어줄 이는 바로 나타났다. 제갈세가에서 총괄을 맡고 있는 제갈유이가 부리나케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가주님!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냐?"
"지금 폭풍문에서 저희 모든 제갈세가를 침공하여 모든 이를 포로로 잡고 있다고 하옵니다."
"무엇이! 그게 사실이냐?"
"네, 저도 방금 연락을 받았습니다."
"치밀한 놈……."
제갈상린 가주는 치를 떨었다. 소천악의 행동에 대해 당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탁월한 계략에 참탄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심자앙 그자가 인물이라더니만 사실이었군."
제갈상린 가주는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결론은 간단했다. 한순간의 객기로 모든 가족을 잃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만약에 자신이 반항을 한다면 제갈세가는 무림에서 지워져 영원히 제기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소천악의 평소 품행으로 보아 자신이 반항했을 경우 제갈세가 식구들을 살려줄 확률은 전혀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제갈상린 가주는 체념한 표정으로 천천히 다시 전각을 걸어 나왔다. 그가 다시 모습을 보이자 현유자가 반가이 맞이하며 말했다.
"자, 이제 저 소천악이라는 자의 비열한 계략을 모두 말해 주시오. 어디 감히 우리 무당가와 제갈세가라는 천하의 대명문세가들이 그런 교활한 음모를 꾸몄다는 했다는 생각을 하는지, 저 천하인들에게 낱낱이 해명을 해주시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현유자를 보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제갈상린 가주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간의 명예 때문에 제갈세가를 멸문으로 이끌 수는 없었다. 명예를 세운다 할지라도 가문이 사라진다면 그 명예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진중한 표정으로 제갈상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자리를 빌어 저는 우리 제갈세가의 부끄러운 과거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우~."
제갈상린의 말에 군웅들은 함성을 지르며 잠시 소란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그 소란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갈상린의 다음 말이 터져 나오자 군웅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십 몇 년 전에 있었던 혈검신마의 무림공적 사건에 대해 그 전모를 공개하고자 합니다. 그 사건은 사실상 조작된 것입니다."
"이보시오, 제갈 가주?"
놀란 현유자가 벌썩 일어나 제갈상린을 불타는 눈으로 쏘아보며 거칠게 소리쳤다. 하지만 제갈상린 가주는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나머지 말을 이어갔다.
"그 사건은 평소 정사지간을 오가며 많은 정파인들을 응징했던 혈검신마에 대한 정파인 전체의 모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사건에 제갈세가가 개입된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저희 제갈세가의 장로 한 명이 혈검신마에게 잡혀간 일이 있습니다. 잡혀가서 신법을 설치해 주고 심한 모욕을 당하고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 장로가 심한 분노를 느끼고 무당파와 연합해 혈검신마를 함정에 빠뜨린 일입니다. 함정에 빠뜨리게 된 경위는…….
"
"이보시오! 입 닥치시오!"
현유자가 검을 뽑아 들고 거칠게 소리치자 옆에 서 있던 소천악이 앞을 막아섰다.
"끝까지 말을 들어보시오. 여기서 더 이상 말을 끊으면 무당파 장문님이고 뭐고 체면을 봐드리지 않겠소."
눈에서 분노를 뿜어내는 소천악의 기세는 현유자로서는 감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자신과 호적수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기세를 대해보니 자기보다 몇 수 위라는 것이 느껴진 무당 장문인은 부르르 수염을 떨 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에 제갈상린의 말은 계속 터져 나왔다.
"평소 음적을 버러지보다 싫어했던 혈검신마의 약점을 노려 요녀를 이용한 일입니다. 무당파 대제자 두 명이 그녀를 강간하는 것처럼 꾸며 그 옆을 지나던 혈검신마를 도발케 했죠. 요녀는 살려주겠다는 말에 절묘한 연기를 했고 그 연기에 깜빡 넘어간 혈검신마가 일검에 두 무당파 제자를 죽인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