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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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63화
제5-8장 혈교주와의 결전
혈교는 천년마교까지 가세한 폭풍문을 맞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갔다. 바라보던 소천악의 안색이 어두워져 갔다. 이대로라면 이겨도 상처투성이뿐이라 뒤에서 기다리던 정파연합의 힘에 밀릴 확률이 컸다. 결정을 내린 소천악의 전음성이 구정학 마교주에게 들렸다.
[구 교주님, 이대로라면 어렵습니다.]
[음! 내가 봐도 그러네. 혈교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저력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네.]
[아무래도 방법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혈교주와 일대일로 겨루는 걸로 하지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혈교주를 이길 수 있겠나?]
[이제 와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저는 사실 혈검신마의 유일한 제자입니다.]
[헉, 혈검신마! 그게 사실인가?]
놀란 구정학 마교주의 전음성에 쓴웃음을 토하며 소천악이 말했다.
[사실입니다. 게다가 전 수련을 통해 사부님이신 혈검신마께서도 연성치 못한 혈검구식 후반 초식을 완성했습니다.]
[음, 그게 사실이라면 자네는 정말 무서운 내심을 가진 사람이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시고요, 일단은 제게 권한을 주시겠는지요?]
[어려운 주문이군. 하지만 이대로 가는 것보다야 낫겠지. 좋아, 수락하지. 이건 자네보다 사부이신 혈검신마 선배의 체면을 본 것이야.]
[사연이야 어쨌든 고맙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한 소천악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지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모두 멈추어라. 난 폭풍문주 소천악이다."
내공을 실은 거대한 목소리에 생사를 걸고 싸우던 폭풍문 무인은 물론 마교와 혈교 고수들이 잠시 손을 멈추었다. 어리둥절한 채 소천악만 쳐다보는 수천 명의 시선을 무시한 채 그는 구백천 혈교주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혈교주님."
"뭐냐?"
같잖다는 듯 씹어뱉는 구백천의 말에 기분이 상한 소천악의 답도 고울 리가 없었다.
"아, 저도 명색이 문주입니다. 어디서 싸가지 없으시게 반말을 찍찍 뱉으십니까?"
"무엇이라? 저런 괘씸한 놈이."
"거참, 가정교육이라곤 도대체 받은 기억이 없는 양반이시군요. 오냐, 정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할 수 없지요."
"그래서 네놈이 어쩌려고?"
"혈교주, 이 새끼야."
대뜸 터져나온 소천악의 욕설에 잠시 멍해졌던 구백천 혈교주의 안색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게 타올랐다.
"무어라? 저놈이 감히!"
"왜, 넌 욕하고 난 존댓말하란 법이라도 생긴 건가?"
"네 이놈! 너와 내가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감히."
"웃기지 마쇼. 지금 당신하고 나하고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 죽이려고 혈안이 된 마당에 별 거지 같은 소리 다 하네."
"이런 육시랄 놈!"
혈압이 오를 대로 오른 구백천 혈교주가 펄펄 뛰자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며 소천악이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지랄을 아주 연달아 해요. 잡소리 집어치우고 애꿎은 부하들 떼죽음시키지 말게 일대일로 붙자."
"무어라? 일대일로 하자고?"
"겁나면 저기 뒤로 가서 숨어서 벌벌 떨든지."
구백천 혈교주는 울화통이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자신이 반말하면 저 자식은 더 반말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말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소 문주. 어떤 생각인 것이오?"
"그렇게 말을 올리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연장자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말을 높이지요. 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숨넘어가겠소. 얼른 말해 보시오."
"우리끼리 이렇게 부딪혀 봐야 수많은 사람들만 죽어가고 승패는 점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양패 구상 정도가 최선의 결과라고 보이는데 혈교주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구백천 혈교주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보기에도 전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의외로 폭풍문의 단합은 뛰어났고 그를 지휘하는 심자앙 군사의 구궁팔괘진을 뚫기에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혈교 측이 약간 무공이 센 편은 있지만 진을 바탕으로 하는 폭풍문의 기세도 만만치는 않았다. 게다가 마교의 합류로 이제는 승부를 점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란 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우리 이러지 말고 우리 둘의 승부로서 결정을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뜻밖의 제안에 솔깃해진 구백천이 물었다.
"우리들의 승부로?"
"그렇소이다. 이미 구정학 마교주님도 동의하신 일입니다."
구백천 혈교주의 눈빛에 반짝거리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대일이라면 자신 있다는 것이 그의 내심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감추고 말을 이었다.
"그래,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우리 둘이서 승부를 내는 것입니다. 만약 혈교주님이 이긴다면 우리 폭풍문은 조용히 해산하여 각자의 길로 갈 것입니다."
"흠흠흠! 결국은 피해 간다는 얘긴가?"
"어떻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단 제가 이길 경우에는 혈교주님께서는 제가 말하는 조건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무슨 조건인가."
"그리 손해 보는 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어차피 저도 혈교를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중원 전체를 피바다로 만드는 것에는 반대할 뿐입니다."
소천악은 목소리에 위엄을 담아 조용히 말했다. 사실 그의 내심은 전혀 달랐다. 주혜미가 아니었다면 이따위 짓들을 할 일도 없었고 이런 행각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는 소천악이었다.
하지만 주혜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만약 이 약속을 어긴다면 주혜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날 것이 분명하기에 처음으로 만난 이상형의 여자를 놓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런 소천악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심자앙이었다. 심자앙은 어이없는 헛웃음을 지으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쳐다보면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미 화술에 걸려든 구백천 혈교주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 얘기해 보시오, 소 문주."
"제가 말하는 조건은 간단합니다. 혈교와 정파연합 그리고 우리 폭풍문이… 아, 마교도 있군요. 천하를 공평하게 4등분하는 것입니다."
"4등분? 내가 지면 혈교를 해산하라는 것이 아닌가?"
"어디 혈교가 해산한다고 해산할 문파입니까? 기껏 해산시켜 봐야 세월이 흐르면 또 나타나서 중원무림과 피 터지는 싸움을 할 것이 뻔한 것 아닙니까?"
"음……."
정곡이 찔린 구백천 혈교주는 더 이상 할 말을 못 하고 멀거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조건을 수락하시겠습니까?"
간단하게 답을 청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구백천 혈교주의 마음은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엉켜만 갔다. 무슨 생각에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도 들었다.
"소 문주의 말은 진심인가?"
"전 진심이 아니면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수많은 사람이 들었는데 괜한 거짓말을 한다면 저희 맹은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떨어질 것인데 그 짓을 왜 합니까?"
"음, 듣고 보니 그렇군."
구백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공수표를 남발할 정도로 어리석은 소천악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천하 사파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꺼내는 말은 남아일언중천금보다 더 귀한 약속의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구백천은 잠시 소천악을 쳐다보며 고심에 빠졌다. 자신 혼자 승부해서 혈교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 아무리 교주라 할지라도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고심하던 그에게 옆으로 북궁악 부교주가 조용히 다가왔다.
"교주님, 저자의 조건을 수락하시지요. 제가 보기에 교주님의 무공은 무림천하에서 당할 자가 전혀 없습니다. 비록 마교주라 할지라도 전혀 제가 보기에는 교주님의 상대가 아닙니다. 하물며 저런 풋내기 정도는 교주님의 손에 살아남기 힘들 것입니다. 수락하십시오."
옆에서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을 하는 북궁악 부교주를 쳐다본 구백천 혈교주의 입에서 슬쩍 미소가 감돌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은 수십 년 동안 고된 노력 끝에 무공수련을 완성한 자타공인 천하제일고수라고 일컬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소천악이 상상외의 무공을 지녔다 할지라도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구백천은 조용히 소천악을 바라보며 스산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소 문주가 한 말 진심으로 약속할 수 있는가?"
"하늘에 두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제가 거짓을 말한다면 당장 벼락이 떨어져 제 목숨이 사라질 것입니다."
말하고 난 소천악은 은근히 가슴이 떨려왔다. 하늘에 먹구름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혹시나 벼락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영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이 벼락은 떨어지지 않았다. 구백천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소문주의 제안을 승낙하겠노라. 그럼 한판 붙어보자고."
"혈교주님, 여기서 싸워가지고 누가 이기고 지든 간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승부는 우리 둘만이 아는 것으로 결정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얼핏 듣기에는 구백천을 배려해 주는 말처럼 돋보였다. 구백천은 어이가 없었다.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소천악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혈검구식을 함부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무림공적의 무공이 나타난다면 그를 알아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의혹에 찬 눈초리를 받을 수 있었다. 비록 누명은 벗겨졌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소문은 아직도 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점을 유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속마음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구백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안내하라."
"그렇지 않아도 제가 봐둔 곳이 있습니다. 저쪽에 있는 산꼭대기로 가시지요."
소천악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까마득한 구름 위에 떠 있는 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복우산이었다. 구백천 혈교주는 망설이지 않고 소천악을 따라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복우산 꼭대기는 무려 이천 장이 넘는 탓에 구름도 봉우리 밑에서 알짱거렸다. 막상 두 사람만이 남자 긴장감은 오히려 고조되었다.
천하의 운명을 가르는 일전이 바야흐로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묘한 일이 벌어졌다. 소천악과 구백천은 조용히 심신을 가라앉히고 서로를 매섭게 노려봤다. 구백천이 깜빡하고 다시 반말로 쏘아붙였다.
"건방진 놈. 네놈이 조금 명성을 얻었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반말에 기분이 상한 소천악이 바로 받아쳤다.
"하늘이야 항상 높았지. 그러는 넌 천하제일고수인 척 말하는데 그거 심한 착각이야."
"이 새끼가 또 반말이네."
"그런 넌 존댓말하면 혀에 가시가 돋치나?"
"난 너보다 몇십 년 더 산 어른이니라."
"나이 먹어서 좋겠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 오늘 네놈을 갈가리 찢어 이 땅 위에 뿌리고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