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62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62화
"껄껄! 문주님은 이제 개인이 아니라 거대문파를 이끄는 수장입니다. 당연히 강호정세에 대해 한눈에 파악해야지요."
"그런 건 심 군사님이 알아서 하세요."
또다시 회피하는 소천악의 발언에 발끈하는 심자앙이었다.
"제가 어찌 그런 일까지."
"아! 폭풍문이 심 군사님 문파려니 하고 편하게 행동하세요. 제가 해봐야 골치만 아프고 수습이 안 됩니다."
"허허. 문주님은 제가 문파를 통째로 먹을까 봐 걱정도 안 되십니까? 이런 거대문파라면 사나이 야망이 불타오릅니다."
"불타시면 가지시든지."
태연하게 말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심자앙이 두 손 들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해도 소천악 문주는 수장이라는 의식 자체가 희미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스러웠지만 당장은 혈교주를 비롯한 적을 깨부수는 게 급선무였기에 마음을 정리했다.
"문주님, 혈교를 맞아 구궁팔괘진을 펼쳐야 합니다."
"그거야 심 군사님 뜻대로 하세요. 저야 무인이니 싸우는 거에만 신경 쓰지요.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모든 지휘는 알아서 하세요."
역시 소천악의 대답은 심자앙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심자앙은 순간 마음만 먹으면 바로 폭풍문을 접수할 수도 있다는 욕망이 솟았으나 바로 접었다.
저 득실거리는 사마외도의 고수들이 자신을 순순히 문주로 받아들일 리도 없었고 막상 문주가 된다고 해도 삼 일 정도 살면 오래 산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다가 칼침 맞고 죽는 건 뻔해 보였다. 그 생각이 들자 얼른 헛된 욕망을 접고 단지 현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천하를 울리는 고수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생각하니 사내대장부로 이룰 건 다 한 느낌이 들었다. 힘차게 심호흡을 한 심자앙이 배에서 올라오는 우렁찬 소리로 외쳤다.
"소천악 문주님의 지휘권을 이양받아 군사 심자앙이 명령한다. 모든 폭풍문 고수들은 지난 며칠 동안 훈련한 구궁팔괘진의 위치로 신속하게 이동하시오."
긴장된 신색으로 혈교주와 적들을 바라보던 폭풍문 고수들이 일제히 화답하는 외침을 날렸다.
"존명! 모두 개진하라."
"개진하라. 군사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무림고수답게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자신의 위치를 찾아 신속하게 이동했다. 불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이미 구궁팔괘진은 거대한 띠를 두르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걸어오던 구백천 혈교주가 주춤거리며 말했다.
"이런 구궁팔괘진을 이리 만들어내다니."
"대단한 책사로군요."
"저걸 깰 파진법을 말해라."
"잠시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곡무릉 군사는 맨 앞으로 나와 구궁팔괘진을 예리하게 노려보며 그 약점을 찾아 시선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구궁팔괘진인 줄 알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둘러보던 그의 눈동자가 갈수록 커지며 탄성이 터졌다.
"이런 이건 구궁팔괘진에 오행의 섭리를 포함한 절진!"
놀라는 곡무릉 군사를 보고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구백천 혈교주가 얼른 옆에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냐?"
"교주님, 이건 일반적인 구궁팔괘진이 아닙니다. 오행의 섭리를 넣은 역구궁팔괘진입니다."
"격파하지 못한다는 건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 진법은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위력을 발휘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약점은 있지요. 중앙에 자리한 네 명의 진 지휘자를 척살한다면 바로 진식은 그 위력을 잃고 와해될 겁니다."
"중앙의 네 명이라."
중얼거리며 쳐다보는 구백천 혈교주의 시선에 구궁팔괘진 중앙에 턱하니 자리한 소천악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제 생각대로 중앙에 소천악 문주가 자리했군요. 저자를 해치우지 못하면 고전이 예상됩니다."
"좋아, 저놈은 내가 책임지고 처리하마."
"그럼 전 무사들에게 각자 알맞은 진격방향을 지시해 놓겠습니다."
"그러도록."
짤막한 구백천의 말을 끝으로 곡무릉 군사는 바쁘게 진영을 뛰어다니며 구궁팔괘진의 해진법을 일러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구백천 옆에 온 곡무릉이 힘든 어투로 말했다.
"교주님,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모두 저기 있는 폭풍문의 쓰레기들을 일거에 척살하라."
구백천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흐르자 혈교도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폭풍문 쪽으로 밀려왔다.
"우와아! 쓸어버려라."
무려 천여 명에 달하는 일류고수 이상의 무인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장면은 보는 이에겐 엄청난 심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폭풍문 고수들이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자 씩 웃던 소천악도 대응하듯 대지를 진동하는 고함을 질렀다.
"저기 혈교인가 피비린내교인가 하는 쓰레기 광신자들이 온다."
"으하하. 쓰레기 광신자라."
잔뜩 긴장한 채 명령을 기다리던 폭풍문 고수들이 모두 실소를 머금었다. 한 번의 웃음으로 일시에 긴장감이 풀리며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소천악이 연달아 소리쳤다.
"쓰레기들이 갈 곳은 땅속이다. 모두 광신자 쓰레기를 땅속에 묻어버리고 발로 꽉꽉 다져서 다시는 세상 구경을 못 하게 하라."
"존명. 자, 뭐 하느냐. 쓰레기 청소 시간이다."
엽기적인 명령을 내린 소천악의 말에 히히덕거리며 다시 전달하는 종천리 총당주의 얼굴에도 조금 전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단 한 마디로 전체 폭풍문 고수들의 두려움을 모두 지워버리는 작태에 심자앙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야."
힘차게 달려오는 혈교주와 혈교도의 전신에는 광풍이 휘몰아치듯 거센 기운이 뻗쳐나왔다.
"혈교절멸대는 선봉에 서서 적을 척살하라."
스산한 구백천의 명에 아무런 대꾸 없이 혈교 진영에서 이백여 명의 혈교 절멸대가 쑥 하고 나서서 선봉을 이끌기 시작했다.
모두 일류고수 끝자락이거나 절정고수 반열에 들어선 혈교에서 자랑하는 최강의 무인집단이었다. 그들이 선봉에 서자 더더욱 기세는 삼엄해지며 폭풍문의 구궁팔괘진을 형성하는 무인들을 압박해 들어왔다.
심자앙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모든 폭풍문도는 자기의 위치를 이탈하지 말고 싸워라. 진법을 믿어야 한다."
"존명!"
생사의 갈림길에 선 폭풍문도들은 발악하듯 소리치며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진법훈련을 하며 누누이 설명받은 대로 진법을 믿은 채 꼼짝도 안 했다. 드디어 혈교절멸대의 무서운 고수들이 진법에 있던 폭풍문도를 막 죽이려고 검을 든 순간 심자앙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원 개진하라."
"와아! 개진하라."
폭풍문도가 일제히 진법의 묘용에 따라 몸을 움직이자 뿌연 안개와 같은 막이 생겨나며 거센 압박이 혈교절멸대를 덮쳤다.
"이게 뭐야! 모두 정면 돌파하라. 쓰레기들이 펼치는 잡진을 박살내라."
혈교절멸대주 구뢰가 소리치자 모든 절멸대원들이 일제히 밀고 들어왔다. 절정고수 급 이백여 명이 온 힘을 다해 오자 그 위세는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나 구궁팔괘진을 형성한 폭풍문도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심자앙의 회심의 걸작인 진법은 무인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진법이 통째로 움직이며 합공하는 위력을 지닌 무서움이 있었다.
차라라라랑!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를 시작으로 연속적으로 굉음과 비명 그리고 낮은 신음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실력 면에서는 우세한 혈교절멸대였지만 진법의 모용을 안고 싸우는 폭풍문 무인들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진세를 구성하는 핵심에 있던 소천악이 사전에 들은 대로 진법의 핵을 지켜나가자 폭풍문 무인들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질 않았다. 피와 살이 튀며 전면에서 싸우는 혈교절멸대와 폭풍문도의 무수한 죽음이 일어났다.
"으윽, 이게 도대체 무슨 진법이냐."
"제길! 어쩌다 앞에 서가지고."
양쪽 무인들이 신음을 토하며 하나둘씩 대지에 쓰러져 자연으로 돌아갔다. 바라보던 소천악의 눈에 불꽃이 핑그르 피어났다. 성질대로라면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가 움직이면 그나마 균형을 유지하던 진법이 무너져 무공실력이 달리는 폭풍문도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판이었다.
꾹꾹 참으며 내공을 북돋워 진법을 유지하는 소천악의 안색은 분노로 활활 불타올랐다. 구백천도 편한 상태가 아니었다. 혈교가 자랑하던 혈교절멸대가 하찮은 진법에 고전하는 모습이 두 눈에 들어오자 절로 신경질이 났다.
"이봐, 군사!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단숨에 깰 수 있다 했잖은가?"
"죄송합니다. 저 간악한 폭풍문 놈들이 진법에 변화를 주어 잠시 고전하는 거 같습니다."
"해결책을 내놔. 변명만 하지 말고."
"제가 노력하고 있지만 단시간에 해진은 어려울 성싶습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일단 힘으로 깨는 수밖에는."
눈치를 보며 말하는 곡무릉을 보며 더 이상 말해 봤자라는 생각이 든 구백천이 소리쳤다.
"모든 혈교도들은 혈교절멸대를 도와 폭풍문을 쓸어버려라."
"와아! 교주님의 명이다. 모두 돌격하라!"
뒤에서 기다리던 혈교 정예무인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달려나갔다. 바라보던 심자앙의 안색이 굳어지며 바로 소리쳤다.
"모든 폭풍문도들은 이단계 진법으로 변환하라!"
"존명!"
진법의 위력을 온몸으로 절감한 폭풍문도들이 깊은 신뢰를 보이며 빠르게 위치를 바꿔갔다. 순식간에 진법에서 안개가 사라지며 거센 바람이 흘러나왔다.
"폭풍 구궁팔괘진 개진!"
짤막한 심자앙의 말에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달려가는 전 폭풍문도의 기세는 태산이라도 단숨에 뭉갤 기세였다. 물론 그 축에는 소천악이 힘차게 지휘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두 개의 세력이 바야흐로 전력으로 붙었다. 그 결과는 참혹한 지옥도 바로 그 자체였다.
진법의 힘을 빌었다고는 하나 워낙 강력한 혈교의 기세에 조금씩 조금씩 폭풍문도의 걸음이 무뎌지며 밀렸다. 처음엔 아주 사소한 열세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파죽지세로 격파될 듯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초조한 얼굴로 지휘하며 땀을 흘리는 심자앙이었다. 불과 이 각여만 지나면 완패할 위기상황이었다. 그 순간 그의 귀에 전음성이 들렸다.
[마교가 왔소.]
전음성에 안색이 밝아진 심자앙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마교의 원군이 왔다. 모두 힘을 내어 혈교를 물리쳐라."
"와아! 마교다."
힘겨운 듯 밀리던 폭풍문도들이 거세게 소리치며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가했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우르르 몰려드는 마교 무인들이 소리쳤다.
"천년마교의 반도 혈교를 박살내라."
"천하의 겁쟁이 마교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바로 혈교 무인 사이에서 원한 어린 목소리가 들리며 반발했다. 천하의 강파들이 모두 모여든 일이었다. 혈교와 폭풍문의 혈전은 점점 확대되며 마교까지 끼어들자 무서운 접전으로 변했다.
약간 열세에 몰렸던 폭풍문이 마교의 합류로 금세 기세를 되찾고 무섭게 혈교를 압박해 들어갔다. 하나 천하를 노리고 힘을 길러왔던 혈교의 저력은 실로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