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5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58화
"문주님께 보고 올립니다. 혈교의 마지막 선봉대원들이 지금 접근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었군."
소천악은 눈빛을 번쩍 빛내며 주위에 있는 수뇌부들에게 말했다.
"자, 명심하시오. 우리들의 임무는 적을 분산시켜 우리의 모든 전력으로 토막내는 것이요."
"알고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혈교의 쓰레기들을 단번에 쓸어버리겠습니다."
사존각의 뇌가이 각주의 섬뜩한 말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속했던 사존맹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린 혈교에 대한 원한은 아직까지 그리 약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 옆에 서 있던 집마각의 왕처기 각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마음을 짐작한 소천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명심하십시오. 심 군사님 말대로 우리는 쐐기형으로 적진을 정통으로 가로질러 양분시킵니다. 앞에 아무래도 혈교의 정예가 몰려 있는 관계로 집마각과 사존각의 고수님들이 힘을 써주셔야 할 거 같소."
"물론입니다. 쓸어버리죠."
"병력은 우리가 절대 위이니 별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요. 일대일로 붙어도 자신 있습니다."
패기 넘치는 뇌가이 각주의 말에 소천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자신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던 탁천웅에게 말했다.
"천웅아."
"네, 형님."
"형님이 뭐냐? 문주님이라고 불러라."
"에이, 저는 형님이 편합니다."
"그래, 네 맘대로 하거라. 너를 누가 말리겠느냐."
이미 다른 폭풍문도들도 탁천웅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어 별다른 저항을 보내지는 않았다.
"천웅이 너는 갈라 친 뒷부분의 적의 오합지졸들을 쓸어버리도록 해라."
"네. 말만 하세요, 형님."
"폭풍 3대의 인원을 끌고 가서 쓸어버려라."
"그렇게 하죠. 그런데 왜 나한테는 오합지졸을 주는 겁니까?"
"생각해 봐라. 앞에는 정예들이 많은데 너의 외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위험성이 다분히 있어."
"자신 있습니다. 형님, 그래도……."
"야야, 너는 지금 신혼인데 네가 여기서 다치기라도 하면 제수씨를 과부로 만들 생각이냐?"
"그렇군요. 우리 아내를 생각해야겠어요."
탁천웅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소천악의 말을 따랐다. 역시 결혼 하면 사람을 버리는 첩경이라고 생각하며 소천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름대로 공격할 폭풍문도에게 모든 지시를 내린 후에 심자앙 군사에게 다가섰다.
"심 군사님, 이제부터 심 군사님께 모든 우리 폭풍문도의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문주님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나야 당연히 나가서 싸워야지요."
너무도 당연한 듯한 소천악의 반응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심자앙이다. 사실 문파의 문주가 선봉에 나서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하면 일거에 문파가 구심점을 잃고 궤멸할 우려가 있는 아찔한 방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도들에게 사기를 올려주는 최상의 병법이기도 했다. 문주가 직접 나서면 아무래도 문도들이 신뢰하는 깊이가 천양지차로 차이가 날 건 뻔했다.
심자앙은 자기가 봤던 소천악의 놀라운 무공을 믿기로 결정하고 더 이상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이 혈교의 선봉대 중 마지막에 밀려오는 이백여 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움직이는 신법을 보면 하나같이 일류고수 이상의 막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만만치 않군. 저런 무인들을 수천 명이나 상대하려면 힘든 싸움이 될 뻔했어."
"원래 힘이란 분산되면 약해지고 모이면 세지는 법입니다.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으니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심자앙과 얘기를 나눈 사이 드디어 혈교 선봉대 이백여 명은 포위망 속에 완전히 들어와 움직이고 있었다. 심자앙 책사가 가만히 상황을 판단해 보고 번개같이 명을 내렸다.
"이때다! 모두 공격해라!"
"와아!"
숨어 있던 수많은 폭풍문 고수들이 일제히 은신처에서 뛰어나가며 혈교 선봉대의 사방을 온통 포위해 들어갔다. 소천악은 맨 앞으로 치고 들어가며 집마각 그리고 사존각 두 각의 고수들과 함께 적진의 가운데를 정통으로 관통하기 시작했다.
검을 빼 든 소천악은 이미 모든 자비심을 버린 상태로 거세게 검을 밀고 들어갔다. 일체의 사전 동작 없이 직선으로 뻗어 들어가는 그의 검은 깨달음을 얻은 자답게 매섭게 기세를 뿌렸다.
"적이다! 모두 방어해라!"
뜻밖의 기습에 당황한 혈교의 고수들이 우왕좌왕했지만 역시 막강한 고수들답게 즉시 전형을 갖추며 대항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맨 앞에 치고 들어가는 자는 다른 이가 아닌 소천악이었다. 그는 번개같이 검을 십자로 휘두르며 적진을 치고 들어갔다. 번뜩이는 검광은 혈교 고수의 빈틈을 노리고 사정없이 짓쳐들어갔다.
푸숙!
사각!
살을 베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크악! 강하다! 모두 진영을 정비하여 대비하라!"
죽어가는 이들은 피를 튀기며 소리쳤지만 소천악은 이미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직선과 사선으로 베어가는 그의 검에는 내공이 가득 실려 있어 막아가는 검을 박살내면서 혈교도의 숨통을 사정없이 끊어갔다.
소천악이 밀려들어 간 그 자리를 폭풍문의 주력인 이 각의 고수들이 따라 쳐들어오며 거칠게 적진을 양분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우리를 가르려 한다! 모두 막아라!"
고수들을 이끌고 있던 막광이 발악하듯 소리쳤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기습을 당한 데다가 압도적인 무위를 자랑하는 소천악과 이 각의 고수들에 의해서 산산조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후는 학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소천악은 크게 소리쳤다.
"검을 든 자는 모두 죽이고 검을 버리고 항복하는 자는 사로잡아라."
두 번을 연달아 소리치는 소천악의 소리에 혈교 선봉대 고수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혈교 고수들은 기습에 걸리자 금방이라도 전멸당할 두려움에 당황한 기색으로 검을 들었다.
소천악이 슬쩍 뒤를 돌아보자 갈라 친 양쪽을 두고 탁천웅이 주도하는 폭풍 3대의 고수들이 후방의 적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후방의 고수들은 발악하듯 반항하며 탁천웅의 몸에 검을 댔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탁천웅은 자기도 모르게 짓쳐들어오는 검을 상관하지도 않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가차 없이 머리를 박살냈다. 수박 터지듯이 머리가 터져 나오며 수많은 혈교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탁천웅도 소천악의 말을 듣고 바로 소리쳤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되 검을 든 자는 모조리 죽여라!"
"존명!"
폭풍 3대의 모습은 이미 승세를 잡고 사기충천하게 소리치며 혈교 고수들을 압박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삼십여 명의 고수들이 죽어나가자 혈교 고수들은 전의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적은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숫자가 밀려들었고 자기들은 이미 전력이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승산이 전혀 없었다.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항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 한 혈교도가 소리쳤다.
"항복하자! 이대로는 다 죽는다!"
소리치며 그는 손에 든 검을 바닥으로 뿌리쳤다.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주춤거리며 혈교 고수 몇 명이 같이 눈치를 보며 검을 버렸다.
"모두 뭐 하냐? 검을 들어라!"
퍽!
항복한 모습에 화가 난 한 무인이 소리쳤지만 이미 그의 머리는 탁천웅의 쇠몽둥이에 맞아 피떡으로 변한 채 날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더 이상 반항할 여지를 잃은 혈교 고수들은 일제히 항복하며 검을 집어 던지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소천악과 마주친 앞에 있던 고수들은 상황이 좀 달랐다.
그들은 혈교의 정예로서 수많은 정신교육을 받은 자들로 쉽게 항복하려 들지 않았다. 소천악은 일제히 사정도 봐주지 않고 거세게 그들을 몰아쳤다.
여기서 사정을 봐준다는 것은 곧 폭풍문도의 피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천악으로서는 자비심이라고는 가질 수가 없었다.
그의 무심한 검은 종과 횡을 거침없이 내달리며 주위를 쑥밭으로 만들어갔다. 유가장에서 깨달은 그의 검학은 이미 초절정고수라 할지라도 함부로 대항할 경지가 아니었다. 더구나 절정고수 급이 저항할 능력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순식간에 앞을 막던 십여 명의 혈교 무인들이 비명과 함께 죽어갔다.
"네 이놈! 나의 검을 받아랏."
노기충천한 막광이 싸늘한 검광을 번뜩이며 뒤에서 급습했다.
"말은 멋진데 기습하면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소이다만."
차갑게 비웃으며 팽그르 몸을 돌린 소천악의 검은 무서운 기세로 내리치는 막광의 검을 별 힘도 안 들이고 가볍게 막아갔다.
막광은 손등으로 밀려오는 무서운 압박에 검을 든 오른팔이 마비지경에 이르러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살기를 피워올린 소천악이 가만히 바라볼 리가 없었다. 바로 물러나는 막광을 따라붙으며 무서운 검의 압박을 퍼부었다.
당하는 막광은 마치 거대한 파도가 숨쉴 틈 없이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안색이 대변한 그는 급히 자신의 절기인 귀혼사검을 전력으로 펼쳐냈다. 귀혼사검이 펼쳐지자 사방에서 귀곡성이 울려퍼지며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혼을 빼앗는 사이로운 검술이었다.
"아주 별 거지 같은 검술이구려. 그런데 어쩌지요? 오늘부로 그 검술은 강호에서 사라지는 게 보이네. 후후."
말은 가벼웠지만 사악한 검술에 화가 난 소천악의 검세가 급변했다. 광풍노도 같은 파도가 출렁이는 착각이 들 만큼 거센 공세가 이어지자 귀곡성이 묻히며 막광의 급소로 섬전같이 뻗어갔다.
"으허헉! 이런."
놀란 막광이 급히 몸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소천악의 검은 막광의 살을 가르며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잘 가시구려. 다음 생에서는 이런 더러운 검법을 익히지 마시고."
차가운 소천악의 말이 바로 저승사자의 마중이나 다름없었다. 원독의 광망을 뿜어내던 막광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작 네놈을 죽였어야 할 것을. 분하다."
"그냥 고이 가시지요. 죽이긴 누가 날 죽입니까! 그랬으면 당신이 좀 더 일찍 저승구경을 했을 겁니다."
비아냥거리는 소천악의 말을 이미 막광의 몸은 듣지 못했다. 벌써 혼백이 빠져나간 싸늘한 시신만이 남았을 뿐이다. 전세를 둘러보던 소천악의 눈이 반짝였다. 아무리 봐도 골수 혈교인들로 보이는 선봉대는 항복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항복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여라. 시간이 없다. 자를 도마뱀 꼬리가 아직 수두룩하다."
광오한 외침에 압박하던 폭풍문도의 기세가 더욱 거칠게 나타났다. 혈교 선봉대는 발악하다 소리를 듣고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일부 혈교도는 밀려오는 폭풍문도의 기세에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검을 내려놓았다.
사전의 명대로 폭풍문도는 항복한 자의 혈도를 짚어놓고 저항하는 자를 모조리 척살해 갔다.
하지만 항복하는 자는 손가락으로 꼽아도 남을 지경이었다. 발악적인 혈교의 저항은 얼마 안 지나 핏물 속에 잠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