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2화
22화. 재회 (2)
“정말 적 사형이에요? 맞아요?”
뒤따라오던 주양악이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적운상을 보며 물었다. 적운상은 대답 없이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이 사람이 서린 사저가 말하던 셋째 사형이었구나.’
나연란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적운상이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위의 사저인 은서린은 그녀에게 적운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었다.
그녀와 동생인 나연오를 데려온 것도 그이고, 형산파를 떠나기 전까지 누구보다 잘 보살펴줬던 것도 그라고 했었다. 나연란은 은서린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을지를 상상했었다.
은서린의 말로는 조금(?) 뚱뚱하지만 항상 남을 배려하고 위해주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었다. 거기다 능력(?)이 대단해서 못 하는 것이 없다고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그녀가 말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외모가 달랐다. 방금도 지나가는 여자들 두 명이 적운상을 힐끗 보며 지들끼리 수군거리며 지나갔다. 그 왈가닥인 주양악도 얼굴을 살짝 붉히며 적운상을 계속 훔쳐보고 있었다.
게다가 무공도 대단한 것 같았다. 아까 그 연씨 성을 가진 재수 없는 바람둥이가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고소하던지.
모든 것이 은서린이 이야기한 것보다 더 뛰어났고, 나연란이 상상해 왔던 것보다 대단했다. 나연란은 그런 사람이 자신의 셋째 사형이라는데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훗!”
“왜 웃어?”
“사저는 몰라도 돼요.”
“이게 기어오르려고 하네.”
주양악이 나연란을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적운상과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손을 내렸다.
‘으… 이게 아닌데. 이상하게 주눅이 든단 말이야. 확실히 옛날의 적 사형이 아니야. 정말 적 사형이 맞는 건가?’
“연오는 어디에 있지?”
적운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연란에게 물었다. 주양악을 대하던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연오는…….”
나연란이 말끝을 흐렸다.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괜찮아. 사형이 뭐든 도와줄게. 그러니까 말해 봐.”
사형제들 중에서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오로지 은서린뿐이었다.
대사형 막정위와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고, 둘째 사형 초사영은 성정이 차가웠다. 그리고 넷째 사저 주양악은 왈가닥이라 부려먹으려고만 했고, 다섯째 사형 도자명은 뭐가 그리 잘났는지 아예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그들과 비교가 되자 나연란은 적운상이 정말 뭐든지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은 연오가 요즘 질이 안 좋은 애들하고 어울려서 걱정이에요.”
“누구랑 어울리는데.”
“금벽도문(金璧刀門)이라고, 사부님이 그들과는 말도 나누지 말라고 했는데…….”
“뭐? 또 금벽도문 놈들하고 논단 말이야? 내가 흑도문파하고는 어울리지 말라고 했잖아!”
주양악이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적운상 때문이었다. 단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뭔 박력이 그리 대단한지, 기가 팍 눌리는 느낌이었다.
“네가 잘 보살피지 못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어린 사제와 사매를 놔두고 벌써부터 남자랑 붙어 다니니까 그렇지!”
적운상이 큰 소리로 나무라자, 주양악은 억울한 마음에 울컥 화가 치솟았다.
“익! 그게 아니라고요! 나라고 뭐 좋아서 그런 놈을 만나고 다니는 줄 알아요?”
“그럼 뭔데!”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 자식이 행실 더럽고 바람둥이어도 어쨌든 연씨세가의 차남이라고요! 아니꼽고 더러워도 붙잡아서 시집이라도 가면 형산파가 지금보다는 나아지잖아요!”
“시끄러!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딴 놈 덕 좀 보자고 몸을 팔겠다는 거야!”
적운상이 감정이 격해지자 말이 심하게 나왔다. 그러자 주양악이 입술을 꽉 깨물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악을 썼다.
“그게 뭐 어때서! 사형이 뭘 알아! 말도 없이 사라져서 이제 나타나서는 뭘 하겠다고! 십 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기나 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갑자기 나타나서 사형 행세하려고 하지 말란 말이야!”
주양악이 숨을 씩씩거리면서 적운상을 노려봤다.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태도였다.
적운상은 이렇게 원망을 들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에 잠시 멍하니 그녀를 보다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다. 늦게 돌아와서…….”
“에?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주양악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도 이렇게 악을 쓰며 대들 생각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적운상이 자꾸 소리를 치며 나무라기만 하자, 그동안 꾹 눌러놓았던 답답한 마음이 한순간에 터지면서 주체를 못 한 것이다.
“내가 말이 심했다. 너도 답답해서 그런 거겠지만, 앞으로 그런 생각은 하지 마. 누가 뭐래도 넌 내 사매다. 형산파 문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마. 그딴 놈한테는 절대로 안 줘.”
“사형…….”
주양악은 그제야 적운상이 성격은 변했어도, 사형제들을 위하던 따뜻한 마음은 그대로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자.”
적운상이 몸을 돌렸다. 나연란이 적운상의 목을 꼭 껴안았다. 나름대로 적운상을 위로하려는 행동이었다. 적운상이 그런 나연란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소리 질러서 놀랐지?”
“으응. 괜찮아요.”
적운상은 말없이 계속 걸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주양악 역시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 * *
“아마 저기에 있을 거예요.”
나연란이 가리키는 대로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자,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들 근육이 우락부락하고 얼굴이 험악하게 생긴 자들이었다.
그들을 보고 나연란이 살짝 겁을 먹었다.
“괜찮아. 겁먹지 마. 저런 놈들한테 주눅들 필요 없어.”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 뒤에서 아이들 서너 명이 치고받으며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연오야!”
나연란이 소리치자 사내들이 이쪽을 봤다.
“뭐야? 저리 꺼져!”
“사제를 데리러 왔다.”
“뭐? 하! 너 형산파 사람이냐?”
사내들이 위협적인 몸짓으로 돌아섰다. 그걸 보고 적운상은 안고 있던 나연란을 내려놓으면서 생긋 미소를 지었다.
“잠시 여기 있어.”
“네.”
“비켜.”
적운상이 나직이 하는 말에 그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우리가 금벽도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냐?”
“몰라. 비켜.”
“하하. 이거야 원. 말이 안 통하잖아.”
“일단 한 군데 부러트려 주지.”
사내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때 세 명의 아이들을 상대로 혼자 싸우던 나연오가 얼굴을 맞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그러자 아이들이 나연오를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헉헉! 이제 말해. 형산파는 쓰레기고, 금벽도문이 제일이라고.”
“퉤! 너도 그런 시시한 데 있지 말고 금벽도문으로 와.”
아이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하는 말에 나연오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으으… 닥쳐… 비겁하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면서…….”
나연오의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아이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새끼가 아직도…….”
“밟아!”
그때였다.
“나연오!”
적운상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그 박력에 앞을 막아섰던 사내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다. 아이들 역시 놀라서 적운상을 봤다.
“일어나! 형산파가 모욕당했는데도 그대로 있을 테냐?”
나연오가 순간 멍한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지금까지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사부인 임옥군만이 형산파의 문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라고 했을 뿐이었다.
“지랄! 삼류 쓰레기 문파 주제에. 그럼 네가 해봐, 새끼야!”
앞에 있던 사내가 적운상에게 달려들며 단검을 휘둘렀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단검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아서 꺾었다. 그러자 단검이 그대로 그의 어깨에 박혔다.
“으아아악!”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런 썅!”
다른 사내들이 거칠게 욕을 뱉어내며 우르르 덤벼들었다. 하지만 적운상이 팔을 꺾어서 잡고 있던 사내로 앞을 가리자 그들이 멈칫하며 공격해 오지 못했다.
“다수와 싸울 때는 한쪽으로 모두 몰아서 시야에 둘 것!”
적운상이 크게 소리치면서 잡고 있던 사내의 손을 누르자 단검이 어깨를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악!”
“저, 저…….”
동료가 당하는데도 아무것도 못 하자 사내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적운상은 비명을 지르는 사내의 무릎을 발로 차서 넘어트리며, 한 손으로 그의 턱을 돌렸다. 그러자 고개가 홱 돌아가면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
“손을 쓸 때는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사내 하나가 적운상을 향해 유엽도를 내려쳤다. 하지만 그가 미처 내려치기도 전에 적운상이 칼을 잡고 있던 그의 손목을 쳐올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목을 쳤다. 풍뢰십삼식을 맨손으로 펼친 것이다.
“컥!”
사내가 목을 잡고 비틀거리자, 적운상이 그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물러나면서 땅에 찍었다.
쿵!
“공격은 언제나 기다리지 않고 먼저 한다!”
세 명이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하자, 사내들이 그제야 적운상을 얕보던 마음을 버리고 조심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죽어!”
사내 하나가 칼을 내려쳐오자 적운상이 한 손으로는 그의 팔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옷깃을 잡아당겨 벽에 처박았다.
그러느라 등이 드러나자 다른 사내가 들고 있던 단도를 휘둘러왔다. 적운상은 같은 초식으로 단도를 휘둘러오는 그의 팔을 치면서, 다른 손으로는 얼굴을 쳤다.
“컥!”
그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자 적운상이 단도를 빼앗아서 옆구리를 찍고, 어깨를 베었다.
“크아아악!”
사내가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자 남은 두 명이 들고 있던 한 자 남짓한 박도를 마구 휘둘러왔다.
적운상은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단도로 두 사람이 휘두르는 칼을 모두 쳐냈다.
챙챙챙챙! 파각!
“크윽!”
좌측에 있던 사내가 팔을 베이면서 손을 움츠렸다. 하지만 다시 박도를 휘둘러왔다.
적운상은 여전히 같은 초식으로 두 사람의 공격을 모두 옆으로 쳐냈다.
챙챙챙챙! 파각!
“끄윽!”
이번에는 우측에 있던 사내가 손목을 베였다. 그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적운상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사내가 얼결에 딸려 오자 어깨를 베고 지나쳐 가며 그의 목 뒤를 찍었다.
그걸 보고 좌측에 있던 사내가 박도로 적운상의 어깨를 사선으로 내려쳤다.
적운상이 단도로 그의 박도를 쳐내고, 이어서 팔과 어깨를 순식간에 찍었다. 풍뢰십삼식의 일식삼타였다.
“크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는 사이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이 유엽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적운상의 단도가 그의 손목과 팔, 어깨를 연이어 찍고, 마지막으로 목을 벴다.
“끅…….”
그들이 쓰러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던 주양악이 기겁을 하며 다가왔다. 일곱 명을 이렇게 손쉽게 쓰러트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들을 죽이면 어떻게 해! 금벽도문은 이 근처를 꽉 잡고 있는 흑도문파라고! …요.”
주양악이 흥분해서 소리치다가, 적운상과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요’자를 붙여서 존대를 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 악을 쓰며 대들 때야 제정신이 아니어서 얼결에 반말을 해댔지만, 지금은 뿜어내는 박력 때문에 시선조차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왜 자꾸 이렇게 주눅이 들지.’
“이들은 흑도문파다. 어설프게 건드리면 오히려 이쪽이 다쳐.”
흑도문파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적운상이었다. 그는 새외에서 이 같은 자들을 수도 없이 겪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약하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기 전까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지금도 적운상은 여차하면 금벽도문을 완전히 지워버릴 생각으로 손을 쓴 것이다.
어차피 흑도문파는 사회악이었다. 앞으로 형산파가 일어서려면 싫든 좋든 한 번은 부딪치게 되어 있었다.
적운상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나연오를 향해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나연오!”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연오도 적운상이 싸우는 모습에 넋을 빼앗긴 채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