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7화
17화. 겹치는 인연 (5)
“이쪽이다!”
“여기다! 여기!”
목소리를 들어보니 수적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아예 끝장을 보려는 듯, 우르르 몰려왔다. 못 되어도 오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운학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띠더니, 일제히 칼을 뽑아 들고 주위를 에워쌌다. 그의 무공이 뛰어나 마음에 걸렸었는데, 저 꼴이니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큭큭. 저년은 내 거야. 손대지 마.”
“지랄! 먼저 잡는 놈이 임자지.”
수적들이 음흉한 눈으로 상관보연의 아래위를 훑어봤다. 그녀는 지금 옷이 물에 젖어 균형이 잘 잡힌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대들의 두목이 누구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네.”
상관도백이 수적들을 회유할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상관보의 재력이라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수적들은 낄낄대며 그를 우롱하기 시작했다.
“내가 두목인데.”
“니가 언제부터 두목 했어? 두목은 나다. 나한테 말해.”
“큭큭. 그럼 나는 두목 할아비다.”
상관도백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저들이 처음부터 아예 작심을 하고 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상관보를 적으로 돌리고 무사할 줄 아느냐?”
“흐흐. 걱정 마라. 상관보는 우리가 잘 처리해 줄 테니까.”
“우선 저 계집부터 말이야.”
“흐흐.”
상관도백이나 상관보연은 지금 수중에 무기가 없었다. 이곳까지 헤엄을 쳐오느라 물에 모두 빠트린 것이다.
상관보연이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의 허리에는 보란 듯이 칼이 두 개나 걸려 있었다.
“검 하나만 빌려줘요.”
그녀의 말투가 살짝 변했다.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막 나가는군. 무인한테 검을 빌려달란 소리는 죽여 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야. 뒤로 물러나 있어.”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수적들을 쳐다봤다.
“딱 한 번만 말한다. 나 형산파의 적운상이다. 알아서들 꺼져라.”
“뭐?”
수적들은 적운상이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자 잠시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그러다 모두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큭큭. 저거 미친놈 아니야?”
“형산파는 또 어디에 붙어 있는 거냐? 너 아냐?”
“알긴, 어디 산골짜기에 처박혀 있는 삼류문파겠지.”
“어디서 개나리 풀 꺾는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죽어라.”
수적들이 적운상을 조롱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형산파를 조롱한 것은 문제였다.
“삼류문파라…….”
적운상이 무덤덤하니 나직이 중얼거렸다.
‘헛! 설마…….’
적운상의 반응에 구혁상이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피하시오! 어서 이쪽으로! 당신도 저쪽으로 가! 살고 싶으면 어서 가!”
구혁상이 뚱뚱한 사내를 재촉하며 운학이 누워 있는 바위 위로 올라갔다. 당장에 피할 곳이 거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관보연과 상관도백은 이유를 몰라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구혁상이 답답한 듯이 소리쳤다.
“빨리 이쪽으로 오시오. 안 그럼 모두 죽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명할 시간 없소! 저놈이 헤까닥 돌아버렸단 말이오.”
구혁상이 하도 다급하게 소리치자 수적들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그러나 이쪽은 오십 명이 넘었다. 더구나 고수들도 몇 명이나 있었다. 저들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상관보연이라고 생각이 크게 다를 리 없었다. 하지만 무표정하니 서 있는 적운상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때 적운상이 가만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두 손을 물에 담갔다.
그걸 보고 상관보연은 적운상이 뭔가를 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아버님, 일단 저분의 말에 따라요.”
“흥! 필요 없다.”
그때 정신을 잃고 있던 운학이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걸 본 상관도백이 반가운 얼굴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구혁상이 들고 있던 칼로 운학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빠악!
“컥!”
구혁상은 이런 상황에서 운학이 일어나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는 상관도백은 순간 당황이 되어 할 말을 잊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 다시 기절을 시키면 어쩌자는 말인가?
“어서 오시오!”
“할아버님! 어서요!”
“지금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란 말이오.”
“할아버님!”
상관보연이 상관도백의 팔을 잡아끌며 적운상을 봤다. 순간 그가 히죽 웃었다. 몹시 위험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상관보연의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놔라! 왜 이러느냐?”
상관도백이 소리치는데 적운상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물에 담그고 있는 그의 손에서 뭔가가 빠지직거렸다.
‘위험해!’
상관보연은 상관도백의 양팔을 잡고 다리를 걸어 넘겼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상관도백이 휘청했다. 그러자 상관보연이 그의 몸을 안고 바위로 몸을 날렸다.
“흐아아아앗!”
적운상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뭐야?”
“막아라!”
뒤늦게 수적들이 적운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빠지지지지지직!
“히에에엑!”
“크아아악!”
비명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끝이었다. 방금까지 칼을 휘둘러오던 자들은 물론이고, 그 뒤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던 자들까지 모두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눈은 하얗게 뒤집혀 있고, 혀를 빼문 끔찍한 모습이었다. 허연 수증기가 나는 몸이 한 번씩 꿈틀거릴 때마다 파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적운상이 한순간 금안뇌정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모두 퍼붓자, 물을 통해 순식간에 모두의 몸으로 타고 들어간 것이다.
뇌룡의 뇌기만 해도 말 한 마리를 쉽게 즉사시킬 정도였다. 거기에 벼락까지 흡수한 적운상의 뇌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꿀꺽!
상관도백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러면서 상관보연을 봤다. 그녀가 억지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저들처럼 저기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상관보연은 저런 무공이 있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저리 된단 말인가?
적운상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돌려 이쪽을 봤다. 그가 히죽 웃었다. 그러자 모두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
‘아직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것인가?’
“우, 운상아…….”
구혁상이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네, 사숙조님.”
적운상이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다행히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그것을 보고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휘이이잉!
세찬 바람이 한 번 불자 갈대가 휘청거렸다. 상관도백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바위에 앉아 있었다. 그의 나이 이미 육십이 훌쩍 넘어 있었다.
그동안 호남상단을 키우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해왔다. 지금과 같이 위급한 상황도 수없이 겪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엉망이었던 적은 없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좀더 침착하게 대응을 했어야 했다. 좀더 사람을 제대로 봤어야 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항상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그의 내면과 장래성을 보지 않았던가?
그러데 이번에는 왜 그랬던 것일까?
문득 구혁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든 항상 전후 사정을 잘 알아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니오? 하지만 거기에 가까운 지인이 얽히면 감정이 먼저 앞서게 되는 경우가 많소. 보아하니 지금 상관보주가 그렇구려.
“음…….”
그랬다. 상관보연 때문에 형산파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본 것이 문제였다. 감정적으로 대했던 것이다.
보통 자신의 사문을 무시하면 당장에 칼부터 뽑아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구혁상은 조용한 어조로 도리부터 따졌다. 기본이 갖춰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면 전에 만났던 형산파 사람들도 그랬었다. 상관보를 대함에 있어서 조금의 비굴함도 보이지 않고 당당했었다.
그저 무공이 약했을 뿐인데, 감정이 앞서는 바람에 그러한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들의 단점만 봤던 것이다.
‘나이가 들었음인가?’
상관도백이 고개를 흔들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들면 고집만 는다더니…….
때늦은 후회감이 들었다.
“할아버님.”
상관도백이 계속 허망한 얼굴을 하고 있자 상관보연이 걱정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래. 허허. 괜찮다.”
허탈한 웃음이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나 상관보연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저 옆에 서 있기만 했다.
상관도백이 그런 그녀를 멍하니 보다가 옆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운학을 봤다. 그러자 다시 한숨이 나왔다. 그를 너무 믿었다. 아무리 무당십걸이라 해도 좀더 이것저것 재봤어야 했다.
처음에는 운학이 그 명성에 걸맞을 만큼 뛰어나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수적들을 상대하는 그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이쪽을 무시했음인지, 운학은 혼자서만 싸우려고 했다. 어찌 보면 혼자 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운학은 늘 혼자서 험난한 일들을 해결해 왔다. 그러다 보니 혼자 싸우는 것이 습관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수적들이 생각 외로 강했다. 이것저것 준비를 한 것도 많았고, 고수들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그는 헤엄을 못 치기 때문에 배가 가라앉으면서부터는 마음에 여유를 잃었다. 아마 물에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싸웠다면 운학은 제 실력발휘를 충분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상관도백이 알 리가 없으니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적운상은 어떻던가?
상관도백은 형산파는 물론이고 그와 구혁상도 무시를 했다. 거기에 더해 상관보연은 막말을 하며 욕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큰 도움을 줬다. 단순히 수적들을 해치우고 목숨만 구해준 것이 아니었다.
구혁상과 떠나면서 적운상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그 상황에서 짐을 지키려고 했다면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모두 수장됐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도 살아남기 힘들었겠죠. 그나마 반 이상은 수적들이 챙겨 갔으니 당분간은 잘 보관을 해줄 겁니다. 상관보에 돈이 많다니, 가서 타협을 하든가, 아니면 무사들을 고용해서 되찾아오면 될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상관도백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제야 적운상이 왜 그렇게 열심히 짐을 날랐는지 이해가 갔다.
어쨌든 간에 짐만 무사하다면, 적운상의 말대로 무슨 수를 쓰든 다시 찾아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 짐들이 모두 수장됐다면, 되찾을 길이 아예 없었다. 정말 그랬다면 상관보는 어마어마한 손해를 봤을 것이다. 섬서성의 흑도문파들이 모아준 돈이 대부분 거기에 투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룡(潛龍)인 게야.’
호남성에는 수많은 무림방파들이 난립해 있다. 그들 모두가 스스로를 최고라고 하지만, 정말 정점에 우뚝 서서, 호남성을 대표할 만한 방파는 없었다.
상관도백은 어쩌면 형산파가 그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남성에는 소림사가 있고, 호북성에는 무당파가 있듯이, 호남성에는 형산파가 있음을 천하가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 생각됐다.
그러자 구혁상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소이다. 흥하면 망하는 법이고, 시들었으면 다시 피는 법.
‘그렇지. 그게 세상의 이치인 게지.’
상관도백은 크게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상관보연이 그의 팔에 매달리며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가요, 할아버님.”
“그래. 그러자꾸나.”
상관도백이 씁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할 일이 많았다. 짐을 되찾아 오고, 뒤에서 누가 수작을 부렸는지도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형산파와의 인연도 새롭게 맺어야 했다.
처음에야 돈이 좀 들겠지만, 나중에는 이렇게 고생하면서 섬서성까지 왕복하는 것보다 몇 배는 벌어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곳에서 채가기 전에 먼저 손을 써놓아야 했다. 형산파에서 과연 받아줄지는 의문이었지만 노력은 해봐야 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뚱뚱한 사내가 운학을 가리키며 물었다.
“버리고 갈 수는 없으니 자네가 수고를 좀 하게.”
전에 없이 부드러운 말투였다. 지금까지 날이 바짝 서 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알겠습니다, 보주님.”
뚱뚱한 사내가 크게 대답을 하면서 운학을 둘러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