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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5화

15화. 겹치는 인연 (3)

 

구혁상은 속으로 낮게 혀를 찼다. 상대가 상관보면 굉장히 좋지 않았다.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이었다. 도대체 본 문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저런단 말인가?

“헉!”

순간 구혁상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적운상의 상태가 심상찮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표정하니 상관도백을 보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무표정하다는 것이었다.

적운상은 형산파에 대한 자긍심이 강했다. 구혁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가 십 년 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형산파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것과 형산파 문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이에 적운상은 거의 세뇌되다시피 그러한 것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런데 상관도백이 대놓고 형산파를 무시한 것이다. 구혁상이 적절히 대응하기는 했지만, 보아하니 그게 마음에 안 든 것 같았다.

평소의 반응이라면 형산파를 얕잡아본다고 화를 내면서 한마디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적운상은 화난 기색이 전혀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설마…….’

구혁상은 적운상이 또 돌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확, 돌아버리는 적운상이었다. 그러면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한 일 년간은 잠잠했었다. 그래서 구혁상은 적운상의 그 지랄 같은 성질이 고쳐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며칠 전에 잠깐 어디를 갔다 오겠다고 나가더니 확 돌아버려서는 흑도문파 하나를 개박살 내버렸다. 뒤탈이 생길까 부랴부랴 도망쳐 오기는 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뒤가 찜찜했다.

흑도문파는 무공이 강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야비한 방법을 쓰며, 개떼처럼 덤벼든다. 그래서 일단 한 번 건드리면 끝장을 봐야 했다. 아니면 이렇게 멀리 내빼는 것이 최고였다.

그때 이유를 물어봤으나 적운상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갑자기 돌아버리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놈이니, 뭔 이유가 있겠는가?

아니, 이유야 있겠지만 구혁상은 아주 시답잖은 것이라 여겼다. 그는 장지이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지금 적운상이 난리를 피우면 끝장이었다. 상관보와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고, 무당파에 자신의 종적이 드러나 또다시 쫓기게 될지도 몰랐다.

구혁상이 단전에 내공을 잔뜩 모으고 아까 숨겨놓은 칼을 슬쩍 들었다. 여차하면 그걸로 적운상의 뒤통수를 후려쳐서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뭐 하세요, 사숙조님?”

“응?”

적운상이 구혁상에게 물었다. 그의 시선은 구혁상이 들고 있는 칼에 가 있었다.

“지금은 좀 참으세요. 잘 말해 놓고 그렇게 뒤에서 날뛰면 오히려 본 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예요.”

“허!”

구혁상은 기가 막혔다. 날뛰기는 도대체 누가 날뛴단 말인가?

“아니다, 이놈아. 이건…….”

순간 구혁상은 말문이 턱하니 막혔다. 차마 그를 후려치기 위해 든 거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이제 성질 좀 죽이고 사세요. 나이도 드셨고, 저도 있잖아요.”

“에휴…….”

구혁상은 억울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발 사람 좀 놀라게 하지 마라, 이 녀석아.”

“네?”

적운상이 말뜻을 몰라 어리둥절한 모습을 했다.

“에휴, 썩을 놈 같으니라고.”

“왜 그러세요? 갑자기.”

“아니다. 됐다.”

구혁상이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적운상이 심각하게 그를 불렀다.

“사숙조님.”

“또, 왜?”

“전에 세상에는 알아서 득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하셨죠? 상관보는 알아서 득이 되는 곳이고요.”

“그랬지.”

“앞으로는 상관보에서 우리를 알아야 득이 될 겁니다.”

적운상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걸 보며 구혁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그리될 게다. 천하의 그 누구도 형산파를 무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방금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은 구혁상이 적운상을 보며 뿌듯한 얼굴을 했다.

* * *

 

“잠시 못난 꼴을 보였구려.”

상관도백이 하는 말에 운학이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개의치 않습니다.”

“내 손녀딸이라오.”

“반갑습니다. 저는 무당파의 운학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어요. 상관보연이라고 해요.”

인사를 하는 상관보연의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그녀는 상관도백이 구혁상과 적운상을 그렇게 대한 것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관도백은 누군가를 만날 때면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졌다. 꼼꼼하게 그 사람의 앞날까지 따져보고 이득이 된다 싶으면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내쳤다. 그는 뼛속까지 장사꾼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실수를 했다. 상관보연은 상관도백이 나중에 적운상에 대해 알고 나면 어떻게 대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상관보에 재색(才色)을 겸비하고 상재가 뛰어난 여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야 만나게 되는군요.”

“칭찬이 과하군요.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하하하.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운학진인이 마침 호남성에 볼일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며칠간 본가에서 대접하기로 했다.”

“호남성에는 무슨 일로 가는 거죠?”

“별일 아닙니다. 실은 며칠 전에 모종의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도락방이라는 흑도문파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된 사건이었죠.”

도락방 이야기가 나오자 상관보연의 시선이 잠시 적운상에게 향했다. 운학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 일이라면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도락방에 들르고 난 이후에 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관에서 포쾌가 찾아왔다가 갔었어요. 혹시 저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상관보는 도락방과 이제 막 거래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손해를 안고 그들을 죽일 리가 없지요.”

“손해를 감수한다면 그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제가 실언을 했군요.”

“보연아, 예의를 갖추어라.”

상관도백이 꾸짖듯이 말하자 상관보연이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운학은 그런 상관보연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일에 왜 무당파가 관심을 가지는 거죠?”

“관에서 부탁을 해왔소. 혹시나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일러달라고 하더군요. 범인에 대한 것은 대충이나마 짐작이 가는데 확신이 없어서 말이지요.”

순간 상관보연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뭔가 알고 있군.’

“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니, 원래 처리하려던 일을 하려고 이렇게 가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상관보연이 속으로 안도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 앞쪽에 두 척의 커다란 배가 나타났다. 그 두 척의 배는 그들이 타고 있는 배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앞을 가로막았다.

“저게 무슨 짓… 컥!”

상관보의 무사 하나가 말을 하다가 뒤로 튕겨지며 넘어졌다. 그의 가슴에는 기다란 작살이 하나 박혀 있었다.

“수적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무기를 빼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두 척의 배가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면서, 거기에 타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작살을 던지기 시작했다.

“피해!”

상관보의 무사 하나가 크게 외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수적들이 던지는 작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갑판 위에도 내리꽂혔다.

“으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관도백과 상관보연은 다행히 운학이 곁에 있었기에 무사할 수가 있었다.

운학은 수없이 많은 작살이 날아오는데도 침착하게 검을 뽑았다. 그리고 날아오는 작살을 가볍게 한 번씩 건드렸다. 그러자 그의 검에 이끌려 작살이 모두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무당파 무공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동작이었다. 무당파의 무공은 부드러움이 주를 이룬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절대로 힘으로 맞서지 않는다. 상대의 힘을 느끼고 거기에 따라 검을 휘두른다.

그러자면 상대의 힘을 흘리는 공부가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 능유제강(能柔制强)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운학은 날아오는 작살에 검을 대는 그 짧은 찰나에, 작살이 날아가는 방향과 힘을 읽어내고, 방향을 슬쩍 틀어서 옆으로 흘려내고 있었다.

그 같은 동작에 상관도백은 크게 감탄을 했다. 무당십걸이 무당파를 대신한다더니,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학이 그렇게 상관도백을 감탄시키고 있을 때, 적운상은 구혁상과 함께 잔뜩 쌓여 있는 짐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수없이 많은 작살이 날아왔으나, 잔뜩 쌓여있는 짐을 뚫지는 못했다.

“이야… 저게 무당파의 무공인가 보죠?”

적운상이 슬쩍 고개를 내밀고 운학이 작살을 쳐내는 동작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래. 무당파는 화(化)를 중요시하지. 상대의 흐름을 읽고 중심을 흔들어 무너트린 후에 공격을 한다.”

텅!

작살 하나가 날아와 적운상의 옆에 있는 짐짝에 꽂혔다. 그러면 보통은 화들짝 놀라야 정상이건만 적운상은 무덤덤했다.

“너무 고개 내밀지 말거라.”

“궁금하잖아요.”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눈먼 칼에 죽는 것이 가장 억울한 것이다.”

“네.”

“허! 저들이 본격적으로 나오는구나.”

구혁상이 혀를 차면서 하는 말에 적운상이 옆에서 바짝 접근해 오는 수적들의 배를 봤다. 그들은 쇠사슬이 연결된 갈고리를 머리 위로 붕붕 돌리다가 힘껏 던져서 이쪽 배의 난간에 걸었다.

“당겨!”

양쪽 배에서 수십여 개의 갈고리를 걸어서 당기자 배와 배 사이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했다. 이쪽 배로 건너뛰기 위해 그렇게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막아라!”

상관도백이 소리치며 배에 걸려 있는 갈고리를 칼로 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온전히 서 있는 무사들이 몇 명 없었고, 배에 걸려 있는 갈고리는 수십여 개나 됐다. 더구나 갈고리를 쳐내려고 할 때마다 수적들이 집중적으로 작살을 던졌다.

“잠시 피해 계십시오.”

운학이 그렇게 말하고는 좌측에서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배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십여 개의 작살이 날아왔다.

“헛!”

운학은 날아오는 작살을 급히 쳐냈다. 그러다 그중 하나를 밟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 같은 경공에 밑에서 작살을 던지던 자들이 모두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건 적운상도 마찬가지였다.

“오오… 대단한데요.”

형산파에는 경공술이 없었다. 그래서 운학이 저렇게 멋있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자 조금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달리 무당십걸이겠느냐?”

“그러게요. 우리도 경공술이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적운상은 아무 뜻 없이 한 말이었지만, 구혁상은 마음이 씁쓸했다. 형산파에 경공술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윗대의 선배들이 형산파의 무공을 잘 보존하고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윗대에는 구혁상도 포함이 된다.

“이제 슬슬 나서서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

“네? 왜요?”

“왜라니? 그럼 이대로 보고만 있자는 말이냐?”

“그래야죠. 아까 그렇게 무시를 당했는데 왜 도와줘요?”

“허! 그래도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그거고, 이건 경우가 다르지 않느냐?”

“무당파 도사가 있잖아요. 게다가 저들을 보니까 아주 작정을 하고 온 것 같아요. 어쩐지 배가 없더라니…….”

적운상의 생각대로였다. 이곳으로 오면서 배가 없었던 이유가 그래서였다. 수적들이 이 배를 털기 위해서 손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안 도와주겠다는 거냐?”

“네.”

적운상이 간단하게 대답하자 구혁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시끄럽다!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더냐? 형산파는 협의(俠義)를 중시하는 명문정파라고 그동안 누누이 이르지 않았더냐? 협의 없이 휘두르는 검이 무엇이냐?”

구혁상이 서릿발 같은 노기를 보이자 적운상이 움찔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검(殺劒)이요.”

“맞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고 검을 휘두른다면 살귀(殺鬼)와 다를 게 뭐더냐? 사파의 흉악한 개백정 같은 놈들하고 다른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적운상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그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고, 한 번씩 돌아버리면 눈에 뵈는 게 없다지만, 잘못을 꾸짖는 사문의 어른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문인에 불과했다.

“네가 정녕 형산파의 문인이란 말이냐? 협의를 중시하는 명문정파의 문인이냐고 묻고 있지 않으냐?”

“네…….”

“허면 네 행동에 자긍심을 가지고, 또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네, 사숙조님.”

적운상이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자 구혁상이 화를 누그러트리면서 말했다.

“험! 그럼 됐다. 항상 형산파의 문인이라는 자긍심을 잃지 말거라. 가서 저들을 도와주자꾸나.”

“네, 사숙조님. 그런데 바닥이 자꾸 꺼지는 것 같은데요.”

“뭐?”

그제야 구혁상도 그것을 느끼고 슬쩍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아까는 비슷한 높이에 있던 수적들의 배가 지금은 한 자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높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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