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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0화

10화. 분노 (2)

 

“오라버니! 어서 오세요.”

“응.”

장지이가 적운상을 반갑게 맞았다. 적운상은 목수들처럼 옆구리에 나무를 몇 개 끼고, 손에는 공구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뭐예요? 혹시 목공일을 배우기로 한 거예요?”

“아니야. 소면이나 한 그릇 줘.”

“네.”

장지이가 금방 소면을 만들어서 내놓았다. 적운상이 그걸 후르륵거리면서 먹고 있는데, 장지이가 다시 물어왔다.

“이제는 무사 안 하기로 했어요? 잘 생각하셨어요. 오라버니한테는 칼 쓰는 거 어울리지 않아요.”

적운상이 면을 입에 문 채로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칼이 안 어울린다?

십 년 동안 먹고 싸고 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칼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칼을 안 휘두르고 있으면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적운상은 피식 미소를 흘렸다. 그 모습에 장지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어제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 걸까?

이상하게 오늘따라 적운상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적당한 키에 호리호리하고 탄탄한 체격, 따뜻한 성격에 요리도 잘하고, 무엇보다 앞머리에 가려질 듯, 말 듯 보이는 눈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크고 깊으면서, 신기하게도 가끔은 황금색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적운상은 소면을 다 먹고 나자 설거지를 했다. 장지이가 그러지 말라고 말렸지만, 적운상은 미소를 지으면서 끝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 들고 온 나무와 공구로 장지이의 수레를 고치기 시작했다. 전부터 망가진 곳들이 신경 쓰였었다. 내일 떠나면 언제 볼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마음먹고 고치기로 한 것이다.

한때 형산파의 궂은일이란 궂은일은 모두 맡아서 했던 적운상이었다. 거기다 십 년 동안 돌아다니면서 보고 배운 것이 많았다. 손수레를 고치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응. 이제는 몇 년이 지나도 문제없을 거야. 생각 같아서는 새로 하나 사주고 싶은데 말이야.”

“아니에요. 이것만 해도 충분해요.”

장지이가 손을 마구 저으며 말하다가 눈물을 글썽였다. 지금까지 누군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운상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왜 울고 그래?”

“헤. 아니에요. 그냥 기뻐서요.”

“저기…….”

“네?”

적운상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내일 여기 떠나.”

“……!”

장지이는 놀란 눈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낭인이라 오래 머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떠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가면… 이제는 안 올 거죠?”

“아니야. 나중에 꼭 다시 들를게.”

장지이가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적운상을 꼭 껴안았다. 적운상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얼결에 팔을 들었지만 차마 장지이를 껴안지는 못했다.

“저 잊어버리면 안 돼요.”

“응.”

그제야 적운상은 장지이를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내일 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러주세요. 저도 뭔가를 주고 싶어요.”

“아니. 안 그래도 되는데.”

“어차피 나 보고 갈 거잖아요. 설마 안 보고 갈 생각이었어요?”

“훗! 그래, 알았어.”

“약속했어요.”

“응.”

적운상의 대답에 장지이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 날.

적운상이 무료한 눈으로 멍하니 밖을 보고 있는데, 금계산을 찾으러 나갔던 구혁상이 돌아왔다.

“흐음… 아무리 찾아봐도 없구나. 이만 떠나자.”

“네, 사숙조님.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녀올 곳이 있어요.”

“빨리 갔다오너라.”

“네.”

적운상은 객잔을 나와 장지이가 소면을 파는 곳으로 달려갔다. 소면을 파는 수레는 그대로 있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적운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옆에서 만두를 팔던 노인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쯧쯧, 지이를 찾나?”

“네? 네. 어디 갔습니까?”

“그게 말이야…….”

노인은 잠시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적운상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지이는 어디 있습니까?”

“그게… 도락방(道樂幇) 놈들에게 끌려갔네.”

“도락방?”

적운상은 이틀 전에 와서 공짜로 소면을 먹고 갔던 사내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왜 지이를 데려간 겁니까?”

“빚이 있었어. 자네도 알다시피 지이 어미가 몸이 안 좋아. 약값 때문에 빚을 좀 졌는데, 놈들이 이자를 멋대로 붙여서 내놓으라 하니 그걸 갚기가 힘들었던 게지. 지이가 좀 반반하게 생겨서 처음부터 벼르고 있었을 게야.”

“그, 그럼…….”

“그래. 아침나절에 끌려갔으니 이미……. 후우……. 더러운 놈들 같으니라고.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치고 그놈들에게 안 뜯기는 사람이 없어.”

적운상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좀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때늦은 후회가 들었다.

“어딥니까?”

“뭐?”

“놈들이 있는 곳이 어딥니까?”

“관둬. 놈들이 얼마나 흉악한지 말도 못 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라고.”

“장소나 일러주십시오.”

“으음…….”

적운상은 노인이 알려준 곳으로 달렸다.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경공술을 배우지 못해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형산파에는 경공술이 없었다.

노인이 설명해 준 커다란 장원이 보였다.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에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나왔다.

그는 적운상의 아래위를 훑어봤다. 풍기는 기세가 심상찮고, 허리에 칼이 두 개나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일단은 하대를 하지 않고 물었다.

“누구요?”

“지이의 오라비 되는 사람이오. 그녀를 만나러 왔소.”

“지이? 지이가 누구지?”

“큰길 입구에서 소면을 팔던 아이요.”

“아아… 장지이…….”

그는 그제야 누군지 생각이 난 것 같았다.

“그런데 돈은 가져왔나?”

당장에 하대로 바뀌었다.

“물론이오.”

“음…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따라와.”

적운상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를 따라갔다.

장원은 꽤 넓었다. 커다란 전각만 해도 네다섯 채는 되는 것 같았다. 잘 꾸며진 정원을 지나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가자 한쪽에 창고로 보이는 허름한 곳이 보였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

사내가 그 말만 남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발 무사해라. 지이야. 제발…….’

이곳까지 오면서 적운상은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하며 밝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받는 것 없이 뭐든 주고픈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문이 열렸다.

“허리에 차고 있는 칼 모두 내놔.”

적운상은 아무 말 없이 사자도와 백운검을 풀어서 그에게 줬다. 그러자 그가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턱짓을 했다.

적운상이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조금 어두웠다. 안에 있던 사내들이 적운상을 보고 낄낄 댔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들을 훑어보던 적운상의 눈에 한쪽에 쓰러져있는 장지이가 보였다.

그녀는 엉망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산발이었고, 그 위에 찢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맨몸에 그냥 걸치고 있어서 살결이 다 드러나 보였다.

무엇보다 제정신이 아닌 듯, 멍하니 눈에 초점이 없어서 적운상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안 봐도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적운상이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자 옆에 있던 사내가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다른 사내가 장지이의 목을 안고 단검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돈은?”

“빚이 얼마냐?”

적운상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빌린 돈은 철전 오백 문이다. 하지만 제때에 갚지 못해 이자가 제법 붙었지. 금자 하나만 내라. 큭큭.”

사내가 말하면서 웃음을 흘리자 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같이 웃었다. 철전 오백 문…….

철전 오백 문이면 그리 많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면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장지이에게는 큰돈이었을 것이다.

철전 이천 문 정도가 은자 한 냥과 맞먹는다. 그리고 은자 스무 냥 정도가 금자 한 냥과 맞먹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자를 붙이면 철전 오백 문이 금자 한 냥으로 바뀐단 말인가?

적운상은 말없이 품에서 돈주머니를 건넸다. 그것을 열어본 사내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금자가 몇 개나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오오… 말귀를 잘 알아듣는 놈이군.”

적운상이 장지이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에 칼을 들이대고 있던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돈을 받은 사내에게 가기 위해 적운상을 지나쳐 갔다.

“큭큭. 저년 맛이 최고더군.”

적운상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장지이의 몸을 감쌌다.

“지이야, 나다. 지이야.”

멍하니 있던 장지이의 눈동자가 적운상에게 향했다. 눈물이 가득 차오르면서 흘러내렸다. 그녀는 손에 꼭 쥐고 있던 것을 적운상에게 줬다.

“이거…….”

그녀가 밤새도록 직접 구름을 수놓은 손수건이었다. 적운상이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장지이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이 맥없이 떨어졌다.

적운상이 놀라서 급히 그녀의 몸을 살폈다. 그제야 적운상은 그녀의 한 팔에 묶여 있는 줄을 봤다. 손목이 베여져 있는 것도 봤다. 그 자리에 피가 흥건했다.

흑도문파에서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손목을 묶어서 매달아놓고, 다른 쪽 손목을 칼로 벤 후에 지혈을 못 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겁을 주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 장지이는 그 시간 동안 저놈들에게 능욕을 당했을 것이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살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보아하니 저들도 몰랐던 것 같다. 그만큼 녀석들에게 당했다는 뜻이었다.

순간 가까스로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뚝 끊어졌다.

“…모조리 죽여주마.”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나직한 목소리였다. 적운상이 장지이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천천히 일어났다.

“뭐?”

사내들이 웃고 떠들다가 적운상을 봤다.

쾅!

아까 장지이의 얼굴에 단검을 들이댔던 사내가 넘어졌다. 적운상이 머리채를 잡아서 바닥에 찍은 것이다. 그가 들고 있던 단검은 어느새 적운상의 손에 있었다.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그의 쇄골을 내려찍었다.

“으아아아악!”

그가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내들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건 말건 적운상은 쇄골에 박아 넣었던 단검을 뽑아서 그의 어깨를 찍었다. 그리고 팔을 잡아당기며 손목을 그었다.

“끄아아아악!”

옆에 있던 사내가 칼을 휘둘러왔다. 적운상이 몸을 일으키며 칼을 잡고 있는 그의 손목을 그었다. 이어서 팔뚝을 베고, 어깨를 찍었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그의 팔을 꺾어서 돌려세우자 적운상에게 칼을 휘두르려던 사내들이 멈칫했다. 잘못하면 동료를 벨 뻔한 것이다.

적운상이 그들을 노려보며 붙잡고 있던 사내의 팔목을 베고,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이 자식!”

“죽어!”

사내들이 기회라 여기며 칼을 휘둘러왔다.

적운상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양옆에 있던 사내들의 다리와 어깨, 옆구리를 번갈아가며 베고, 찍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려는 그들의 팔을 잡아서 부러트리고, 다른 팔을 잡아서 손목을 그었다.

피가 콸콸 넘쳐흐르는데도 그들은 팔이 움직이지 않아 지혈을 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악! 사람 살려!”

한 명이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도망쳤다. 다른 한 명은 이성을 잃고 칼을 마구 휘둘러댔다.

적운상이 단검으로 그의 칼을 옆으로 쳐내고, 어깨를 찍었다. 단검을 빙글 돌려 잡아 배를 찌르고, 팔을 꺾으며 손목을 그었다. 그리고 밖으로 도망가는 사내를 향해 그를 힘껏 던졌다.

쾅!

도망가던 사내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자 적운상이 던진 사내가 그를 지나쳐 날아가 문을 박살 냈다. 이때다 싶어 엎드렸던 사내가 후다닥 밖으로 튀어나갔다.

마지막 남은 사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벽에 등을 기댄 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찌나 심하게 떠는지 들고 있는 칼을 금방이라도 놓칠 것 같았다. 그는 오줌을 지려 바지가 축축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적운상이 무표정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히익! 오지 마! 오지 마! 으아아아아악!”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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