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7화
7화. 무공수련 (3)
드넓은 초원에 커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고, 그 밑에는 썰렁하니 파오가 하나 쳐져 있었다. 큰 호랑이와 비무를 끝낸 적운상이 그리로 향했다.
“콜록! 콜록! 왔느냐?”
적운상이 안으로 들어가자 침상에 누워 있던 구혁상이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지 마세요.”
“됐다. 어떻게 됐느냐? 이겼느냐?”
“네.”
“훗! 그래야지. 잘했다.”
구혁상이 기쁜 듯이 웃음을 지었다. 적운상은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오랜 여행을 하는 바람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젊었을 때 수련을 한답시고 몸을 막 굴린 탓도 있었다.
무엇보다 금안뇌정신공의 뒷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해보다가 주화입마에 한 번 빠졌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 이후로 구혁상은 저렇게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게 됐다. 그것이 벌써 일 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적운상이 형산파로 돌아가자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때마다 구혁상은 고개를 저었다.
적운상의 무공은 이미 절정에 달해 있었다. 아직까지 변초를 쓰지 못하지만 큰 상관이 없을 정도로 강했다. 몽골의 강자로 손꼽히는 큰 호랑이조차도 그의 일검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구혁상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아직 금안뇌정신공의 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적운상의 나이 스물이다. 그 나이에 벌써 금안뇌정신공을 팔 성 가까이 성취했다. 하지만 그의 사부 임옥군이 그랬듯이, 또 구혁상이 그랬듯이, 그 이상의 성취는 없었다. 아마 평생 그대로일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언젠가 벽에 부딪칠 것이고,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더 높은 경지로 적운상을 보내려면, 금안뇌정신공의 끝을 봐야 했다.
사실 구혁상은 그동안의 연구와 주화입마로 인해 금안뇌정신공의 뒷부분이 왜 미진한지에 대해서 알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도 찾아냈다.
그러나 그것을 적운상에게 가르쳐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알아낸 것에 대해 확신이 없는 데다,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다.
잘되면 순식간에 십이 성 가까이 성취를 이룰 수 있지만, 잘못되면 즉사였다. 십 년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운상아. 콜록! 콜록!”
“네, 사숙조님.”
“형산파로 돌아가고 싶으냐?”
“네…….”
“후훗! 녀석. 사부와 사형제들이 그렇게 보고 싶으냐?”
구혁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적운상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요. 그저 사숙조님을 좀더 편안하게 모시고 싶을 뿐입니다.”
처음 몇 년간은 구혁상의 말대로 사부와 사형제들이 미치도록 그리웠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모습조차도 가물가물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구혁상과는 십여 년 동안 숱한 고생을 함께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자연히 정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운상아.”
“네, 사숙조님.”
“최근에 나는 금안뇌정신공을 완성하는 길을 찾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적운상은 구혁상이 다시 말을 꺼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하아……. 하지만 너무나 위험하구나. 잘못하면 네가 죽을 수도 있다.”
“사숙조님,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겨왔습니다. 길이 없다면 모를까, 길이 있는데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둔한 짓이라 생각됩니다.”
구혁상이 적운상을 가만히 바라봤다. 적운상의 강한 마음이 와 닿는 것 같았다.
‘허! 이렇게까지 컸더냐? 그동안 너무 어리게만 보고 있었구나.’
구혁상이 눈을 감았다. 그는 여전히 갈등을 하고 있었다.
“방법이 뭡니까?”
“네가 죽으면 십 년 동안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된다.”
“방법이 뭡니까?”
“형산파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숙원도 이룰 수가 없다.”
“방법이 뭡니까?”
“죽게 되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사숙조님!”
“음…….”
구혁상이 눈을 떴다. 그리고 먼 곳에 시선을 뒀다.
“나는 그동안 금안뇌정신공을 익히면서 하나의 의문점을 느꼈다. 금안뇌정신공은 뇌기를 연성하는 내공심법이다. 몸 안의 뇌기를 키워서 혈(穴)과 맥(脈)을 강하게 한 후에 차츰 운기(運氣)를 한다. 허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뇌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키우는 데도 역시 한계가 있다. 그래서 팔 성에 이르면 혈과 맥은 강해질 대로 강해지지만 운기를 할 뇌기는 턱없이 부족하게 된다.”
그것은 적운상도 아는 내용이었다. 지금 그의 상태가 그러했다.
“나는 그게 의문이었다. 운기할 뇌기가 부족한데도 왜 혈과 맥은 계속 강해지는지 궁금증이 들었지. 얼마 전에야 그 이유를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나 과연 그 생각이 맞는지 자신이 없구나.”
구혁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찾아내신 답이 뭡니까?”
“혈과 맥이 강해지는 것은 준비를 위한 것이다. 엄청난 뇌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말이다.”
구혁상이 적운상을 봤다.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일반적인 내공심법은 들숨과 날숨을 통해 몸 밖의 기운을 받아들여 단전에 쌓는다. 그 기운이 강해지면 임맥과 독맥을 따라 돌리면서 혈을 뚫지. 그러다 임독양맥이 모두 뚫리면 기가 끊임없이 순환을 하게 되면서 내공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콜록콜록!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몸 밖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한례로 무당파 고수들의 기운은 청정하기 그지없다. 산속에서 맑은 숲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오행(五行) 중 목(木)의 기운이 강하지. 물론 오행을 넘어선 태극(太極)이나 무극(無極)의 내공심법들도 존재한다만 그건 금안뇌정신공과 상관이 없으니 논외로 하자꾸나. 콜록콜록!”
잠시 호흡을 고른 구혁상이 말을 이었다.
“예전에 북해신궁(北海神宮)의 고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한빙지기(寒氷之氣)를 키우기 위해 얼음동굴에서 수련을 한다더구나. 얼음동굴의 한기를 받아들여 몸 안의 한빙지기를 키우는 것이지. 마찬가지로 열화지기(熱火之氣)를 키우려는 자들은 사막으로 간다.”
적운상은 거기까지 듣자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럼 사숙조님의 말씀은…….”
“그래. 몸 밖에서 뇌기를 끌어와야 한다.”
꿀꺽!
적운상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것은 빙공(氷功)을 익히기 위해 얼음동굴에 가거나, 화공(火功)을 익히기 위해 열기가 가득한 사막에 가는 것과는 급이 달랐다. 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짐작이 가느냐?”
“네, 사숙조님.”
“할 수 있겠느냐?”
그동안 구혁상이 할 수 있냐고 물으면 적운상은 항상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대답을 했었다. 한 번도 망설이거나 주저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그러다 결심을 했는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운상아…….”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성공하건 실패하건 상관없이 형산파로 돌아가는 겁니다.”
“음…….”
성공하면 원하던 것을 모두 이뤘으니 당연히 돌아갈 터였다. 하지만 실패하면…….
“네가 죽는다면 나 역시 여기서 인생을 마칠 것이다.”
“사숙조님.”
적운상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같이 죽겠다는 구혁상의 말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가슴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글썽거렸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라.”
“네, 사숙조님…….”
“허허. 녀석. 울기는 왜 우는 게냐? 반드시 성공할 게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반드시 성공할 게야. 콜록콜록!”
적운상은 엎드린 채로 한참이나 일어나지 못했다. 구혁상이 그런 적운상의 등을 다독여줬다.
* * *
콰콰콰콰쾅!
대낮인데도 하늘이 온통 검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쳤다.
“콜록! 콜록! 지금이다. 운상아! 어서 가야 한다.”
구혁상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파오가 폭풍우에 날아갈까 걱정이 되어 밖에서 점검을 하던 적운상이 그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왔다.
“사숙조님.”
“그래. 콜록콜록! 지금이다. 지금 가야 한다. 어서 그곳으로 가자.”
“사숙조님은 이곳에 계세요. 저 혼자 갔다 올게요.”
“무슨 소리! 내 눈으로 봐야 한다.”
구혁상이 단검을 품에 챙기며 말했다. 그는 혹시라도 적운상이 실패해서 죽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같이 죽을 생각이었다.
“가자.”
구혁상이 재촉하며 지팡이를 짚자, 적운상이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구혁상과 적운상은 한참이나 눈을 빛내며 뭔가를 찾았다.
“아! 나왔어요! 사숙조님, 저기!”
적운상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뭔가 고개를 내밀고 뻐끔거리다가 금방 물속으로 사라졌다. 뇌룡(雷龍: 전기뱀장어)이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
얼마 전의 일이었다. 오늘과 같이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적운상은 우연찮게 뇌룡을 봤다.
길이는 성인 걸음으로 세 걸음이나 되고, 몸통은 한 팔에 간신히 안을 정도로 두꺼웠다. 비늘이 없어서 미끈미끈한 것이 생김새만 보자면 마치 뱀장어와 같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뇌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그날 인근을 배회하던 야생마가 천둥번개에 놀라 물로 뛰어드는 순간, 뇌룡이 뿜어낸 뇌기에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
적운상은 돌아오자마자 그 이야기를 구혁상에게 했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뇌룡의 뇌기를 흡수하면 금안뇌정신공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그 일을 적운상이 시도하려는 것이다.
“그간 지켜본 바에 의하면 성질이 포악하지는 않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될 게다.”
뇌룡은 일 각마다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와서 뻐끔거렸다. 보아하니 물속에 있다가 저렇게 나와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네, 사숙조님.”
“운상아…….”
정답게 적운상의 이름을 부른 구혁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최고의 제자니라.”
구혁상에게 적운상은 도손이었지만, 제자나 다름없었다. 목숨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제자였다.
그는 오로지 구혁상만 믿고, 십여 년의 세월 동안 가진 풍파를 헤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또다시 구혁상을 믿고 죽음의 도박을 하려고 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문을 위해서였고, 구혁상을 위해서였다. 그러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랴?
적운상을 바라보고 있는 구혁상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적운상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구혁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적운상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강물로 들어간 적운상은 뇌룡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 떠오르기 전에 찾아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보였다. 뇌룡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적운상이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물이 점점 깊어졌다.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자 숨을 한껏 들이마신 후에 깊이 잠수를 했다.
뇌룡은 적운상이 다가오는데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적운상의 눈에 금색의 기운이 아른거렸다. 금안뇌정신공을 끌어올린 것이다.
그 순간 뇌룡을 꽉 껴안았다.
빠지지지직!
“끄헉!”
엄청난 뇌기에 적운상이 물속이라는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러다 물이 입 안으로 들어오자 재빨리 입을 닫았다. 그때 이차 충격이 왔다.
빠지지지직!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요동을 쳤다. 적운상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뇌룡이 뿜어내는 뇌기가 온몸으로 타고 들어왔다.
물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구혁상은 애가 탔다. 적운상과 뇌룡이 한데 엉켜서 뇌기를 뿜어내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뛰어들어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도와줄 수도 없거니와 방법도 없었다. 그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일 각 가까이 사투가 계속됐다. 말 한 마리를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던 뇌기였다. 아무리 금안뇌정신공을 익혔다 해도 충격이 엄청났다. 더구나 물속이라 뇌기가 전해지는 속도도 빨랐다.
어느 순간 적운상의 손이 스르륵 풀렸다. 뇌룡도 뇌기를 모두 뿜어냈는지 그대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운상아! 운상아!”
구혁상이 그제야 물속으로 뛰어들어 미친 듯이 적운상에게 달려갔다.
“운상아!”
* * *
적운상은 살았다. 그러나 금안뇌정신공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사투를 벌이고도, 그날 적운상이 받아들인 뇌기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뇌기를 받아들여 운기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몇 번 더 해보자꾸나.”
“헉!”
적운상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구혁상을 봤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란다. 누굴 죽이려고 작정을 했나?
아니다. 한 번 살아났으니 죽을 일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구혁상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야 적운상이 죽을까 봐 겁을 먹었지만,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닌 것 같았다. 적운상이 저리 멀쩡하지 않은가?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다.
그날 이후로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구혁상은 어김없이 적운상을 닦달해서 강으로 향했다. 덕분에 적운상은 뇌룡과 뒤엉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그럴 때마다 뇌기가 조금씩 쌓였다. 아주 조금씩이었다.
“음…….”
구혁상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저런 식으로 해서 언제 금안뇌정신공을 완성한단 말인가?
‘뭔가 좀더 강력한 것이 필요한데…….’
언뜻 뭔가 떠오르려고 하면서도 생각이 나지 않는 구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