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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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07화
혈하-第 107 章 그가 군림성주라니?
다시 얼마를 더 기다렸을까
태양은 기어코 서산으로 꼴깍 넘어가 버렸다.
사군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국연옥이 깜짝 놀라며 따라 일어났다.
“어디를 가려고요?”
“아무래도 상청관으로 다시 가야할 것 같군요. 이번에는 상청관을 부수어서라도 직접 영당을 찾고 염치없는 놈도 죽일 겁니다.”
“염치없는 놈이라니요?”
“가짜 화안진인! 그놈의 껍질을 벗기겠어요.”
국연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문인을 죽여요? 만약 잘못하다가는 공자님은 마두로 몰려요.”
“흥! 관계없어요. 그리고 그놈은 열 번 죽어 마땅합니다.”
국연옥은 더 묻지를 못하고 사군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낭자는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내 생각엔 이곳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국연옥은 고개를 크게 저었다.
“싫어요! 저도 갈래요! 죽어도 좋아요!”
“낭자……”
국연옥의 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를……나를 버리지 말아요.”
“낭자, 이 길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번만은 낭자와 같이 갈 수 없어요.”
국연옥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이곳에서 기다리겠어요.”
사군보도 그녀와 더 이상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내일 아침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세요.”
“싫어요! 공자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겠어요.”
“허……이일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낭자가 이곳에서 날 기다린다고 하면 난 부담이 가져 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일 아침까지 내가 오지 않으면 며칠 전 우리가 묵었던 장안 동래객잔에서 기다리세요. 내 기필코 영당을 구해 같이 가겠어요.”
“알았어요.”
국연옥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사군보는 더 있어 봤자 그녀 입에서 또 어떤 엉뚱한 말이 나올지 몰라 서둘러 몸을 날렸다.
“공자……”
국연옥은 그가 사라진 어둠속을 멍청히 바라보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괜히 공자님께 어머님 이야기를 꺼내어서……”
한참이나 울던 그녀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벌떡 일어났다.
“나도 가겠어요. 공자님과 같이 죽겠어요.”
그녀는 사군보가 기고 있는 종남파가 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짐작했다.
적미도장이 약속된 시각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가짜 장문인이 그를 해쳤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뻔하다.
종남파는 지금 용담호혈로 변해 있을 것이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가짜 장문인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한 법.
그녀가 막 천구암을 떠나 종남파로 가려는 순간,
“허억!”
그녀는 무엇을 보았는지 흠칫 놀라며 바싹 긴장했다.
바로 앞, 어둠속에서 무엇인가 꿈틀하며 움직인 것이다.
“누……누구세요?”
“……”
검은 그림자는 굼벵이처럼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지만 분명 사람이었다.
국연옥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우뚝 서서 그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때다.
“사군보……사 시주……”
뜻밖에도 그 사람의 입에서 사군보의 이름이 나왔다.
국연옥은 퍼뜩 느껴지는 생각이 있어 조심스럽게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사……사 시주……”
검은 그림자는 기진한 목소리로 사군보의 이름만 애타게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은 그림자는 만신창이였다.
온 몸이 피투성이다.
숨결이 가물가물한 것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 같았다.
그가 걸친 것은 분명 도포였지만 피를 어찌나 흘렸는지 도포가 아니라 혈포였다.
이로 미루어 그는 이곳 종남산에 있는 도인이 분명했다.
국연옥은 섣불리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사군보를 사로잡기 위해 거짓 연극을 하는 종남파 괴뢰라면 그녀 하나 쯤 제압하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품……품속에……품속에……”
혈포의 도사가 더듬거렸다.
국연옥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고 더욱이 도사라고는 하나 남자의 품속에 손을 넣는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다.
“단……단약을 꺼……꺼내 주시오……”
국연옥을 입술을 꼬옥 물었다.
‘만약 악도라면 내 스스로 자결을 할지언정 결코 공자님께 누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
국연옥은 결연한 마음을 먹으며 혈포 도사에게 바싹 다가갔다.
그녀는 쌍장에 잔뜩 진기를 불어 넣은 채 오른 손은 혈포 도사의 머리 꼭대기 천령개를 향해 높이 들었다.
여차하면 그대로 수박 깨뜨리듯 천령개를 부실 자세였다.
그녀는 왼 손으로 혈포 도사의 품속을 뒤져 백색의 조그만 병을 꺼냈다.
그때까지도 혈포 도사는 기진한 채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조그만 병 안에는 백색의 단약이 10여 개가 들어 있었다.
“두……두 알만……”
국연옥은 두 알을 꺼내어 그 사람의 입속에 넣었다.
잠시 후,
“으으……”
혈포 도사는 가물거리는 의식을 찾으며 천천히 눈을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어 국연옥을 발견하고는 이내 실망을 느꼈는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여 시주는 누군가?”
국연옥이 그 말에 되물었다.
“노선배는 누구십니까?”
그녀는 여전히 혈포 도사의 천령개를 노린 채였다.
그걸 본 혈포 도사가 나직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허……빈도는 나쁜 자가 아니니 여 시주는 손을 내려 주겠나?”
“안돼요! 누구시죠? 정체를 밝힐 때까지……”
“무량수불……빈도는 적미라 하오만……”
“옛? 적미도장님이시라고요?”
화들짝 놀란 국연옥은 급히 손을 내리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적미도장이 주위를 다시 살폈다.
“그런데……여 시주……혹시 이곳에서 어떤 젊은이 한 사람을 보지 못했나?”
“아! 사 공자님 말씀이신가요?”
“아니 여 시주와 사 시주는 어떤 사이이게 그를?”
“전 그분 공자님의……”
국연옥의 다음 말이 딱 막혀졌다.
대체 뭐라 말해야 하나?
애인?
아내?
친구?
막상 그와 자신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려니 망막했다.
몸만 섞었을 뿐 그들 두 사람은 앞날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다정한 애인이라고도 말하기 힘들지 않은가.
적미도장이 사군보를 애타게 찾았다.
“아! 사 시주는 어디에 있나?”
“떠났어요.”
“아! 어디로……”
“장로님을 기다리다 상청관으로 갔어요.”
적미도장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종남을 버리는구나.”
국연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공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적미도장이 어렵게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빈도가 가봐야겠네.”
그러나 그는 천구암을 내려가려다가 힘없이 쓰러지더니 데구르 굴렀다.
“앗! 선배님!”
국연옥이 얼른 달려 내려가 적미도장을 부축했다.
“가야 하는 데…… 종남을 위해서, 강호 무림을 위해서……”
적미도장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걸음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이때였다.
먼 곳에서 휘파람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휘익! 휘익!
적미도장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여기까지……”
국연옥이 나직이 물었다.
“선배님을 죽이려는 사람인가요?”
적미도장이 무어라 대답할 사이도 없이 휘파람소리는 무척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국연옥은 적미도장을 부축했다.
그녀는 즉시 천구암 아래로 몸을 날렸다.
천구암은 거북이 모양의 바위다.
그 머리 부분 아래는 움푹 파여 있었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봐도 보이지 않는 은밀한 구멍이 있는 것이다.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간 국연옥은 적미도장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도장님, 귀식대법을 펼칠 수 있겠어요?”
“가능하네.”
“그럼 우리 일단 숨어 있어요.”
이윽고 두 사람은 귀식대법으로 숨은 물론 기척을 감추었다.
휘익! 휘익!
허공으로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10여 개의 인영이 천구암에 내려섰다.
나타난 사람들은 황색 도포를 걸친 종남파 제자들이었다.
안광이 형형한 것을 보아 종남파에서도 절정고수들이 분명했다.
맨 앞에 선 중년도장이 뒤따르는 젊은 도장에게 물었다.
“청송(靑松), 분명 이곳으로 가야 된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적미 장로님께서는 천구암에서 탈명혈하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흥! 그런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지 않느냐?”
“벌써 탈명혈하를 만나 이곳을 떠났을 런지 모릅니다.”
“적미 장로가 그런 내상으로 어디를 갈 수 있겠느냐?”
“가도 멀리는 못 갔을 겁니다.”
“좋다! 흩어져서 적미 장로를 찾아라! 죽여도 좋다!”
“예, 전주님!”
파라락!
다시 옷깃이 날려지는 소리가 들려졌다.
종남파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천구암 일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천구암 바로 밑,
얼마를 그렇게 숨어 있었을까?
적미도장이 국연옥의 손을 꼭 쥐며 전음을 보내왔다.
[여 시주, 고맙네. 빈도는 죽어도 여 시주의 은혜는 잊지 않을 거네. 훗날 사 시주를 만나면 빈도의 말을 전해주게. 모든 것이 사 시주가 알고 있는 대로라고. 그의 말이 맞았다고.”
[안돼요! 아직 희망을 버리기는 일러요!]
[여 시주, 빈도를 이곳에 놔두고 어서 떠나게. 그래야 여 시주라도 살 수가 있어. 여 시주는 사 시주를 만나 빈도의 죽음을 전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네.]
국연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누가 선배님께 이런 살수를 펼쳤나요?]
[가짜 장문인이네. 그는 괴이한 사공을 지니고 있었어. 심계가 깊어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당했어.]
국연옥은 망설였다.
적미도장의 말대로 그녀가 사군보에게 적미도장의 죽음을 알려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죽지도 않은 사람을 놓아두고, 위험이 도사린 곳에 내상을 입은 그를 놔두고 자기 혼자 살자고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적미도장이 국연옥의 손을 놓았다.
[떠나요! 여 시주가 보는 앞에서 빈도가 죽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네!]
[하지만……]
적미도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 시주, 사람이란 언젠가는 죽는 몸. 빈도의 목숨이 여기에서 끝난다고 해서 조금도 섭섭한 것이 아니네.]
“……”
국연옥은 한참을 더 망설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다.
천구암 윗쪽에서 굵직하면서 나직한 음성이 떨어져 내렸다.
“제일장로께선 그곳에 그냥 계셔야 합니다. 여 시주도 움직이지 마세요. 지금은 위험합니다.”
적미도장은 그 음성의 주인을 알고 있는지 반색을 했다.
“아! 와 전주, 자네인가.”
“그렇습니다. 제일장로께서 소도에서 청일자(靑日子)라는 도명을 내려주셨지 않았습니까.”
“자네가 나를……”
“제일장로께선 탈명혈하를 믿고 있습니까?”
“믿네. 어쩌면 그 시주가 있으므로 해서 본 파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네.”
“그러면 제일장로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소도는 본래 군림성(君臨城)의 수하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자네는 종남의 제자이고, 와전을 맡고 있는 전주이지 않은가? 더욱이 자네가 종남의 제자가 된 것은 벌써 10년이 넘은 얘기인데?”
“지금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종남에 들어오기 전에는 군림성의 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군림성의 수하일 것입니다.”
“군림성?”
적미도장은 아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