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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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02화
혈하-第 102 章 얼마나 살아 있을까?
곤비각(坤飛閣).
대륙 십팔 만리 곳곳에 자리한 묵혈방의 각 지부 및 지단은 물론 묵혈방 소속의 무사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까지 한 눈에 묵혈대제 사악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곤비각이 있기 때문이다.
묵혈방의 눈과 귀.
묵혈방의 모든 정보는 물론 소식통이 바로 곤비각이다.
묵혈방이 붕괴될 당시 각주는 천리비존(千里秘尊)이라는 신비인이었다.
그의 진면목을 본 자는 오직 묵혈대제 사악뿐이다.
정보를 관장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보니 그만큼 그의 안전에 보안을 철저히 한 것이다.
그리고 묵혈방에서 일어나는 대소회의나, 전면에는 그의 아내인 곤음파파 업모율(嶪暮律)이 나선다.
사군보는 종이를 든 채 고묘 입구로 달려 나갔다.
하나 이미 떠나버린 그녀를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는 멍하니 종이를 쥐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날은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분이 곤음파파였다면 육손의 곽치궐이란 사람은 바로 곤비각주 천리비존이 분명하다.’
곤비각주 천리비존.
묵혈대제 사악 외에는 모르는 신비인의 꺼풀이 한 겹 벗겨진 순간이었다.
‘아아……대체 몇 명이나 살아 있을까?’
묵혈방의 붕괴.
사군보가 살아 있듯이 분명 혈겁을 피한 생존자가 있을 것이다.
곤음파파를 만나자 사군보는 그런 희망에 부풀었다.
국연옥이 의아한 얼굴로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소협께서 그분을 잘 알고 있는 눈치인데 아시는 분인가요?”
“그래요.”
“그런데 왜 그냥 떠나셨을까요?”
사군보는 그녀에게 전후사정을 말할 수 없는지라 어색한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 말을 돌렸다.
“낭자는 어째서 남장을 했어요?”
국연옥은 얼굴을 다시 붉히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건……소협을 찾으려고……”
“뇌정보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국연옥이 갑자기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울었다.
“흐흑……흑흑……”
사군보의 미간이 찡그려지면서 얼른 물었다.
“낭자, 무슨 일입니까?”
“어머니가……어머니가……”
사군보는 순간적으로 그 인자했던 추상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음을 눈치 채고는 가슴이 철렁 떨어져 내렸다.
“영당이 어찌 되었단 말입니까?”
국연옥은 울먹이며 말을 꺼냈다.
“소협이 떠나신 후 부친을 직접 찾으시겠다면서 뇌정보를 나가셨는데 실종되셨어요.”
“아!”
사군보는 추상여에게 또 하나의 죄를 지은 마음이었다.
전날 그녀는 자신의 알몸을 보이면서까지 사군보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또한, 독기도 제거시켜 주었는데 사군보는 그녀를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가.
오직 원수를 찾겠다고 그 일에만 전념했지 국제강을 찾는 건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추상여가 기다리다 지쳐 직접 나온 것 같았다.
국연옥이 옷깃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가 종남파 도인들에게 붙잡혀 종남산으로 들어갔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어요.”
사군보의 귀가 번쩍 뜨여졌다.
“종남파?”
“그래요. 그래서 소협의 도움으로 어머님을 찾기 위해 소협을 찾았어요.”
사군보의 눈에서 시퍼런 불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종남파라면 일곱 명의 가짜 장문인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여래부인에게 진 빚도 갚고, 가짜 장문인의 정체를 밝힐 겸 가봐야겠다.’
그는 곧 말했다.
“갑시다!”
그는 국연옥의 손을 잡고는 나는 듯 달려갔다.
**
8월의 황혼은 붉었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을 석양 무렵 대지는 노곤했던 봄날을 접으며 밤의 나락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남산(終南山).
종남산은 도가의 원천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도관들이 명당을 차지하고 있다.
종남산에서 수도하는 도관들을 강호인들은 종남파(終南派)라 칭한다.
공동(共同) 무당(武當) 청성(靑城)과 함께 사대도장(四大道長)이라 불린다.
상청관(上淸館).
종남파의 중지(重地).
따지고 보면 아무리 도사가 적은 도장이라도 그곳에서 가장 중지를 상청관이라 한다.
마치 절의 대웅보전과도 같은 성격을 지닌 곳이 바로 상청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상청관 주위는 종남의 제자들이 펼치는 삼엄한 경계로 살벌한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가?
곳곳에 대여섯 명씩 도인이 모여 있음은 물론, 어느 곳에는 진식인 것 같은 매복도 보였다.
이런 경계라면 상청관으로는 나는 새도 들어가지를 못할 것이다.
해가 서산으로 막 넘어가고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스슥……
상청관의 높은 담 안쪽에서 두 개의 황영이 솟구쳐 나오더니 한 무리의 매복이 있는 곳에 가볍게 내려섰다.
허자, 매복 도인들은 나타난 두 황포인들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
“사형들께서 어인 일이신지요?”
두 황포인 중에서 50 초반의 중년도인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외인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막아야 한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침입자가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두 황포인은 다른 곳으로 솟구쳐 나갔다.
명을 내리는 사람이나 명을 받는 사람들 모두가 너무나 굳은 표정이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종남파에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금방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 보라가 일어나고 시산혈해를 이룰 것만 같은 음산한 기운.
하지만 초경(初更)이 지나고 이경이 될 때까지 상청관에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다만 긴장의 분위기가 더욱 고조될 뿐이다.
***
상청관 가운데 자리 잡은 넓은 빈청.
사면팔방으로 휘황한 등불이 밝혀져 있었다.
가운데 타원형의 탁자 주위에 일곱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소림과 무당을 제외한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이었다.
공동(共同) 은영진인(隱影眞人).
아미(峨嵋) 철지화상(凸旨和尙).
화산(華山) 동근도장(東根道長).
곤륜(崑崙) 진천자(震天子).
종남(終南) 화안진인(華安眞人)
청성(靑城) 혜윤도장(兮允道長).
점창(點蒼) 구주일관왕(九州一冠王) 나정각(羅政各).
그들이 어찌하여 문파를 비운 채 이곳 종남파에 모여 있단 말인가?
더욱이 그들이 앉은 탁자엔 상석은 비어있었다.
더군다나 일곱 장문인 모두가 침중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그들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상석이 비어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들이 기다리는 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칠대문파 장문인들의 모임에서 상석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현 강호에 누가 있을까?
소림이나 무당 장문인이라 해도 결코 상석을 차지하지 못하거늘.
또한 강호 무림에는 칠대장문인이 한자리에 회동할 만 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또 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영향력을 행세할 만한 사람 역시 흔치 않다.
칠대문파 장문인들의 표정이나 종남 제자들의 삼엄한 경계로 미루어보거나 예사로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
“……”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이 계속 흐르고만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
스스슥……
빈청으로 한 인영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괴소와 함께 탁자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허허허…… 모두들 어디 갔나 했더니 이곳에 있었군.”
허공에서 떨어졌는가?
아니면 땅에서 솟구쳐 나왔는지 정말 신비스런 신법을 지닌 사람이었다.
지금 나타난 인영이 바로 칠대문파 장문인들이 기다리던 사람일까?
그러나 아닌 것 같았다.
놀랍게도 나타난 사람은 꾀죄죄한 거지였다.
왼쪽 어깨에 다해지고 떨어진 마대를 10여 개 겹쳐 메고 있다.
허리춤에는 괴상하게 엮어 만든 매듭이 30여 개나 되어 보였다.
거지노인의 돌연한 출연에 칠대문파 장문인들은 염라대왕을 보기라도 한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종남장문인 화안진인이 버럭 노성을 질렀다.
“걸왕! 누가 당신을 여기로 들어오게 했지?”
걸왕(乞王)!
개방의 방주.
그러나 지금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불청객인 듯 칠대문파 장문인들의 안색이 흉흉하다.
하지만 넉살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걸왕은 어깨를 으쓱 하고는 빈자리로 다가가 태연스레 앉았다.
“그냥 이 늙은이 스스로 들어온 건데.”
화안진인은 다른 여섯의 장문인을 빠르게 둘러보고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나가요! 이곳은 빈도가 주인이니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온 사람은 응당 내쫓을 수밖에 없다.”
걸왕는 그래도 싱글 거리며 웃었다.
“너무 야박하네, 불청객도 엄연한 손님인데. 기왕 들어온 것이니 잠시 숨이나 돌리고 나가게 해 줘.”
“걸왕!”
화안진인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해졌다.
다른 육대문파 장문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걸왕을 바라보기만 했다.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그에게 가벼운 언행을 보일 수 없어서일 것이다.
잠시 후, 걸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쉬었다. 다음에 들어오고 싶을 때는 도장께 미리 양해와 허락을 받고 들어올게. 허허허……”
끝에 흘러내는 웃음에는 묘한 뜻이 담겨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빈청 밖으로 10여 걸음 정도를 떼어놓았을 때다.
“잠깐!”
그의 등덜미를 낚아채는 얼음처럼 싸늘한 음성이 빈청을 울렸다.
걸왕은 아무렇지 않게 몸을 돌렸다.
“허허허……그럴 줄 알았어. 아미 장문인께서 조금 늦었지만 기어코 이 늙은이를 불러주었군.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나?”
그를 부른 사람은 아미장문인 철지화상이었다.
철지화상의 눈살이 꿈틀거렸다.
“걸왕은 그냥 가실 생각입니까?”
걸왕은 눈을 약간 크게 떴다.
“그럼 이곳에 남아 있어도 된단 말이야?”
철지화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떠나야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떠나야 된다면서 그냥 가지는 못하게 하다니……”
철지화상이 나직이 불호를 외었다.
“아미타불……목을 놓고 가시죠.”
빈청에는 소름이 오싹 끼쳐지는 살기가 일어났다.
걸왕은 여전히 태연한 채 웃음을 보였다.
“아! 이 늙은이의 피가 무슨 색인가 보고 싶은가 보구나. 허허허……그렇지 않아도 친구들에게 피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걸왕, 정작 그런 각오였다면 일이 쉽겠군. 설마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고……”
“허허……물론. 이 늙은이가 범의 아가리가 어떤 곳이고, 그 범이 피에 굶주려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나? 다만 이 늙은이가 죽으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까 염려가 돼서 죽기가 망설여질 뿐이다.”
철지화상은 흠칫하며 다른 장문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누가 오늘의 모임을 누설시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