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4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42화
42화. 원릉 금검문 (1)
적운상이 다가오자 홍기우가 연석강과 마청기에게 그를 소개시켜 줬다.
“서로 인사들 하시오. 여기는 형산파의 적 소협이오.”
“적운상이오.”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자 연석강이 마지못해 인사를 받았다.
“연씨세가의 연석강이오.”
“호왕문의 마청기요.”
서로 인사가 오고가자 적운상이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앞에 있던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보통은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조금은 어색하기 마련이건만, 적운상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연석강이나 마청기 두 사람은 묘하게 기가 눌렸다.
“적 공자.”
연석강이 부르자 적운상이 음식을 먹다 말고 그를 봤다.
“실은 적 공자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그대의 사매하고 내기를 했었다오.”
“내기?”
적운상이 주양악을 봤다. 또 뭔 사고를 친 건 아닌지, 나무라는 눈빛이었다. 그런 적운상의 눈빛을 피하며 주양악이 딴청을 부렸다.
“저기 앉아 있는 이들이 그 유명한 독무곡 사람들이오. 저들에게서 술 한 잔을 얻어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내기를 했는데, 나는 그 내기에서 졌다오. 하지만 적 공자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구려. 어떻소? 한번 해보는 것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연석강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금방 짐작이 갔다. 아까 그가 당한 것을, 적운상도 그대로 당하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건…….”
홍은령이 적운상을 말리려고 하는데, 마청기가 그녀의 말을 자르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것 괜찮겠군. 용기가 없다면 안 해도 되오. 저들이 술잔에 독을 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이봐요! 당신들…….”
주양악이 소리를 치려다가 적운상이 노려보자 당장에 입을 닫았다. 사람들은 기가 세 보이는 그녀가 적운상의 눈짓 한 번에 그렇게 풀죽은 모습을 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술 한 잔 얻어 마시는 것이 뭐가 어렵겠소.”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독무곡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주양악은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반갑소. 그대들이 독무곡 사람들이오?”
“흥! 오늘은 유난히 파리들이 꼬이는군요.”
아까 연석강을 상대했던 여인이 마치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건 말건 적운상은 그녀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술병을 잡으려고 했다.
“어딜!”
소녀의 여리면서도 작고 하얀 손이 적운상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적운상은 그녀의 손을 피해 손을 거뒀다가 다시 뻗었다. 그러자 소녀가 또다시 적운상의 손목을 잡으려 들었다.
타타타타탁!
술병을 놓고 두 사람의 손이 빠르게 대여섯 번이나 부딪쳤다. 순간 소녀의 눈초리가 살짝 올라가며 살기가 어렸다. 적운상이 팔로 그녀의 손을 탁자에 누른 상태에서 술병을 잡았기 때문이다.
“술 한 잔 가지고 인색하게 굴지 맙시다.”
“무례하군요.”
소녀가 손을 빼자 적운상이 잔에 술을 따랐다. 그때 소녀의 손이 가볍게 술잔 위를 지나갔다. 그러자 아까 연석강이 술잔을 받으려고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술이 부글부글 거리다가 잠잠해졌다.
“흥! 마실 용기가 있으면 마셔보세요. 지금까지 그 독을 먹고 살아난 사람은 열에 한 명이에요.”
아까와 같은 상황이었다. 연석강은 결국 마시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었다. 그러니 적운상도 그러리라 여겼다.
다른 이들도 나름대로 이럴 거다, 저럴 거다 생각을 하며 적운상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기다렸다.
적운상은 한 손으로 술잔을 들며 다른 손을 빠르게 뻗어 소녀의 팔을 잡았다. 소녀가 흠칫 놀랐지만 굳이 팔을 빼지는 않았다. 적운상이 혈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볍게 잡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그것을 보고 연석강이 눈을 크게 떴다.
“허! 역시 적 소협이로군.”
홍기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청기는 묘한 눈으로 적운상을 보고 있었다.
“사, 사형!”
주양악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홍기우가 그녀를 잡았다.
“기다리시오, 주 소저. 아직 적 소협은 멀쩡하오.”
그제야 주양악이 적운상을 자세히 보니 독에 중독된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그녀는 적운상에게 다가갔다.
“사형, 괜찮아요?”
“괜찮아. 소란 떨지 말고 가서 앉아 있어.”
적운상의 눈에 금빛이 일렁거렸다. 그걸 보고 주양악은 적운상이 금안뇌정신공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주양악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주춤거렸다. 혹시나 했는데, 소녀가 아까 술에 탄 것은 독이 확실했다.
적운상은 뇌기로 독 기운을 막으면서 소녀를 봤다. 그러자 소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팔을 잡고 있던 적운상의 손에서 찌릿한 기운이 몸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탁자에 같이 앉아 있던 독무곡 사람들이 움찔하며 살기를 피워 올렸다. 여차하면 적운상에게 덤벼들 기세였다.
“한 잔 더 마시지.”
적운상은 침착하게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그러면서 소녀의 몸으로 다시 한 번 뇌기를 흘려보냈다.
“아!”
소녀가 몸을 한차례 떨며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요염하던지, 탁자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봤다.
소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리고 적운상을 노려보며 팔을 빼려고 했다. 그러자 또다시 찌릿한 기운이 몸을 뚫고 들어왔다.
“아!”
그녀가 다시 신음 소리를 냈다. 일반적인 내공의 기운이었다면 그녀의 독공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가 있었다. 그럴 경우 어느 한쪽이 크게 다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내공싸움이라는 것이,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중간에 관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기건 지건 간에 이득을 보는 것은 그녀였다. 지더라도 상대는 그녀의 독공에 의해 중독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의 기운은 어이없게도 그녀의 독공을 너무나 쉽게, 순식간에 뚫고 들어왔다. 소녀는 그것을 어떻게 막아낼 수가 없었다.
그제야 그녀는 적운상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그녀는 적운상이 따라놓은 술잔에 방금 그가 먹은 독의 해독약을 풀었다.
“마시세요.”
“사양하지 않겠소.”
적운상이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막아놓았던 독이 순식간에 중화되었다.
“과연 독무곡이오. 독도 대단하지만 해독약도 대단하군. 이렇게 순식간에 해독이 될 줄은 몰랐소. 무례를 용서하시오.”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금까지 쌀쌀한 태도로 일관하던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인사를 받았다.
“이쪽도 무례했어요. 저는 곡지연이라고 해요.”
“형산파의 적운상이오.”
“훗! 아까 온 저자와는 확실히 다르시네요. 그 대담함에 탄복했어요. 만약 제가 해독약을 주지 않으며 어쩌려고 했어요?”
“모두 죽이려고 했소.”
적운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에 모두가 놀란 눈을 했다.
“무례는 이쪽에서 범했지만, 먼저 목숨을 걸게 한 것은 그쪽이오.”
“상대의 목을 노렸으면 이쪽의 목도 걸어야 한다는 건가요? 훗! 마음에 드네요. 한 잔 더 받으세요.”
곡지연이 적운상의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적운상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좋군.”
“어디로 가는 길이죠? 우리는 금검문으로 가는 길이에요.”
“우리도 그리로 가는 길이오.”
“어머, 그럼 같이 동행하면 되겠네요.”
곡지연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럼.”
그렇게 독무곡 사람들까지 함께 가게 되자, 못 볼 꼴을 보였던 연석강은 내심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 * *
다음 날 금검문으로 가는 동안 적운상은 연석강이나 마청기는 물론이고, 독무곡 사람들이 있는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하던 대로 행동했다.
이동할 때는 빠르게 하고, 쉴 때는 한없이 쉬면서 주양악을 수련시켰던 것이다. 이에 그들의 불만이 말이 아니었다. 특히 그들을 탐탁치 못하게 여기는 연석강의 불만이 가장 컸다.
하지만 적운상에게 뭐라 말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묘한 박력이 느껴져서 그런 불만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저 두 사람은 늘 저러나요?”
곡지연이 묻자 홍기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계속 저랬죠.”
“흥! 실력이 없으니 저렇게라도 해야 살아남겠지.”
연석강이 코웃음을 치면서 하는 말에 곡지연은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 저렇게 수련을 해야 할 사람은 적운상이 아니라 연석강이었기 때문이다.
따당! 땅!
“꺄악!”
두 번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낸 주양악이 뒤로 밀리며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
적운상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자 그녀가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지금까지 이렇게 넘어지면 당장 일어나라고 고함을 치던 그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어쨌든 주양악은 저렇게 부드러운 적운상이 싫지 않았다.
“네. 괜찮아요.”
적운상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며 그녀가 옷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냈다.
“저기, 사매.”
“왜요.”
“수련… 힘들지?”
“흐음…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당연히 힘들죠.”
“아니. 내가 너무 다그치는 게 아닌가 해서. 물론 사매의 무공이 뛰어나면 좋기는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나 사형들도 있고, 사매는 여자니까…….”
“훗! 사형답지 않게 왜 그래요?”
주양악이 적운상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소리 나게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왜요? 내가 걱정돼요?”
“당연하지.”
“헤에…….”
주양악은 적운상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하자 기분이 좋았다.
“전 괜찮아요, 사형. 솔직히 초식을 반복연습 하는 건 지겨운데, 이렇게 사형하고 대련하는 건 재미있어요. 그리고 저도 사형만큼 강해지고 싶어요. 그래서 형산파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날 이기고 싶은 건 아니고?”
“헤! 그거야 당연한 거고요.”
“그래.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 자.”
“에? 이게 뭐예요?”
적운상이 내미는 것을 받아 들며 주양악이 물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약이야. 붓고 멍든 데 좋다더라.”
“에? 헤에… 사형 정말 나 걱정했구나?”
“아니, 그때 보니까 멍이 많이 들었기에… 그, 일단 여자니까…….”
적운상이 시선을 피하면서 하는 말에 주양악이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 그때 다 봤구나!”
“보려고 본 게 아니라…….”
“사형!”
주양악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자 악을 쓰며 적운상을 불렀다.
“쳇! 사형이 좀 보면 어때서? 어렸을 때는 같이 씻고 잠도 잤는데 뭐.”
“그걸 말이라고 해요!”
“시끄러. 앞으로도 열심히 해.”
얼굴이 빨개져서 도끼눈을 하고 노려보는 주양악의 머리를 적운상이 살짝 만져주며 지나쳐갔다. 주양악은 그런 적운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