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9화
39화. 재능 (1)
이른 아침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형산파를 찾아왔다. 호남상단의 상관보연과 그녀의 호위무사들 십여 명, 그리고 무당파의 무당십걸 중, 하나인 운학이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박노엽이라고 합니다.”
“상관보연이에요.”
“나는 운학이라고 하오.”
박노엽은 ‘상관’이라는 성씨와 상관보연이 입고 있는 옷, 그리고 그 뒤에 있는 호위무사들의 기도를 파악하고, 그녀가 상관보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해 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운학을 보고는 단번에 무당파의 도사라는 것을 알아챘다.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는 도복과, 등 뒤에 비껴 매고 있는 송문고검은 무당파만의 특색이었다.
“일단 들어오시지요.”
박노엽이 앞장서자 그들이 뒤를 따랐다.
“호오… 낡았지만 아주 관리를 잘 하는 것 같군요.”
운학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망해가는 삼류문파라더니, 실제로 와보니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덩치가 산만 한 사내들이 왔다 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만 해도 얼추 삼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운학은 그들이 소문의 그 탈각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그간 상관보에 신세를 진 대가로 상관보연을 도와주러 온 이유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금마도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상관보연이 이곳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었다. 그러다 자연히 금벽도문에 대한 일도 알게 됐고, 그들이 개과천선해서 선행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다.
박노엽은 그들을 중앙본관의 대청에서 잠시 기다리게 한 후에 임옥군을 찾아갔다.
“응? 상관보에서?”
구혁상과 함께 대련을 하던 임옥군은 박노엽의 말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들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무당파의 도사와 함께 와 있습니다.”
“호오… 그때 봤던 그 도사인가 보군.”
구혁상이 하는 말에 임옥군이 그를 보고 물었다.
“아는 자입니까?”
“클클. 아마도 그럴 게야. 가보지. 예전과는 다를 테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박노엽과 함께 대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문주님.”
“험! 오랜만이군.”
임옥군이 상관보연의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무당파의 운학이라 합니다.”
“오… 그랬구려. 반갑소. 나는 임옥군이라 하오.”
“또 뵙습니다.”
운학이 구혁상에게도 인사를 하자 그가 실실 웃음을 흘렸다. 강가에서 정신을 잃은 채, 적운상에게 잡혀서 질질 끌려나오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운학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구혁상이 묘한 웃음을 짓자 이유를 몰라 의아한 얼굴을 했다.
* * *
“대사형, 안에 있어요?”
“응. 들어와.”
막정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은서린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에는 적운상도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막정위가 심심해할까 봐 틈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냈다.
“적 사형도 여기 있었네요.”
“응.”
“대사형, 보연 언니가 왔어요.”
“뭐?”
순간 막정위가 기쁜 기색을 보였지만 곧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그걸 보고 이상하게 여긴 적운상이 먼저 은서린에게 물었다.
“누구야? 그 여자가?”
“아! 적 사형은 잘 모르겠구나. 보연 언니는…….”
말을 하려던 은서린이 막정위의 눈치를 보며 망설였다. 그걸 보고 적운상은 나름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혹시 대사형의 연인?”
은서린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사형 표정이 왜 이래?”
“보연 언니는 상관보의 직계예요.”
“상관보?”
적운상은 상관보라는 말에 형산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상관도백과 상관보연이 떠올랐다.
‘맞아. 그 여자 이름이 상관보연이라고 했었지. 음, 어쩐지 그때 우리를 적대시하더라니…….’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상관보는 이곳 호남에서 최고의 상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형산파같이 작은 세력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어떻게 막정위와 상관보연이 연인관계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쪽에서 심하게 반대를 했을 것이 분명했다. 배에서 상관도백을 만났을 때 그가 보인 행동으로 짐작컨대, 형산파가 얼마나 무시를 당했을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됐어. 이제 마음 정리 했어.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모르지만, 난 상관하지 않아도 돼.”
막정위가 애써 웃음 지으며 하는 말에 은서린은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적운상은 화가 났다. 막정위가 누군가?
형산파의 대사형으로서 다음 대의 장문인이 될 사람이었다. 절대로 저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언제 어디서든 당당해야 할 사람이었다.
“무슨 말입니까, 대사형! 서린이 너는 가서 물 좀 떠와. 대사형 좀 씻을 수 있게. 옷도 갈아입어야겠습니다, 대사형.”
“됐어, 적 사제. 이젠 괜찮대도 그러네.”
“제가 안 괜찮아요!”
적운상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자 막정위가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린이는 빨리 가서 물 떠와. 젠장! 그때 구해주지 않고 모두 죽게 놔두는 건데.”
적운상이 막정위의 옷을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 * *
상관보연은 임옥군이 대놓고 불편한 얼굴을 하며 이야기하는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계속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면서 구혁상은 과연 대상인의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뭘 봤는지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던 상관보연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이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뜻밖에도 막정위가 적운상의 부축을 받으며 대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몸도 좋지 않은데 왜 나온 게냐?”
임옥군이 짐짓 목소리를 높였지만, 감정이 실려 있지는 않았다. 그도 내심 막정위와 상관보연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보다 막정위에게 미안한 것이 바로 그였다. 형산파의 세가 강했다면, 상관도백에게 불려가서 그 치욕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두 사람도 별 어려움 없이 맺어졌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본 문에 큰손님이 찾아왔다기에 누군지 궁금해서 나와 봤습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지만 임옥군은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대청에 들어선 막정위의 시선은 상관보연의 얼굴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상관보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쪽에 앉아요, 대사형.”
“그래.”
그제야 막정위가 상관보연에게서 시선을 떼고 적운상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지팡이를 잘못 짚어 한순간 몸이 휘청했다.
“아!”
보고 있던 상관보연이 놀라서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적운상이 잘 부축해 주는 것을 보고 그제야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자리에 앉았다.
“험! 그래서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뭔가?”
“네?”
임옥군이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질문을 했으나 막정위에게 신경이 가 있던 상관보연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형산파를 찾아온 이유를 물었네.”
상관보연이 이번에 남악현을 찾아온 것은 적운상 때문이었다. 상관도백이 적운상의 능력을 알아보고 형산파를 밀어주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앞날을 보고 하는 투자였다. 하지만 그간 형산파에 한 짓이 있어서 대놓고 하기가 그랬다.
고심하던 차에 그는 남악현에 호남상단의 영향력을 더 키우는 한편, 적운상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상관보연을 보낸 것이다.
형산파가 다시 일어서면, 자연히 인근지역도 발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관도백은 그러기 전에 미리 손을 써두려는 것이었다.
“이번에 저희 호남상단에서 남악현에 있는 미점(米店)과 잡곡점(雜穀店), 그리고 어물점(魚物店)과 포목점(布木店)을 몇 개 인수했습니다. 조만간 몇 개의 주점(酒店)도 인수를 하고 커다란 객잔도 세울 계획입니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그 점포들의 보호를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원래는 금벽도문에 부탁을 하려 했으나, 이미 멸문을 당했더군요. 그래서 최근 칭송이 자자한 형산파에 부탁을 하려는 겁니다.”
“흐음…….”
마지막에 형산파를 살짝 띄워주는 말에 임옥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호남상단에서 왜 갑자기 이곳의 상권에 관심을 두는지는 몰라도, 형산파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호남상단같이 큰 상단에서 이곳에 관심을 쏟으면, 그만큼 발전을 하게 된다. 그러면 형산파에서도 이득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상인들이 먼저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그곳에서 세력이 강한 문파에 한해서였다. 흑도문파들이 보호세를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세가 강한 문파에 미리 보호를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기에도 좋고, 흑도문파들이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화산파나 무당파같이 거대문파가 있는 지역은 상인들이 연합을 만들어서 돈을 뭉텅이로 갖다 바치고 있었다. 그것이 서로 간에 모양새도 나고 편리했기 때문이다.
상관보연의 하고자 하는 말도 그거였다. 호남상단에서 인근의 상권을 장악하고 돈을 걷어서 낼 테니, 보호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지금 확답은 어렵겠군.”
“어차피 점포들을 인수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객잔과 주점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천천히 생각하시고 답변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상관보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자 임옥군이 인사를 받으면서 말했다.
“멀리 배웅하지 않겠네.”
“나중에 뵙겠습니다.”
상관보연이 대청을 나가면서 막정위를 힐끗 봤다. 그는 시종일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가고 나자 임옥군이 구혁상에게 물었다.
“저들의 의도가 뭘까요?”
“투자를 하려는 것 같구나.”
“네?”
임옥군이 선뜻 못 알아듣자, 구혁상은 이곳으로 오면서 상관도백과 상관보연을 만났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흐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 내 생각에는 운상이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를 밀어주려는 것 같구나. 그런데 왜 저렇게 우회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는지 모르겠군. 아, 그러고 보니 도대체 상관보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그때 상관도백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원수를 대하는 것 같았다.”
“실은 방금 온 상관 소저와 정위가 서로 좋아했었습니다.”
“응?”
구혁상이 의외라는 듯이 막정위를 봤다. 막정위는 뭘 생각하는지 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들이 우리를 업신여겨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아… 상관도백이 직접 우리를 불러서 호되게 다그치더군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리 나올 줄이야.”
“클클. 그것이 상인이라는 것이다. 이익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료가 되지. 그래. 어쩔 셈이냐?”
“조건이 좋기는 한데…….”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박노엽이 끼어들며 말하자 구혁상과 임옥군이 그를 봤다.
“말해 보아라.”
“네, 사부님. 제 생각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흐음… 이유가 무엇이냐?”
“어차피 지금 형산파는 갈수록 마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자리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탈각대가 사람들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하면, 그들은 더욱이 형산파를 떠받들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장사가 잘되는 큰 곳에서야 그까짓 돈, 별로 상관하지 않겠지만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호남상단이 저렇게 나선 것을 보면 형산파가 재건하는데 끼어 그 덕을 볼 요량인데, 저들이 혹시라도 상인연합을 만들게 되면, 싫든 좋든 간에 어쨌든 또 하나의 세력이 생기는 셈입니다. 그러니 길게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리다 보면 주민들 스스로가 우리에게 돈을 낼 겁니다. 지금도 인근의 주민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지 않습니까?”
사실이 그랬다. 탈각대가 매일매일 아무 대가 없이 봉사활동을 하자, 그것을 고맙게 여긴 사람들이 약소하나마 먹을 것을 주고 갔던 것이다.
정말 보잘것없었지만, 그 마음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선례가 생기면 나중에 다른 이들도 자연히 그렇게 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구나. 노엽이의 생각이 옳은 것 같은데, 사숙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클클. 머리 쓰는 일은 저놈이 최곤데 누가 뭐라 하겠느냐?”
두 사람이 하는 말에 박노엽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