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7화
37화. 남악현의 형산파화 (2)
“험! 여기 적혀 있다시피 이곳 남악현을 형산파화 시키는 겁니다.”
“흐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구먼.”
구혁상의 말에 박노엽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 남악현의 주민들의 수는 대충 잡아도 이삼천 명이 넘습니다. 아이들과 노인, 여자들까지 합하면 아마 그 이상일 겁니다. 그들을 모두 형산파의 제자로 만드는 겁니다.”
“에? 말도 안 돼.”
주양악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말을 안 했다 뿐이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이미 예상한 듯, 박노엽은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 소저.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그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박노엽은 그때부터 약 한 시진가량 모두에게 설명을 했다. 간간이 임옥군이나 구혁상이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막힘없이 술술 대답을 했다.
그렇게 설명이 모두 끝나자 모두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방법이었다. 그대로만 된다면 몇 년 이내로 형산파는 정말 호남을 대표하는 문파가 될 것 같았다.
“허! 정말 대단하군. 어찌 그런 생각을 해냈는가?”
구혁상이 진심으로 감탄을 하며 물었다. 그러자 박노엽이 멋쩍은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하하. 금벽도문에 있을 때는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동안 서러운 것이 많았던지, 박노엽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학자는 스스로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도 바친다 했던가?
지금의 박노엽이 그랬다. 누군가 이렇게 그를 인정하며 대단하게 여겨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너무나 기뻐 살짝 눈물이 고였다. 그는 앞으로 형산파를 일으켜 세우는데 한 목숨 다해보리라고 다짐을 했다.
“어떠세요, 사부님?”
적운상이 묻자 임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방금 들은 박노엽의 계획에 크게 감탄을 했던 것이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냐? 말해 보아라.”
“방금 들으신 계획을 실행해 나가려면 저 사람의 힘이 전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모두들 적운상을 봤다. 그리고 박노엽과 임옥군을 번갈아가면서 봤다.
“아니… 저, 저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박노엽이 당황해서 거절을 하려고 하자, 적운상이 그를 보며 물었다.
“왜? 나이 어린 사형, 사저들이 생기니까 싫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됐잖아.”
적운상이 하는 말에 박노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임옥군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사부님, 제자가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음…….”
임옥군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은서린도 나서서 부탁을 했다.
“저도 부탁드려요, 사부님.”
박노엽은 재치가 있고 말을 재미있게 했다. 거기다 배운 것이 많아 다방면으로 재주가 있었다. 이에 쌍둥이들이 은근히 그를 따르며 함께 놀 때가 많았다.
그것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은서린은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적운상이 저렇게 부탁을 하니 거들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장문인, 내 생각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구나.”
구혁상까지 그리 말하자 잠시 망설이던 임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숙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와아…….”
제일 신나하는 건 역시나 쌍둥이였다. 나연란과 나연오는 박노엽의 소매를 끌고 임옥군에게로 왔다.
“절을 해라.”
임옥군의 말에 박노엽이 어찌할지를 몰라 하다가, 결국 털썩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그러자 은서린이 옆에 있던 차를 그에게 내밀었다.
“훗! 사부님에게 차를 올리세요.”
박노엽이 차를 올리자 임옥군이 그것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옆에 내려놓았다.
“나는 임옥군이라고 한다. 이제부터 내가 네 사부다.”
“네, 사부님.”
“앞으로 형산파 문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사문을 위해야 한다. 알았느냐?”
“네, 사부님.”
임옥군이 미소를 지으면서 수염을 쓰다듬었다. 박노엽은 그렇게 형산파의 새로운 제자가 되었다.
* * *
“뭐야? 박노엽이 형산파의 제자가 됐다고?”
패악룡이 놀라서 묻자 흑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님.”
“음… 약삭빠른 놈.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어? 저기 오는데요.”
흑곰이 다가오는 박노엽을 보며 말하자, 패악룡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노엽이 어제와는 다르게 깔끔한 문사차림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오고 있었다.
“험! 날씨가 좋구만.”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요?”
“뭘 말인가?”
“어떻게 형산파의 제자가 됐느냔 말이오?”
“그게 왜 궁금한가?”
“당연히…….”
자신도 형산파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려던 패악룡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사실 속마음은 그랬다. 이곳에서 제대로 무공을 익혀서 적운상 같은 고수가 되고 싶었다.
그동안 나름 자만하면서 살아왔던 패악룡은 적운상에게 만날 한 방에 나가떨어지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지금도 그는 남들 잘 시간에 몰래 칼을 휘두르며 무공을 수련했다. 하지만 배운 게 짧아서 아무리해도 늘지가 않았다.
“실은 내가 아주 좋은 정보를 하나 알아왔소이다.”
“그, 그게 뭐요?”
“조금 있으면 형산파에서 제자들을 대거 받아들인다고 하더이다.”
“그게 정말이요?”
“생각해 보시오. 형산파는 적 소협, 아니지 이제는 적 사형이지. 험! 적 사형 같은 어마어마한 고수를 길러낸 곳이오. 내 장담하건대 형산파는 앞으로 이곳 남악현뿐만이 아니라 호남성을 꽉 움켜잡게 될 거요.”
“음…….”
패악룡은 그 말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적운상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형산파 같은 명문정파는 줄을 잘 서야 하오. 나를 보시오. 뭐, 어린 사형들과 사저들이 있지만, 이후로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내 밑이 아니오?”
“헛!”
생각해 보니 그랬다. 흑도문파에서야 나중에 들어와도 힘 센 놈이 무조건 위였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그런 것보다 전통의 법규를 더 중시한다는 건, 패악룡도 아는 사실이었다.
“박 책사!”
한 번도 책사라 부른 적이 없는 패악룡이 다급했던지, 박노엽을 책사라 부르며 손을 덥석 잡았다.
“음, 말하지 않아도 그대의 마음이 어떤지 다 아오.”
박노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패악룡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는 올해 서른인데, 내가 나이가 좀 많지 않소?”
박노엽이 똑바로 쳐다보면서 하는 말에 패악룡은 금방 그 뜻을 짐작했다. 어차피 형산파에 입문을 하게 되면 박노엽의 사제가 된다.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패악룡이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형님!”
“험! 그래. 그럼 뭐, 지난 정도 있고 하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나.”
“알겠습니다.”
“일단 이 손부터 좀 놓고…….”
“아! 미안합니다.”
“괜찮네. 험! 조금 있으면 형산파에서 산 밑에 있는 양민들을 돕기 시작할 거다.”
“그들을 왜 돕는단 말입니까?”
“왜긴? 아까 말했잖아. 제자들을 대거 받아들일 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형산파는 그 힘을 숨겨왔네. 우리조차도 몰락해 가는 삼류문파로 알고 있었지 않나.”
“그랬죠.”
“그러니 누가 이런 곳에 입문을 하려고 하겠나? 그래서 양민들을 도우면서 친분도 쌓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고르려는 거지.”
“아, 그렇군요.”
“그 일을 아마 자네들이 하게 될 거야. 그러면 자네가 제일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게. 밑에 애들도 알아서 관리하고 말이야. 그럼 내가 상황을 봐서 넌지시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
“정말입니까?”
“물론일세. 형산파에만 입문하면 자네의 앞날은 탄탄대로야. 마침 때가 좋지 않나? 명성이 쟁쟁한 대문파에 들어가 봤자 만날 윗사람들 뒤치다꺼리나 하지. 하지만 형산파는 지금 웅지를 펴려고 할 때야. 함께하면 세상에 명성을 떨칠 기회도 많지. 그동안 자네가 왜 모나게 굴며 기루를 전전했는지 내 다 알고 있네.”
사실이 그랬다. 패악룡은 나름 그 능력이 대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루에서 살다시피 했다. 다른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꿈도 없고, 목표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그저 시시할 뿐이었다.
그러다 적운상을 만나서 바뀌었다. 패악룡은 적운상처럼 강해지고 싶었다. 그 압도적인 무위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그런데 이제 길이 생겼다. 어떻게 해서든 잡아야 했다.
“형님!”
“그래. 그러니까 내가 일러주는 대로만 해. 혹시나 밑에 애들이 불만을 품고 말을 안 들으면 방금 내가 한 이야기를 넌지시 흘려. 형산파에서 받아준다고 말이야. 그럼 순순히 말을 들을 거야. 그렇다고 걱정은 하지 말고. 내가 자네를 제일 먼저 받아들이도록 말을 잘 해놓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난 이만 가보겠네. 방금 나눈 이야기는 자네만 알고 있고.”
“네, 형님.”
박노엽이 가고 나자 패악룡은 그제야 흑곰이 같이 이야기를 들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흑곰.”
“네, 형님.”
“너는 바로 내 밑이다. 무슨 말인지 알지?”
“물론입니다, 형님.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애들은 뭐 하고 있냐?”
“뒷간 청소하고 그 뒤쪽에 잡초 제거하러 갔습니다.”
“그래? 좋았어. 가자.”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 한다는 생각에 패악룡은 당장에 그리로 향했다. 그걸 보고 흑곰이 머리를 긁적이며 따라갔다.
* * *
“에구… 허리야.”
큰길가의 작은 식당을 하는 강 씨가 이른 아침 허리를 두드리며 집을 나왔다. 오늘 장사할 음식의 재료를 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좁은 마당을 어기적거리며 지나 끙끙대며 간신히 문을 열었다. 문의 경첩이 망가져서 벌써 몇 달째 이렇게 삐거덕대며 애를 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들은 모두 성도로 돈 벌러 가고, 집안에 힘쓸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목수를 부르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헛! 뭐, 뭐, 뭐요?”
간신히 문을 열고 나온 강 씨가 말을 더듬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덩치가 커다랗고 인상이 험악한 사내들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몇몇은 강 씨도 안면이 있었다.
‘금벽도문은 화산파의 도사들이 모두 해치웠다던데, 이자들이 또 무슨 행패를 부리려고…….’
“어이, 영감.”
“무, 무슨 일로 그러시오? 보, 보호비라면…….”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다달이 보호비를 명목으로 돈을 뜯겼던 강 씨였다. 커다란 객잔이나 주루라면 몰라도, 손바닥만 한 식당에 누가 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그것을 막아주는 보호비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이유로 금벽도문에서 돈을 뜯어갔던 것이다. 유독 강 씨만이 아니었다. 이곳 남악현에서 장사를 하는 이치고 그들에게 돈을 안 뜯겼던 사람이 없었다.
“보호비? 그딴 건 필요 없고. 문짝이 고장 난 거야?”
“네?”
난데없이 문짝이 고장 난 것은 왜 묻는 것일까?
그걸 빌미로 또 뭔가를 가져가려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강 씨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닙니다. 고장 나기는요. 하하. 멀쩡합니다.”
강 씨가 보란 듯이 문짝을 손바닥으로 탕탕 치면서 말했다. 그러자 문짝이 그대로 넘어가며 쿵 소리를 냈다.
“헉!”
그걸 본 강 씨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괜한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에 사내들의 눈치를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이건… 그러니까…….”
“고장 났구만. 뭘. 어이.”
“네! 형님!”
“뭐 해? 빨리 고쳐!”
“알겠습니다. 형님!”
사내들 대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 잠시 뚝딱거리자 문이 멀쩡하게 고쳐졌다.
“험! 그럼 수고해. 가자.”
“네, 형님!”
강 씨는 사내들이 그대로 가자 의문이 들었다. 왜 그냥 가는 걸까?
왜 문짝을 고쳐준 걸까? 그것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그날 그런 일을 당한 것은 강 씨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인상이 험악하고 덩치가 산만 한 사내들이 와서 일을 도와주자 모두들 당황해서 강 씨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더구나 그들이 한때 금벽도문에 몸담고 있었던 사내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또 뭔 짓을 하러 왔나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냈다.
그러건 말건 사내들은 적운상의 지시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며 부서진 담이나 문, 지붕을 고쳐주고, 엉망인 길을 정비해서 수레가 다니기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박노엽과 인상이 좋은 몇몇 사내들이 주민들한테 형산파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소문내고 다녔다.
내용인즉슨, 금벽도문이 무너지고 나서 저들이 또다시 나쁜 짓을 할까 봐 형산파에서 거둬 사람구실을 하게 만든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의심을 하던 주민들은, 그들이 야밤에 치안까지 살피면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계속하자 그제야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먼저 마음을 연 몇몇 사람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수고한다고 어깨를 다독여주기도 했다.
그들이 나쁜 짓을 일삼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동향 사람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정도 아예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을 잡자 격려를 해주는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사내들도 그런 일이 처음이라서 많이 쑥스러워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주자 나름 보람을 느끼는 눈치였다.
그렇게 주민들과 사내들이 친해질수록 형산파의 이름이 알려지자 박노엽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형산파 제건 계획의 첫 단계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