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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5화

35화. 갱생 (3)

 

갑작스러운 패악룡의 등장은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것에 만족하며 패악룡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도가 분명한데 도신(刀身)이 마치 검처럼 얇았다. 보통 저렇게 도신이 얇으면 쉽게 부러지고 만다. 검과 도를 쓰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검은 몸체가 얇기 때문에 베거나 후려치는 것보다는 찌르기 위주로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는 몸체가 넓어서 찌르기보다는 베고 후려치는 방법을 주로 쓴다.

그러나 그가 들고 있는 칼은 달랐다. 그의 칼은 거푸집을 이용해서 찍어낸 후에 날을 세우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칼이 아니었다.

쇠를 망치로 두드려 펴서 접은 후에 다시 두드려 펴기를 수십 번이나 반복한 칼이었다. 그래서 내구성이 보통의 검들과는 달랐다. 도신이 얇아도, 도법을 쓰듯이 베고 후려쳐도, 칼이 부러지는 일이 없었다.

패악룡은 옛날에 우연찮게 부상을 당한 노인을 도와주고, 그 칼과 함께 무공을 전수받았다. 그 노인은 동쪽 끝의 어딘가에 있는 나라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오늘 그 검법을 유감없이 발휘해 볼 생각이었다.

“화산파에서 떼거지로 몰려왔다더니, 정말이로군. 너는 또 뭐냐? 앙?”

과연 패악룡이었다. 그는 흑도문파의 최고수답게 일단 상대의 기부터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하필 그가 고른 상대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박력이 팍팍 느껴지는 적운상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흠칫!

패악룡이 주눅 들었다.

“화산파에서 우리에게 이따위 짓을 하는 이유가 뭐요?”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적운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듯이 몸을 홱 돌려서 화산파의 도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야? 저놈.”

“뭐? 놈?”

패악룡의 얼굴이 꿈틀했다. 그는 방금 기가 눌렸던 것을 까맣게 잊고 적운상을 향해 소리쳤다.

“크크크. 이곳의 최고수가 바로 나, 패악룡이다.”

“그렇군.”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짜고짜 백운검을 힘껏 내려쳤다.

따앙!

“크윽!”

패악룡이 얼결에 들고 있던 도를 들어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힘에서 밀려,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냈던 도가 그의 목을 쳤다. 만약 그것이 도가 아니라 검이었다면 그대로 그의 목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컥컥!”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잠시나마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던 금벽도문의 사내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그에게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해서 데려온 자들은 황당함에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 일격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패악룡이 단 일격에 어떻게 저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더 놀랄 일이 그 직후에 일어났다. 적운상이 그의 어깨를 꽉 움켜잡자 갑자기 거품을 물며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픽 쓰러져 버린 것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저렇게 된단 말인가?

모두들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해답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구혁상뿐이었다.

‘녀석. 그렇게 나서지 말라고 일렀건만…….’

구혁상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이렇게 되면 모든 뒷감당을 형산파에서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며 구혁상이 작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화산파에서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적운상이 적우자를 향해 물었다.

“음… 빈도는 일성의 유해를 찾고 싶네. 그리고 책임을 질 저자의 목과 이곳의 멸문을 원하네.”

“알겠습니다. 저자가 두목인 것 같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적운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양과 현우가 움직였다.

쉬쉬쉬쉿!

“크윽!”

일해용은 제대로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들의, 사형제에 대한 정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너.”

“네, 네!”

적운상이 부르자 박노엽이 몸을 흠칫 떨었다.

“네가 여기 이인자냐?”

“아, 아닙니다. 저는 책사인데, 지금까지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 저자가 워낙에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라서…….”

겁을 먹은 박노엽이 죽은 일해용을 가리키며 말했다.

“책사? 별게 다 있군. 일성 도사의 유해는 어디 있어?”

“애, 애들에게 즉시 찾아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남은 금벽도문 놈들 모두 모아서 대기시켜. 한 놈이라도 도망가면 알지?”

“무, 물론입니다.”

박노엽이 진땀을 흘리며 부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면서 말하자 적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저들을 어쩔 생각인가? 살려두면 모두에게 해가 되는 자들일세.”

“갱생시켜 볼까 합니다.”

“뭐?”

“갱생?”

놀란 것은 적우자뿐만이 아니었다. 구혁상도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그렇습니다. 물론 깡그리 죽여 버리는 것이 좋겠지만, 그러면 저들의 가족들이 슬퍼할 겁니다. 더구나 형산파는 앞으로도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싫으나 좋으나 이곳의 양민들과 함께해야 하죠. 그러니 저들을 죽여 그들과 반목하는 것보다는 갱생시켜서 사람 구실하게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거란 생각입니다.”

“허! 생각은 좋으나 그게 가능하겠는가? 흑도문파라는 것이 어디나 그렇듯이 악질들만 모여 있는 곳일세.”

“큭큭.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히죽 웃는 적운상을 보며 적우자는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금벽도문 패거리가 갑자기 불쌍하게 보였다.

‘이런 곳에 잠룡이 있었군.’

뛰어난 무공에 빠른 일처리, 그리고 이후의 대책까지, 결코 그의 나이에 저리 내릴 수 있는 결단이 아니었다. 이에 적우자는 속으로 크게 감탄을 했다.

‘앞으로 형산파가 크게 일어나겠구나.’

일성의 유해가 도착했다. 박노엽이 어지간히 신경을 썼던지, 그의 유해는 관에 넣어져, 마차에 실려 있었다.

“그럼 믿고 가겠네. 언제고 화산에 한번 들르게나.”

적우자가 인사를 하자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박대하지 않으신다면 한번 들르겠습니다.”

“허, 박대라니, 언제든 환영일세.”

적우자가 웃으면서 말하고는 앞장서서 가자 나머지 화산파의 도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가면서 적운상을 힐끗 한 번씩 쳐다봤다.

그들이 가고 나자 구혁상이 적운상에게 물었다.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저들을 도대체 어떻게 갱생시키겠다는 거냐?”

“큭큭. 뭐 딴 방법이 있나요? 죽지 않을 정도로 굴려야죠. 그러다 죽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적운상이 하는 말에 구혁상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적운상이 한 번씩 저럴 때마다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에휴… 모두가 내 탓이지. 내가 저리 키운 게지…….’

* * *

 

“그의 무공이 상당히 뛰어나더군요. 이런 오지에 그런 고수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현양이 하는 말에 적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구나. 앞으로 형산파는 그로 인해 크게 일어날 것이다.”

“흐음… 약간의 성세는 누리겠지만 그 이상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문파라는 것이 한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꼭 그렇지도 않다. 무당파는 장삼풍진인 한 사람으로 인해 일어나서 지금과 같은 성세를 누리고 있지 않으냐? 소림사는 또 어떻더냐? 달마가 오기 전에는 소림사라는 이름을 그 누구도 몰랐었다.”

“그, 그가 그들과 비견할 정도란 말입니까?”

현양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는 성격이 곧고 강직해서 생각하는 것도 그랬다. 적우자도 그것을 알기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허! 녀석. 곧이곧대로 듣지 말거라. 내 말은 문파의 흥망이 한 사람으로 인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숙께서 그를 그리 높게 보는데, 그의 진정한 실력이 어느 정도라 보십니까?”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현우가 물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그자의 말마따나 이미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다면 현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구나.”

“에에?”

질문을 했던 현우는 물론이고 모두가 놀란 얼굴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 재능이 대단해 사문의 어른들이 놀라지 않은 이가 없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가 바로 현성이었다.

장문인의 직계제자로 이제 나이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다음 대의 장문인으로 거론될 정도며, 스물네 명의 매화검수들 중, 실력이 가장 뛰어나기도 했다.

모두들 적운상의 실력이 어떤지 직접 보기는 했지만, 설마 적우자가 그런 현성과 비교를 할 줄은 상당히 의외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자가 어찌 현성 사형과 비견될 수 있단 말입니까?”

현청이 당장에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성은 그가 감히 우러러볼 수조차 없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같은 사부 밑에서 배웠음에도 모든 면에서 현청보다 월등히 앞섰다. 현청은 그런 현성이 적운상 같은 자와 비견된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후후. 좋지 않으냐? 사람이 대성을 하려면 좋은 스승과 좋은 사형제들,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좋은 적수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지.”

“칫!”

현청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러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쌍의 남녀가 십여 명의 무사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오고 있었는데, 사내가 조금 낯익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현청과 마찬가지로 도사복을 입고, 등에 장검을 하나 비껴 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당파?’

현청은 당장에 그를 알아왔다. 적우자 역시 그 사내가 무당파라는 것을 알아봤지만 모르는 척 그냥 지나쳐 갔다. 그러자 잠시 후에 현청이 적우자에게 물었다

“혹시 아까 그 사람, 무당파 아니었습니까?”

“음. 맞다. 약관 정도 되어 보이던데, 혼자 다니는 것을 보니 무당십걸이 분명하다.”

“아!”

적우자의 설명에 모두가 탄성을 냈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었다. 무당십걸과 매화검수들은 예전에 한 번 대면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도 오래전 일이라 그가 누구인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분명… 운학이었지? 무당십걸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양이 기억을 더듬어서 말하자 현우가 손바닥을 딱 치면서 말했다.

“맞다. 운학이었어요.”

“흐음… 저 길로 가면 형산인데, 뭐 하러 가는 거지?”

현양이 멀어져가는 운학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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