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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4화

34화. 갱생 (2)

 

“어떻게 된 거야?”

일해용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나직이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끝장이었다. 이럴 때는 끝까지 모르는 척해서 부하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 제일이었다.

“험! 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아니오? 우리가 화산파의 도사를 죽이다니.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소.”

일해용이 당당하게 그리 말하자 적우자가 초사영을 봤다. 그러자 초사영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제 당신들이 한 짓을 모른단 말이오? 당신네들이 길가에서 여인을 겁탈하려 하기에 나와 대사형, 그리고 화산파의 일성 도사가 함께 나섰소이다. 그런데 대뜸 그쪽에서 먼저 칼질을 했소. 그뿐만 아니라 독까지 뿌리며 온갖 야비한 짓까지 서슴지 않았소. 그 와중에 일성 도사는 죽고, 대사형은 크게 다쳤소. 그것으로도 모자라 형산파로 사람들까지 보내지 않았소?”

“네, 네놈이 어찌 그런 황당한 말로 우리를 모함하느냐?”

“모함이라니? 방금 한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거요? 어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바로 나요. 정 못 믿겠다면 사람들을 불러다 대질을 해봅시다. 어제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오.”

‘이런 제기랄…….’

일해용은 어제 사고를 친 부하들에게 이를 갈았다. 도대체 어쩌자고 화산파의 도사를 죽였단 말인가?

화산파 같은 명문정파 사람들은 말년의 대부분을 제자를 키우는 데 소비한다. 적게는 한두 명, 많게는 서너 명 정도를 받아서 온갖 정성으로 키운다.

어렸을 때부터 벌모세수에 비싼 영약을 가져다 먹이고, 아낌없이 모든 무공을 전수한다. 그러면서 실력이 어느 정도 될 때까지는 문밖으로 내보내지도 않는다.

실력이 늘어 문밖으로 나가게 되어도, 한동안은 같이 다니면서 보호를 한다.

그렇게 키우니 제자에 대한 애착이 친자식 이상이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제자 하나가 잘못되면 그 분노가 엄청났다.

일해용은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옆에 있는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를 봤다. 그는 기형검과 구절편을 쓰는 노인들과 함께 금마도에서 온 사내였다. 이름은 도옥평으로 금마도에서 꽤나 신분이 높은 자였다.

“고, 공자…….”

일해용이 간신히 말을 꺼내자, 도옥평이 피식 조소를 흘렸다.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벌였구나.”

“그, 그게…….”

“됐다. 안 나섰으면 모르되 나선 이상 도움을 주마.”

“헛! 가, 감사합니다.”

도옥평이 고개를 숙이며 굽실대는 일해용을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도호가 어찌되시오?”

“적우다.”

“화산파의 장로로군.”

도옥평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에 말을 이었다.

“제자를 잃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쪽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소. 강호에서는 뜻하지 않게 시비가 일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오. 그러니 이쯤 하고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정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겠다면 이렇게 합시다. 여기 있는 두 명은 내 수하요. 이들과 겨루어서 당신이 이긴다면 뜻대로 하시오. 대신에 진다면 은원을 깨끗하게 잊고 돌아가는 것이 어떻소?”

적우자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금벽도문과 함께 저들까지 상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도옥평이 저런 방식을 제의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

도옥평이 두 명의 노인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두 명의 노인이 그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후에 앞으로 나섰다.

“누가 나설 텐가?”

낫처럼 생긴 기형검을 든 노인이 물었다.

“흥!”

적우자가 천천히 걸어 나가 그 노인과 마주섰다.

“화산파의 검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도록 하지.”

“보고 후회하지나 마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적우자가 검을 쭉 뻗었다. 그러자 검첨(劍尖)이 흔들리면서 작은 원을 그렸는데, 그 모양이 마치 매화 같았다. 화산파의 독문절기인 매화이십사식이었다.

챙챙챙!

노인이 기형검을 휘둘러 적우자의 검을 막아냈다. 그러면서 낫처럼 휜 부분을 이용해서 적우자의 검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매화를 그려내던 적우자의 검이 변화를 잃고 방향이 틀어졌다.

“헛!”

적우자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매화이십사식을 파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화이십사식은 쾌나 중보다는 변에 치중한 검법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변화가 묶이자 제 위력을 내지 못했다.

파각!

“흡!”

노인의 기형검이 적우자의 팔을 긁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냥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노인은 어느새 옆구리를 베여 피를 흘리고 있었다.

“흠, 제법 날카롭구려. 계속하시겠소?”

노인의 말에 적우자는 망설였다. 노인은 생각보다 고수였다. 전력으로 싸워도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긴다 해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저쪽에 있는 체구가 작은 노인을 상대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뭔가에 적우자는 물론이고, 그와 싸우던 노인을 비롯한 모두가 그쪽을 봤다.

“벌써 시작한 건가?”

낮게 중얼거리며 다가오는 사내가 있었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그는 바람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을 날리며 느긋하게 다가왔다.

묘한 분위기의 사내였다. 기세를 풍기는 것도 아닌데 모두가 의식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존재감?

그랬다. 그에게서는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냥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박력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야 왔느냐?”

구혁상이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가 적운상이었기 때문이다.

* * *

 

“네, 사숙조님. 여기는 아직도 정리가 안 된 거예요?”

적운상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제법 고수들이 있더구나.”

“저자들이요?”

적운상이 노인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 금벽도문 사람들은 아닌 것 같구나.”

“그럼 제가 가서 말해 보죠.”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뜻밖에도 현청이 앞을 막아섰다.

“뭐야?”

적운상이 노려보며 묻자, 그 박력에 현청이 흠칫 몸을 떨며 괜히 나섰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모두가 보고 있는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보면 모르나? 지금 사숙께서 저들과 비무 중이시다. 보아하니 형산파의 제자 같은데 거치적거리지 말고 물러나라.”

현청은 이곳으로 오는 동안 가장 심하게 구혁상과 초사영을 무시했었다. 두 사람이야 상황이 상황인 만큼 꾹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적운상은 아니었다. 그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네 말은 형산파의 제자가 아니라면 나서도 괜찮다는 거냐?”

“말길을 못 알아듣는 거냐? 괜히 나섰다가 다치지 말고…….”

후우웅!

“헉!”

현청이 진땀을 흘리며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믿을 수 없게도 적운상의 사자도가 그의 눈앞에 멈춰 있었다.

그가 사자도를 뽑아 휘두르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움직였다 싶은 순간 이미 저런 상태였다.

적운상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고 구혁상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웃음은, 예전에 맛이 가서 수적들을 단번에 몰살시킬 때 봤던 바로 그 웃음이었다.

“차, 참아라! 운상아!”

구혁상이 급히 다가가서 적운상의 팔을 잡아당겼다. 상대는 화산파였다. 손을 잡고 금벽도문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쪽에 대고 칼질을 해대면 끝이었다. 계획은 다 틀어지고 화산파와 척을 지게 되는 것이다.

“운상아!”

“쯧! 운 좋은 줄 알아. 다음부터는 상대를 보고 지껄여라.”

적운상이 다시 히죽 웃어 보이고는 그를 무시하며 지나쳐 갔다. 그러자 현청이 저도 모르게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린 것이다.

“나 형산파의 적운상이다. 금벽도문 놈들은 남고, 상관없는 놈들은 모두 꺼져라.”

적운상의 말에 모두들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잊었다. 가장 황당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구혁상이었다.

아니 도대체 저런 식으로 막 나가면 어쩌자는 건가?

저러면 화산파를 불러들여 함께 싸우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혼자서 나서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구혁상은 어이가 없어서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때 도옥평이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적운상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는 짓이 유치하면서도 대담했다. 자연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큭큭. 미안하오. 너무 웃겨서 말이오. 아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군. 금벽도문을 상대하고 싶으면 여기 있는 두 사람을 꺾으시오. 그럼 뭘 하든 상관하지 않겠소. 하지만 만약에 진다면 모든 은원을 잊고 그대로 돌아가시오.”

“흥! 귀찮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군.”

적운상이 백운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적우자의 앞에 있는 노인을 힐끗 보고, 고개를 돌려 체구가 작고 두 개의 구절편을 쓰는 노인을 봤다.

“그쪽부터 하지.”

적운상이 구절편을 쓰는 노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로구나.”

쉬쉬쉬쉿!

“헛!”

말을 하던 노인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미 가슴 앞섶이 베여 나간 후였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가슴을 베였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노인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편으로는 화가 치솟았다.

“놈!”

파파파파팟!

노인이 두 개의 구절편을 마구 돌리며 적운상을 공격해 갔다. 적운상은 상체만 이리저리 움직여 구절편을 피하다가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뎌 노인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헛!”

쉬쉬쉬쉿!

노인이 놀라서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늦었다. 적운상의 백운검이 그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똑같은 초식에 당했다는 것에 노인은 자존심이 상했다.

“이놈! 죽어라!”

노인이 아껴두었던 절기를 펼쳤다. 구절편을 던지자 마치 창처럼 뻗어나갔다.

적운상이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하는 순간 노인이 손목을 한 번 털었다. 그러자 구절편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적운상의 옆구리를 스쳤다.

기형무기의 장점이 바로 이런 거였다. 예측할 수 없게 허를 찌른다. 이런 공격은 방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적운상은 이보다 더한 기형무기를 쓰는 자들과 수도 없이 비무를 치렀었다. 나름 허를 찌르는 공격이기는 했지만 적운상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저렇게 살짝 스치는 것이 아니라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적운상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노인은 그 이유를 몰랐으나, 어쨌든 적운상의 검은 닿지 않지만, 그의 구절편은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놈! 실수한 거다.’

노인이 그런 생각으로 양손에 있는 구절편을 던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날이 바짝 서 있는 칼이 하나 날아왔다. 적운상이 사자도를 뽑음과 동시에 던진 것이다.

“헉!”

그 공격은 노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기형무기가 아닌데도 그 이상의 허를 찌른 공격이었다.

파각!

“크윽!”

노인이 급히 상체를 숙였으나 사자도가 그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노인이 고통을 참으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이미 적운상의 백운검이 그의 목에 대어져 있었다.

그 같은 결과에 주위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알려지지 않은, 아니 조금은 알려졌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몰락해 가는 형산파에 어찌 저런 고수가 있단 말인가?

“져, 졌다.”

노인이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벌레 씹은 표정이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반절도 안 되는 어린놈한테 졌으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당신도 해보겠소?”

적운상이 기형검을 들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화가 가라앉았는지 그는 아까처럼 하대를 하지 않았다.

노인은 왠지 그게 불안했다. 아까는 안하무인(眼下無人)처럼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더니 지금은 왜 저러는 걸까?

어쨌든 적운상의 실력은 똑똑히 봤다.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를 이기려면…….

노인이 도옥평을 봤다. 도옥평 정도라면 적운상과 한번 붙어볼 만하다 여긴 것이다. 그러나 도옥평은 나설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거 생각지도 못했군. 형산파에 당신과 같은 고수가 있을 줄이야. 이미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라선 건가?”

“헛!”

“무, 무상지검?”

도옥평이 적운상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하는 말에, 모두들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한번 겨뤄보고 싶기는 하지만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군. 약속대로 여기는 당신 마음대로 하도록. 우리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

“헉! 고, 공자, 하지만…….”

일해용이 울상이 되어서 그에게 매달렸다. 그러자 도옥평이 싸늘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성의는 보인 것 아닌가?”

“공자… 제발…….”

“흥! 가자.”

도옥평이 걸어가며 두 명의 노인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들이 적운상을 한 번 슥 노려보고는 도옥평의 뒤를 따라갔다.

“이제 우리끼리 진지하게 대화를 좀 해야 할 때군.”

“그, 그게… 그러니까…….”

적운상의 눈치를 살살 보며 일해용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때였다.

“내가 왔다!”

누군가 크게 소리치며 담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땅으로 내려섰다. 금벽도문의 최고의 고수이자 이곳 남악현의 최고수 패악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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