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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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2화
32화. 조우(遭遇) (4)
구혁상은 가면서 적우자와 함께 있는 이들 중, 매화검수가 네 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화검수는 화산파의 대외적인 문제들을 주로 처리하는 자들이었다. 총 스물네 명인데 모두가 화산파의 상승검법인 매화이십사식(梅花二十四式)을 완숙하게 펼칠 수 있는 고수들이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소림사의 십팔나한이나 무당파의 무당십걸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구혁상과 초사영을 무시하는 투가 역력했다. 대놓고야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말하는 가운데 이쪽을 무시하는 기색이 다분하게 섞여 있었던 것이다.
특히 현청이라는 젊은 도사가 그랬다. 그가 말할 때는 그 냉정한 초사영이 분해서 얼굴색이 다 변할 정도였다.
현청은 적우자의 제자가 아니라 장문인인 적양진인의 제자였다. 거기다 집안도 섬서성에서 알아주는 명문가였다. 그러니 형산파 같은 시골의 작은 문파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는 일성과 친하게 지냈었다. 초사영과 막정위가 그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생각에 자꾸 화가 났던 것이다.
구혁상은 초사영에게 참으라고 눈짓을 계속 줬다. 이들과 싸워봐야 하등 이로울 것이 없었다.
‘운상이가 없어서 다행이로구나.’
만약 적운상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화산파고 뭐고 간에 이성을 잃고 흥분해서 날뛰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현청은 구혁상이 무시를 당하면서도 미소를 짓자 상당히 의외였다.
‘배알도 없는가? 하긴 삼류문파 주제에 자존심 세워봤자 좋을 것도 없지.’
그때였다. 앞에서 사내들 오십여 명이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금벽도문이었다.
구혁상은 의외였다. 설마 저들이 먼저 이렇게 치고 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흥! 저들이 금벽도문이오?”
적우자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렇소. 저리 몰려오는 것을 보니 맞서 싸우기로 작심을 한 모양이오.”
“그래야 할 거요. 그래야 놈들을 모두 죽일 수 있으니까.”
적우자가 살기 가득한 말을 내뱉으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화산파의 도사들이 그의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았다.
“사영이는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거라.”
“네, 사숙조님.”
구혁상이 초사영에게 주의를 주며 단검을 뽑아 들었다. 초사영도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았다.
그렇게 모두가 준비를 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다가오던 금벽도문의 사내들이 이쪽을 이상한 눈으로 보며 한쪽으로 피해 가는 것이 아닌가?
화산파 도사들의 엄청난 기세에 기가 눌려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애초부터 그들의 목표는 이들이 아니었다. 호남객잔에 있는 적운상이었던 것이다.
금벽도문의 사내들이 그렇게 그냥 지나쳐 가자 한판 붙을 생각을 하고 있던 화산파의 도사들은 뻘쭘하니 표정이 묘했다.
“험! 저들이 정말 금벽도문이오?”
“그렇소. 한데 아마도 다른 데 일이 생긴 것 같소.”
그렇게 말하던 구혁상은 문득 적운상이 생각났다. 저리 급하게 가는 것을 보면 적운상이 어디에선가 한바탕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구혁상은 적운상을 불러와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생각을 접었다. 알아서 올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 *
“어떤 새끼야?”
“어디 있어?”
객잔 입구로 들어선 금벽도문의 사내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풍겼다. 장동오의 이야기를 듣고 적운상을 치러 온 것이다.
홍은령은 그들을 보고 바짝 긴장을 했다. 얼추 오십 명이 넘는 것 같았다. 적운상 혼자 과연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오라버니, 빨리 그를…….”
홍은령이 다급하니 홍기우에게 적운상을 도와주라고 말할 때였다.
쾅!
“으아아악!”
“뭐야?”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입구에 있던 사내들이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적운상이 다짜고짜 객잔의 입구를 향해 탁자를 집어 던진 것이다.
놀라서 이쪽을 보고 있는 사내들을 향해 적운상은 앞에 있던 의자를 들어서 집어 던졌다.
쾅!
“끄아아아!”
한 명이 의자에 맞고 뒤로 밀리면서 세 명이 동시에 쓰러졌다.
“저 자식이다! 죽여!”
“와아아아아!”
입구에 있던 사내들이 고함을 지르며 적운상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입구로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적운상이 그들을 향해 달려가면서 창문으로 들어오려는 놈들을 사자도로 베어 넘겼다.
파각! 파각!
“으아아악!”
“끄아악!”
피가 튀고 비명 소리가 울리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안쪽으로 몸을 피했다. 홍은령도 홍기우가 잡아끄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피했다.
그러다 후원으로 가는 문 뒤에 몸을 숨기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걸 보고 홍기우도 멈춰 서서 같이 고개를 내밀었다.
객잔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적운상은 닥치는 대로 그들을 베어 넘기면서, 의자를 집어 던지거나 탁자를 발로 차서 날렸다. 그때마다 금벽도문의 사내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나가떨어졌다.
“물러나! 독을 뿌려! 독을… 컥!”
쾅!
누군가 소리치다가 적운상이 던진 사자도가 가슴에 꽂히자 비명을 지르며 벽까지 날아갔다. 뒤따라 달려간 적운상이 그의 가슴에서 사자도를 잡아 뺐다.
그사이에 몇몇 사내들이 입구와 창문을 통해서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양쪽 소매에 손을 넣어 감춘 상태에서 적운상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히 소매 안으로 독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양손에 쥐고 있었다.
적운상은 옆에 있던 탁자를 짚고 넘어가서 앞에 있는 탁자를 힘껏 발로 찼다. 그러자 탁자가 그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밀려갔다.
쾅!
“크헉!”
사내 세 명이 탁자에 배를 부딪치며 뒤로 넘어졌다. 그러는 바람에 양손이 활짝 펼쳐지며 쥐고 있던 독이 공중에 뿌려졌다.
“젠장! 피해!”
“독이다!”
사내들이 우왕좌왕하면서 피하는데, 적운상이 한 손으로 옆에 있던 탁자의 다리를 잡아서 그들에게 던졌다.
쾅!
“으아아악!”
“크학!”
탁자가 부서지면서 사내들 두 명이 나자빠졌다.
파각! 파각!
“끄아아악!”
“으아아악!”
단 두 번의 칼질에 옆에서 공격해 오던 사내 둘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다시 한 번 사자도를 휘두르자 탁자를 디디고 뛰어올라 칼을 휘두르려던 사내가 다리를 베여 쿵 소리를 내며 그대로 넘어졌다.
적운상이 달려드는 사내들을 향해 탁자를 밀어 차고, 뒤에 있는 커다란 술 단지를 집어서 그들에게 던졌다. 술 단지가 사내들의 머리에 부딪치며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쉬쉬쉬쉭!
순간 적운상이 급히 몸을 틀었다. 그러자 뒤에 있는 벽에서 타타탁 하며 뭔가 꽂히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암기를 던진 것이다.
적운상에게 암기는 없었지만 던질 거라면 그도 손에 들고 있었다. 바로 사자도였다.
텅!
“컥!”
암기를 던졌던 사내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사자도가 날아가서 그의 몸을 벽까지 날려버린 것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사자도는 그의 가슴을 뚫고 도신(刀身)이 거의 반 가까이 벽에 박혔다.
적운상이 백운검을 뽑아 들고 그쪽으로 달려가면서 닥치는 대로 사내들을 베어 넘겼다. 그러다 앞에 있던 탁자를 밟고 사내들의 머리를 뛰어넘어 벽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사내의 몸을 뚫고 벽에 박혀 있던 사자도를 뽑아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에게 덤벼들려던 사내들이 멈칫하며 그 자리에서 굳었다.
올 때는 오십 명이 넘었었다. 그런데 지금 서 있는 것은 겨우 다섯 명뿐이었다. 오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잠깐 사이에 모두 당해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 같은 상황에 놀라고 있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문 뒤에 숨어서 고개만 쏙 내밀고 보고 있던 홍은령과 홍기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적운상의 무공이 생각보다 뛰어난 것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저렇게 무식하게도 싸울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지금 객잔 안에는 사람이고 집기고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적운상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나름 체면을 지키면서 점잖게 싸우는 경우가 많아서, 아무리 싸움이 험악해진다 해도 저런 식으로는 싸우지 않는다.
적운상같이 무공이 뛰어난 고수가 시정잡배들처럼 그렇게 싸울 이유가 없었다. 고상하게 싸워도 충분히 저들을 처리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그렇게 싸웠고, 지켜보고 있던 홍은령이나 홍기우는 그런 싸움방식이 그와 너무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운상이 풍겨내는 엄청난 박력 때문이었다.
거기다 적운상은 사람 수십 명을 저 지경으로 만들고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이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홍은령은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런 적운상이 두렵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 할 거냐?”
적운상이 남은 다섯 명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망설였다.
“너.”
적운상이 사자도로 그들 중 한 명을 가리키자, 그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는 아까 적운상이 보내줘서 이들을 여기까지 불러온 장동오였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자, 자, 장동오요.”
“그래. 너만 남고 다 가라. 가서 더 강한 놈들을 데리고 와.”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사자도와 백운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러자 사내들이 몸을 돌려 후다닥 도망을 쳤다. 하지만 장동오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적운상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후우… 좋군. 집이 어디냐?”
“그, 근처입니다.”
“가족은 있고?”
“네? 네.”
“저런 놈들하고는 왜 어울리는데?”
장동오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나지막이 속삭이듯이 목소리를 냈다.
“강해지고 싶어서요…….”
원래 장동오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마을에서 목수 일을 배우며 부지런히 살았었다. 하지만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금벽도문 때문이었다.
실컷 부려먹고 돈은 나중에 준다고 하는데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두려웠고, 힘이 약해서였다.
이곳에서는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들었다가는 단순히 얻어터지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이 나서면 아무도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굶어죽거나 이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장동오는 목수 일을 때려치우고 금벽도문에 들어갔다. 그들에게 굽실거리고,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하면서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짓을 똑같이 했다. 장동오는 힘이 생겼다고 착각했다.
그러다 홀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나무라자 그제야 잘못을 뉘우쳤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몸을 빼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둔다고 하면 금벽도문 놈들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그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훗! 그래서 강해졌냐?”
장동오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정한 강함은 여기에서부터 나오지.”
적운상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것을 보고 장동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운상이 보기에 장동오는 나름 배짱이 있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보통은 제일 먼저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장동오는 겁을 먹고 몸은 떨고 있었지만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았다. 적운상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자.”
“네?”
“금벽도문으로 가자고.”
장동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 거기에는 고수들이 많아요.”
“그래서?”
“에?”
“방금 말했지. 진정한 강함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네.”
“금벽도문까지 안내만 해. 그럼 넌 돌아가도 돼.”
“어, 어디로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앞장서.”
“네.”
장동오가 앞장서서 객잔의 입구로 향했다. 적운상은 홍은령과 홍기우가 있는 문 쪽을 힐끗 한 번 보고는 장동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눈치 챈 것 같구나.”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이잖아요. 계속 따라가요.”
홍은령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홍기우는 그럴 생각이었다. 좀더 적운상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