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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9화

29화. 조우(遭遇) (1)

 

은서린은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좀처럼 늦잠을 자지 않는 그녀였지만 수련이 너무 고됐다. 적운상이 호통 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자, 빨리 나연란과 나연오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 무기들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은서린은 소리를 질렀다.

결코 무서워서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좌측 전각의 끝에 있는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적운상이 뛰쳐나왔다. 그걸 보고 은서린은 방에 걸어두었던 검을 챙겨들고, 창문을 통해 전각 뒤쪽으로 나갔다.

은서린의 바로 옆방은 주양악의 방이고, 그 옆방은 쌍둥이의 방이었다. 은서린은 몸을 낮추고 쌍둥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없다! 창문이다!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은서린의 방으로 뛰어든 사내들 중 하나가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그러자 사내들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밖을 살폈다. 하지만 은서린은 이미 쌍둥이의 방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없잖아! 밖으로 나가서 찾아봐!”

사내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와서 주양악과 쌍둥이 방의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하지만 그때 은서린은 쌍둥이와 함께 창문을 통해서 뒤쪽으로 다시 나와 있었다.

“여기도 없어! 도대체 어디로 샌 거야?”

은서린은 방에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사내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쌍둥이를 데리고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다 전각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쪽에 몰려 있던 사내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여기 있다! 이쪽이다! 헉!”

소리치던 사내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느새 은서린이 대여섯 걸음이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검으로 그의 다리를 벤 것이다.

“크아아악!”

은서린의 검이 다시 한 번 움직여 그의 팔을 베었다. 그러자 그가 무기를 놓치며 뒤로 물러났다.

“뛰어! 적 사형한테 가!”

은서린이 쌍둥이를 향해 소리쳤다. 나연란은 겁을 먹고 몸이 굳어서 선뜻 움직이지 못했지만 나연오는 달랐다.

그는 마을에 갈 때마다 싸돌아다니며 심심찮게 싸움질을 했었고, 이런저런 꼴도 많이 당했었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나! 빨리!”

나연오가 나연란의 손을 잡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은서린은 쌍둥이가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 앞에서 덤벼드는 사내들을 상대로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다행인 것은 지금 그녀가 싸우는 곳이 전각과 전각 사이의 좁은 길이었기 때문에 두 명 이상은 덤빌 수가 없었다. 만약 그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었다면 은서린이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앗!”

은서린은 침착하게 낙연검법을 펼쳤다.

사내 둘이 칼을 마구 휘둘러댔다. 기세는 사나웠지만, 그뿐이었다. 빠르지도 않고, 초식의 정교함도 없었다.

하지만 은서린은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다. 무공이 훨씬 뛰어난데도 두 사람에게 밀려 계속 뒷걸음질을 쳤다.

“썅! 죽어!”

“계집 주제에!”

사내들이 거칠게 욕을 하며 더 사납게 칼을 휘둘렀다. 은서린은 다급한 상황이 되자 저도 모르게 풍뢰십삼식의 초식이 나왔다.

풍뢰십삼식은 열 살 때부터 열두 살까지 약 이 년 정도 익힌 이후로는 수련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동안 쭉 낙연검법만 수련을 했었다.

그러다 적운상 때문에 근 사 년 만에 겨우 한 달 남짓 다시 수련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풍뢰십삼식의 초식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 한 달 남짓한 수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짐작되는 일이었다.

따당!

은서린이 좌측에 있던 사내가 내려치는 유엽도를 막아냈다. 하지만 체구가 작고 힘도 약한 데다, 내공도 변변찮아서 뒤로 두 걸음이나 밀렸다.

그러자 우측에 있던 사내가 들고 있던 거치도(鉅齒刀)를 내려쳤다. 은서린은 내려치는 그의 손목을 베고, 이어서 팔을 찌르고, 어깨를 찔렀다. 풍뢰십삼식의 일식삼타(一式三打)였다.

원래의 일식삼타는 손목이 아니라 칼을 쳐낸 후에, 팔을 베고, 어깨를 베는 것이다. 하지만 은서린은 도가 아니라 검을 쥐고 있는 상황이었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얼결에 변초를 쓴 것이다.

“크아아악!”

사내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다.

은서린은 의외로 초식이 통하자 깜짝 놀랐다. 비록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밥 먹을 때와 잘 때를 빼놓고는 한시도 칼을 놓은 적이 없었다.

더구나 조금만 틀려도 적운상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혼을 냈기 때문에 수련을 하는 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 실력이 안 늘려야 안 늘 수가 없었다.

이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자 자연스럽게 변초로 응용이 됐던 것이다.

“제길! 뒤로 돌아가!”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자, 은서린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좁은 곳이어서 두 명을 상대할 수가 있었던 건데, 앞뒤에서 덤벼들면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리면서 사내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누군가 한쪽 전각의 벽을 박차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은서린과 상대하던 두 명의 사내들 머리 위에 나타났다. 적운상이었다.

“아!”

은서린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사이에 땅에 내려선 적운상이 몸을 회전시키며 사자도를 휘둘렀다.

파가가각!

“크헉!”

“끄윽!”

딱 한 동작이었다. 그것도 은서린이 한 달 동안 지겹게 연습했던 풍뢰십삼식의 초식 그대로였다. 그 한 동작에 사내 둘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적운상이 뒤이어 덤벼드는 자들을 향해 다시 사자도를 휘둘렀다.

파각!

“크아악!”

적운상의 사자도가 좌측에 있던 사내의 가슴을 사선으로 베고 지나갔다. 이어서 우측에 있던 사내의 배를 횡으로 갈랐다.

파각! 파각!

“으아아악!”

“커헉!”

적운상이 한 번씩 사자도를 휘두를 때마다 사내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그들 모두가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건만, 좁은 곳에서 겨우 두 명씩밖에 덤벼들지 못하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적운상은 황금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사내들을 노려보며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러자 사내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이 뿜어내는 박력에 기가 죽은 것이다.

그걸 보고 은서린은 짜릿하니 전율이 일었다. 적운상이 이렇게 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풍뢰십삼식의 초식을 있는 그대로 쓰는데도 사내들이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순식간에 쓰러졌다.

적운상의 등이 커다란 산처럼 보였다. 듬직했다. 믿음이 갔다. 그러자 마음이 안정되면서 여유가 생겼다.

“연란이와 연오는?”

“뒤쪽으로 갔어요. 제가 찾아올게요.”

은서린이 소리치며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몸이 붕 떠올랐다. 주춤했던 사내들이 다시 덤벼들려고 하자 적운상이 몸을 돌려 달려가면서 그녀를 안아 든 것이다. 이곳에서 저들을 상대하기보다는 쌍둥이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은서린은 적운상의 품에 안기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느 쪽이야?”

“네? 저, 저쪽이요!”

은서린이 우측을 가리키자 적운상이 그쪽으로 달렸다. 사내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우르르 따라왔다.

그렇게 전각의 뒷길을 따라 달리다가 모퉁이를 돌아 앞으로 나왔을 때였다. 전각 앞에서 구혁상이 쌍둥이를 보호하면서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고 조금 안심을 한 적운상이 달리는 속도를 더 냈다.

“뒤에서 온다!”

구혁상을 공격하던 사내들이 적운상을 보고 급히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적운상이 먼저였다. 적운상은 달려가는 힘을 실어서 힘껏 사자도를 휘둘렀다.

따아앙!

“크윽!”

대두도로 얼결에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낸 사내가 뒤로 몇 장이나 날아가서 땅을 뒹굴었다.

파가가각!

“크아아악!”

“아악!”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적운상은 은서린을 안은 상태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보통은 그렇게 사람을 하나 안고 있으면 동작이 둔해지거나, 안고 있는 사람이 다칠까 봐 조심하게 된다.

하지만 적운상의 움직임은 지금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은서린의 체구가 작고 가벼워서 그렇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다치지 않게 할 자신이 있어서였다.

다섯 명을 순식간에 베어 넘기고 구혁상에게 다가간 적운상은 그제야 은서린을 내려놓았다.

“사숙조님! 여기는 제가 맡을 테니 아이들과 함께 피하세요.”

“알았다. 나중에 보자꾸나.”

구혁상이 앞에서 덤벼드는 사내의 박도를 단검으로 쳐내면서 다른 손에 있는 단검으로 그의 목을 베었다. 뒤이어 그를 향해 사내들이 덤벼들자 적운상이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가세요!”

적운상이 사자도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는 백운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낙연검법을 펼치자, 순식간에 세 명이 목을 잡고 쓰러졌다.

쉬쉬쉬쉿!

“크아악!”

우측에 있던 사내 두 명이 어깨와 배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사자도로 풍뢰십삼식을 펼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적운상의 백운검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쉬쉬쉿!

적운상의 백운검이 우측에 있는 사내들 두 명의 목을 긋고 지나갈 때였다.

“으아아아아아!”

“죽어!”

좌측에 있던 사내 네 명이 고함을 지르며 들고 있던 무기를 마구 휘둘러왔다.

따다땅! 파가각!

“크허억!”

“으아아악!”

네 명의 사내들 중 두 명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것은 적운상도 의외였다. 상황이 급박하자 왼손에 들고 있던 사자도로 풍뢰십삼식을 펼친 것이다.

‘어디 다시 한 번!’

적운상은 나름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에 사자도로는 풍뢰십삼식을 펼치고, 백운검으로는 낙연검법과 풍뢰십삼식을 번갈아가며 펼쳤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렇게 두 개의 무공을 섞어서 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은 이미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저도 모르게 초식이 튀어나갔다.

다수를 상대할 때는 하나의 무기를 쓰는 것보다는 두 개의 무기를 쓰는 것이 더 좋은 법이다. 풍뢰십삼식이 두 개의 단검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무기의 길이가 짧아서 근접전을 해야만 하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사자도와 백운검으로 풍뢰십삼식과 낙연검법을 섞어서 쓰자 그런 단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뜻하지 않게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적운상이 날뛰는 사이에 구혁상은 은서린과 쌍둥이를 데리고 비밀통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내들이 그들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앞을 막고 사자도와 백운검을 휘두르는 적운상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일 각 정도가 지나자 사내들은 겨우 십여 명만 남았다. 그들은 더 이상 적운상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노려보기만 했다.

적운상이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후우…….”

적운상은 그제야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한숨을 돌렸다. 주위를 둘러보며 쓰러진 자들의 수를 대충 파악했다. 팔십 명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임옥군이 말하기를 금벽도문은 삼백 명이 조금 넘는다고 했었다. 거기다 고수들도 상당히 많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모두들 하수만 온 것 같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적운상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고수가 몇 명 있기는 있었지만, 그들도 하수들과 마찬가지로 칼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한 채 모두 당했기 때문이다.

임옥군이 생각하는 고수와 적운상이 생각하는 고수의 차이가 그만큼이나 컸다.

임옥군은 적운상보다 무공이 한참이나 아래였다. 그러니 그가 생각하는 고수라고 해봤자 적운상에게는 십초지적(十招之敵)도 안 되는 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적운상이 생각하는 고수는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적어도 오십여 초식 이상 겨룰 수 있는 그런 상대였다.

하지만 몽골에서 알아주던 고수인 큰 호랑이조차도 그의 일검을 막아내지 못했었다. 그러니 정말 웬만큼 뛰어난 고수가 아니고서는 모두 하수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적운상이 사자도와 백운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임옥군의 거처를 힐끗 봤다. 아까 임옥군이나 구혁상이 그곳으로 간 걸 보면, 거기 어딘가에 비밀통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은 알지도 못했고, 그들이 안전한 이상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운상은 사자도와 백운검을 집어넣고 정문을 나가 곧바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혁상이 계획한 대로 금벽도문을 흔들어 시선을 돌려놓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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