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8화
28화. 협의로운 마음 (3)
초사영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자, 주양악은 적운상 때문에 이리된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임옥군의 얼굴은 더욱이 굳어졌다.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서 사과를 하거나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제가 그때 대사형을 말렸어야 했는데…….”
“무슨 소리냐!”
임옥군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초사영이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형산파가 아무리 이리됐다 해도, 지금까지 협에 어긋나는 일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너나 정위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거늘! 어깨를 펴고 당당해야지!”
“사부님…….”
“너희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힘없는 우리네 잘못이고, 그동안 형산파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 내 잘못이 아니더냐? 하아…….”
임옥군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협의로운 일을 하고도 오히려 잘못했다고 하는 초사영의 모습을 보니 자연히 탄식이 나왔다.
그가 만약 힘 있는 명문정파의 제자였다면 저러지 않았을 것이다. 떳떳하게 어깨를 펴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상황이 급하구나. 일단은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상의하자꾸나.”
구혁상이 하는 말에 임옥군이 그를 봤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일단 이곳을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리 섣불리 결정할 일이 아니다. 금벽도문의 세력이 어느 정도더냐?”
“맞서 싸우실 생각입니까? 운상이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무리입니다. 한 손이 열 손을 당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들은 무려 삼백 명 가까이 됩니다. 아니, 아마 그 이상일 겁니다. 게다가 고수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운상이 네 생각은 어떠냐?”
구혁상이 묻는 말에 모두가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나직이 한마디 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겠습니다.”
“허!”
무표정하니 하는 그의 말에 임옥군은 소름이 오싹 돋는 느낌이었다. 그가 알던 적운상이 아니었다. 도대체 십 년 동안 어디서 뭘 하다가 왔기에 저렇단 말인가?
임옥군뿐만이 아니었다. 초사영이나 주양악 모두 등골이 짜릿하니 전율이 일었다.
단순히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적운상이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금벽도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들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는 적운상에게서 엄청난 박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 된다.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다. 너뿐만이 아니라 연란이나 연오가 다칠 수도 있다.”
“그래서입니다.”
“뭐?”
“지금 도망가면 연란이나 연오는 형산파 문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을 겁니다. 몸이 다친 것은 치료하면 그만이지만 마음이 꺾이면 다시 세우기가 힘이 듭니다. 긍지를 꺾느니 죽는 것이 낫습니다.”
“으음…….”
임옥군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적운상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장문인인 그로서는 어떻게든 문파를 존속시켜야만 할 의무가 있었다.
“만용을 부리다 모두가 죽겠단 말이냐?”
임옥군이 목소리를 높이자 구혁상이 끼어들었다.
“만용이 아니다.”
“사숙.”
“화산파가 도와준다면 그들과 한번 해볼 만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까 이야기를 들었지 않으냐? 같이 싸우다가 죽은 젊은 도사가 화산파라고. 내 생각에는 그 젊은 도사의 일행이 근처에 있을 것 같구나.”
그랬다. 화산파에서 실력도 없는 젊은 제자를 혼자 하산시켰을 리가 없었다. 분명 같이 온 일행이 있을 테고, 당연히 고수일 것이다.
화산파는 명문(名門) 중에서도 명문이다. 하산한 제자를 책임질 정도면 결코 하수는 아닐 터, 화산파에서 고수라 인정받을 정도면 금벽도문을 상대하기에 충분했다. 혹시라도 그 유명한 매화검수(梅花劒手)라도 몇 명 있다면 더욱이 일이 쉬워진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사숙께 묘안이 있는 것 같으니 일러주십시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놈들을 조금씩 유인해서 운상이가 모두 해치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뒷감당이 힘들지.”
구혁상이 하는 말에 초사영이 적운상을 봤다. 그는 아까부터 궁금했었다. 도대체 적운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임옥군이나 구혁상이 저리 말한단 말인가?
“그러니 셋으로 나눠서 움직이자꾸나. 나와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초사영입니다.”
“그래. 사영이 너는 나와 함께 그 화산파 도사의 일행을 찾아보자꾸나. 그리고 장문인은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잠시 피해 있는 것이 좋겠다. 아직 비밀통로는 그대로 있지?”
“네. 그렇습니다, 사숙.”
구혁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적운상을 봤다.
“그리고 운상이 너는 금벽도문의 동향을 살피면서 그들이 이곳으로 오려고 하면 다른 곳으로 유인을 해라. 먼저 쳐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나와 사영이가 화산파의 도사들을 찾아서 합세할 때까지는 절대로 혼자서 그들을 해치워서는 안 된다. 알았느냐?”
구혁상이 저렇게 당부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적운상의 실력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금벽도문을 상대할 수가 있었다.
섬서성에서 도락방을 혼자 쓸어버리고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던 그였다. 도락방에 비해 금벽도문의 세가 더 강하기는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구혁상의 말대로 조금씩 유인해서 해치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금벽도문은 오랫동안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흑도문파였다. 당연히 가족이나 지인들도 모두 이곳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일반 양민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복수를 하고자 하면 상당히 난처한 일이었다. 게다가 금벽도문이 무너지면 인근의 다른 문파가 보복을 핑계대고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을 감당하기에 지금의 형산파는 너무나 약했다. 하지만 화산파가 끼면 상황이 달라진다.
화산파는 협의롭기로 이름이 높은 명문정파였다. 거기다 강했다. 그들이 나서면 복수는 생각도 못 한다. 다른 문파들도 눈치를 보느라 한동안은 치고 들어오지 못한다. 구혁상은 그것까지 모두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사숙조님.”
적운상이 대답을 하자 구혁상이 임옥군을 봤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사숙의 계획대로 하겠습니다. 양악이는 가서 서린이와 연란이, 연오를 불러오너라.”
“네, 사부님.”
주양악이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꺄아아아악!”
은서린의 비명 소리였다. 적운상이 주양악을 밀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이어 초사영이 뛰쳐나가려는데 구혁상이 그를 잡았다.
“네 사부와 함께 저 아이를 데리고 나오너라.”
정확한 판단이었다. 금벽도문이 이곳에 왔다면 무조건 뛰어나갈 것이 아니라 막정위부터 챙겨야 했다.
* * *
적운상이 밖으로 나오자 낯선 자들이 분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앞에 있는 자들만 얼추 삼사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방을 나오던 은서린이 그들을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른 것이다.
십여 명의 사내들이 은서린의 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적운상이 다급하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은서린!”
적운상의 외침에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내들이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그것이 적운상이 의도한 바였다.
적운상은 달려가면서 사자도를 뽑아 들었다. 사내들도 무기를 뽑아 들고 마주 달려왔다.
적운상의 눈에 황금빛이 일렁거렸다. 지금까지 적운상은 가급적 뇌기의 사용을 자제했었다. 수적들을 상대하느라 써버린 뇌기가 아직까지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고, 방법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은서린은 물론이고 나연란과 나연오도 위험했다.
“흐아아앗!”
파가가각!
“크아아악!”
적운상이 앞에 있는 자의 어깨를 사선으로 베고, 몸을 돌려 지나가면서 뒤에 있던 두 명의 팔과 다리를 베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 명이 쓰러졌다.
“놈!”
한 명이 소리치며 들고 있던 박도를 휘둘러왔다. 옆에 있던 세 명도 같이 무기를 휘둘렀다.
따다다땅!
적운상의 사자도가 빠르게 움직이며 그들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그때마다 그들은 몸을 떨었다. 적운상의 사자도와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뇌기가 타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파각!
“크아악!”
한 명이 팔을 부여잡고 물러났다. 나머지 세 명이 계속 무기를 휘둘렀다. 적운상이 그들의 무기를 옆으로 쳐냈다.
땅땅따땅! 파각!
“으아아악!”
다시 비명이 터지면서, 또 한 명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남은 두 명이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땅따당! 파각!
“크헉!”
“크아악!”
이번에는 두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적운상은 그대로 앞으로 내달리며, 물러났던 사내들을 향해 한 번씩 사자도를 휘둘렀다. 피가 튀며 그들이 쓰러지는 사이에 적운상은 두 명을 또 해치웠다.
거침이 없었다. 사내들은 적운상의 삼 초식을 받아내지 못했다. 적운상의 사자도가 사납게 휘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한 명씩 쓰러졌다. 어쩌다 막아내도 무기가 부딪치는 순간 뇌기 때문에 몸을 떨며 무기를 떨어트렸다.
뒤에서 그걸 보고 있던 주양악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문득 적운상이 수련시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또 변초 타령이냐? 전에도 말했잖아. 초식이 완벽해야 변초를 써도 쓰는 거라고. 그리고 초식을 왜 있는 그대로 사용하지 못해? 그러지 못하는 건,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주양악은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적운상이 수련시간마다 하는 말을 대부분 흘려들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적운상이 실제로 초식을 있는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을 보니 그저 감탄밖에 안 나왔다. 동작이 너무나 깔끔했다. 응용이나 변초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도 십여 명이 순식간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주양악이 멍하니 서 있는데, 구혁상이 다가왔다.
“뭘 하고 있는 게냐?”
“아! 아니에요.”
“너도 장문인을 따라 일단 몸을 피해라.”
“네? 네.”
하지만 주양악은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운상이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저놈을 죽이려면 금벽도문 전체가 움직여야 할 게다.”
구혁상이 미소 지으면서 하는 말에 주양악은 깜짝 놀랐다. 아까부터 구혁상과 임옥군이 적운상의 실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설마 그 정도란 말인가?
그때 임옥군이 초사영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초사영은 막정위를 등에 업고 있었다.
“사숙, 먼저 가 있겠습니다.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걱정 말아라.”
“양악아, 어서 이쪽으로 오너라.”
“네, 사부님.”
임옥군이 앞장서자 주양악과 초사영이 그 뒤를 따라 급히 움직였다. 비밀 통로는 임옥군의 거처에 있었다. 적운상이 달려간 곳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주양악이 가면서 힐끗 뒤를 돌아봤다.
‘적 사형, 무사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