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3화
23화. 재회 (3)
“으아아아아!”
나연오가 괴성을 지르면서 앞에 있던 아이의 얼굴을 머리로 받았다. 그러자 아이가 코피를 쏟아내며 뒤로 넘어갔다.
‘공격은 먼저!’
적운상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연오가 옆에 있던 아이를 향해 주먹을 쭉 뻗었다. 아이가 얼굴을 맞고 비틀거리자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밀어붙였다.
그걸 보고 남은 아이가 당황하며 나연오를 뒤에서 때리고, 잡아당겼다.
‘다수와 싸울 때는 한쪽으로 몰고…….’
나연오는 앞에 있던 아이의 뒤로 돌아가서 그를 힘껏 밀었다. 그러자 두 아이가 부딪치면서 벽까지 밀렸다.
‘손을 쓸 땐 과감하게!’
“으아아아아!”
나연오가 소리를 지르면서 두 명의 아이들을 향해 달려들어 정신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같이 주먹을 휘둘렀으나 곧 나연오에게 밀려서 얼굴을 얻어맞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러자 나연오가 그들 위로 올라타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방 숨이 턱까지 차고, 지칠 대로 지쳐서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헉헉! 다시는… 헉! 형산파 욕하면… 헉! 헉!”
말을 하던 나연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버렸다. 맞은 곳이 아프고 쓰라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렇게 세 명을 이긴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상대가 금벽도문이지 않은가?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데, 누군가 환하게 웃으면서 내려다봤다. 적운상이었다.
“멋지구나. 과연 형산파의 문인답다.”
적운상이 손을 내밀었다. 나연오가 그 손을 잡자, 적운상이 그를 번쩍 안아 들었다.
“누구…세요?”
“네 셋째 사형이다.”
“아!”
나연오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적운상에 대해서라면 나연오도 나연란과 마찬가지로 은서린에게 몇 번이나 들었었다. 그러나 그동안 들은 이야기와는 너무나 달랐다.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멋있었다.
“사형.”
“왜?”
“나도 사형처럼 강해질 수 있어요?”
나연오는 금벽도문 패거리 일곱 명을 순식간에 해치운 적운상의 실력을 똑똑히 봤다. 더구나 적운상은 중간에 나연오를 가르치는 여유까지 부렸었다.
무엇보다 상대가 금벽도문인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다른 사형들이나 사저들도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쓰러트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가 금벽도문이라면 손을 쓰지 않았다. 나연오가 금벽도문의 아이들하고 시비가 일어도 이유를 불문하고 나연오만 혼냈었다. 그들을 이겨도 한 번도 적운상처럼 칭찬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달랐다. 그는 나연오가 바라던 최고의 사형이었다.
“물론이지. 넌 재능이 있어. 나보다 더 강해질 거다.”
“정말이요?”
“그래. 네가 형산파 문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네! 사형!”
나연오가 환하게 웃으면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 * *
“왔구나.”
쭈그리고 앉아 있던 구혁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다 파셨네요.”
적운상이 비어 있는 화로를 보며 말하자, 구혁상이 미소를 지었다.
“제법 장사가 되더구나. 옆에 있는 아이들이 네 사형제들이냐?”
“네. 인사드려. 구 사숙조님이시다.”
“처음 뵈어요, 사숙조님. 주양악이에요.”
“사숙조님을 뵙습니다. 전 나연란이에요.”
“전, 나연오요. 아야야.”
나연오는 입 안이 터진 것을 깜빡 잊고 말을 하다가 통증이 밀려오자 잔뜩 인상을 썼다.
구혁상이 그를 보니 얼굴과 옷이 엉망이었다. 그제야 적운상의 옷에도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는 것을 깨닫고는 낮게 혀를 찼다.
“쯧, 보아하니 한바탕 하고 온 모양이구나.”
“네. 적 사형은 정말 대단해요! 아까 금벽… 아야… 그놈들을 그냥 한 번에… 아야야…….”
나연오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말을 못 하면서도 신이 나서 계속 떠들어댔다. 그걸 보고 구혁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더 늦어지면 산을 오르기 힘들어진다. 이야기는 여길 정리하고 가면서 듣자꾸나.”
“네.”
손수레에 실을 것을 모두 싣자, 적운상이 앞에서 끌고 나머지 사람들이 옆에서 밀며 다 함께 형산파로 향했다.
* * *
“오셨습니까? 구 사숙.”
임옥군이 구혁상을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예를 갖추었다.
“험! 그래. 오랜만이구나.”
“사부님.”
적운상이 불렀으나 임옥군은 그가 누구인지 선뜻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너, 너는…….”
“저 운상입니다.”
“네가, 네가 정말 운상이란 말이냐?”
임옥군이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아래위로 살펴봤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부님.”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적운상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건 임옥군도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 전, 적운상을 새벽에 떠나보내면서 얼마나 마음이 편치 않았던가?
보내고 나서는 또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그간 소식이 없어서,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며 어디에 있든 무사하기만을 바랐었다. 그러나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죽었다고 생각하며 잊으려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하게 장성해서 돌아온 모습을 보니 기쁘기 한이 없었다.
“녀석… 왜 지금껏 그리 소식이 없었더냐? 모두가 얼마나 네 걱정을 했는지 아느냐?”
“죄송합니다, 사부님. 모든 게 제 불찰입니다.”
“허허! 됐다. 됐어. 이리 무사히 돌아왔으니 된 거지. 어서 일어나라.”
“네, 사부님.”
“어디 얼굴 좀 자세히 보자꾸나.”
임옥군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살이 많이 빠져서 몰라볼 정도였지만, 자세히 보니 예전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험! 언제까지 이리 세워둘 참이냐?”
구혁상이 하는 말에 임옥군이 그제야 그에게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구 사숙. 운상이를 이리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클클. 그간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놀랄 게다.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자.”
“네, 구 사숙.”
모두가 자리에 앉자 구혁상과 임옥군이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서로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임옥군은 구혁상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깐깐했던 성격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훗! 운상이 때문이겠지.’
“사부님, 사형들이 안 보이는데, 어디에 간 겁니까?”
적운상의 물음에 임옥군이 미소를 지었다.
“정위는 자명이를 집에 데려다 주러 갔고, 사영이는 일이 생겨서 그것을 처리하러 갔다. 돌아오려면 달포쯤 걸릴 게다.”
“네.”
적운상은 지금 당장 그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앞으로 볼 날이 많으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아, 은 사매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거예요. 제가 가서 데리고 올게요.”
임옥군이 대답하기도 전에 나연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자 적운상이 같이 일어났다.
“같이 가자. 나도 좀 거들어줄게.”
적운상의 말에 임옥군이 미소를 지었다.
“허허.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겠구나.”
“아닙니다. 요리를 한 지 오래되어서 예전 같지 않을 겁니다.”
“같이 가요, 사형.”
주양악은 구혁상과 임옥군이 나누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혼자 남은 나연오가 임옥군을 봤다.
“너도 가거라.”
“네, 사부님.”
나연오가 크게 대답하며 쪼르르 달려 나갔다.
* * *
탁탁탁탁!
칼을 든 은서린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야채가 잘게 잘려 나갔다.
“후우…….”
야채를 모두 썬 은서린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적운상이 십여 년 전에 떠난 이후로 음식은 은서린이 도맡아서 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적운상이 요리하던 것을 곰곰이 되새겨보기도 하고, 마을에 식재료를 사러 가면 주인들에게 요리방법을 묻기도 하면서, 실력이 점점 일취월장(日就月將)해 갔다. 그래서 지금은 웬만한 요리사 뺨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그럼에도 그녀는 예전에 적운상이 해준 음식보다 맛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원래 스스로 만든 음식보다는 다른 사람이 해준 음식이 맛있는 법이다. 더구나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해주는 음식이라면 더욱이 그렇지 않은가?
‘적 사형은 정말 죽은 걸까?’
임옥군도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그녀 역시 이제는 마음을 접고 포기할 때라 여기고 있었다. 십 년이나 소식이 없으니, 임옥군의 말대로 어디에선가 죽었다고 봐야 했다.
“하아…….”
은서린이 다시 한숨을 내쉬며 야채를 데치려 할 때였다.
“은 사저.”
“어. 이제 왔어? 수고 많았어.”
은서린이 나연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러다 적운상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세요?”
적운상은 대답은 안 하고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이곳으로 오면서 나연란이 은서린을 보면 깜짝 놀랄 거라 하기에 왜 그러나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은서린을 보니, 나연란이 그런 말을 할 만했다.
놀랍게도 은서린은 적운상이 기억하던 일곱 살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십여 년이나 지났건만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조금, 아주 약간 키가 컸고, 앳된 모습이 딱 그만큼만 없어졌을 뿐이었다. 그녀는 열일곱 살인데도 불구하고 기껏 해봐야 열두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은 사매?”
“예?”
은서린이 큰 눈을 깜빡이면서 적운상을 유심히 봤다. 누구기에 자신을 사매라 부르는 것일까?
옆에 있는 나연란을 보니 생글생글 웃고 있다. 나연오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에 있는 주양악은 살짝 샘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마…….’
“혹시… 적 사형이에요?”
“응. 하나도 안 변했구나.”
적운상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은서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적운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예전의 그 적운상이란 말인가?
너무나 바뀐 모습에 은서린은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예전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특히 저 웃음만큼은 지금도 그대로였다.
“사형!”
은서린이 적운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키가 작아서 목은 못 껴안고 허리를 꽉 부둥켜안았다.
“흑……. 왜 이제야 왔어요. 흐엉…….”
“미안…….”
적운상이 은서린을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그러다 그녀를 떼어내서 얼굴을 보고 눈물을 닦아줬다.
“사매하고 사제가 보고 있잖아. 이제 그만 울어.”
“응…….”
대답을 하면서도 은서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어린아이였다. 도저히 열일곱 살로 보이지가 않았다.
“그동안 왜 이렇게 안 컸어?”
“으응…….”
“연란이하고 키 차이도 별로 안 나잖아. 동갑이라고 해도 믿겠다.”
“응. 적 사형이 오면 나 못 알아볼까 봐……. 헤!”
커다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적운상은 그런 은서린을 보자 예전에 같이 지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음식에 눈물 들어가면 안 되니까 잠시 옆에 있어.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해봐야겠다. 연란이하고 연오도 도와줘. 주 사매도.”
“아니 나는…….”
요리라면 당장에 거부감부터 느끼는 주양악이었다. 손을 저으면서 안 한다고 말하려는데, 적운상이 도마에 있던 칼을 들고 돌아보자 그 말이 쏙 들어갔다. 단지 칼 하나 들었을 뿐인데 왜 이리 무섭단 말인가?
적운상이 재료들을 살펴보며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자,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