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6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63화
63화. 통천문 (3)
“귀찮군.”
“네?”
적운상이 하는 말에 옆에서 같이 걷던 은서린이 그를 봤다. 적운상은 말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 은서린이 그런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흉악한 기세를 풍기며 다가오는 십여 명의 사내들이 보였다.
“저자는…….”
백수연도 그들을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통천문 서열 십오 위의 모과종이로군.”
상관지곡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통천문의 서열은 삼십 위부터 있다. 그 아래는 모두 서열에 오른 자들의 수하들일 뿐이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비무를 통해서 서열을 바꿀 수가 있었다.
도전권은 딱 한 번이지만, 이기면 무조건 서열이 바뀐다. 정해진 방식에 따라 누구든 상대를 지목해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심지어 문주조차도 지목을 당하면 비무를 해야만 한다.
그런 치열한 방식으로 인해 정해진 서열이었기 때문에 바로 위의 서열이라 해도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 전에 적운상이 겨룬 서열 이십 위의 광혈도와 서열 십오 위의 모과종과는 실력차이가 상당했다.
“누가 형산파 놈이냐?”
모과종이 쭉 찢어진 눈을 번뜩거리며 물었다.
“나야.”
적운상이 앞으로 나서자 모과종이 그를 노려봤다.
“네가 통천문에 칼을 들이댔다고 들었다. 광혈도를 죽였다지?”
“할 거면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칼 뽑아.”
적운상이 단도를 뽑아 들며 하는 말에 모과종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뻣뻣하게 굴었던 놈은 아무도 없었다.
실력을 떠나서 일단 통천문이라는 배경 때문에 조금이라도 예의를 차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놈은 어디서 막 굴러먹다 왔는지 당장에 칼질부터 하자고 한다.
“흐흐. 어디 실력이 얼마나 되나 보자.”
모과종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두 개의 단극을 뽑아 들었다.
단극이란 자루가 짧은 창의 창날에 초승달 모양의 칼날인 월아(月牙)가 한쪽에 달린 무기였다. 그게 창날의 양쪽에 달리면 방천극(方天戟)이라고 한다.
원래 통천문에는 초극심법(超極心法)과 진천무상검법(振天無像劒法), 삼십이로(三十二路)의 파옥도법(破屋刀法) 등의 독문무공이 있었다.
서열에 든 사람들은 누구나 그 무공들을 익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모과종은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밟아서 서열이 올라간 경우가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상태에서 통천문에 입문한 자였다.
비무를 통해 서열이 주어지고 거기에 따라 권력이 주어지는 통천문의 특징상, 서열에 올라가 있는 자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모과종은 아직까지 뒤늦게 익히고 있는 통천문의 무공보다는 원래 자신이 지니고 있던, 단극을 쓰는 무공이 더 익숙했다. 그래서 단극을 뽑아 든 것이다.
“사형.”
은서린이 걱정되는 얼굴로 적운상을 불렀다. 주양악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적운상은 모과종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그녀의 머리를 살짝 흐트러트렸다.
“물러나 있어.”
적운상의 말에 주양악이 은서린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이들도 모두 물러났다.
모과종 쪽도 마찬가지였다. 부하들이 그만 남기고 모두 뒤로 물러섰다.
대로에 그렇게 두 사람이 무기를 들고 대치하자 지나가는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렸다. 바쁜 이들은 빙 둘러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을 하려고 했다.
모과종이 의도한 바였다. 광혈도가 대로에서 깨지는 바람에 통천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똑같은 방법으로 통천문의 힘을 보여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훙훙!
모과종이 두 개의 단극을 위협적으로 돌리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운상은 단도를 역으로 쥐고 무표정하니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흐아앗!”
쉿! 따앙!
모과종이 왼손에 있던 단극을 비스듬히 내려치자 적운상이 앞으로 나아가며 단도로 막아냈다. 모과종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 곧바로 오른손에 있던 단극을 휘둘렀다.
적운상은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뎌 바짝 붙으면서 단극을 휘두르던 그의 오른팔을 쳐냈다. 그리고 동시에 단도를 어깨에 박아 넣으려고 했다.
“헛!”
모과종이 깜짝 놀라서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적운상이 쫓아오지 못하게 두 개의 단극을 마구 휘둘렀다.
그렇게 거리가 벌어지자 모과종이 다시 자세를 취하면서 적운상을 노려봤다. 광혈도를 일 초식에 보내버렸다고 하기에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방금 초식을 교환해 보니 충분히 그럴 만한 실력인 것 같았다.
아마 조금만 늦게 뒤로 빠졌더라면 어깨에 단도가 그대로 박혔을 테고, 그럼 그걸로 승부는 끝이 났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자 모과종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놈은 단도를 쓰기 때문에 거리가 짧다. 접근하지 못하게만 하면 내가 유리해.’
모과종이 그런 생각을 하며 적운상을 향해 두 개의 단극을 휘둘러갔다. 하나는 적운상의 하체를 노리고 쓸어갔고, 다른 하나는 상체를 노리고 밑에서 위로 올려쳤다.
적운상이 뒤로 물러나자 모과종이 다시 한 번 아래위를 공격해 갔다. 이번에도 적운상은 뒤로 물러났다.
모과종은 계속 거리를 두고 깊게 공격해 들어가지 않았다. 어쩌다 적운상이 거리를 좁히며 공격해 오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제법 머리를 쓰고 있군.”
백수연의 호위무사 중 한 명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적운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저번에 적운상이 광혈도를 일 초식에 쓰러트리는 것을 똑똑히 봤었다.
그래서 모과종의 저런 싸움방식이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여겼다. 만약 자신이 적운상과 싸운다 해도 저런 식으로밖에 싸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의 실력을 보지 못한 이들은 그런 것을 전혀 몰랐다.
모과종은 거리를 두고 돌면서 공격하고, 적운상은 움직이지 않고 공격을 쳐내기만 하니,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마음이 없어서 대충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왜 저러지? 아까는 금방이라도 죽일 것 같이 달려들었으면서.’
상관지곡 역시 두 사람이 왜 저렇게 싸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광혈도를 일 초식에 쓰러트렸다기에 은근히 기대를 했었는데, 실망이 컸다. 통천문 서열 십오 위에 있다는 모과종의 실력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지루한 싸움은 어느새 백여 초식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싸움의 양상은 바뀌지 않고 똑같았다.
“흐음. 조금 지루하군.”
상관지곡이 중얼거리자 백수연의 호위무사들이 그를 비웃는 눈으로 힐끗 쳐다봤다. 그 시선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면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파각!
“크헉!”
한순간 모과종과 적운상의 몸이 서로 겹쳐졌다. 그러자 마치 누군가 확 잡아당긴 것처럼 모과종이 옆으로 튕겨나가 땅을 뒹굴었다.
그걸로 싸움은 끝이었다. 모과종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상관지곡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멍하니 적운상을 바라봤다.
적운상은 단도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다시 품에 넣고 있었다.
“사형.”
“괜찮아요?”
주양악과 은서린이 적운상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녀들을 제지하며 모과종의 부하들을 봤다.
“너희들도 할 테냐?”
“우, 우린…….”
십여 명이나 되면서도 그들은 주춤거리기만 할 뿐 감히 움직이지를 못했다. 방금 모과종이 어떻게 당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싸움은 지루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모과종이 적운상을 봐주는 것처럼 보였다.
적운상은 몇 번이나 같은 초식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당연히 지켜보는 이들 눈에도 그 초식의 틈이 보였다. 그런데도 모과종은 선뜻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유지했다. 그는 백여 초식을 넘게 그렇게 싸웠다.
그러니 생사를 걸고 하는 싸움이 아니라 마치 약속대련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그냥 저러다 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모과종이 깊숙이 공격해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었다. 인내심이 바닥이 난 것이다.
그 순간 적운상의 단도가 그의 팔과 어깨, 그리고 목을 연이어 찍었다. 워낙에 빨라 그들에게는 마지막에 목을 찍는 것만 보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싸움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싸울 생각 없으면 비켜.”
적운상의 한마디에 사내들이 길을 내줬다. 그제야 적운상은 주양악과 은서린을 보며 말했다.
“가자.”
“네. 사형.”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을 하며 뒤를 따랐다.
“후우. 정말 대단하군요.”
호위무사의 말이 백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건 상관지곡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