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5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59화
59화. 천응방 (2)
“잠시 나갔다 올게.”
“어디 가는데요?”
적운상이 나갈 준비를 하자 은서린이 다가와 물었다.
“도 사숙조를 찾아가 보려고. 칼도 좀 손을 봐야 하고.”
“같이 갈게요.”
“남아 있어.”
“싫어요. 같이 갈래요.”
적운상이 은서린을 봤다.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흠, 그럼 같이 가자.”
“나도. 나도.”
주양악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모처럼 성도에 왔는데 방에만 있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래. 가자. 가.”
적운상의 말에 두 사람이 좋아라하며 따라나섰다.
적운상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상관도백을 찾아갔다. 도지림을 만나면 곧바로 못 돌아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상관도백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두려는 것이다.
적운상이 여기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상관도백을 도와서 상인연합의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며칠씩 사라지면 그가 찾아다닐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밖으로 나가겠다고? 어디를 가려는 겐가?”
“성도 구경을 좀 할까 해서요. 칼도 좀 손을 봐야 하고.”
“돈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놀고 오게나. 뭘 사든 상관보 앞으로 달아놓으면 될 걸세.”
“그러죠.”
적운상은 가볍게 대답하고 상관보를 나섰다. 그리고 큰길을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대장간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한쪽에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그리로 가보니 골목길 좌우로 대장간이 여러 개나 있었다.
“헤에, 꽤나 많네요.”
주양악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적운상은 그곳 중 규모가 좀 큰 곳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뭘 하러 왔소?”
근육이 우락부락하니 상체를 벗어젖힌 사내가 물었다.
“칼의 날을 세우고 싶소.”
“어디 봅시다.”
적운상이 사자도와 백운검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사내가 한참이나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보통 칼이 아니구려.”
사자도와 백운검은 보도와 보검이었다. 보통의 쇠가 아니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적운상이 인근에서 가장 큰 곳으로 온 이유도 그래서였다.
“내 실력으로는 무리요. 아마 이 근방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일 거요.”
잠시 더 사자도와 백운검을 살펴보던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적운상이 삼류무사처럼 보였다면 그냥 대충 갈아서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람을 찍어 누르는 박력 때문에 그는 감히 속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면 되겠소?”
“천응방으로 가보시오. 그곳이라면 가능할 거요.”
“위치를 알려주겠소?”
“저쪽 큰길로 나가서 쭉 가다가 우측으로 돌면 높은 담에 문이 커다란 곳이 있을 거요. 바로 거기요.”
적운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주양악이 신기한 듯이 물었다.
“사형,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그거 보통 칼이 아닌가 봐요?”
“그냥 쓸 만해.”
적운상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걸 아마 그 칼의 주인들이 들었다면 화를 참지 못해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새외에서 알아주는 이들의 애지중지하던 무기가 저런 취급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여긴가 봐요.”
은서린이 하는 말에 적운상이 커다란 문을 올려다봤다. 편액에 확실히 ‘천응방’이라고 적혀 있고, 활짝 열려져 있는 문 안에서는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공터가 나왔다. 주위에는 모두 대장간인 듯, 망치질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무슨 일로 왔소?”
깔끔한 옷차림의 사내가 나와서 물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칼을 맡기러 왔소.”
“날을 세우려는 거요?”
사내가 묻는 말에 적운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내가 좌측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리로 가보시오.”
적운상이 그쪽으로 가자 아까 대장간에서 봤던 사내만큼이나 근육이 우락부락한 젊은 사내가 다가왔다. 방금까지 망치질을 하다 왔는지 그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무슨 일로 왔소?”
“칼의 날을 세우고 싶소.”
“봅시다.”
적운상이 사자도와 적운검을 내밀었다. 그러자 사내가 잠시 살피더니 말했다.
“좋은 칼이군. 두 개 모두 날을 세우는데 이백 문이오. 내일 와서 찾아가시오.”
“알겠소. 단검을 사고 싶은데 괜찮은 것이 있소?”
“흠, 여기는 만들어놓은 것을 손보기만 하오. 파는 것은 중앙의 건물을 지나서 뒤쪽으로 가보시오.”
적운상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곳이 상당히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곳은 한 사람이 검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맡아서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역할을 분담해서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알겠소.”
그가 말한 대로 중앙에 있는 건물을 통해 안으로 가자 또 하나의 전각이 보였다. 그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 문사 차림의 사내 하나가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어떤 물건을 보러 오셨는지요?”
“단검을 보고 싶소. 한 쌍으로 만들어진 거면 더 좋을 것 같군.”
“이쪽으로 오십시오. 가격은 어느 정도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소. 칼만 좋으면 되오.”
적운상이 하는 말에 그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옷차림이 허술해서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뜻밖에도 월척이었던 것이다.
그는 중하품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적운상을 안내하려다가 최상품의 물건들이 있는 방으로 안내를 했다.
“저기 있는 아리따운 소저들에게 선물을 하시려는 모양입니다. 이쪽의 물건들이 어떻습니까?”
사내가 보여주는 한 쌍의 단검을 보며 적운상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오해를 단단히 한 듯, 내미는 물건들이 전부 여자들이 쓰기에나 합당한 것들이었다. 그것도 연인들이 징표로 지닐 법한 화려한 장식의 단검들이었다.
주양악, 은서린과 함께이고, 한 쌍으로 된 단검을 달라고 하니까 그런 것들만 보여줬던 것이다.
적운상이 마음에 내켜하지 않으며 좀 더 투박하고 괜찮은 검을 찾으려고 고개를 돌리다가 깜짝 놀라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주양악과 은서린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사내가 내민 단검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끙.”
그동안 형산 오지에서만 생활해 왔던 두 사람이었다. 언제 저런 물건을 봤겠는가?
적운상은 두 사람이 저리 눈을 빛내며 침을 흘리니 차마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주양악한테는 전에 준 것이 있으니 은서린에게 하나 사줄 생각으로 적운상은 그나마 좀 수수하고 괜찮은 단검의 가격을 물었다.
“이건 얼마요?”
“하하.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그건 은자 열두 냥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하기에 합당한 검이지요.”
순간 적운상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무슨 검이 이렇게 비싸단 말인가?
쇠가 좋고 날이 잘 서 있는 건 알겠는데, 그 정도의 값어치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은서린에게 사주려던 적운상은 마음을 접었다.
“비싸군.”
“그렇습니까? 그럼 이쪽의 물건을 한번 보시죠.”
“흠, 내가 보고 고르겠소. 당신은 그냥 당신 할 일 하시오.”
“하하. 손님이 최상의 물건을 싼값에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게 제 일입니다.”
그래서 그따위 물건을 그렇게 비싸게 팔려고 했냐고 한마디 해주려다가 적운상은 꾹 참았다. 그리고 묵묵히 전시되어 있는 단검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장식이 화려하고 뛰어났다. 하지만 적운상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없었다.
“물건은 여기 있는 게 다요?”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비교적 상품을 모아놓은 것이고, 최상품은 저쪽에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좀 비싸서…….”
“봅시다.”
“헛!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적운상이 사내를 따라가려고 하는데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주양악과 은서린이 풀죽은 모습으로 적운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저거 너무 마음에 들어요.”
“아니 뭐, 꼭 사달라는 건 아니고…….”
“어떤 거?”
적운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후다닥 아까 봐둔 단검을 집어 들었다.
“양악아.”
“네? 왜요. 사형?”
“넌 내가 전에 준 거 있잖아.”
“그, 그거… 그거 날 빠져서 맡겨야지 돼요. 그, 그동안 쓸 게 없잖아요. 만날 수련해야 하고, 그리고 또, 혹시나 잃어버릴 지도 모르니까…….”
“끙. 알았다. 알았어.”
“나중에 저 두 개도 같이 계산해 주시오.”
“헛!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사내가 아까보다 더 저자세가 되었다. 사내의 안내를 받아 다른 곳으로 가는 동안 주양악과 은서린은 입이 헤 벌어져서 마냥 기분이 좋았다.
들고 있는 단검을 몇 번이나 뽑았다가 넣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정신을 못 차렸다. 두 사람은 수중에 있는 단검이 비싸고 예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적운상이 줬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가서 물건을 가져오겠습니다.”
사내는 세 사람을 조용한 방으로 안내한 후에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에 시비가 와서 차를 내놓고 갔다.
“사형, 정말 고마워요. 이제 수련 열심히 할게요.”
은서린이 손에 들린 단검을 흐뭇하게 보면서 말했다.
“그래.”
“나도요, 사형. 헤헤.”
“넌 제발 좀 그래라.
“치이. 나만 미워해.”
그때 아까 나갔던 사내가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는 손에 든 보자기를 탁자에 풀어놓았다. 그러자 십여 자루의 단검이 쏟아져 나왔다.
“한번 보십시오. 여기 있는 것들이 최상품들입니다.”
적운상은 거기 있는 검을 하나씩 뽑아보며 모두 살펴봤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다.
자루나 검집은 그리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검신이 마음에 들었다. 양쪽에 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만 있어서 검이라기보다는 도라고 해야 옳았다. 하지만 검신이 얇고 미끈하게 뻗어 있었다.
적운상은 이러한 검을 전에 본 적이 있었다. 패악룡이 쓰는 검이 바로 이런 형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 자루뿐이었다.
“이게 마음에 드는군. 이건 한 자루뿐인가?”
“호오. 역시나 보는 눈이 있군요. 원래는 두 자루였습니다. 하지만 한 자루는 다른 사람이 이미 가져갔습니다.”
“아쉽군.”
적운상은 그 검을 내려놓다가 다시 들었다. 그냥 내려놓기가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걸로 하지.”
“한 자루뿐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적운상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가격을 조금 깎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마지?”
“은자 스물세 냥입니다. 거기다 아까 저기 소저들이 고른 검까지 합하면 모두 마흔다섯 냥입니다만, 딱 잘라 마흔 냥만 받겠습니다.”
“아!”
가격을 들은 주양악과 은서린은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은자 한 냥만 해도 상당히 큰돈이었다. 그런데 마흔 냥이라니…….
하지만 적운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내가 가지고 있던 칼 두 개를 맡겼는데, 이백 문이라고 하더군.”
“아! 그렇습니까? 그 정도야 뭐, 그냥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좋군. 돈은 상관보의 보주가 낼 것이오.”
“네?”
사내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상관보의 보주라면… 상관도백 어르신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소. 그 영감이 돈을 낼 거요.”
“그럼 혹시 상관보에서 오신 분입니까?”
“그렇소.”
“자,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다.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확인이 필요해서…….”
“그러시오.”
사내는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당장에 총관을 찾아갔다. 총관은 이곳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오십 대의 사내였다.
“무슨 일이냐?”
“웬 처음 보는 사내가 소저 둘을 데리고 와서 은자 사십 냥어치 물건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상관보에서 낼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니 혹시나 해서…….”
“이런 멍청한 놈! 너 같으면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에서 상관보를 팔아서 사기를 칠 놈이 있다고 여기는 거냐?”
“그,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됐다. 보아하니 상관보의 손님인 것 같으니 잘 대접해서 보내.”
“네.”
그길로 다시 적운상이 있는 방으로 돌아온 사내는 굽실대면서 문밖까지 배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