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4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48화
48화. 호왕문 (1)
흔히들 호남의 세력분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칠대세력을 꼽는다. 호남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무림문파들 중, 가장 강한 일곱 개의 문파, 그것이 바로 칠대세력이었다.
원릉의 금검문이나 소양의 연씨세가도 그 칠대세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형양에 위치한 남쪽의 패자, 호왕문 역시 칠대세력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럼 네 말대로라면 금벽도문이 무너진 게 화산파의 짓이 아니란 거냐?”
덩치가 좋고 근육이 우락부락한 장년 사내가 차를 마시며 앞에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그가 바로 호왕문의 문주인 마조형이었다.
양손에 한 자가 넘는 길이의 호조(虎爪: 갈고리 네 개가 나란히 달린 무기)를 끼고 펼치는 그의 호형마조(虎形魔爪)는 커다란 호랑이가 덮쳐오는 것과 같이 빠르고 강맹했다.
이에 인근에서는 그를 상대할 자가 없었다. 문파의 이름이 호왕문인 이유도 그의 독특한 조공(爪功)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대답을 하는 사내는 마조형의 동생인 마인걸이었다. 그 역시 문파의 절기인 호형마조를 십이 성 가까이 완벽하게 익힌 상당히 뛰어난 고수였다.
“음… 하지만 소문은 그렇지 않잖아.”
“형산파에서 다 물밑작업을 한 겁니다. 금벽도문을 무너트리고, 그 화살이 화산파로 향하게 한 다음에 세를 불릴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금벽도문의 놈들이 모두 그쪽에 흡수됐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알아보니 양민들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더군요.”
“뭐? 봉사활동?”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이목을 속이며 뭔가 계책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얼마 전부터는 양민들에게 무공까지 가르치더랍니다.”
“흐음… 무슨 꿍꿍이지?”
“그걸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온 청기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형산파에 엄청난 고수가 있답니다.”
“호남일도 이존의를 꺾었다는 그자지?”
“예, 형님.”
“게다가 이존의가 조만간 형산파에 식객으로 눌러앉을 거라고 합니다. 그들을 쓸어버리려면 그 전에 해야 합니다.”
“음… 거참… 뭔가 해보려는 시기에 금벽도문이 무너질 줄이야…….”
“형님, 그냥 쓸어버립시다.”
지금까지 한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는 마조형과 마인걸의 동생인 마삼이였다. 나름 무공은 뛰어났지만, 성격이 우직해서 머리보다는 몸이 앞서는 자였다.
“이존의를 꺾을 정도의 고수가 있다고 하잖아. 게다가 명분 없이 그냥 칠 수는 없어. 우리가 무슨 흑도문파도 아니고.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 돼.”
“고수가 한 명 있다지만 그뿐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자 말고는 고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수가 적습니다. 흡수한 금벽도문 놈들까지 다 합해도 겨우 오십 명 정도입니다. 한 손이 열 손을 당할 수는 없는 법! 고수건 아니건 간에 쪽수로 밀어붙이면 될 겁니다. 그리고 명분은 만들면 되죠. 애들 몇 명 보내서 시비를 일으킨 후에 일을 키우면 됩니다.”
“흐음… 괜찮을 것 같군.”
둘째인 마인걸이 하는 말에 마조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산파가 있는 남악현은 호왕문이 있는 형양과 지근거리에 있었다. 그동안 금벽도문의 뒤를 봐줬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금벽도문이 무너지고, 생각지도 못하게 형산파가 세를 넓히려 하고 있었다. 자라나는 싹은 미리미리 밟아놓는 것이 좋았다.
물론 타협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는 것보다는 이참에 호왕문의 실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줄 겸, 그동안 느슨했던 분위기도 다시 조일 겸, 쓸어버리는 것이 좋았다.
“아버님께서 그런 결정을 내리셨단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도 이참에 실력발휘를 해봐.”
마삼이는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마청기는 심각한 얼굴로 당장에 마조형을 찾아갔다.
“아버지.”
“오… 그래, 아들. 무슨 일이냐?”
“형산파를 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에잉… 또 삼이 그 녀석이 벌써 너한테 가서 이야기를 한 모양이구나.”
“좋지 않습니다. 그들은 회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혹시 이존의를 꺾었다는 그 고수 때문에 그러는 거냐?”
“네. 그는 보통 고수가 아닙니다. 이긴다 해도 희생이 클 겁니다.”
“걱정 말거라. 이미 거기에 대한 계획을 모두 세워놓았다. 그리고 이존의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느냐? 혼자서는 안 되겠지만 인걸이와 삼이가 협공을 한다면, 충분히 이기고도 남는다. 그러니 그를 이겼다고 하는 그 고수도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
“하지만 그는…….”
“됐다. 전에는 늘 자신감에 차 있더니 이번에는 좀 이상하구나. 이미 결정된 일이니, 그리 알고 너도 준비를 하고 있어라.”
무슨 일이든지 한 번 결정하면, 웬만해서는 되돌리지 않는 마조형이었다. 그런 성격을 알기에 마청기는 더 이상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더 대비를 하고, 일이 잘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군.’
마청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조형의 방을 나왔다.
* * *
남악현 외곽의 작은 객잔에서 패악룡이 한 사내와 다투고 있었다. 사내는 그 객잔의 주인으로 성이 왕씨였다.
“아, 글쎄 일 없대도 그러네. 네놈들을 보며 진저리가 쳐져. 그러니 당장 꺼져!”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까지 그러는 겁니까?”
“닥치고 어서 꺼져!”
덩치가 좋은 왕 씨는 눈을 부라리며 패악룡을 향해 소리쳤다. 사실 패악룡은 어렸을 때, 왕 씨의 옆집에 살았었다. 그리고 왕 씨에게는 패악룡과 같은 또래의 아들이 있었다.
둘은 마치 친형제처럼 어울려 다녔다. 커서도 그랬다. 그러다 패악룡이 우연찮게 동쪽에서 왔다는 기인에게 무공을 전수받고 금벽도문에 들어가자, 왕 씨의 아들도 같이 금벽도문에 들어갔다.
그러다 그만 왕 씨의 아들이 죽고 말았다. 호왕문 때문이었다. 호왕문이 금벽도문을 장악하기 위해 손을 뻗었고, 금벽도문은 그에 맞섰다. 그 과정에서 왕 씨의 아들이 죽은 것이다.
금벽도문은 호왕문의 밑으로 들어갔다. 이에 죽은 사람들은 결국 개죽음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패악룡은 금벽도문이 하는 모든 일에 앞장섰었다. 하지만 그렇게 왕 씨의 아들이 죽고 나자 마음이 돌아섰다.
왕 씨는 그 일로 인해 패악룡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아들이 살아 있을 때는 마치 친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대해줬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남보다 더 심하게, 마치 원수를 대하듯이 했다.
“칫! 나도 미안하다고요! 나도 그 녀석 때문에 아직까지 괴롭다고요!”
패악룡이 화가 나서 소리치자, 왕 씨의 눈빛이 무서워졌다.
“당, 장… 꺼져.”
왕 씨는 그 말을 하고, 더 이상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저, 포기 안 합니다. 또 올 거예요!”
패악룡이 그렇게 소리치며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보고 흑곰이 물었다.
“형님.”
“왜?”
“왜 그렇게 왕 씨에게 집착하는 겁니까?”
“몰라도 돼.”
패악룡은 왕 씨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아버지가 없었던 패악룡에게 왕 씨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뜻하지 않게 그렇게 틀어진 채로 지내는 것이 싫었다.
차라리, 그때 왕 씨의 아들이 아니라 자신이 죽었더라면…….
늘 패악룡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이었다.
* * *
장동오는 누나인 장연지와 함께 형산파에서 살게 되자 더없이 좋았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강해질 수 있게 마음껏 무공을 수련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 예전에는 무섭게만 보이던 금벽도문, 아니 이제는 탈각대가 된 사람들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는지 마치 친형제처럼 대해줬다.
이에 장동오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동오야! 식재료 사러 가자.”
“응. 아! 흑곰 형님도 같이 가요. 나 혼자는 다 못 들어요.”
장동오가 옆에 있는, 덩치가 산만 한 흑곰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는 장연지를 본 순간 한눈에 반했다. 하지만 지금껏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얼굴만 붉힐 뿐, 아무것도 못한 채 가슴만 앓고 있었다.
“으, 응. 그러자.”
흑곰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긁적였다. 세 사람은 그길로 산을 내려와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식재료를 사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그들이 형산파 사람이라는 걸 재깍 알아보고, 좋은 것들만 골라서 싸게 줬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장을 봐서 다시 형산파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맞은편에서 험악한 인상의 사내 둘이 지나가면서 장연지의 어깨를 치고 갔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아야!”
장연지가 뒤로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래도 그들은 힐끗 보고 그냥 지나쳐 갔다.
“거기 서! 일부러 그랬지!”
장동오가 그들을 향해 소리치자 그들이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우리가 뭐? 앙?”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로 사내 둘이 다가왔다. 그러자 흑곰이 그들을 막아섰다.
“넌 또 뭐야?”
말을 하던 사내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흑곰이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이런 썅!”
옆에 있던 사내가 흑곰을 향해 발을 차올렸다. 흑곰을 그걸 팔로 막아내면서 박치기를 했다.
그러자 사내의 고개가 뒤로 홱 젖혀지면서 넘어갔다. 거기에 흑곰이 주먹을 꽂아 넣자 그걸로 끝이었다.
“우와아… 역시 흑곰 형님이에요. 대단해요!”
장동오가 칭찬을 하며 치켜세우자, 흑곰이 쑥스러운 얼굴을 했다.
“고마워요.”
“아, 아니요. 그, 저기… 다친 데는…….”
“훗! 저는 괜찮아요.”
세 사람이 그러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러자 장연지가 장동오와 흑곰의 팔을 잡아끌었다.
“빨리 가요.”
“어? 어.”
흑곰은 오늘 내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연지와 이렇게 달라붙어서 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 일이 시작이었음을 그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내 둘을 눕힌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쪽에서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그들을 에워싼 것이다.
“뭐야?”
“우리 애들을 이유 없이 패고 도망가려고?”
“안 되지. 일단 고분고분하게 만들자고.”
사내들이 어깨에 힘을 주며 다가왔다. 흑곰은 뒷걸음질을 치며 장동오에게 말했다.
“내가 저들을 상대할 테니까, 누나를 데리고 도망가.”
“싫어요. 형님을 놔두고 어떻게 우리끼리 가요.”
“여기 있으면 다 같이 당해. 가서 사람들을 불러와.”
“형님.”
“그때까지 버틸 테니까. 걱정 마.”
흑곰이 미소를 지었다.
“가!”
흑곰이 소리치며 앞에 있는 사내 둘을 붙잡아서 초인적인 힘으로 밀어붙였다.
“우오오오!”
“크윽!”
“제길! 이 자식 무슨 힘이 이리 세!”
장동오와 장연지는 그 틈에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그들은 흑곰을 상대하느라 뒤쫓아 오지 않았다. 사실 일부러 그런 거지만, 장동오나 장연지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장동오는 인근에서 양민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던 탈각대를 보고 사정을 알렸다.
“뭐야?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너는 이대로 형산파로 가서 알려. 나는 사람들을 모을게.”
사내는 장동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마을에 내려와 있는 다른 탈각대원들을 찾아갔다. 현재 마을에 내려와 있는 탈각대는 이조, 열다섯 명이었다. 일조는 형산파에서 무공을 수련 중이었다.
그들이 모여서 흑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흑곰은 엉망이 되어서 땅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상대편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여섯 명 모두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져 있었다.
“흑곰 형님!”
그들이 흑곰의 상처를 살피는데, 한쪽에서 십여 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저기다!”
“이 자식들! 감히 우리 애들을 건드려!”
“쳐라!”
“오오오오오!”
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간에 무기를 꺼내 들고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무공이 너무 강했다. 탈각대가 그동안 나름대로 수련을 하면서 풍뢰십삼식과 금안뇌정신공을 배우기는 했지만, 그 기간이 짧아서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