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4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45화
45화. 비무 (1)
“이런 식으로 하깁니까?”
적운상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존의를 쳐다봤다. 그런 적운상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가득했다.
“훗! 눈치 챘나?”
“이렇게 대놓고 하는데 모르길 바란 겁니까?”
이존의가 이렇게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비무를 하는 이유는 순전히 적운상과 겨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사자왕의 사자도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그는 요 며칠간 밤에 잠도 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적운상이 비무에 응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이런 방법을 쓴 것이었다.
“오게. 자리를 만들어줬으니 한번 겨뤄보세나.”
“싫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영감님하고 비무를 할 이유도 없고, 령아와 꽃배를 탈 시간도 없어서요.”
“뭐? 하하하하.”
이존의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껏 그를 대협이니 뭐니 하며 높여 부른 사람들은 많았지만, 적운상처럼 대놓고 영감이라고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홍은령과 어울리기 싫다는 것은 금검문조차도 전혀 안중에 없다는 뜻이 아닌가?
사람들도 그런 적운상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애송이가 저리 건방을 떠니, 고깝게 보였던 것이다.
“누구지?”
“몰라.”
“형산파라고 하는 것 같던데.”
“형산파? 그게 어디에 있는 문파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적운상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형산파가 무시당하는 것을 절대로 못 참는 적운상이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군. 여기서 자네 실력을 보이면 형산파의 명성도 그만큼 알려질 걸세. 그건 괜찮지 않나?”
“훗! 그렇군요. 그건 확실히 괜찮네요.”
그제야 적운상이 천천히 이존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만히 서 있을 때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박력이 뿜어져 나왔다. 고수들이 뿜어내는 기세와는 달랐다.
순전히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기가 눌리자, 적운상을 다시 봤다. 저런 분위기라면 이존의와 붙어서 오십 초식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흥! 형산의 촌뜨기 주제에. 십 초식이나 버티면 다행이지.”
연석강이 같잖다는 듯이 중얼거리는데, 옆에 있던 마청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십 초식은 버틸 것이오. 내 생각에는 오십 초식을 채울 수도 있을 것 같군.”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물론.”
“음…….”
연석강은 겨우 이십 초식도 버티지 못했다. 그런데 마청기가 그렇게 말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내기하는 것이 어떻소?”
“뭘 걸 거요?”
“그가 오십 초식을 버티지 못한다면, 홍 소저의 마음이 내게 기울도록 도와주시오.”
대놓고 하는 말에 마청기가 흥미 있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버틴다면?”
“당연히 내가 마 형을 도와주겠소.”
홍은령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가문 대 가문의 만남이었다.
연씨세가나 호왕문이 금검문과 손을 잡고 세를 불리면, 자연히 다른 문파들이 눌리게 된다. 사실 이전부터 이러한 움직임은 있어왔으나, 지금까지 서로 간에 잘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상대방을 견제하고 이것저것 따지는 바람에 금방 무산되었던 것이다.
“후회하기 없깁니다.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줬으니 적당히 할 생각 없습니다.”
“바라던 바네. 화룡문의 이존의일세. 한 수 배우겠네.”
이존의가 먼저 포권을 취하면서 말하자 사람들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까지 그는 저렇게 먼저 포권을 취하지도 않았고, 저런 말을 한 적도 없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농담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존의의 앞에 있는 저자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제대로 해주시는데요. 형산파의 적운상입니다.”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고 사자도를 뽑아 들었다. 이존의가 그런 적운상을 보며 기세싸움을 하려고 했다. 보통은 이렇게 마주서면 먼저 기세싸움을 하며 서로를 탐색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런 것이 전혀 필요 없다는 듯이 다짜고짜 사자도를 휘둘러왔다.
“웃!”
따앙!
허를 찌르는 선공에 이존의가 사자도를 막아내며 뒤로 밀렸다. 그러자 적운상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훙훙훙!
따당! 땅! 땅!
이존의는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내며 계속 뒤로 물러났다.
‘초식이 단조롭군. 내공도 그리 뛰어나지 않고.’
몇 초식 만에 적운상의 실력을 파악한 이존의는, 그가 어떻게 사자왕을 이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디…….’
“하앗!”
화아아아악!
이존의가 반격에 나서자 갑자기 그의 몸에서 열기가 확 번져왔다. 그 같은 열기는 그의 독문절기인 화룡파천도의 특색이었다. 화룡파천도는 뜨거운 화기(火氣)를 연공해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따앙! 빠지지지직!
“헛!”
두 사람의 칼이 부딪치는 순간, 열기와 뇌기가 부딪치며 서로를 덮쳐갔다. 이존의는 무기를 통해서 몸으로 파고드는 뇌기에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다.
적운상 역시 손에 불에 덴 것같이 뜨거움이 느껴지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오오…….”
그걸 보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감탄을 터트렸다.
‘뇌기?’
‘열기를 쓰는 건가?’
서로 간에 무공의 특징을 파악한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원을 그리며 몸을 움직였다.
“제법 뜨거웠습니다.”
“훗! 나 역시 짜릿했네.”
“그럼… 한 번 더…….”
후우우웅!
“…받아보시죠!”
“어딜!”
따앙!
화아아아악! 빠지지직!
두 사람의 칼이 다시 부딪쳤다. 열기와 뇌기로 인해 서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적운상은 이를 악물고 사자도를 다시 휘둘렀다.
따당! 땅! 땅!
“크윽!”
이존의는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제법 박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리 무식할 줄은 몰랐다. 이대로 계속 부딪치다가는 사람보다 칼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면 자연히 사자도라는 보도를 가지고 있는 적운상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위력은 있지만, 초식이 단조로워. 아직 멀었다.’
“흐아압!”
따앙!
“응?”
이존의가 놀라며 다시 칼을 휘둘렀다.
“하아앗!”
따앙!
“헛!”
이존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분명 초식의 허점을 찔러갔건만, 적운상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막아냈다. 몇 번을 더 계속 허점을 노리고 공격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적운상은 저렇게 초식의 허점을 순식간에 막아낼 정도로 칼이 빠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법이나 보법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허점을 파고들었다 싶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막아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마치 초식을 있는 그대로 쓰고 있는 것 같은 자세였다. 대개는 같은 초식을 반복한다고 해도 절대로 같은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초식을 맞춰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항상 자세가 똑같았다. 변초를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러면 보통은 자세가 어색하고,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늦어야 정상이건만, 적운상은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이존의는 그 이유를 몰라 계속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나지를 않았다.
‘허!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수련을 했기에…….’
이존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화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내공의 우위로 적운상을 누르려는 것이다.
“흐아아압!”
화아아아아악!
칼이 닿지도 않았는데 마치 대장간의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사나운 열기가 먼저 덮쳐왔다.
적운상이 뒤로 몸을 날려 그것을 피했다. 이존의가 재차 공격을 해오자 적운상은 한쪽에 있는 탁자를 밟고, 대청의 입구로 몸을 날렸다.
쾅!
적운상이 밟은 탁자가 박살이 나면서 주저앉았다. 이존의가 바로 옆의 탁자를 살짝 밟고 적운상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십 초식 남았다!”
“앞에 빨리 나가! 못 보잖아!”
사람들이 소리를 치며 아옹다옹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기를 썼다.
“놈!”
순식간에 적운상을 따라잡은 이존의가 화기를 듬뿍 담아서 화룡파천도법을 펼쳤다. 적운상은 앞에 있던 커다란 돌사자상을 밟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이존의의 칼이 적운상을 스치며 그 돌사자상을 때렸다.
콰아아아앙!
사람 크기만 한 돌로 만든 사자상이 그의 칼질 한 번에 반쪽이 나버렸다. 떨어져 나간 반쪽은 완전히 부서져서 흩어졌다.
적운상이 맞은편에 있던 돌사자상을 밟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이존의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칼을 휘둘러오는 것이 보였다.
따앙!
“웃!”
적운상이 이존의의 공격을 힘껏 맞받아치자 그가 뒤로 밀려나며 밑으로 내려섰다. 돌사자상은 사람 크기만 했다.
이존의가 공격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중으로 날아올라야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땅을 디디고 공격하는 것보다 위력이 약했다.
그에 비해 적운상은 돌사자상의 머리를 굳건히 밟고, 이존의의 공격을 쳐냈다. 이에 이존의는 위력에서 밀려 뛰어올랐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놈! 이런 식으로 내공의 차이를 없애겠다는 거냐?’
“흐아아압!”
이존의가 단칼에 돌사자상을 부셔버렸다. 그러자 적운상이 옆으로 몸을 날려 땅으로 내려섰다.
“잠깐!”
적운상이 갑자기 손을 내밀자, 덤벼들려던 이존의가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이미 오십 초식 넘었어요.”
“뭐?”
“오십 초식 넘었다고요. 방금 돌사자상을 부순 것이 오십하고도 여섯 번째 초식이었어요.”
이존의는 잠시 멍한 얼굴로 적운상을 봤다. 그는 적운상을 몰아붙이느라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적운상은 초식을 일일이 셀 여유까지 있었단 말인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게나.”
이존의가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 칼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잠깐! 잠깐!”
“뭐냐? 그런 것은 이미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느냐?”
“그럴 수야 없죠. 제가 영감님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 굳이 이렇게 비무를 계속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령아하고 꽃배 타는 거야 언제든 할 수 있는 거고, 저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거든요.”
적운상이 씨익 웃으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들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저 정도의 반응이라면 앞으로 형산파의 명성이 제법 알려질 터였다.
“음… 그럼 원하는 것이 있느냐?”
“그냥 이쯤에서 그만 하죠.”
“원하는 것을 말해라.”
“들어주기 어려우실 텐데…….”
“원하는 것을 말하라니까!”
“제가 이기면 형산파에 와서 십 년 동안 객(客)으로 머무십시오.”
“뭐?”
이존의는 물론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저건 완전히 대놓고 도와달라는 것이 아닌가?
이존의와 같이 명성이 높은 사람이 어느 문파의 객으로 있으면, 어디든 감히 그 문파를 건드리지 못한다. 문제가 생긴다 해도 객으로 있는 이존의의 체면상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문파건 명성이 있는 사람이 들르면 극진히 대접하며 관계를 돈독히 하고 객으로 머물기를 청한다. 하지만 보통은 며칠에서 길어봐야 일이 년이었다. 저렇게 십 년씩 머무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싫으면 마십시오.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는 거죠.”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미련 없이 사자도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이존의가 재빨리 손을 들어 말렸다.
“아, 알았다. 알았어. 대신에 십 년은 너무하니 오 년으로 하자꾸나.”
“좋습니다. 그러죠. 뭐.”
적운상이 생각하기에 그 정도로도 충분할 듯싶었다. 형산파가 어느 정도 힘을 갖출 때까지만,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허나 네가 지면 이 이야기는 없는 걸로 하겠다.”
“그러죠. 아까도 말했듯이 이제는 영감님 체면 안 봐줄 겁니다.”
“허! 그리 자신이 있느냐?”
대답 대신 적운상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자도가 아니라 백운검을 뽑아 들었다. 그걸 보고 이존의가 약간 의아해하고 있는데, 적운상이 백운검을 자연스럽게 늘어트리며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뭐?”
쉬쉬쉿! 따당!
“…….”
이존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뭔가 들어온다 싶은 순간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적운상의 백운검이 한 번 부딪쳤던 것 같다. 아니 두 번이었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순간 적운상의 백운검은 그의 목 바로 옆에 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