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4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43화
43화. 원릉 금검문 (2)
금검문은 원릉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규모가 형산파의 몇 배나 되는 것 같아서, 적운상과 주양악은 적지 않게 놀랐다. 과연 서쪽의 패자라 할 수 있는 문파다웠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태상가주인 홍문형의 생일까지는 아직까지 며칠이 남았는데도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호남에서 알아주는 문파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명성이 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인 것 같았다.
그걸 보면서 적운상은 금검문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그럼 푹 쉬십시오.”
홍기우가 적운상과 주양악에게 방을 안내해 주고, 인사를 했다. 홍은령은 적운상과 좀더 함께 있고 싶은 눈치였지만, 홍기우가 잡아끄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갔다.
“으아… 드디어 도착이다.”
주양악이 침상에 벌렁 드러누우며 만세를 불렀다. 이곳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많으니 더 이상 수련을 안 할 거라 여긴 것이다.
탕탕.
“양악아.”
“왜요, 사형? 들어와요.”
적운상이 안으로 들어오자 주양악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뭐 하고 있어?”
“네?”
“수련해야지.”
“에엑? 여기서요? 밖에 사람들 많은데요.”
“밖에서 안 해. 여기서 할 거야. 좁은 방 안에서 싸울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빨리 일어나.”
“시, 싫어요! 안 해요! 좀 쉬고 싶다고요!”
“그럼 너는 쉬어. 나는 할 테니까.”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사자도를 뽑아 들었다. 하는 양을 보아하니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대로 내려칠 기세였다.
“사, 사형. 정말 여기서 하려는 건… 꺄악!”
적운상의 사자도가 사나운 기세로 덮쳐오자 주양악이 재빨리 몸을 날려 피하면서 두 개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파앙!
적운상이 내려친 사자도에 의해 침상의 이불이 펄럭거리며 한쪽으로 밀려갔다.
“미쳤어요? 그거…….”
주양악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적운상이 한 걸음 바짝 다가서며 횡으로 사자도를 휘둘러왔기 때문이다.
후웅!
주양악이 상체를 숙여서 피하자 사자도가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박력에 주양악은 등골이 짜릿해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이익! 정말 해보자는 거지!”
주양악이 두 개의 단검을 어지럽게 휘두르며 풍뢰십삼식을 펼쳤다.
적운상이 사자도를 움직여 공격을 막아냈지만, 방 안이 좁아서 움직임이 여의치 않았다. 그때 주양악이 단검 하나를 사자도에 대고 미끄러트리며 바짝 접근해 왔다.
사각!
주양악의 단검은 적운상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적운상의 옷깃이나마 잘라낸 것은.
적운상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홍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소저, 혹시 적 소협이 여기 있습니까? 주 소저.”
홍기우가 방 밖에서 목소리를 높여 몇 번이나 불렀다. 하지만 주양악은 지금 적운상이 휘두르는 사자도를 막아내느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홍기우는 방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걱정이 되어 문을 벌컥 열었다. 그 순간 적운상이 던진 사자도가 문짝에 꽂히며 문이 다시 닫혔다.
텅!
“…….”
홍기우가 깜짝 놀라서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뭐, 뭐야?”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요?”
연석강과 마청기가 다가오며 묻자 홍기우가 그제야 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오. 할아버님께서 적 소협을 만나고 싶다고 하기에 온 거요.”
순간 연석강과 마청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자신들도 같이 왔는데 홍문형이 적운상을 먼저 불렀다는 것에 약간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허면, 가서 그를 부르면 될 것 아니오.”
“그, 그거야 그렇지만…….”
홍기우가 난처한 얼굴을 하며 방문을 힐끗 쳐다봤다. 그제야 연석강과 마청기는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소리요?”
“가봅시다.”
연석강이 방문을 열고 제일 먼저 본 것은 문짝에 박혀 있는 사자도였다. 그것을 보고 흠칫 놀란 그가 고개를 돌리자 침상에 적운상과 주양악이 있었다.
그런데 자세가 참 묘했다. 주양악이 옷이 마구 헝클어진 채, 적운상에게 양손이 잡혀서 밑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헛!”
연석강이 놀란 눈을 하고 있는데, 마청기가 비웃듯이 말했다.
“저런 관계인 줄은 몰랐군. 실례했소이다. 계속 즐기시오.”
마청기가 나가자, 잠시 멍하게 있던 연석강도 나갔다. 혼자 남은 홍기우는 잔뜩 난처한 얼굴로 사과를 했다.
“하하. 그런 줄도 모르고… 나중에 다시 오겠소.”
탕!
세 사람이 그렇게 문을 닫고 나가자, 그들을 잠시 쳐다보고 있던 적운상과 주양악이 서로를 바라봤다.
“비켜요! 사형 때문에 오해받았잖아요!”
주양악은 누운 상태에서도 손목을 누르고 있는 적운상의 손을 떨쳐내며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적운상이 빠르게 그녀의 손을 옆으로 쳐냈다.
타타타탁!
“익!”
주양악이 살짝 인상을 썼다. 적운상에 의해 두 손이 다시 침상에 눌렸기 때문이다.
“헉헉!”
“이런 경우는 휘두르면 안 돼. 동작을 작게 해서 상대의 몸에 대고 베는 게 효과적이야.”
주양악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적운상을 올려다봤다. 정말 바보 같은 사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나 보다.
“왜 그래? 벌써 지친 거야?”
적운상은 갑자기 주양악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덮칠 거 아니면 비켜요.”
“뭐?”
그제야 적운상은 밑에 깔려 있는 주양악의 몸이 의식됐다. 얼굴은 물론이고 귀까지 빨개져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주양악의 모습에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이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녀의 목을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으로 향했다.
“아! 미, 미안.”
적운상이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여자한테는 상당히 부끄러운 자세였다.
“잠깐, 나갔다 올게.”
적운상이 멋쩍어하며 밖으로 나가자, 주양악이 작게 중얼거렸다.
“바보…….”
* * *
방을 나온 적운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정신 차리자, 적운상.”
작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는데, 뒤에서 홍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 소협.”
“응? 아, 홍 형.”
“저기,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아, 아니오. 그런 좁은 방에서 대련을 한 우리가 잘못이지.”
“에? 대련을 한 겁니까?”
대답 대신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홍기우는 처음에 방문을 열었을 때, 사자도가 날아와서 문짝에 꽂혔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였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잠시나마 오해를 했습니다.”
“아니오. 상관없소.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요?”
“할아버님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지금?”
“그렇습니다.”
“흐음. 갑시다.”
그렇잖아도 주양악 때문에 머리가 혼란하던 차였다. 적운상은 다행이라 여기며 홍기우를 따라 홍문형에게 갔다.
몇 개의 전각을 지나 월동문으로 들어가자 아담한 정원이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정자에 홍문형과 웬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후후. 어서 오게나. 오랜만이구먼.”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먼 길을 와준 내가 고맙지.”
두 사람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홍문형의 옆에 있던 노인이 끼어들었다.
“이 젊은이가 자네가 말한 사람인가?”
“그렇지. 인사하게나. 여기는 호남일도(湖南一刀)라 불리는 이존의 대협일세.”
“허허. 대협은 무슨…….”
이존의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협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는 떠돌이 낭인이었지만 무공이 굉장히 뛰어났다. 그의 성명절기인 삼십이 식의 화룡파천도법(火龍破天刀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호남에서 도법이 가장 뛰어난 자가 누구냐를 묻는다면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이존의를 꼽았다.
거기에 더해 그의 협행(俠行)은 누구나 알아줄 정도로 대단했다.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절대 모른 척하고 지나치지 않았으며, 시비가 일어도 항상 협에 의거해서 처리를 했다.
그 세월이 무려 삼십 년이 넘다 보니 이제는 누구나 그를 대협이라 불렀다.
새외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적운상조차도 그의 명성을 들어봤을 정도였다.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형산파의 적운상이라고 합니다.”
“음… 도법을 쓰는 겐가? 아니면 검법을 쓰는 겐가?”
이존의가 적운상의 허리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사자도와 백운검을 보며 물었다. 보통은 검이면 검, 아니면 도면 도, 이렇게 하나의 무기를 쓰는데, 적운상은 보란 듯이 검과 도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답 또한 기가 막혔다.
“둘 다 씁니다.”
“호오… 응? 잠시 그 칼을 볼 수 있겠나?”
이존의의 말에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사자도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이존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방금까지는 훈훈한 옆집 할아버지 같았었는데, 지금 사자도를 살피는 그의 눈은 흡사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의 눈과 같이 정광이 번뜩였다.
창!
사자도를 뽑아본 이존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히 보도(寶刀)라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날카롭기만 하면 좋은 칼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날카로움은 날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쇠가 엉망인 칼도 날을 잘 세우면 잘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명검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는 쇠를 봐야 한다. 쇠를 얼마나 탄력적으로 강하게 만들었는지에 따라 그 칼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름이 알려진 장인이 만든 칼은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다. 쉽게 녹이 슬지도 않고, 무엇보다 탄력이 좋다. 지금 이존의가 들고 있는 사자도가 그랬다. 날은 바로 서 있지 않았지만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존의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칼의 모양이 범상치 않아 혹시나 했는데,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다니던 칼이 분명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