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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8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83화

83화. 단서 (2)

 

땅을 굴러온 사내가 은서린의 발밑까지 왔다. 혁무한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사내가 이쪽으로 올 줄은 예상 밖이었다. 은서린을 안고 뒤로 몸을 날리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어느새 사자왕이 바짝 다가와서 칼을 내려치고 있었다. 은서린의 발밑에 있던 사내가 이제는 끝장이라는 생각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텅!

“…….”

“…….”

은서린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바로 앞에 사자왕의 우락부락한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은서린이 아니라 좀 더 위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녀를 향해 내려치던,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발밑에 있는 사내를 향해 내려치던 칼도 중간에 멈춘 상태였다.

놀랍게도 혁무한이 한 손으로 그의 팔을 막아낸 것이다.

“음…….”

사자왕이 인상을 썼다. 그러자 이마에 힘줄이 하나 툭 불거져 나왔다.

혁무한은 사자왕이 힘을 더해오자 내기를 더 끌어올렸다. 은서린에게 위험하니까 비켜서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 여유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내기가 흩어져서 그대로 사자왕에게 당할 것 같았다.

옆에서 그걸 보고 있던 도자명은 지금이 기회라 여겼다. 재빨리 은서린에게 접근해서 그녀의 팔을 확 잡아당겼다.

“아!”

은서린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혁무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은서린이 생판 처음 보는 놈에게 딸려가자 내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그 힘으로 막고 있던 사자왕의 팔을 밀어내고 몸을 빙글 돌려 팔꿈치로 그의 명치를 쳤다.

파앙!

사자왕이 다급하게 혁무한의 공격을 막아내는 순간 발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생각 외로 강한 공격이었다.

혁무한은 팔꿈치가 찌르르하니 울렸지만 이를 악물고 은서린의 손을 잡고 달려가고 있는 도자명을 향해 몸을 날렸다. 때마침 힐끗 뒤를 돌아본 도자명은 등에 메고 있던 둘둘 말린 천을 공중으로 집어던져 힘껏 펼쳤다.

그러자 잠시지만 혁무한의 시야가 가려졌다. 혁무한은 장식용으로 차고 다니던 검을 뽑아서 천을 조각내 버렸다. 그때 등 뒤에서 엄청난 기세로 사자왕이 칼을 휘둘러왔다.

혁무한은 은서린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사자왕의 공격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몸을 돌려 사자왕이 휘둘러오는 칼을 검으로 쳐내면서 그의 목을 노리고 좌우로 빠르게 휘둘렀다.

“웃!”

사자왕이 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방어를 했다. 두 번의 공격을 상체를 틀어서 피했고, 마지막 공격은 칼로 간신히 쳐냈다. 그 바람에 혁무한과 거리가 벌어졌다.

그 틈에 혁무한은 은서린을 찾으려고 했으나, 어디로 갔는지 이미 그녀는 보이지가 않았다.

“칫!”

혁무한은 화가 치밀었다. 그 화가 자연스레 사자왕에게 향했다. 사자왕은 사자왕대로 무공이 강한 혁무한이 반가웠다.

“큭큭. 이제야 중원에 와서 좀 제대로 된 놈과 겨루겠군.”

“네놈은 뭐냐?”

“뭐?”

“뭔데 나와 설아를 갈라놓느냔 말이다!”

혁무한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사자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일단 은서린부터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꾹 눌러놓았던 포악한 성격이 터져 나오자 감당이 되지 않았다.

따앙! 땅!

“우웃!”

사자왕은 혁무한의 검을 막아내면서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모두 쏟아볼 만한 상대였다.

사실 사자왕은 이곳까지 오면서 수많은 비무를 치렀었다. 좀 강해 보인다 싶으면 무조건 붙잡고 시비를 걸었다. 과거에 적운상이 그러했듯이, 그도 비무를 통해 실력을 더욱이 높이려 한 것이다.

중원의 무공은 확실히 신강의 무공과는 조금 달랐다. 허례허식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실전적이었고, 실전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그건 중원인들의 특성상 당연한 일이었다. 중원인들은 체면을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만큼 겉치레를 좋아했다. 뭔가를 하더라도 모양이 안 나면 하지를 않았다.

그러니 무공이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 혁무한이 펼치는 검법 또한 그랬다. 그가 펼치는 검법은 통천문의 절기인 진천무상검법(振天無像劒法)이었다.

쾌(快), 중(重), 변(變),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뛰어난 검법으로 진중하면서도 호쾌한 것이 특징이었다. 검을 휘두름에 시원시원한 맛이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거기에 맞서는 사자왕의 표정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어떤 이들은 무공이 강한데도 익힌 무공의 특성상 실실 도망만 다니면서 싸운다. 그런 자들을 상대하자면 짜증이 이는 걸 꾹 눌러 참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호쾌하게 맞부딪쳐 오는 자들은 전력을 다해 싸울 수가 있다. 역시나 남자라면 질 때 지더라도 이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 *

 

“헉헉! 사형. 팔 아파. 이제 좀 쉬어요.”

은서린이 자신의 손을 잡고 앞에서 정신없이 달려가는 도자명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제야 도자명이 멈춰 서며 뒤를 돌아봤다.

“헉헉! 안 따라오는 건가?”

그는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아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슨 마음으로 은서린을 잡고 도망쳤는지 몰랐다. 이렇게 무사히 도망쳤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혁무한의 그 더러운 성격상 분명 못 볼 꼴을 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후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너부터 말해. 사실 난 너 쫓아다닌 지 며칠 됐어. 네가 저놈하고 다니는 걸 우연찮게 보고 걱정이 됐었거든.”

“정말이요?”

은서린이 얼굴을 붉히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누가 따라다니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당연하지. 내가 마음먹고 따라다니는데 들킬 리가 없잖아.”

도자명이 조금 우쭐해서 잘난 체를 했다. 도자명은 다 좋은데 저런 점이 안 좋았다. 도지림이 늦게 얻은 자식이라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바람에 가끔 거만을 떨 때가 있었다.

사실 도자명은 요 며칠간 혁무한과 그녀를 따라다니느라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생각 같아서는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사형이라고 은서린이 걱정돼서 그러지를 못한 것이다.

“이제 말해봐. 너는 왜 그 자식하고 같이 다닌 거야?”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은서린은 조금 어두운 얼굴로 혁무한에게 납치된 이유를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도자명은 놀라서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으… 잠깐, 잠깐. 그러니까 네 말은 그 죽은 여자하고 너하고 너무나 닮아서 납치가 된 거란 말이야?”

“네.”

그제야 도자명은 혁무한이 은서린을 납치하고도 왜 그렇게 쩔쩔맸는지 이해가 갔다.

‘그래서였군.’

“어쨌든 그 자식의 손에서 벗어났으니 다행이다. 빨리 돌아가자. 일단 우리 집으로 갔다가…….”

“아니요.”

“응?”

“사형. 나는 지금 돌아갈 수 없어요.”

“뭐? 왜?”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내가 이대로 돌아가면 힘들어할 거예요.”

“너 미쳤어? 그 자식이 어떤 놈인지 몰라서 그래?”

도자명은 혁무한의 진면목을 몰랐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알아요. 아니까 이러는 거예요.”

“너 혹시… 무슨 일 당한 거야? 그 자식이 너한테…….”

도자명이 흥분해서 은서린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은서린이 그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너…….”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날 많이 아껴줬어요. 적 사형보다 더 따뜻하게 대해줬다고요. 흐윽…….”

“어! 왜, 왜 울어? 아니 나는 그냥… 울지 마.”

은서린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도자명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다 은서린을 살짝 안아주면서 토닥거렸다.

“사매. 울지 마. 응? 내가 잘못했어. 미안, 미안.”

“나는 돌아가야 해요.”

“그건, 하아… 사매. 네가 남자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남자는 말이지, 다 속이 시커먼 것들이야. 어느 순간 포악하게 변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킥! 사형도 남자면서.”

은서린이 언제 울었냐는 듯이 도자명을 밀어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도자명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일단은 나랑 같이 돌아가자. 가만, 그런데 너 성도에는 왜 온 거야? 누구랑 같이 온 거야?”

“네? 당연히 적 사형이랑 왔죠. 주 사저도 함께 왔어요.”

“뭐? 적 사형?”

도자명은 적운상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가 집에 돌아온 이후에 적운상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네. 적 사형이요. 아! 도 사형은 아직 적 사형이 돌아온 거 모르고 있었구나.”

“돌아왔다니? 그 뚱보가?”

적운상이 어렸을 때 형산파를 떠날 때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도자명에게 그는 둔하고 바보스러웠던 뚱보일 뿐이었다.

“사형! 뚱보라니요!”

“왜?”

“으그… 나중에 적 사형 만나면 그 생각이 확 바뀔 거예요.”

“그래? 살 좀 빼서 왔나 보지?”

은서린은 적운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말았다. 지금 이야기해 봐야 믿지도 않을 테고, 자꾸 적운상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하니 한번 당해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훗! 나중에 보면 알아요.”

“뭘 숨기는 거야?”

“숨기는 거 없어요.”

“그래. 어쨌든 가면서 이야기하자.”

“사형.”

“응.”

“아까도 말했듯이 나 이대로는 못 가요.”

“안 돼. 난 절대로 너 못 보네. 너 납치된 거라며? 뚱… 아니 적 사형이랑 주 사저가 걱정하고 있을 거 아냐? 그리고 나한테 그렇게 걱정 끼친 게 미안하지도 않아? 너는 우리들보다 그 자식이 더 좋다는 거야?”

“아니 나는…….”

“내 말대로 해. 네가 정 그 자식을 만나고 싶다면 모두를 안심시킨 후에 만나.”

도자명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은서린은 뭐라 할 말이 없자 작게 대답했다.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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