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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8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80화

80화. 진실 (2)

 

‘보통 놈이 아니로군. 형님이 당할 만해. 이 정도면 문주와 동수거나 그 이상이다.’

임진숭은 적운상의 실력을 가늠하면서 꿀꺽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런 놈이 튀어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오늘 여기에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몰랐다.

“형님, 형님 손도 빌려야겠수다.”

임진숭이 옆에 있는 노인을 힐끗 보며 말했다. 삐쩍 마르고 키가 상당히 큰 그 노인은 사노 중 이노인 공충일이었다.

그는 말을 지극히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생각이 깊었다. 같은 머리를 써도 사노인 임진숭은 잔머리를 잘 굴렸지만, 그는 몇 번이나 거듭 생각하며 신중을 기했다.

공충일이 말없이 혁강운을 봤다. 혁강운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물러나십시오.”

“무슨 말이냐?”

당장에 임진숭이 발끈했다.

“냉정해지십시오, 어르신. 그는 범인이 아닙니다.”

“상관없다. 어쨌든 해독할 방법을 알고 있다지 않느냐?”

“그래서 이러는 겁니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해도 통천문이 저놈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임진숭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걸 보고 공충일이 한마디 했다.

“임가야, 나대지 말고 말 들어라.”

“형님!”

임진숭은 그래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적운상에게 머리 숙이고 부탁을 한다고 해서 그가 들어줄 리가 없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면 문주인 혁세명의 목숨이 어찌 될지 모른다. 그러니 무리해서라도 잡아놓고 해독을 하게 만드는 것이 제일이었다.

“시끄럽구나. 무슨 일들이냐?”

조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중후한 내력이 실려 있었다. 이에 모두가 그쪽을 봤다.

키가 땅딸막한 노인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옷차림이 허름하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눈에서 터져 나오는 정광은 감힌 범인이 마주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공이 높은 경지에 오른 고수라는 뜻이었다.

“형님.”

임진숭이 그를 불렀다. 그는 사노 중 첫째인 일노 장노한이었다. 문주인 혁세명도 두려워하지 않는 임진숭이었지만 그만은 어려웠다. 임진숭에게는 큰형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게… 저자가 문주의 독을 치료할 방법이 있다고 해서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누구냐?”

“저놈입니다.”

임진숭의 말에 장노한이 눈에 이채를 발하면서 적운상을 봤다.

“네게 정말 그 독을 치료할 방법이 있느냐?”

“독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독이 아니라면 나도 방법이 없소.”

“원하는 것을 말해라.”

“대화가 좀 되는군. 혁무한이 내 사매를 납치해 갔소. 그를 찾아주고, 내가 그 자식을 죽여도 관여하지 마시오.”

“음…….”

혁세명과 혁무한의 목숨을 놓고 비중을 잰다면 당연히 혁세명이었다. 하지만 선뜻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먼저 문주의 상태를 봐주게. 해독이 가능한지 보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하지.”

“그러지.”

그렇게 결정이 나자 장노한이 적운상을 안으로 안내했다.

* * *

 

커다란 방 안의 침상에 한 장년사내가 누워 있었다. 인자한 문사처럼 생긴 그가 바로 통천문의 문주인 혁세명이었다. 그는 잠을 자는 것처럼 미동도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살펴보게나.”

장노한의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혁세명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임진숭이 슬쩍 적운상의 뒤에 서서 내기를 끌어올렸다. 아직 임진숭은 적운상을 믿지 못했다. 혹시라도 허튼짓을 한다면 단번에 쳐 죽일 생각이었다.

“걱정 마. 영감. 그런 짓을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까.”

“흥.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영감은 오래 살 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

“의심이 그렇게나 많잖아.”

“끄응.”

첫날 적운상과 손을 섞고 돌아온 허우생은 그의 격장지계에 넘어가 손해를 봤다고 분을 참지 못했었다. 그걸 보면서 임진숭은 그 불같은 성격을 좀 어떻게 하라고 핀잔을 줬었다.

그런데 지금 겪어보니 허우생의 성격만 탓할 게 아니었다. 사람 속을 박박 긁어대는 한마디, 한마디가 영 신경에 거슬렸다.

“흐음…….”

혁세명의 완맥을 짚어본 적운상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독이 분명했지만 독성이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어떻소?”

혁강운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난처하군.”

“무슨 뜻이냐?”

임진숭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익힌 내공심법은 뇌기를 연성하지. 그래서 몸 안의 모든 독을 태워버릴 수가 있어.”

적운상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거였다. 적운상은 구혁상과 함께 새외를 돌며 수없이 많은 비무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비무에 진 자들 중에는 악심을 품고 그를 독살하려고 했던 이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당했었는데 그 같은 일이 자주 생기자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뇌기가 몸 안의 독을 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뭐?”

임진숭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적운상의 말대로라면 그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의 내공심법을 연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웅만은 달랐다.

“아! 그래서 그때 그랬군요.”

적운상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진웅이 손바닥을 탁 치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실은 예전에 적 형하고 장력을 겨룬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분명 적 형의 내공은 나보다 약했는데 심장까지 뭔가가 파고들더군요. 그게 뇌기였군요.”

“맞소. 내가 연성한 뇌기는 상대의 내공이 어떻든 상관없이 몸을 파고들 수 있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네놈의 내공심법은 무적이란 말이냐?”

임진숭이 하는 말에 적운상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는 않아. 상대의 기운을 한순간에 파고들기는 하지만 그뿐이야. 나도 상대의 내기를 그대로 감당해야 하거든.”

“그런 별 해괴한… 어쨌든 네놈 말대로라면 너는 독에 중독되어도 죽지 않겠구나. 모두 태워버리면 되니까.”

“가벼운 독이라면 가능하지. 하지만 독성이 강하면 뇌기를 제어하기가 힘들어서 내상을 입게 돼.”

예전에 독무곡의 곡지연이 준 독주를 마시고 나서 뇌기로 바로 태워버리지 않았던 이유가 그래서였다. 뇌기는 전해지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다른 이들의 내기를 뚫고 갈 수 있는 이유도 그래서였고, 금안뇌정신공의 성취가 팔 성이 되기까지 몸 안의 경락과 혈만 단련하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몸 안에 독이 들어오면 그 영향으로 인해 뇌기를 제어하기가 힘들어진다. 단련된 통로가 중독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으로 뇌기를 보내려면 상당히 세심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독성이 강한 독에 중독되면 일단 정신부터 혼미해지기 때문에 그런 집중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결국 어떻게 독을 태워버린다 해도 뇌기를 제어하지 못해 심한 내상을 입는다.

“그럼 아버님의 독도 태워버릴 수 있다는 거요?”

“가능하기는 하지만 어렵군.”

“뭐가 어렵다는 거요?”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단순한 독이라면 뇌기로 태워버릴 수가 있소. 하지만 문주님의 몸에 있는 건 독이되 독이 아니오.”

“그게 무슨 말이오?”

“저 독에 중독되면 십여 일 정도를 잠만 자다가 갑자기 죽는다고 들었소. 내 생각에는 무슨 독인지는 모르겠지만 발작하기 전까지는 독이 아닌 채, 체내에 잠복해 있다가 어느 순간 극독으로 변하는 것 같소.”

“음…….”

적운상의 말대로였다. 그 독은 평소에는 독이 아니지만 한순간 극독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독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름 있는 명의들조차도 치료를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치료할 방법이 없는 거요?”

“아니오. 방법은 있소. 내가 계속 여기에 죽치고 앉아서 독이 발작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태워버리면 되오. 하지만 그 방법도 장담은 못하오. 독성이 얼마나 강할지도 모르고 어디에서 발작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내가 제때에 대처할 수 있다는 확답은 못하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거기에 거는 수밖에 없군요. 부탁드리오. 적 대협.”

혁강운이 포권을 취하며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고개를 저었다.

“난 대협이 아니오. 그리고 지금 내게는 사매의 안위가 더 중요하오. 여기에 붙어서 시간을 낭비할 생각 없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임진숭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러자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그를 쳐다봤다.

“어이 영감. 영감에게는 여기 누워 있는 이 사람이 중요하겠지만 나한테는 그저 남일 뿐이야. 게다가 혁무한 그 자식의 아버지인데 내가 왜 심력을 소모해 가면서 치료를 해야 하지?”

“흥!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는 물론이고 네놈의 사문까지 박살을 내버릴 테다.”

“웃기는군. 좋아. 그럼 가서 혁무한 그놈의 목을 베어와. 사매도 무사히 데려오고. 이 독에 중독된 사람들은 보통 보름 정도는 무사하다고 하더군. 이제 오 일 지났으니 아직 시간이 있어. 오 일 주지. 어때?”

“선택권은 네놈이 아니라 우리한테 있다는 걸 모르느냐?”

“그럼 해봐.”

“뭐?”

“보아하니 힘을 써서 날 누르려나 본데, 한번 해보라고. 난 싸움이 나면 제일 먼저 이 사람의 목을 칠 거야. 그 다음은 영감 당신이고.”

“이노옴!”

“그만! 네놈은 나서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

공노한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임진숭을 나무랐다. 그러자 임진숭이 움찔하며 몸을 사렸다.

“기분이 상했다면 용서하게. 저 녀석이 저 나이 되도록 아직 철이 없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군요.”

적운상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자 임진숭이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공노한 때문에 아까처럼 성을 내며 나서지는 못했다.

“적 공자. 자리를 옮겨서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그러지.”

혁강운의 제의에 적운상이 방을 나오자 이은성과 진웅, 백묘묘도 같이 뒤를 따라 나왔다. 혁강운은 그들을 데리고 작은 월동문을 지나 커다란 연못에 있는 정자로 갔다. 가는 도중 혁강운은 공노한에게 슬쩍 눈짓을 줘 시끄러운 임진숭을 끌고 가게 했다.

“앉으시오.”

혁강운의 말에 적운상과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잠시 후에 시비가 차를 내왔다. 차향이 은은한 것이 상당히 품종이 좋은 차 같았다. 적운상이 찻잔의 뚜껑을 열고 입술을 살짝 축이는데, 혁강운이 입을 열었다.

“후우…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무한이가 적 공자의 사매를 왜 데려간 건지 혹시 알고 있소? 은성 저 친구까지 이리 나선 걸 보면 필시 이유가 있을 것 같군.”

“적 형의 사매는… 설아와 닮았다. 외모나 성격까지, 너무나 똑같더군.”

“그, 그게 정말인가?”

“볼 때마다 착각할 정도야.”

“음…….”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동안 혁무한이 얼토당토않은 일을 많이 벌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십여 일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온 적은 없었다. 그것이 조금 이상하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 적 공자의 사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강운!”

이은성의 눈이 무섭게 변했다. 하지만 혁강운은 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진정해. 사실 무한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런 개망나니가 아니야. 모두가… 나 때문이지. 내가 너무 못난 탓이야.”

자조적인 혁강운의 말에 모두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통천문의 다음 대 문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공이나 인품, 사람을 끄는 힘까지, 어느 하나 뛰어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건만 왜 저리 이야기하는 것일까?

“예전에 있었던 일에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뒷이야기가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이은성이 채근하듯이 물었다. 그러자 혁강운이 크게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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