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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7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4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76화

76화. 부활 (1)

 

콰콰콰콰쾅!

번쩍!

하늘이 부서질 듯이 천둥번개가 쳤다.

쏴아아아아!

굵은 빗방울이 세찬 바람에 날려 주양악의 온몸을 때렸다. 하지만 주양악은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멍하니 넋을 잃고 눈앞에 있는 적운상만을 보고 있었다.

적운상은 새까맣게 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주양악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호흡을 확인하려고 했다.

파직!

“아!”

순간 손을 타고 들어오는 뇌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천천히 손을 내밀어 적운상의 코앞에 댔다. 호흡이 없었다. 죽은 것이다.

“사… 사형! 흐으윽… 으아아아앙……!”

비바람에 섞여 그녀의 눈물이 쓸려 내려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투정부리지 않고 좀 더 잘 따르고, 말도 잘 들을걸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항상 싫다고만 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사실은 좋아한다고 말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양악은 적운상이 이 꼴이 되고 나서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그동안 얼마나 적운상을 좋아했었는지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의 존재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가 와 닿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때늦은 후회였다.

한참을 울던 주양악은 적운상을 옮길 생각으로 다시 손을 뻗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뇌기가 몸을 파고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새까맣게 타버린 적운상의 몸을 덮었다. 그리고 꼭 껴안은 채 조금씩 옮겨가기 시작했다. 문득 벼랑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이대로 함께 죽을까?’

그녀는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강물에 휩쓸리면 시신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럼 사부님이나 사형제들이 자신들을 찾느라 고생하며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그건 아니었다. 최소한 적운상의 죽음을 전해야 했다. 그것이 사매로서의 도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려가기도 쉽지 않았다. 여기는 올라올 때도 상당히 힘들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비 때문에 바위까지 미끄러웠다. 경공을 모르는 그녀로서는 과연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중간에 떨어져서 죽는다면…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주양악은 이를 악물었다. 적운상을 등에 업고 양팔을 목에 두르게 해서 옷을 찢어 꽁꽁 묶었다. 그리고 남은 옷을 길게 이어 서로의 허리를 묶었다.

죽고 사는 건 하늘의 뜻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내려가다가 떨어져 죽는다고 해도, 단지 그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적운상이 없는 삶이란 그녀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때부터는 죽음과의 사투였다. 가파른 암벽을 사람을 업은 상태에서, 그것도 이 빗속에 미끌미끌한 바위를 디디며 내려가고 있었다. 죽으려고 작정을 하지 않은 이상,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적운상과 자신의 체중을 지탱하느라 팔은 덜덜 떨렸고, 몇 번이나 미끄러지면서 허우적대느라 손톱은 이미 모두 부러져나가 피가 났다. 그때마다 그녀는 손을 놓고 싶은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어차피 적운상은 죽었다. 그러니 조금 기다렸다가 비가 그친 후에 사람들을 불러서 그의 시체를 옮기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생각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적운상의 죽음은 그만큼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녀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헉! 헉!”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이 콧물에 섞여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누워서 위를 올려다보니 까마득했다. 어떻게 저 높은 곳에서 내려왔는지,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그렇게 몰아치던 폭풍우가 조금씩 잠잠해지고 있었다.

주양악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적운상을 봤다.

“헉! 헉! 사형… 흑…….”

시야가 흐려지며 다시 눈물이 났다. 그때 적운상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지만, 그녀는 그걸 보지 못했다.

* * *

 

한 노인이 오십여 명의 사내들을 이끌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통천문의 장로 중 한 명인 허우생과 그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흉흉한 기세에 사람들이 분분히 길을 비켜줬다.

허우생은 상관보 앞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췄다.

탕탕!

거대한 대문을 부하 하나가 두드리자 잠시 후 사람이 나왔다.

“무슨 일… 헛!”

문을 연 사람은 허우생과 그의 부하들을 보고 바짝 얼어붙었다.

“적운상을 만나러 왔다. 가서 불러와.”

“네? 그, 그는 여기에 없습니다.”

허우생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말을 한 사람이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어디 갔나?”

“그, 그게… 며칠 전에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뛰쳐나가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의외였다. 약속을 저버릴 놈은 아닌 것 같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실 허우생이 오늘 적운상을 찾아온 이유는 한 달 전에 약속한 비무 때문이었다. 허우생은 잠시 날짜를 계산해 봤다. 분명 오늘이 딱 한 달째였다.

‘끙. 미리 연락을 하고 올걸 그랬나?’

그놈의 급한 성질머리가 문제였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허우생은 적운상과 비무 약속을 한 이후로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른 걸 떠나서 그는 강한 자와 겨룰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때 본 적운상의 실력은 진짜였다. 충분히 목숨을 걸고 겨뤄볼 만한 상대였다.

그래서 하루, 하루 날짜를 꼽으면서 당장이라도 다시 겨루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오늘까지 왔다. 그런데 상대가 없었다.

‘혹시 도망간 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 본 적운상의 성격상 절대로 그건 아니었다.

“험! 언제 돌아온다고 하더냐?”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상관보주도 모른다고 하던가?”

“네. 오히려 저희한테 그의 행방을 물었었습니다.”

“음…….”

손이 근질근질했지만 상대가 없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돌아오면 전해라. 정확히 삼 일 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네. 알겠습니다.”

허우생은 기세 좋게 왔다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다시 돌아갔다.

* * *

 

낮에 허우생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관도백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적운상은 그때 뛰쳐나간 이후로 소식이 없었다. 이에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비무를 앞두고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비무가 두려워 도망이라도 쳤겠거니 하겠지만 적운상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칼을 들고 쳐들어갔으면 갔지, 도망을 칠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흐음… 뭔가 이유가 있을 터인데…….’

생각에 잠겨 있던 상관도백은 문득 상인연합모임에 갔다 온 이후로 적운상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던 것이 떠올랐다. 적운상은 매일 아침마다 날씨를 확인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딘가로 뛰어나갔었다.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상관도백은 뭔가 일이 있겠거니 하면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소식이 없자 당장에 그 일부터 떠올랐다.

“음…….”

‘그러고 보니 악록서원의 배 학사를 찾아갔었지.’

상관도백은 사람을 보내 적운상에게 소개를 시켜줬던 그 늙은 학사를 불러왔다. 늙은 학사는 상관도백을 보자 예를 갖추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보주님.”

“며칠 전에 내가 사람을 하나 소개시켜 주지 않았소?”

“그랬지요.”

“그가 혹시 왜 찾아갔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소?”

“어려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날 그 젊은이는 벼락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었습니다.”

“벼락?”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농을 하는 줄 알았는데, 워낙에 진지하게 묻기에 방법을 찾아서 알려줬지요.”

“허! 그런 해괴한 것을 물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허! 참…….”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 그동안 비바람만 몰아치면 뛰쳐나갔던 이유가 벼락을 맞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벼락을 맞으려고 한 걸까?

“그 외에 다른 것은 묻지 않았소?”

“없었습니다.”

“음… 벼락을 맞으면 죽지 않소?”

당연한 일이었다. 질문을 해놓고 상관도백은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상관도백도 마찬가지였다.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은커녕 벼락을 맞았다는 사람조차도 본 적이 없었다.

상관도백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적운상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그를 밀어주기로 결정을 하고 상관보연까지 형산파로 보내 일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도대체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대범하고 생각이 깊은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을 한다. 거기에 더해 가끔 미쳐서 제정신이 아닐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괴이한 짓까지 하니, 어떤 잣대로 그를 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보주님! 보주님!”

사내 하나가 헐레벌떡 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상관도백을 불렀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냐?”

“크, 큰일 났습니다. 적 공자가 돌아왔는데…….”

“돌아왔으면 된 거지 뭐가 큰일이라는 게냐?”

“그게… 죽었습니다.”

“뭐라?”

“주 소저가 엉망인 모습으로 그의 시체를 업고 왔습니다.”

“이런…….”

상관도백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크게 놀랐다. 적운상이 죽다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적 공자의 방으로 갔습니다.”

“가보자.”

상관도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대청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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