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7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75화
75화. 사자왕
콰르르릉!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적운상은 밥을 먹다 말고 그대로 뛰쳐나갔다.
“사형!”
주양악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뒤따라 달렸다. 적운상은 요 며칠간 저렇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미친 사람처럼 어김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에 그녀는 적운상이 살짝 맛이 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잖아도 무공수련의 후유증으로 한 번씩 돌아버리는 적운상이었다. 혁무한에게 패하고 은서린을 구하지 못한 자괴감에 저리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걱정이 앞선 주양악은 앞에 달려가는 적운상을 따라 필사적으로 뛰었다.
적운상은 동정호(洞庭湖)에서 이곳 장사까지 흘러오는 강줄기가 있는 곳까지 달렸다. 그곳에는 기암괴석들이 높이 솟아 있었다. 적운상이 암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콰콰쾅!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쳤다.
“사형!”
“오지 마!”
적운상은 아직 몸이 완쾌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런 날씨에 이를 악물고 암벽을 탔다.
주양악은 그런 적운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려고 저러는 걸까?
궁금증이 일어 몇 번이나 물었지만 적운상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말라며 오히려 나무라기만 했다.
처음에는 적운상이 목숨을 끊으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적운상이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할리도 없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내려오곤 했었다.
“헉! 헉!”
적운상이 드디어 절벽을 다 올랐다. 거기에는 바위틈에 아름드리나무 하나가 솟아 있었다. 기괴하다면 기괴하다고 할 수가 있었지만, 이 인근에는 이런 곳이 많았다.
절벽 밑으로 세차게 흐르는 강줄기가 보였다. 떨어진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적운상은 조심조심 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며칠 전에 박아놓은 기다란 쇠꼬챙이가 꽂혀 있었다. 벼락을 맞기 위해서 적운상이 꽂아놓은 것이었다.
적운상은 그동안 벼락을 맞을 방법을 연구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괴한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고민하던 적운상은 가까운 곳에 악록서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곳은 중원에서도 손에 꼽히는 서원이었다. 당연히 뛰어난 학사들이 넘쳐났다.
적운상은 상관도백에게 부탁해서 그곳의 뛰어난 학사와 줄을 댔다. 그리고 찾아가서 벼락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적운상의 말을 들은 나이 지긋한 학사는 기가 막혔다. 살다 살다 벼락을 맞겠다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하지만 표정이 너무 진지했고, 상관보주인 상관도백의 소개로 온 사람이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이에 고서를 뒤지고 여기저기 견해를 얻어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방법이었던 것이다. 창보다 더 기다란 쇠꼬챙이는 천응방에 주문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 학사가 말하기를 저렇게 뾰족한 것이 있으면, 특히 쇠로 되어 있으면 벼락을 잘 맞는다고 했었다.
그걸 그대로 맞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이에 그때처럼 나무를 통해 한 번 여과시킬 생각으로 나무 위에 꽂아놓은 것이었다.
적운상은 심호흡을 하고 나무에 양손을 댔다.
“후욱… 후욱…….”
뇌룡을 통해 뇌기를 흡수하려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렇게 목숨을 걸고 했었다. 결과적으로 별 효과를 얻진 못했지만, 어쨌든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길 뿐!
“끙. 헉헉! 사형!”
간신히 적운상을 따라서 위로 올라온 주양악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비바람이 워낙에 거세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바람에 그녀의 목소리가 묻혀버렸다.
“사형!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주양악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그러자 적운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왜 따라왔어! 다가오지 마! 잘못하면 너도 죽어!”
“주,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뭘 하려는 거예요?”
주양악이 놀란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그런 주양악을 보며 적운상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사정을 설명하면 주양악은 온갖 생떼를 쓰며 막으려 들 것이 뻔했다.
만약 주양악이 이런 짓을 한다고 하면 적운상도 그렇게 말렸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렇게 자꾸 다가오니 방법이 없었다.
“거기서 들어! 설명해 줄게!”
“에?”
“다가오지 말고 거기서 들어!”
적운상이 버럭 화를 내자 그제야 주양악이 걸음을 멈췄다.
그때였다. 하늘이 우르릉 거리며 천둥이 쳤다. 그리고 벼락이 치며 적운상이 꽂아놓은 쇠꼬챙이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쾅!
적운상이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었다. 벼락은 나무와 함께 그를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꺄악! 사형!”
주양악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는 두 다리를 덜덜 떨다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 * *
호남 북서지방의 장가계(張家界). 금검문이 있는 원릉의 인근지역으로 그쪽 지방에서는 제법 발전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십여 명의 사내들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한 사내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 는 덩치가 좋고 근육이 우락부락했는데, 입고 있는 옷이 중원의 옷과는 달랐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칼을 거둬라.”
덩치 좋은 사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십여 명의 사내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흥! 죽고 싶지 않으면 선선히 따라와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크크크. 크하하하!”
갑자기 덩치 좋은 사내가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했다. 그러더니 웃음을 뚝 그치고 칼을 뽑아 들었다. 도신이 원만하게 휜 대두도였는데, 보기에도 보통 칼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한테 그런 말을 하고 살아난 놈은 한 명도 없다.”
“흥! 잔소리 말고 죽어라!”
사내가 그에게 달려들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덩치가 좋은 사내가 코웃음을 치면서 들고 있던 대두도를 가볍게 횡으로 휘둘렀다.
따앙! 파각!
“크헉!”
덩치가 좋은 사내가 휘두른 대두도는 그에게 달려들던 사내의 칼을 부러트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칼을 휘둘러오던 사내까지 베었다.
압도적이었다. 그는 단 일격에 남아 있던 사내들의 기를 팍 죽여 놓았다.
그가 움직였다. 칼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단순한 동작이었다. 그리 빠르지도 않았다. 사내가 얼결에 칼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방어를 했다.
따앙! 파각!
“끄아아악!”
머리 위로 막았던 칼이 밑으로 처지면서 머리에서 피가 솟았다.
“히이이익!”
사내들은 그제야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떨었다.
그들은 호남칠대세력 중 하나인 장가촌(張家村)의 사람들이었다.
장가촌은 장씨 성을 쓰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하지만 모두가 무공을 할 줄 안다. 그 마을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무공을 누구나 할 줄 알았다.
일반 세가들처럼 체계가 딱 잡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한 이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결속력이 좋았다.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덩치 좋은 장년 사내에 의해 장가촌의 고수 한 명이 죽었다. 정당한 비무였으니 장가촌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비무에서 죽은 이가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친척이었기 때문에 젊은이들 십여 명이 그의 복수를 하고자 이렇게 그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정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분통함에 이성이 마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실수했음을 크게 깨달았다. 이자를 죽이려면 자신들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장가촌의 촌장 어른이 와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장가촌의 고수들이 모두 왔었어야 했다.
후우웅! 파각!
“으아아악!”
사내 하나가 또 그의 칼에 당해 비명을 질렀다. 십여 명 중 남은 자는 이제 네 명뿐이었다. 순식간에 열 명 가까이 되는 이들이 쓰러졌다.
무식한 도법이었다. 칼과 함께 사람까지 날려버렸다. 중원에서 저렇게 거칠게 칼을 쓰는 자는 없었다.
“흥! 피라미들이로군.”
그가 비웃음 가득한 말을 했다. 그래도 사내들은 몸을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 사내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다, 당신은 도대체 누, 누구요?”
“뭐? 하! 그것도 모르고 덤빈 거냐? 난 사자왕이다. 신강에서는 제법 알려진 이름이지.”
“헉! 사, 사자왕?”
사내들이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 먼 신강에서 이곳까지 명성이 자자한 자였다. 처음부터 자신들은 그의 적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혹시 적운상이라는 자를 알고 있나?”
그의 물음에 사내들이 서로를 봤다. 하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모, 모르오.”
“그래? 흠, 그 녀석을 어디 가서 찾지?”
뒷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재미없다는 듯이 칼을 거뒀다.
“복수를 하고 싶으면 좀 더 실력을 쌓아서 와. 그 녀석은 겨우 열일곱 살에 나하고 만만하게 겨뤘었지.”
“그, 그런…….”
믿을 수가 없었다. 누가 있어 저런 괴물 같은 자와, 그것도 겨우 열일곱 살에 동수를 이뤘단 말인가?
“그, 그가 누구요?”
“응? 방금 말했잖아. 적운상이라고.”
“적운상…….”
사내들이 사자왕이 뱉어낸 이름을 자신들도 모르게 되새겼다.